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호되게 걸리면 잘 낫지 않는 위염. 두 차례에 걸쳐 직장 근처의 내과에 들러 진료를 받았으나 호전되는 기미가 없다. 할 수 없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20년 넘게 다닌 단골의원을 찾아갔다.

 

23년 쯤 된 단골의사는 '요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느냐?'고 묻는 것으로 진료를 시작하는 게 습관인데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걱정거리를 묻는 안부인사로 맞이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은 안부인사쯤으로 흘려들었을 이 물음이 오늘따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오늘 내가 이 병원에 온 건 이 안부인사를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근처의 단골약국을 찾아갔다. 머리가 하얀 늙수그레한 약사할아버지에게서 약을 받아들며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속이 안 좋아서 받은 처방인데 이게 모두 속 아픈데 먹는 건가요?"

 

약사할아버지가 살짝 웃으며 하시는 말씀,

 

"네, 모두 속 아픈데 먹는 약이군요."

 

짐에와서 살펴보니 신경안정제 계통의 약이 두 가지 들어 있었다. (요즘에는 약봉투에 약품명과 함께 약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단골의사와 비단골의사의 차이점. 속이 아픈 것만을 다스리는 비단골의사에 반해 단골의사는 마음까지 더듬어 볼 줄 안다.

 

단골약사와 비단골약사의 차이점. 약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본분으로 여기는 비단골의사에 반해 단골약사는 그까짓 설명 쯤 웃음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단골이라는 단어는 훨씬 덜 사무적이고 좀 더 인간적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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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와 억새를 찍기 위해 산책했다. 이름하여 주제가 있는 산책.

 

1. 억새

 

 

2. 억새

 

 

3. 갈대

 

 

4. 갈대

 

 

5. 갈대와 억새

 

억새는 부드럽고 연약해 보이는 반면, 갈대는 좀 억세 보인다. 무엇이 바람에 쉽게 흔들릴까? 아무리 보아도 억새가 여성스럽다. 서로 이름을 바꿔 부르고 싶다.

 

 

*덧붙임(2015.02.26.)

 

 

 

 

 

 

 

 

 

 

 

 

 

 

  (395쪽) 한 때의 처녀들이 가을 햇볕을 쬐러 나왔다고 치자. 머리를 감고 곱게 분을 바르고 나온 이가 억새라면 머리를 감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고 부스스한 얼굴로 나온 이는 갈대다. 당신은 누구하고 사진을 찍고 싶은가? 저물 무렵 햇볕 속에 서 있는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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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4-10-1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만큼 살고도 이런 오류를 얼마나 많이 범하고 모르고 있을 까요?

여자의 이름은 갈대라는 말도 ,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순정때문에
사나이 눈물 흘린다는 그 누구의 대중가요도, 부드럽고 연약해보이는것이
갈대임을 뒷받침해주는데...
아! 그 유명한 베르디의 리골레토에도 나오지요? 갈대와 같이 변하기쉬운
여자의마음... 이라고.
그런데 이제부터는 갈대보다는 억새라고 해야겠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억새... 어째 낱말의 의미가 맞지 않는 느낌이네요. ㅎㅎ

nama 2014-10-19 16:38   좋아요 0 | URL
갈대와 억새를 구분 못한들 뭐 어떻습니까?
갈대와 억새를 바꿔 부르고 싶다는 말, 갈대와 억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요. 누가 이름을 붙여달라고 했느냐, 항의할 테지요.

2014-10-19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0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옥 2018-09-3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갈대와 억새의 구분을 확실히 익히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nama 2018-09-30 20:47   좋아요 0 | URL
저도 구분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답니다.

oren 2018-10-0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개천절날 하늘공원 다녀 왔는데, 오랜만에 가봤더니 그 드넓은 억새밭 사이로 제법 색다른 변화도 생겼더군요. 특히나 한쪽 구석에 마련된 ‘귀화식물원‘에 단연 눈길이 가더군요.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보는 풀들이지만 이름을 잘 몰랐던 식물들이 아주 많아서 반가웠답니다. 개망초, 서양등골나물, 미국 쑥부쟁이, 벌개미취, 서양 명아주, 뚱딴지 등등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그런데, 억새밭 사이로 지나다니면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억새뿐만 아니라 갈대도 아주 많았고, 억새들도 모양이 정말 제각각이더라구요. 레게머리처럼 곱슬곱슬한 억새들도 제법 있었고요. 바람에 하늘거리며 하얗게 빛나는 부드러운 억새에 비해, 갈대는 어딘가 약간 엉성해 보이고 색깔도 썩 곱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냇가에서 아주 많이 봐왔던 터라 ‘못생긴 고향 친구‘를 보는 느낌도 들더라구요.

nama 2018-10-05 22:39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in.co.kr/nama/7811375
법수치에 있는 식물들이 생각나네요.
하늘공원엔 친구들과 딱 한 번 갔었는데요. 바람쐬기엔 그만이더군요.
서양등골나물이 궁금한데요.

oren 2018-10-06 21:46   좋아요 0 | URL
법수치에 있는 식물들도 정겨운 모습들이 많네요. 구경 잘 했습니다.
하늘 공원에는 가능하면 늦가을에 가 보는 게 더 나을 듯싶어요.
아직은 코스모스도 아주 조금 피어 있더라구요. 억새도 절정이 아니었고요.

예전에 한 때는 하늘공원이 너무 좋아 이틀을 연속으로 찾은 적도 있었네요.
http://blog.aladin.co.kr/oren/5096007

nama 2018-10-06 22:13   좋아요 0 | URL
공원은 집 근처에 있어야 공원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대중교통을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하늘공원 같은 곳은 공원이라기보다는 관광지로 다가와요.
우리 동네에는 다행히 생태습지공원이 있어서 지천에 널려있는 게 갈대와 해당화지요. 요즘엔 좀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가 한창이고 좀 있으면 박주가리의 특이한 열매도 볼 수 있어요. 저는 10여 년간을 이 생태공원을 퇴근길로 삼았어요.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어요. 지금도 물론 틈만 나면 공원으로 향하지요.

하늘공원 사진 잘 보았어요. 제 기억으로는 oren님이 사진을 잘 찍는 분으로 알고 있어요.^^
 

1. 청소. 5~6명으로 구성된 조별 청소를 시키고 있다. 대부분은 잘하고 있으나 꼭 이런 녀석이 있기 마련이다. 자기가 속한 조의 차례임을 알고도 모른척 도망가 버리는 녀석 말이다. 한두 번이 아니기에 모질게 마음 먹고 녀석과 녀석의 부모에게 동시에 문자를 보낸다.

 

다음 날. 부모에게 한소리 들은 녀석은 말없이 청소를 하는데....

 

"선생님은 왜 청소 안 하세요?"

 

임장지도. 청소할 때는 반드시 현장에서 청소를 지도하고 지켜보는 일을 일컫는 말(지켜보기만 하겠는가). 녀석에게 이걸 설명하는 일을 포기한다. 말하고 싶지 않다, 이런 녀석에게는.

 

중2.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나이다. 아마도 부모에게 문자를 날린 사실을 마음에 두고 순간적으로 반격을 가했을 것이다. 녀석 또한 기분이 나빴을 테니까.

 

청소를 성실하게 잘 하는 아이들은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는 말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씁쓰레한 미소를 짓는 수밖에.

 

학생과 선생 사이. 상처를 입고 입히는 사이.

 

 

2. 요즘은 교내체육대회를 하면 학급마다 반티를 만드느냐고 서로들 옥신각신한다. 인터넷에서 디자인을 고르느라 며칠에 걸쳐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 그렇게해서 결정이 되면 몇명의 아이가 주최가 되어 돈을 걷고 신청을 하는데 며칠 내로 반티와 플래카드, 각종 응원도구들이 학교로 배송된다.

 

올해 역시 티격태격하며 반티를 골랐는데 무궁화가 크게 그려진 꽃무늬 티셔츠와 반바지로 아이들이 입은 모습이 산뜻하고 밝아서 좋아보였다.

 

한 학급이 반티를 신청하면 담임용으로 한 벌이 딸려오는 것이 보통이어서 올해도 적잖이 기대를 하고 있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회용짜리 반티지만 아이들과 같은 옷을 입는 맛도 각별해서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작년에 반티를 얻어 입지 못해 서운했었다. 주최가 된 아이가 일을 도맡아하면서 그 댓가로 돈을 내는 대신에 담임에게 돌아갈 옷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직접 확인한 사실은 물론 아니다. 아이들에게 시시콜콜 물어보기도 싫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저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올해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지나간 작년의 서운함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담임을 소외시키지 말아달라고. 누군가 '선생님꺼 꼭 드릴게요.' 라는 말도 했다. 그랬는데...

 

모두들 화려한 꽃무늬의 반티를 입고 룰루랄라하는 가운데, 담임에게 돌아갈 옷은 없었다. 돈을 걷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다. 계산 착오였는지, 아니면 누가 돈을 내지 않고 냈다고 했는지, 아니면 분실했는지, 얼마가 모자란다며 방과후에 긴 시간에 걸쳐 각료회의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일일이 개입할 상황이 아니어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고 주최하는 아이들도 그것에 대해 일체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해서 체육대회때 반티도 얻어 입지 못하는 인기없는 왕따 선생이 되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건 옆자리 젊은 선생도 반티를 얻어 입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위로라면 위로라고나 할까. 옆자리 선생은 우연찮게도 작년 우리반에서 반티를 주최했던 여학생의 담임을 맡고 있다.

 

어제는 어쩌다가 반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어찌 담임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치사해서 말하기 싫었지만 꾹 참고 한번 던져 보았다.

 

위 글에서 "선생님은 왜 청소 안 하세요?"하던 녀석이 말을 받았다.

 

"선생님도 돈을 내셔야죠."

 

참으로 맹랑한 녀석이다. 선생과 학생을 동급으로 보는 평등사상이 몸에 밴 녀석이다. 솔직히 감당이 안 된다.

 

담임에서 손을 놓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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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는 지금도 밤에 자다가 무섭거나 하면 이불과 베개를 들고 내 곁에 와서 잔다. 간밤에도 그랬다. 이유가 이랬다.

 

딸: " 어떤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귀신을 봤는데 사진에도 찍혔대. 근데 알고보니 그게 진짜 사람이래. 상의는 벗은 채 담 같은 데 엎어져 있었대....주절주절....."

 

나: "거봐, 쓸데없이 인터넷으로 그런 걸 보고 있으니 그런데 신경 쓰게 되지. 하지마."

 

잠시 후.

 

딸: "어제 학교에서 자판기가 내 돈만 먹어서 담당 선생님과 아줌마한테 말하고 20분이나 기다렸는데 해결되지 않았어."

 

나: "얼만데?"

 

딸: "1,000원인데 그냥 잊어버릴까?"

 

나: "그게 낫겠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 먹는 것도 하지 말지 그래."

 

딸: (찡그리며)"왜 모든 걸 하지말라고 그래?"

 

나:(속으로 생각한다.)'나야말로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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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뵌 게 지난 추석날이었으니 또 무심히 한 달을 보냈다. 남편은 남편대로 딸은 딸대로 바쁜 날들이어서 좀처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것도 거짓이다. 지난 주말엔 친구와 어울려 영화를 봤으니까. 지지난 주말엔 친구들과 남대문 일대를 싸질러 돌아다녔으니까.

 

한 달만에 뵌 엄마는 전보다 더욱 얼굴이 굳어 있었고 말씀도 거의 없으셨다. 전신 중 손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엄마는 정신만은 예전 그대로인데, 또렷또렷한 정신력이라는 게 몸이 따라줘야 의미있는 것이지,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정신은 그대로 있는 것이 오히려 더 괴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별 말씀도 없는 엄마는 오른쪽 허벅지가 가려운지 연신 손을 뻗어 가려운 곳을 긁으려고 하시기에 내가 대신 긁어드렸다. 15센티미터 남짓되는 허벅지를 살살 긁기를 30여 분, 종아리까지 가볍게 주무르는데 무릎 부근에서는 우두둑 우두둑 뼈소리가 나고 뼈가 덜커덩거려서 흠짓 놀라기도 했다.

 

허벅지를 긁어드리면서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 몸에 이렇게 오래 손을 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여름 목욕할 때 등허리 때를 밀어드린 건 언제였던가, 까마득할 뿐이다. 그것도 엄마가 열댓 번 내 이름을 불러야 마지못해 밀어드렸던 기억 뿐이다.

 

어렸을 때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징징거리면 엄마는 아무 망설임없이 내 눈을 엄마의 혓바닥으로 핥아주시곤 했다. 여름에 비가 몹시 오던 어느 날은 초등학교 3학년이나 되는 나를 학교까지 업고 데려다주신 적이 있다. 엄마 등에 업히면서 내내 창피했었는데 엄마는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연세가 드셔서 제대로 걷기가 힘들어졌을 때에도 무거운 짐을 절대로 나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엄마와 함께 걸으면서 내가 엄마보다 무거운 짐을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젊었을 때는 쌀 한 가마니 정도는 머리에 이고 다니실 정도로 근력이 좋아서 아버지를 종종 놀라게 하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당시 나는 완행열차로 통학했는데, 밤 10시 쯤 기차에서 내리면 대합실에서 기다리시던 엄마가 내 가방을 받아들고 집으로 향하셨다. 가방이 무거워 고생한다면서. 주위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버스에서 학생들에게 자리 양보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해요. 애들이 가방이 무거워서 고생이 심해요."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7년 동안 완행열차로 통학한다는 구실로 나는 내 속옷 한 번 빨아 입은 적이 없다. 교복 세탁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아들 보다 딸 키우키가 더 힘들었을 엄마는 대신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아들 보다 딸이 돈이 더 많이 들어가요."

 

30여 분 동안 허벅지를 벅벅 긁어드리면서 이 순간마저 머지않아 사라져버리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살이 다 빠져나간 엄마의 살갗는 아무리 긁어도 빨갛게 되지 않았다. 긁다가 문지르다가 다시 긁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 주무르면서 손 끝으로 기억하려고 애썼다.

 

아직도 나는 엄마의 전혀 낯선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깡 마른 몸, 침 흘리는 입, 찡그린 얼굴 표정. 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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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0-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서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셔야 할텐데요. 주위에 보면 요양병원이 눈에 띄게 늘어나더라고요. 그냥 예사로 보이지 않아요. 정신이 또렷또렷하시다니 그래도 다행이긴 한데...
전 여기 뭐라고 더 덧말 달기도 부끄러운 딸이기 때문에 그냥 공감 드리고 갑니다.

nama 2014-10-14 20:24   좋아요 0 | URL
온갖 정성으로 자식을 키워주는 부모이건만 노후에 병이 들면 요양원에서 타인의 수발을 받는다는 게, 생각해보면 서럽고 서글픈 일이지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