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존재를 대학 때부터 알았으니까 40년이 넘도록 읽지 않았다는 얘기다. 읽었더라도 재미 없다며 도중하차했을 확률이 높다. 끝까지 읽었더라도 글자만 읽었을 것이다. 헛읽은 책이 한두 권이 아니었으니.
배경은 콩고. 이 당시의 콩고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1835~1909)와 뗄 수 없다.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지배한 기간은 20년 남짓. 그 기간 콩고에서 약 100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1885년 ~1905년 콩고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몸소 스페인까지 가서 식민통치술을 배운 레오폴드 2세는 역사상 가장 잔혹한 통치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아돌프 히틀러, 캄보디아 '킬링필드' 대학살의 주범 폴 포트, '아프리카의 히틀러' 우간다의 이디 아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벨기에 면적의 75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을, 그는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면서 수탈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수탈 대상은 상아와 고무. 강제노동을 거부하는 마을은 몰살시키고, 특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손목을 잘라낸 잔혹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이렇게 거둔 수익이 2억 2000만 프랑, 현재 가치로 11억 달러(약 1조 1000억원)로 추정된다고 한다.(출처: 2018년 중앙일보 기사)
조셉 콘래드(1857~1924)는 1890년 33세 때 아프리카 콩고 강을 항행. 1899년 42세 때 이 소설을 발표한다. 정확하게 레오폴드 2세가 콩고를 잔혹하게 수탈하던 시기와 겹친다.
흔히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점에서 주목받는다'고 하는데, 1860년에 발표된 네덜란드 작가 물타뚤리의 <막스 하벨라르>와 비교하면 애매모호한 편이며 인종차별적 요소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콘래드보다 한 세대 전에 나온 책은 세상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했지만 이 <암흑의 핵심>은 세상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번역자인 이상옥의 작품 해설을 보면,
' 이 책은 무엇보다도 문명 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 인식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인간의 자기 탐구담이다. 이 책의 감동은 작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에서도 나오지만, 그것보다도 우리가 서술자 말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의 정신적 탐구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는 그 강력한 주술적 힘에서 나온다.'
<암흑의 핵심> 만큼이나 모호한 해설이다. '문명 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에서 그 문명 사회의 밑바탕이 되는 재화는 어디에서 얻는가. 식민지 수탈로 꽃 피운 문명, 그걸 외면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깨어 있지 않은 의식. 소설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 무서워라, 무서워라" 외치던 작중 인물 커츠의 광기가 오히려 진실하다면 진실하다고 할까. 무자비하게 원주민을 학살하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이 그저 옛날 구시대의 이야기일 뿐일까.
바람이 있다면 이 애매모호한 <암흑의 핵심> 옆에, 분명하게 호소하는 <막스 하벨라르>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