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온 게 2000년 8월인데 이제야 동네 주민이 된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산책시키는 개 덕분이다. 이제까지 아파트 뒷편에 있는 산책로나 아파트 주변 공원은 그저 그림에 불과했다. 어쩌다 가보긴 했었지만 기억에 없는 걸로 봐서 갔어도 간 게 아니었다. 개를 데리고 천천히 걷다보니 나무도 다양하게 심어져 있는 게 보였다. 산사나무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하고. 아파트는 처음보다 많이 낡았으나 주변 공원이 새롭게 보이니 앞으로도 20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ㅎㅎㅎ

 

 

 

 

매미가 벗어놓은 옷이 황금색이라니. 대단한 발견인양 호들갑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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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8-0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저 처음 봐요.

nama 2019-08-01 13:06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랐답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맞닥뜨린 기괴한 예술가를 지난번에 얘기했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그의 연인이었던 패티 스미스의 책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었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읽었다. 혹시나 하고 동네 도서관 자료검색을 해봤는데 두 군데 모두 그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놀랐다. 내가 몰랐을 뿐 이미 이 분들은 유명했다.

 

 

 

 

 

 

 

 

 

 

 

 

 

 

 

 

 

패티 스미스가 고향을 떠나 뉴욕에 무일푼으로 도착, 노숙을 하면서 버티는 이야기, 로버트 메이플소프와의 영화 같은 만남과 동거, 소울 메이트로서 둘의 관계, 뉴욕 예술계 거물들과의 교류, 메이플소프의 성공과 인간관계 그리고 죽음. 한편의 잘 짜인 소설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2010년 아마존 최고의 책 베스트 10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은 책인데 읽다보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는데 거기에 따르는 후회, 원망, 아쉬움 같은 감정 과잉따위나 어두운 구석이 없다. 과장도 없고 각색도 없는 깔끔함에 오랫동안 글을 써온 사람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이다. 한마디로 내용도 좋고 글도 좋다. 이런 책은 소장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어떤 날은 미술관에 갔다. 티켓 한 장밖에 살 돈이 없었던 우리는 한 명만 들어가 전시를 보고 나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69족

 

가난한 예술가들의 눈물겨운 뉴욕 생활담이다.

 

우린 서로 다른 목표를 지향했다. 나는 나를 넘어서 더 높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기 바랐고, 로버트는 자기 안의 세계를 추구하길 바랐다. 그는 자기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예술적 언어들을 탐구하고 그 요소들을 바꾸고 변형해왔다. 사실상 지금까지 억눌러온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내적 변화를 기록하는 도구로서 창작 활동을 해온 것이다.   -107쪽

 

'자기 안의 세계를 추구'. 메이플소프의 심히 충격적인 사진들을 보다보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 만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아름답고도 아찔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로버트는 관음증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자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를 선호했고, 그러다 보니 사도 마조히즘에 관련된 작품들을 찍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 행위가 좀 더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할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모두가 자신 같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중략)

 

왜 그런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누군가는 해야 했고, 그게 자기였을 뿐이라 답했다. (중략) 그의 의도는 폭로가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었고, 그 이외엔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예술가로서 로버트를 가장 흥분시키는 일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302~304쪽

 

 

영화를 봤다.

 

 

(출처: Naver )

 

로버트 메이플소프에 대한 다뮤멘터리 영화. 영화를 보니 <저스트 키즈>의 내용과 겹쳐지면서 메이플소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화를 봤으니 다시 <저스트 키즈>를 좀 더 확실하고 완벽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만. 평소 책을 달고 사는 패티 스미스에 의하면 메이플소프는 책을 거의 안 읽었다고 한다. 책에 길이 있어 책을 벗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턱대고 책을 읽는다고 그 속에서 길을 발견하는 건 아닐 터. 잠시 한 예술가의 천재성에 시비를 걸고 싶었다.

 

 

<저스트 키즈>에는 젊고 아름답고 상큼한 메이플소프의 사진이 실려있다. 책 내용 또한 그러하다. 남자건 여자건 메이플소프를 보는 순간 그에게 끌렸다고 하니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그저 짐작할 따름이다. 그랬던 그였으나 영화 <메이플소프> 뒷부분으로 가면 그의 마지막 모습에 또한번 충격에 빠진다. 고작 42살인데 외모는 80대 후반이다. 에이즈로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죽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가족, 애인들, 지인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에 거침이 없다. 얘깃거리로 남은 한 예술가의 생애가 짠하게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메이플소프의 말을 옮겨본다.

"그때 찍은 사진이 정말 중요해요. 그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작품이었고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런 작품을 봤으니까요. 그렇게 새 경험의 장을 열어주는 것, 새 세상을 열어주는 게 바로 예술입니다."

 

메이플소프의 작품이 '새 경험의 장'을 열어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음, 외설도 새 경험의 장을 열어주긴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리로는 그의 작품이 외설과 예술 사이를 오고가지만, 대담한 그의 작품이 아직도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새 세상'을 열어주었으니 예술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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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여서 좋고

책이 두껍지만 사진이 많아 술술 넘기는 맛이 있어 좋고

여행, 책, 음악, 장소, 단어의 어원 등 소소한 정보가 많아서 좋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깊은 속내와 목마름, 열정 등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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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름이 아닌 동네 이름, 남해엘 갔었다. 남해, 하면 우선 떠오르는 곳이 금산 보리암, 독일 마을, 미국 마을, 섬이 정원, 가천다랑이마을 등이 있다. 보리암은 기도 도량이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러 간 게 아니라면 그리 빼어난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 아닌만큼 약간은 실망할 수도 있다. 독일 마을은 방송을 너무 자주 탄 게 원인일까. 관광객이 너무나 많았다. 구경꾼이 그렇게나 많이 몰려드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애써 그곳에 갔지만 구경하는 걸 접었다. 내가 그곳에 살고 있다면 대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창문에 새까만색 암막 커튼을 달고 하루종일 외출을 삼가거나 아예 그곳을 떠났을 것 같다. 구경거리가 된 동네에서 산다는 건 우울하고 몹시 피곤한 일일 것 같다. 내가 그 동네 이장이라면 마을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동네 출입을 허가할 것이다. 섬이 정원은 한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을 입장료 몇 푼을 내고 슬쩍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천다랑이 마을의 다랑이 논을 보니 발리의 다랑이 마을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도 발리 못지 않은 다랑이 마을이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닫고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해, 크지 않은 섬에 볼 것이 이렇게 많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과 나, 우리는 남해에서 하루 묵어보기로 했다. 가성비가 몹시 떨어지는 펜션은 가급적 삼가고 군청(시청)이나 터미널이 있는 동네의 평범한 모텔에서 묵는 게 우리의 여행 방식이라서 남해 군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모텔을 숙소로 정했다. 모텔에 들어서니 주인장이 안 보인다. 일이 분 망설이다가 주차장으로 나오니 곧이어 주인 아주머니가 따라나와선, 주방에서 부침개 만드느라 손님 온 것을 몰랐다며 그냥 가시겠냐고 묻는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그렇지, 하면서 주인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가 방값을 치렀는데, 아주머니 왈, 부침개 한 쪽 잡숴보겠냐고 묻는다. 살짝 비가 오는 날씨에 부침개라니. 이미 모텔은 부침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낯선 이에게 베푸는 환대까지 더해 부침개 맛은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었다.

 

더 먹겠다고 하면 더 얻어 먹을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도 염치는 있는 법.  가까운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허를한 식당에서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콩죽을 먹었다. 가격도 저렴한데다 생각보다 맛이 소박하고 정겨웠다. 다만 반찬으로 나온 김치가 부족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밖에 계신 바람에 더 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라고 할까. 흐뭇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서서 숙소로 향했는데... 남편 등에 있던 백팩이 생각났다. 식당에 두고 온 걸 깨닫고 급히 식당으로 갔는데 이미 가게 문이 닫힌 상태였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어쩌나, 잠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식당 맞은 편 가게의 주인분이 그러신다. 문 안 잠겼으니 어서 들어가 가지고 나오라고. 이 집은 문 안 잠근다고.

 

문 안 잠그는 식당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극성스러운 모기의 습격을 당하고 이내 동네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부침개까지 얻어 먹었는데 야박하게 모기향 달라고 요구하기가 그러니 아예 집으로 가져갈 의도로 모기향을 사기로 했다. 액체 모기향 세트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 여기 살러 온 분들이세요?"

" 네?.....아니요."

" 모기향을 사시기에요."

" 저기 모텔에 묵는데 모기가 많아서요."

이 분은 동네 사람들을 다 알고 계신 지 낯선 이방인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우리가 낯선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받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 낯선 사람을 알아봐주는 인정 같은 게 느껴졌다. 알아봐주니 낯섫은 낯섦이 아니었다. 친절이었다. "포인트, 몇 번이지죠?" 우리 동네건 낯선 동네건 으례 물건을 사면 듣게 되는 적립 시스템용 멘트. 그런데 여긴 달랐다. 살갑고 정겨운 기분에 젖어 숙소로 돌아오면서 남편과 나는 막연하지만 이런 다짐을 했다.

" 퇴직하면 남해에서 한달살이합시다."

 

2019년 6월 남해.

 

 

 

 

꼭 시계를 닮았다. 이름하여 시계꽃. 가천다랑이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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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2019-07-1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해 참 좋아하는데. 보통 시골마을이 논과 아파트 정리 안된시골과 도시의 중간의 어수선함을 보여주는데 남해는 단아하다고 할까 참 이쁜 곳입니다

nama 2019-07-14 18: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마을이면 마을, 참 단아하고 정감이 가는 곳입니다. 제 생각엔 발리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물론 사람들도 좋구요.^^
 

  

1.

미국은 싫어도 뉴욕만큼은 가보고 싶었다. 미국이 싫다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미군부대가 있는 동네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나는 일찍부터 미국 문화에 접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군인들의 비상식량 깡통 속에 들어있던 고기 통조림, 이따금 동네에 손수레를 끌고 오는 행상에게서 한 대접씩 사서 뜨겁게 데워먹던 꿀꿀이죽, 달리는 미군 차량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비루하게 헬로를 남발하며 얻어 온 초콜릿, 유년의 시간대였던 1960년대 풍경이다. 겨우 먹고 살던 시절이어서 유독 먹거리에 대한 기억이 많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여러 친구들과 다양하게 어울리게 되었는데 특히 미군부대를 이웃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 때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사이여도 서로들 집에 초대해서 함께 놀곤 하던 시절이어서 이 친구네 집 저 친구네 집, 두루두루 가볼 기회가 많았다. 공무원이었던 우리 아버지만 보고 자랐던 나는 친구의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일한다는 걸 듣고 신기하게 여기기도 했다. 미군부대 주변을 맴돌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고등학교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지만 함께 진학한 친구들이 많아서 우리들의 놀이터는 여전했다. 대학 역시 새벽 통근열차를 타고 서울로 우루루 몰려갔지만 우리들이 모여서 쏘다니는 길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마음 놓고 술집이나 미군 전용 클럽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대학생이 되니 선후배가 생기고 사회의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때 그간 학교에서 공부했던 그 아름다운 많은 시들을 단번에 물리친 시가 나타났다. 시인 박석수의 시였다.

 

   연 꽃

  -쑥고개 1

 

헐벗은 우리의 가슴에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기 위하여

 

임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양키들의 털북숭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누이야,

 

네 몸과 바꾼 15불의

화대로도 애비들의 눈은

뜨여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연꽃은.

그 신화같은 연꽃

끝끝내 피어나지 않는다.

 

내의 껴입을수록 더

추워지는 이 겨울을

맨 정신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눈 부릅뜰수록 더

어두워지는 이 세상을

좀 더 바로 보기 위하여,

 

임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수렁 속에 던져진

우리들의 마지막 누이여.

 

   

 

 

 

 

 

 

 

 

 

 

 

 

 

 

 

 

양키들의 털북숭이 가슴에이 강렬한 구절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자꾸 의식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이른바 반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미군부대에 기대어 살고 있는 입장에서 나오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국제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과도 닿아 있는 씁쓸함 같은 것. 미국은 이미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꽈리를 틀고 있었다. 미국 문화는 외국 문화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영어교사가 되어 영어로 밥을 먹고 살게 되었지만 영어교사를 마감할 때까지 미국 땅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도무지 미국이 궁금하지 않았다. 미국식/영국식 영어를 따져가며 발음에 버터를 바르려고 노력이야 했지만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더 이상 남의 나라 말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게 죄짓는 것 같아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가보지 않은 나라, 미국이지만 나는 미국 문화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벗어날 수도 없었다.

 

영어를 접으니 미국에나 한번 가 볼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미국을 대표하는 곳,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간은 보름 정도로 잡았다.

   

 

 

2.

미국을 대표하는 곳이 뉴욕이라면 이번 뉴욕 여행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일까.

여행 전 책으로 예습했던 뉴욕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미술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구겐하임미술관을 두루 다녔다. 솔직히 그림을 본다고 해서 눈에 익은 명화를 살아있는 육안으로 확인하는 기쁨 이상은 아니다. 낯선 그림 앞에서 감동하고 그 감동을 다음 단계로 이끌어가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깨달을 뿐이다. 미술 전시회에 가면 늘 느끼는 부족함과 미진함의 원인이다.

 

구겐하임미술관은 명성대로 건물이 아름답다. 나선형으로 설계된 전시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꼭대기 층, 마지막 전시실에 이른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명화들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며 올라왔는데 이 마지막 전시실은 좀 많이 낯설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흑백사진까지는 좋은데, 이게 뭐지? 육체미가 가감 없이 드러나는 흑인의 상반신 혹은 하반신과 거대한 성기 사진. 10초 이상 눈에 힘을 주기도 힘든 작품을 스마트폰으로 찍는 이 남자는 또 뭐지

 

 약간의 충격을 충격이 아닌 양 하며 밖으로 나오니 예쁜 화장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기둥 모양의 화장실도 인상적인데 손잡이가 달린 변기 커버도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센스 만점의 변기 커버에 감탄하며 급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으흠,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줘야지.

 

    

 

 

 

집에 돌아와서 한대수의 책을 읽고 나서야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메이플소프(Mapplethorpe)는 사진계의 폭군, 이단아, 동성 섹스 포르노 작가로 알려졌다. 또 호의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은, 그를 동성 에로티카의 위대한 아티스트, 혹은 섹스 혁명의 개척자로 인정한다. 여하간, 메이프소프는 화젯거리이고, 논란의 대상이다.

   이러한 사진계의 '체 게바라', 메이플소프의 사진 전시회가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열렸다.(중략) 모두 흑백. 절반은 유명인의 초상화이고 다른 절반은 꽃과 남자 누드이다. 페니스가 노출된 흑인 남자들이다. 너무나도 생소하고 파격적이다. 대부분의 남녀 관람객들은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놀라워서 못 본 척하며 그냥 지나간다.    (108쪽) 

 

 

소심하게 변기 커버 사진이 뭐냐. 대담한 사진이라면 대담하게 찍어와야지. (참고로, 인터넷 검색하면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메이플소프의 평생 연인이었던 패티 스미스의 책. 메이플소프와의 뉴욕 생활을 그린 자서전으로 내셔널 북 어워드를 탔다고 한다. 언젠가 읽게 되겠지, 아마.

 

 

3.

때는 1970년대 초. 초등학생 때. 누군가를 따라서 미군부대 근처에 갔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 어떤 예쁜 여자가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흰색 짧은 웃옷을 입고 내 옆을 지나갔다. 그당시 동네에서 유일한 티비가 우리집에 있었기에 웬만한 장면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는데 실제 눈 앞에 본 그 옷차림은 상상초월의 생소한 놀라움을 선사했다. 아, 양공주구나.

 

충격으로 크기로 따지자면, 어린 초등생 눈에 보인 그 옷차림이나 메이플소프의 대담한 사진이 주는 충격이나 거기서 거기다. 미국은 이렇게 또 한번의 충격을 가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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