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맛있는 밥은? 어렸을 땐 엄마가 해주는 밥이었고, 결혼 후엔 누군가 해주는 밥이었다. 그 누군가가 해주는 점심밥을 먹는 재미에 사반세기 넘게 직장생활을 그럭저럭 유지해왔다. 밥 먹으러 학교에 온다는 아이들처럼 나 역시 밥 먹으러 직장에 다녔다고나 할까.

 

그 맛있는 점심밥 대신에 이제는 혼밥을 먹고 있다. 오래 건강하게 살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함께 먹는 동료도 없고, 따끈한 국물도 없고, 오늘은 뭘 먹을까, 하는 기대도 없다. 책꽂이와 컴퓨터, 각종 공문과 유인물로 가득한 책상 위에 도시락으로 싸온 음식같지 않은 음식을 올려놓으면, 말 그대로 먹고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맛있는 음식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결코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점심을 먹는 건,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몸을 비우자고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달갑지도 않게 생각이 많아진다. 토마토를 한 입 베어물 때도 마음이 묵직해지고 견과류를 하나씩 집어 입 안으로 넣을 때도 손의 무게가 느껴진다. 좋게 생각하면 순간순간이 깨어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먹는 행위에 생각이 얹혀지다보면 밥 먹는 시간이 길어진다. 오늘은 40분이나 걸렸다. 흠,나쁘지 않다. 누군가 해주는 점심밥은 하루의 일과중 처리해야 할 업무 같은 것이기도 했는데, 혼자서 느긋하게 먹는 혼밥은 그대로 깨어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낯설지만 새로운 삶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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