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맛있는 밥은? 어렸을 땐 엄마가 해주는 밥이었고, 결혼 후엔 누군가 해주는 밥이었다. 그 누군가가 해주는 점심밥을 먹는 재미에 사반세기 넘게 직장생활을 그럭저럭 유지해왔다. 밥 먹으러 학교에 온다는 아이들처럼 나 역시 밥 먹으러 직장에 다녔다고나 할까.

 

그 맛있는 점심밥 대신에 이제는 혼밥을 먹고 있다. 오래 건강하게 살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함께 먹는 동료도 없고, 따끈한 국물도 없고, 오늘은 뭘 먹을까, 하는 기대도 없다. 책꽂이와 컴퓨터, 각종 공문과 유인물로 가득한 책상 위에 도시락으로 싸온 음식같지 않은 음식을 올려놓으면, 말 그대로 먹고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맛있는 음식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결코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점심을 먹는 건,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몸을 비우자고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달갑지도 않게 생각이 많아진다. 토마토를 한 입 베어물 때도 마음이 묵직해지고 견과류를 하나씩 집어 입 안으로 넣을 때도 손의 무게가 느껴진다. 좋게 생각하면 순간순간이 깨어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먹는 행위에 생각이 얹혀지다보면 밥 먹는 시간이 길어진다. 오늘은 40분이나 걸렸다. 흠,나쁘지 않다. 누군가 해주는 점심밥은 하루의 일과중 처리해야 할 업무 같은 것이기도 했는데, 혼자서 느긋하게 먹는 혼밥은 그대로 깨어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낯설지만 새로운 삶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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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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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평범하면서도 섬세한 이야기. 누가 ‘눈부신 친구‘인지 계속 궁금해져서 2권을 읽고 싶네. 친구들과 함께 읽으면 모두 소설 속에 빠져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할지도...평범한 개인사를 다룬 값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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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2-2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주말이예요.
nama님 편안하고 좋은 일요일 보내세요.^^

nama 2017-02-26 20:02   좋아요 1 | URL
모처럼 따사로운 햇볕을 쬐였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통영은 어딘가와 닮았다.

 

(미륵도 정상에서 바라본 통영시내)

 

미륵도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케이블카를 타고 9분 능선까지 간 후 계단을 따라 20여 분 올라가면 된다. 통영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이 풍광, 어딘가와 매우 닮았는데....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홍콩 구룡반도와 홍콩섬이 떠올랐다. 가운데 바다를 경계로 위쪽은 구룡반도, 아래쪽은 홍콩섬의 자태가 바로 이런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미륵도 정상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빅토리아 피크는 그간 서너 번쯤 올랐었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멀쩡한 우리집 두고 멋져 보이는 남의 집 침 흘리며 바라본 기분이 이럴까.

 

 

(장사도에서 바라본 남해안의 작은 섬들)

 

장사도, 통영에서 유람선을 타고 40여 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통영에 오기 전까지 장사도라는 섬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인터넷 검색조차 해보지 않고 통영에 갔으니... 어떻게 되겠거니...한겨울에 유람선이 뜰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여행객이 많아서 놀랐다. 흠, 어떻게들 알고 왔지? 유람선 21,000원+ 장사도 입장료 10,000원. 남편과 둘이 갔으니 순식간에 62,000원 거금이 들어갔다. 배에서 내리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장소였노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별 관심 없음. 시큰둥했지만 마음 속은 이미 설레고 있었다. 캬, 예쁘다.

 

 

 

섬 전체가 동백꽃 천지다.

 

 

꽃송이째 떨어지는 동백꽃은 언제 보아도 경외감이 든다. 마지막 가는 길이 추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고 치사하지 않다.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꽃이구나.

 

 

 

떨어진 동백꽃은 애잔하지만 나무의 새순은 싱그럽다.

 

 

 

분재원의 모과나무와 썩어가는 모과. 예전에는 예쁜 열매가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이런 열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 모습 같아서겠지.

 

 

 

장사도를 둘러싼 작은 섬들에는 각기 이름이 있다.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디였더라, 닮은 곳이? 예전에 다녀왔던 오키나와가 떠올랐다. 아, 또 이 버릇. 왜 멋진 곳을 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하게 되는지... 같잖은 허영심이 가소롭다.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여기저기 다녀보지만 마지막에 그리운 건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소박한 두부찌게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심정이 이렇겠지.

 

 

 

 

통영 강구안에는 중앙시장이 있고 시장 옆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지명을 빌어온 모텔이 있다. 모텔 창문에서 바라본 강구안 밤 풍경, 자세히 보면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모습이 유령처럼 어른거린다. 이곳은 또 어디를 닮았더라. 흠, 이곳은 말레이시아 말라카 항구를 닮았다. 어수선한 소래포구와 달리 이곳은 깨끗하고 단정하다. 밤새 질리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절대로 질리지 않았다.

 

 

 

통영 유일의 국보(국보 305호) 세병관. '세병(洗兵)'이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라 한다. '평소에는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으며 운치를 즐기는 세병관이지만 전시에는 洗의 물수를 떼어내 버리고 먼저 나아가 싸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先兵館이 된다'고 했다 한다. 이름도 멋지지만 건물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1604년 제1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통제영'이었는데 이 통제영 안에 세병관이 위치해 있다. 400여 년 된 건물이다.

 

한무리의 여행객들에게 설명을 해주던 해설사에 따르면, 통영 사람들은 다리가 굵은 아가씨들을 보면 '세병관 기둥 같은 다리'라고 한단다. 내 다리와도 비슷하군.

 

 

또 버릇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와 닮았노? 아무리 머리를 궁글려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그냥 세병관이다. 통영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자꾸만 부러워진다. 다른 것 다 제치고 세병관 하나만 있어도 통영 사람들은 행복하겠다 싶다. 이 너른 마루에 올라 저 튼튼한 기둥에 기대어도 웬만한 시름은 씻은듯이 사라지지 않을까. 가히 은하수를 끌어와 마음을 씻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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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심리적으로 먼 곳이었다. '통영'이라는 지명 자체가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고향, 자랑스러운 고향이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고향'이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거나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통영이 그랬다. 내게도 고향이 있지만 내 고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거나 하다못해 그리운 감정조차 품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삭막한 고향 부재의 쓸쓸함에 빠져 있는 내게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고향이 되는 통영이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렇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통영에 다녀왔다.

 

 

 

 

 

 

 

 

 

 

 

 

 

 

 

 

통영 관련 책으로는 2012년에 출간된 위의 책을 중고매장에서 구입했다. 여행 안내서는 최신판을 봐야한다는 통설도 싫었다. 아무려면 어떠나. 어차피 맛집 정보따위는 찾지도 않을 터이다. 그런데 이 책, 지은이가 통영 출신이다. 통영에 대한 애정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심기가 불편해진다. 고향 혐오인 내 비뚤어진 심사에 질투심을 부채질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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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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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1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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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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