기록에 따르면, ‘2018년 현재 나가사키현의 가톨릭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신자수는 약 6만 2천 명으로 현 전체 인구의 약 4.4% 정도이다. 일본 전체의 가톨릭교회 신자는 전체 인구 대비 약 0.34%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나가사키현의 가톨릭 신자 수는 다른 현에 비해 월등히 많은 편이다.‘(<한중일의 갈림길, 나가사키> 서현섭)

현재 나가사키현에는 138개의 성당이 있다고 한다. 이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치이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죽을 때까지 일본에는 교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뭐 그렇게 믿어도 내 인생이 달라질 건 없지만.

기왕 나가사키에 온다면 그 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교회가 있는지 없는지. 하비에르가 1549년에 여기까지 와서 선교를 했는데 그래도 명맥은 살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비싼 값을 치르고 ‘호텔 인디고 나가사키‘를 선택한 이유가 되겠다.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 그것도 다른 데도 아닌 일본에서, 이것만으로도 이 호텔은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이다. 내 생애에 언제 이런 기회가 있으랴 싶었다. 내가 한때나마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였어서 그런 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아시아 일대를 여행하다보면 하비에르가 끈질기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저 궁금했다. 그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말이다. 신심은 없지만 호기심은 살아 있는 셈이다.

아래는 오늘 아침밥 먹은 곳. 예전 성당에 다닐 때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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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기차를 탈 줄 알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다, 는 배낭여행족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말이 있다. 표 판매하는 창구까지 다섯 단계, 열차에 오르기까지 또 다섯 단계, 목적지까지 또 다섯 단계, 단계마다 사람들과 엮이게 되니 한 열댓명쯤을 상대하게 된다. (특히 북인도가 그렇고 남인도는 북인도에 비하면 순한 맛이다.) 징글징글한데 그게 또 묘해서 다시 인도를 찾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강렬함을 느끼기에 그만한 것이 없다고나 할까. 다만 10년도 더 지난 얘기여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인도에서 기차를 탈 줄 아는 나보다 더 센 인간이 있다면 그건 택시를 안 타는 사람, 바로 남편이다. 웬만하면 걷는다. 오늘도 걸었다. 그동안 세태에 따라서 백팩이 캐리어로 바뀌긴 했지만 세월따라 나이도 먹었으니 캐리어 바퀴가 자율주행이라도 하면 모를까 힘이 안들 수가 없다.

북쪽의 스와신사에서 남쪽의 글로버가든까지 한 시간 넘게 이동했는데.. 그 험한 인도도 여러번 다녔는데 이정도 가지고 이렇게 불평하는 나..는 이제 늙...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의 주제는 숙소.

일주일 여행에 총숙박비로 100만 원 내외를 예상한다면
1. 일박에 약14만 원 × 7일: 한 군데 호텔
2. 일박에 6만 원×3일 + 32만 원×2일 + 14만 원×2일 : 세 군데 호텔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번엔 2번을 선택했다. 6만 원짜리 게스트하우스도 좋지만 아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백팩에서 캐리어로 바꾸는 것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늘은 값 비싼 밤이다. 잠을 자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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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이니셜이 새겨진 대포.
17세기에는 저걸로 세상을 날로 먹으려고 했고.
지금은 트럼프의 입이 대포. 영원한 것은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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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가사키역 앞.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한무리의 일본여학생들이 보인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구두에 내 눈이 머문다. 나도 저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구두를 고등학교 3년 내내 신었다. 다만 색깔은 자주색. 자주색 베레모, 자주색 자켓과 치마, 자주색 스타킹, 자주색 구두, 자주색 가방. 8.15 광복이 되고 한 세대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명문여고에 다닌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시절이었는데 이제보니 일제 잔재가 벌겋게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닌 걸 생각하니 참으로 씁쓸하고 부끄럽다.

2. 나가사키 윈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 서니 가슴이 울컥.

3. 추모비를 설명하는 입간판은 낡았으나 절절한 마음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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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존재를 대학 때부터 알았으니까 40년이 넘도록 읽지 않았다는 얘기다. 읽었더라도 재미 없다며 도중하차했을 확률이 높다. 끝까지 읽었더라도 글자만 읽었을 것이다. 헛읽은 책이 한두 권이 아니었으니.


배경은 콩고. 이 당시의 콩고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1835~1909)와 뗄 수 없다.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지배한 기간은 20년 남짓. 그 기간 콩고에서 약 100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1885년 ~1905년 콩고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몸소 스페인까지 가서 식민통치술을 배운 레오폴드 2세는 역사상 가장 잔혹한 통치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아돌프 히틀러, 캄보디아 '킬링필드' 대학살의 주범 폴 포트, '아프리카의 히틀러' 우간다의 이디 아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벨기에 면적의 75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을, 그는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면서 수탈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수탈 대상은 상아와 고무. 강제노동을 거부하는 마을은 몰살시키고, 특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손목을 잘라낸 잔혹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이렇게 거둔 수익이 2억 2000만 프랑, 현재 가치로 11억 달러(약 1조 1000억원)로 추정된다고 한다.(출처: 2018년 중앙일보 기사)


조셉 콘래드(1857~1924)는 1890년 33세 때 아프리카 콩고 강을 항행. 1899년 42세 때 이 소설을 발표한다. 정확하게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잔혹하게 수탈하던 시기와 겹친다. 


흔히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점에서 주목받는다'고 하는데, 1860년에 발표된 네덜란드 작가 물타뚤리의 <막스 하벨라르>와 비교하면 애매모호한 편이며 인종차별적 요소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콘래드보다 한 세대 전에 나온 책은 세상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했지만 이 <암흑의 핵심>은 세상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번역자인 이상옥의 작품 해설을 보면, 

' 이 책은 무엇보다도 문명 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 인식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인간의 자기 탐구담이다. 이 책의 감동은 작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에서도 나오지만, 그것보다도 우리가 서술자 말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의 정신적 탐구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는 그 강력한 주술적 힘에서 나온다.'


<암흑의 핵심> 만큼이나 모호한 해설이다. '문명 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에서 그 문명 사회의 밑바탕이 되는 재화는 어디에서 얻는가. 식민지 수탈로 꽃 피운 문명, 그걸 외면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깨어 있지 않은 의식. 소설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 무서워라, 무서워라" 외치던 작중 인물 커츠의 광기가 오히려 진실하다면 진실하다고 할까. 무자비하게 원주민을 학살하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이 그저 옛날 구시대의 이야기일 뿐일까. 


바람이 있다면 이 애매모호한 <암흑의 핵심> 옆에, 분명하게 호소하는 <막스 하벨라르>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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