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꿈꾸는 나라

   아그라. 타지마할. 인도인 입장권 10Rs. 외국인 입장권 750Rs. (1Rs는 약 25원). 샤자한. 뭄타즈 마할. 건축 기간 22년.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한 유폐와 아그라성에서 보낸 권력자의 쓸쓸한 말년. 타지마할 주변의 ‘타즈 간즈’라는 여행자 거리를 접수한 부지기수의 인도판 한국 식당들. 투숙객 대부분이 한국인 천지인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새벽 서 너 시에 듣게 되는 정겨운 콩글리쉬 발음.

   이것이 그 유명한, 인도를 상징하고 있는 타지마할에 대한 설명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들이라고 우긴다면 절세의 미인 타지마할은 무척이나 섭섭하겠지?  더욱 섭섭한 얘기지만, 나는 타지마할을 보러 가지 않았다. 그것도 타지마할을 제외하면 별달리 볼 것 없는 아그라에서.

   14년 전(1994년)의 첫 인도행은 가슴 떨리는 미지의 이상형과의 불꽃 튀는 만남이었다. 인도는 내가 한국인임을 모른다. 한국이 어느 곳에 있는 지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인도의 모든 것을 숨 막히게 빨아들였다. 맨발의 사원 입장, 흐드러진 부겐빌리아, 깊은 우물 같은 인도인의 커다란 눈. 현란한 색채의 시크교 터번, 셀 수 없는 무수한 힌두교 신들, 석가모니의 발자취, 끝도 없는 지평선, 길지 않은 형광등 두 개로 이루어진 시골길의 쓸쓸하고도 외로운 가로등...허름한 식당의 조악한 냅킨 한 장, 반 쯤 찢어낸 각종 입장권이나 휘갈겨 쓴 영수증 한 장. 모두가 소중한 기념품이 되어 앨범 속에 곱게 들어가는 영광을 누렸었다.

   7년 전(2001년)의 두 번 째 인도행은 첫사랑의 달콤함을 끝내 못 잊어 찾아 나선 여행이었다. 이제는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준다. 잘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팁이라도 두둑이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시신이 안치된 진짜 석관과 가짜 석관을 두루 보여 주었던 첫사랑은 간 데 없고 비싼 입장권을 통해서 내가 한낱 이방인임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3년 전(2005년)의 남인도.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그래도 첫사랑이잖아. 네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찾아내서 내 첫사랑을 다시 확인할거야. 역시 네 품은 다양해. 미안해. 역시 너는 품이 넓어. 다시 시작하자. 그런데 내가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그리 관심 없어하면서 우리나라와 인도의 환율을 궁금해 하던 너. 환율 덕분에 인도에 올 수 있는 우리들을 부러워하던 너.

   2008년. 네 번 째 인도. 내 사랑하는 가족이야. 내가 너를 지켜보았듯 이제는 나의 가족을 지켜봐 줘. 오고 가는 정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너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아,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 몇 번씩이나 와서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국인을 만나면 나눠주리라 하던 소주는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고 길을 잃고 헤맬 때는 지나가는 한국인에게 길을 물어보면 되는 지금의 네 모습을 보며 옛날을 그리워하면 그건 내 욕심이겠지. 

   우다이푸르가 나를 역사적인 진지함과 숙연함으로 힘들게 하더니 아그라는 나를 철학적으로 고문한다. 노른자 빠진 달걀 프라이 같은 아그라. 남편과 딸아이에게 타지마할을 꼭 보여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16시간 동안 추위와 사투를 벌이면서 밤새 버스로 달려온 내게 이 고갱이 빠진 사색은 너무 한 것 아닌가? 아, 이 침대버스란 놈! 낡은 대로 낡고 먼지 풀풀 나고 모래 버석거리는 매트리스가 압권인 이 녀석! 1층은 좌석이고 다락같은 2층이 침대칸인데 처음 딸아이와 나는 2인실에, 남편은 통로를 사이에 둔 맞은 편 1인실에 각각 배정 받았는데 너무 추워서 우리의 2인실에 남편이 합류하여 셋이 꼭 껴안고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창가에 자리 잡은 남편은 하마터면 동사할 뻔했다. 속옷에 부치는 1회용 1,000원짜리 온찜질팩 덕분에 겨우 눈을 부칠 수 있었다는 남편. 남편은 그날 밤 유물론적인 꿈에 시달렸을까 실존론적인 꿈에 시달렸을까? 여행 내내 어지러운 꿈자리를 호소하던 남편은 인도를 ‘꿈꾸는 나라’라고 불렀다.

   그래도 남편과 딸아이는 이 아그라가 좋단다. 타지마할 때문에? No! 바로 ‘Planet Hollywood'라는 거창한 이름의 아주 작은 식당이 있어서다. 가이드북에는 눈 비비고 찾아도 나와 있지 않은 곳으로 우리가 묵은 ’Hotel Raj'라는 게스트 하우스 바로 앞에 있었다. (아마도) 시크교도인 인상 좋고 과묵한 50대 후반의 주인아저씨의 말없는 환대와 가정식 백반 같은 깔끔한 음식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편안하여 아그라에 머무는 동안 단골 식당으로 드나들다 보니 정이 들었나보다. 이곳에서 먹은 버섯 스프로 입맛을 찾은 딸아이는 이제 완전히 몸이 회복되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하루 정도 묵을 뿐인 아그라에서 우리는 이틀을 묵으면서도 떠나기가 아쉬웠다. 하루 이틀 더 묵으면 식당 안쪽으로 보이는 주인아저씨의 살림집도 구경하고 대화도 좀 나눠보련만,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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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기행문

                                                                    




◉여행기간: 2008년 1월 14일~2월 8일

◉일정:델리(2박)-기차1박(12시간)-우다이푸르(3박)-버스1박(16시간)-아그라(2박)-기차1박(13시간)-바라나시(3박)-보드가야(2박)-기차1박(기차2회,지프)-다즐링(3박)-버스1박(14시간)-콜카타(4박)-기내1박




1.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소주병 7병을 가지고 갔었다. 오랜만에 우리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워할 우리 동포를 만나게 되면 함께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그들의 향수병을 달래주리라 생각하면서 가지고 간 술이었다. 우다이푸르의 ‘랄 가트 게스트 하우스’에 함께 묵게 된 젊은 20대 한국인 커플에게 1병을 주는 것 외에는 우리의 소주는 그다지 소용에 닿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무게였다. 여행 중의 배낭 무게는 무겁건 가볍건 그대로 인생의 짐이기에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일 량으로 하루는 남편은 남은 소주를 모두 털어 넣자고 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과 야외 발코니는 그 자체가 분위기 좋은 카페였고, 인도가 만만한 땅이 아니라는 걸 톡톡히 보여주었던 델리의 온갖 사기꾼들을 떠올리면서 안주를 대신했는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인도 여행은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 돌아가고 싶어.” 소주를 모두 비우고 잠자리에 누운 남편은 이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곧바로 잠에 떨어졌는데 나는 이후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청천병력 같은 선언은 “그래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혼자이고 싶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번 일정을 잡으면서 제인 먼저 염두에 둔 곳은 치토르가르였는데 그 동기는 한겨레신문에 실린(2007.12.27일자) 인도사학자 이옥순 교수의 글 때문이었다. 신문에서 오려내어 여권 사본 등과 함께 갖고 다니며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는, 이번 여행의 일정 선정에서 제 1순위를 제공한 그의 글을 그대로 적는다. 너무나 아름답기에.




때로 한 토막의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수백 년을 떠도는 로하르 부족의 이야기가 그랬다. 인도 서부를 여행하다가 마주치는 ‘영원한 방랑자’인 그들은 뿌리가 강해서 뿌리 없는 삶을 자처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약속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로하르 부족의 과거를 담은 치토르가르를 찾은 건 변화가 화두인 세상에 진저리가 나던 무렵이었다.

치토르가르는 평야지대보다 150m 높은 산정에 자리한 톱날 모양의 성벽을 가진 산성도시다. 놀이기구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듯 차를 타고 굽이굽이 돌고 돌아 견고한 일곱 개의 성문을 통과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황량한 치토르가르는 영화로운 과거를 증명하는 많은 유적을 품고 나를 맞았다.

8세기에 세워진 치토르가르는 성이 많은 라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슬픈 역사를 반복한 메와르 왕국의 수도였다. 메와르의 힌두 왕들은 ‘영웅본색’의 용감한 지도자였으나 우세한 이슬람 침입자들에게 패배했고 그 마지막은 1568년에 왔다. 무굴제국에게 승리를 내준 왕은 도주했다. 그리고 남은 군인과 여인들은 적에게 굴욕을 당하기보다 명예로운 자살을 택했다.

로하르 부족도 치토르가르를 탈환한 뒤에야 돌아오겠다고 왕에게 맹세하고 정처 없이 도시를 떠났다. 그때까지 절대로 영구한 거처를 마련하지 않을 것이며, 동아줄을 써서 우물물을 긷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밤에는 촛불을 밝히지 않고, 침대에서 편히 잠들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왕의 고통과 왕국의 운명을 함께 한다는 의미였다.

왕은 끝내 치토르가르에 귀환하지 못했다. 그는 인근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죽었다. 영원히 지킬 수 없는 약속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로하르 부족은 이후 다섯 가지 서약을 지키며 400년 동안 유랑하였다. 로하르 부족의 서약을 가슴 아프게 여긴 네루 총리는 그들을 설득하여 치토르가르에 정착하도록 도왔다. 맹세 때문인지, 유랑생활이 편해서인지 그러나 그들은 곧 유랑생활을 재개하였다.

본업이 대장장이인 로하르들은 농기구를 고치고 막노동을 하며 지금도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를 떠돈다. 여러 도시의 변두리에 천막을 치고 잠시 거주하는 그들은 이동이 어려운 우기에는 먹을 것을 구하기 쉬운 한 장소에서 지낸다.

방금 전의 약속도 깨는 세상에서 4세기 동안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지키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옛날의 그 땅이 아니라고 가지 못하는 그들의 고향을 두 번이나 찾은 이방의 나는 무상한 세상에서 항상 그대로인 것이 그리울 때마다 그들을 떠올린다.

치토르가르의 성채는 비장미를 가진 남성적인 모습이다.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덜 매혹적이지만 로하르 부족의 일편단심이 향하는 웅장한 치토르가르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엄숙함을 일러주며 오늘도 너른 벌판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사람은 시간을 기다리지만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로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접근해오는 릭샤왈라와 흥정한 끝에 터덜거리는 릭샤를 타고 도착한 치토르가르. 40대 중반의 이슬람 신자인 릭샤왈라는 관광지의 인도인답게 참 끈질지고 적극적이고 계산에 민첩하다. 얼마를 더 주면 자신의 훌륭한 영어로 가이드를 하겠노라고 자처하고 나서지만, 웬만한 설명은 가이북이면 충분하고 델리에서 당할 뻔 했던 사기꾼 때문에 한마디로 거절해버린다.

   이옥순 교수의 설명처럼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곳은 아니지만 ‘승리의 탑’이니 ‘명예의 탑’이니 무슨 궁전이니 그럭저럭 볼만하고 허물어져가는 잔해마저도 카메라에 담는다면 멋진 사진이 나올만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영화를 촬영하거나 광고 사진을 찍어도 멋지겠다’ 는 엉뚱한 생각도 잠시 들었다. 지난여름에 갔었던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던 오녀산성이 잠시 떠올랐다. 해발 약 820m 높이에 있는 곳으로 동명성왕의 호기로운 기세가 느껴지던 곳이었다. 물론 규모가 다르지만 높은 산정에 자리 잡아 한 왕국을 이루고 천하를 호령했던 그 용감무쌍하고 기세등등하던 영웅호걸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얼마 후 분명 처음 흥정할 때 치토르가르 지도를 보여주며 전체를 모두 아우르는 코스를 간다고 해놓고는 몇 군데 유적지만 둘러보고 다른 말을 한다. 다시 얼마를 주면 저 안쪽까지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로 안내하겠다고 하는데, 시시콜콜 따지기도 피곤하고 여기까지 와서 대강 보는 것도 그렇고, 결국 마지못해 그러자고 해놓고 따라가자니 속에서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그런데 인적이 거의 없는 외길을 느린 속도로 가며 주변의 들판과 나지막한 언덕과 옛 저수지를 하나씩 천천히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그렇게나 매정하게 물리쳤건만 릭샤왈라 아저씨는 우리의 표정을 보아 가며 틈틈이 간단한 설명도 잊지 않는데 어느 순간, 진짜는 이런 외진 곳일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드는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뚝 솟은 이곳 성채 절벽 아래로 펼쳐진 넓은 평야가 저 멀리 산 까지 닿아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게 바로 이거구나. 눈치 빠른 릭샤왈라 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이 들판이 옛날에는 전쟁터였다고 하는데,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오르는 아련함으로 눈물이 핑 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평야를 보고 목이 메이다니, 이옥순 교수의 애절한 위의 글이 아니어도, 치토르가르의 비극적인 역사를 몰랐다 해도 분명 솟아오를 눈물이었으리라.

   돌아오는 길. 치토르가르 버스 정거장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처음에 흥정한 금액 외에 좀 더 많은 돈을 우리의 릭샤왈라에게 주자는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한다. 가이드 하겠다고 제시했던 액수 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애쓰던 우리의 릭샤왈라는 나중에 만난 어떤 릭샤왈라 보다도 더 친절하고 정직했다는 것을 여행이 끝날 무렵에야 알 수 있었으니 적어도 후회할 일은 남기지 않은 셈이 되었다.

    쿰발가르는 메와르 왕조에 있어서 치토르가르 다음으로 중요한 곳으로 15세기에 세워진 요새로 해발 1,100m고지에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비상시에 왕들이 이곳으로 후퇴하던 곳으로 무굴황제 악바르의 연합군조차도 그 방어벽을 뚫고도 겨우 이틀간 겨우 버티었다는 곳이다. 다음 날, 예약한 대절 택시를 타고 쿰발가르라는 곳으로 향했다. 전 날 다녀온 치토르가르의 여운에서 미처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여서 기대감에 부풀었다. 역시나 쿰발가르는 말 그대로 철통 요새였다. 해발 1,100고지 위, 둘레 36km 이르는 성벽. 그러면 뭐하나. 결국 1568년 패망한 메와르왕조는 마침내 치토르가르를 떠나 우다이푸르로 천도한다.

   그런데 쿰발가르의 성채에 오르는 가파른 길에서 딸아이의 걸음이 자꾸 뒤쳐진다. 힘들어하는 딸아이의 호소를 꾀병으로 생각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잠시 기분이 상한 아이를 다독이며 택시 기사와 약속한 시간을 10여 분 남겨놓고 짜이를 한 잔 마신 후 다시 라낙푸르를 향해 출발한다.

   라낙푸르는 자인교 사원이다. 15세기 메와르 왕조 시대에 지어진 대리석 사원으로 사원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1,444개의 기둥과 기둥에 새겨진 각기 다른 다채로운 문양으로 무척이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사원이지만 겉모양을 보아서는 그 호화로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숲 속에 파묻혀있고 하늘을 뒤덮다시피 한 까마귀까지 더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사원의 이런 모양새는 외적 형태보다는 내면의 풍부한 생명의 중요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남인도의 스라바나벨라골라의 자인교 성지와는 또 다른 자인교의 모습이다. 몇 개의 유명한 자인교 사원이 더 있다는 데 인연이 닿으면 자인교에 대해 집중 탐구를 해보리라.

   그런데 이렇게 멋진 사원을 단 5분 만에 보고 나와야했다. 딸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바람에 택시에서 쉬게 하고는 남편과 겨우 번갈아가며 보고 나와야했기 때문이다. 다시 우다이푸르까지 돌아오는 60여km는 좌불안석, 열이 펄펄 오르는 딸아이를 보니 여행은 무슨 여행. 여행 준비에 들떠 지내던 지난 몇 개월의 어리석음에 머리를 박고 싶은 심정이 된다. 다행히 네 자녀를 두었다는 55세의 친절한 택시 기사 아저씨의 배려로 우다이푸르의 한 소아과에서 의사의 진찰과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고 묵묵히 순서를 양보해 준 현지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딸아이는 그 후로 이틀을 꼬박 앓은 후에 회복할 수 있었고 우리 내외는 딸아이를 지켜보는 것으로 우다이푸르에서의 나머지 일정을 대신했다.

   인도 여행은 처음인 남편이 겪은 인도의 각종 부조리와 모순과 더러움과 차별로 마음이 상한 남편은 결국 여행 중도 포기 선언을 하고(취중이었지만), 특별한 원인 없이 사흘을 앓았던 딸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 만 으로도 내가 그간 가꾸고 지켜온 나의 왕국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기 보다는 여행이 잠시 흔들렸었다. 한 왕국의 눈부신 번영과 영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건재하고 있는 견고한 성채도 결국은 역사 속의 전설이나 옛 이야기가 되어버리듯 우리 가족의 여행도 결국엔 우리만의 옛 이야기가 되어 사진으로만 몇 장 남게 되겠지. 그나저나 집에 두고 온 베고니아 화분이 걱정스럽다. 물을 좋아하는 베고니아는 얼마 전 끈이 풀어진 강아지의 습격을 받고 이제 겨우 서너 장의 이파리로 안쓰럽게 재기하는 중이었는데 차라리 누구한테 맡길 걸 그랬나. 커다란 공중 정원 같은 치토르가르와 아무도 근접 못할 견고한 쿰발가르를 버려야만 했던 메와르의 슬픈 이야기에 겹쳐 집에 홀로 남은 베고니아가 자꾸 마음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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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because there is one great turth on this planet: whoever you are, or whatever it is that you do, when you really want something, it's because that desire originated in the soul of the universe. It's your mission on earth."

p.29  ".... I want to tell you a little story........A happiness is to see all the marvels of the world, and never to forget the drops of oil on the spoon.

p.125 ..happiness could be found in a grain of sand from the desert...because a grain of sand is a moment of creation, and the universe has taken millions of years to create it. Everyone on earth has a treasure that awaits him.

p.126  What you still need to know is this: before a dream is realized, the Soul of the World tests everything that was learned along the way. It does this not because it is evil, but so that we can, in addition to realizing our  dreams, master the lessons we're learned as we've moved toward that dream. That's the point at which most people give up. It's the point at which, as we say in the language of the desert, one 'dies of thirst just when the palm trees have appeared on the horizon.'

"Every search begins with beginner's luck. And every search ends with the victor's being severely tested."

The boy remembered an old proverb from his country. It said that the darkest hour of the night came just before the dawn.

p.130  ..teach me about alchemy..." You already know about alchemy. It is about penetrating to the Soul of the World, and discovering the treasure that has been reserved for you."

p.140  I learned the alchemist's secrets in my travels. I have inside me the winds, the deserts, the oceans, the stars, and everything created in the universe. We were all made by the same hand, and we have the same soul.

p.143 "This is why alchemy exists," the boy said. "So that everyone will search for his treasure, find it, and then want to be better than he was in his former life. Lead will play its role until the world has no further need for lead; and then lead will have to turn itself into gold.

"That's what alchemists do. They show that, when we strive to become better than we are, everything around us becomes better,too."

148 'Everything that happens once can never happen again. But everything that happens twice will surely happen a third time.'(Arabian prov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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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의 길을 가라> 서평단 알림
너만의 길을 가라 - 인생의 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프랜시스 타폰 지음, 홍은택 옮김 / 시공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p. 176  인생의 목적은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고, 그것은 감당할 만한 지출 수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나의 열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전체 3,489km의 절반인 1,720km 지점에서 저자인 프랜시스 타폰이 내린 중간 결산쯤 되는 결론이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저자의 이와 같은 생각을 구체적,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항목으로 정리해 놓았다. 처음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역자 홍은택이라는 이름이 주는 반가움으로 무척이나 기대가 갔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한겨레 신문 연재로 읽을 때의 설레임과 놀라움은 자연 그의 <블루아메리카를 찾아서>을 찾아 읽게 되어 미국이라는 그 심오한 (?) 나라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역서 중의 한 권인 <나를 부르는 숲>까지 내처 읽게 되었다. 작년에 읽은 <블루아메리카를 찾아서>를 나름 역작으로 여기고 주위에 계속 권하고 있는 터에 이 책을 접하게 되어서 흥분에 들떠 읽어 나갔다.

  처음의 기대감이란, 6개월간의 애팔라치안 트레일 하이킹이라면 하이킹의 여러 상황이나 경험등이 속속들이 나열되어 간접적으로나마 흥미진진한 모험을 체험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참으로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똥도 약에 쓴다더니, 저자는 6개월이라는 3,489km라는 시간, 공간을 참으로 적절하고 유익하고 의미있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잘 정리했다. 하이킹 여행기가 자기계발서로 태어났다고나할까. 3박 4일간의 지리산 종주만으로도 생의 어느 비밀 한 부분을 해독한 것 같은데 하물며 6개월간의 하이킹이라면 책 한 권은 나올 만도 하겠다.

p.307  종주에 성공한 수백 명의 하이커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3,200킬로미터 넘게 걸은 사람은 굉장한 유머 감각, 삶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능력, 자아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치지 않는 낙관성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 이 정도는 걸어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거다.

p.331  "종주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경제 가치가 없다." 과장된 말이지만 어느 정도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번 종주를 하면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는 의미로 들린다.

종주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경제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라고 내게는 읽힌다.

나는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서가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나 맨 끝에 놓는다. 그런데 이 책은 여행기가 있는 곳이 어울릴 것 같다. 종착지를 50킬로미터 남겨둔 기념으로 저자는 벤 앤드 제리 아이스크림 1파인트를 공짜로 받았는데, " 나에게는 의미 있고, 자랑스럽고,약간은 슬픈 순간이었다. 우리의 여정이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벤 앤드 제릴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다 먹어봤다는 것을 깨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리라곤 희망을 갖는 것뿐이었다. 벤 앤드 제리가 나의 다음 종주를 위해서 새로운 맛을 개발하기를." 그의 글대로 심각하지 않은 유종의 미, 유머 감각으로 버무려진 낙관성이다. 자기계발의 실용성과 문득 문득 번뜩이는 어떤 지혜로움이 잘 녹아있는 이 책을 한 번 더 읽으면 백두대간 종주의 꿈에 불이 지펴질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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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철학> 서평단 알림
걷기의 철학 포즈 필로 시리즈 1
크리스토프 라무르 지음, 고아침 옮김 / 개마고원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걷기라면 자신 있는, 나름대로 걷는 다는 것에 대한 철학과 경험이 풍부하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던 나는 반가움과 설렘으로 이 <걷기의 철학>을 읽게 되었다.

  페이지 마다 보석같이 박혀있는 아름다운 말들에 깊은 공감을 하며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음미하여 읽어나갔다. 언제였던가. 장마가 한창이던 어느 출근 길 아침, 갑자기 요란한 물소리가 들린다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100여 미터 우측에서 소나기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굵은 빗줄기를 퍼붓는 구름 밑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이 황홀한 빗속에 갇힌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아 우산을 접어야했고 곧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꿈인 듯싶고 착시인 듯싶었다. 그때의 감동을 가슴 속에만 품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감동을 설명해주는 멋진 말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p.26  "웅장한 자연 속을 걷는 사람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단어 하나를 언급해야 하는데, 그 단어는 ‘숭고’다....... 철학적 용어로 숭고는 자신을 초월하는 뭔가를 마주했을 때 사람을 사로잡으며 감탄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아주 특이하고 드문 감정을 가리킨다. 이때 사람을 그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함과 장엄함을 경험한다.


  걷기에 대한 마인드 맵을 저자는 다음의 몇 개의 단어로 풀어놓았다: 측량, 느림, 노력, 리듬, 숭고, 겸허, 관광, 순례, 시우, 산책, 원정. 여기에 나는 단어 하나를 더 추가해보았다.

방황. 인생의 어느 시기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 어귀를 하염없이 거닐며 자신을 달래며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던 시절, 결국 그 지역의 지형을 완전히 익히게 되고 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내어 또 하염없이 거닐던 그 시절의 걷기를 설명하기에는 위의 단어들로는 부족했으니까. 그러나 이 책에는 이런 걷기를 설명해주는 구절이 또 있었으니(좀 약하긴 하지만)...


p.44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백 가지 것들을 시작하고 그 어느 것도 마무리 짖지 않는 것,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오고 가는 것... 그리고 하루 종일 순서도 계획도 없이 빈둥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은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또 다른 걷기, 산책이다.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문장들은 때로 위로가 되고 공감을 자아내게 하여 마치 숲 속을 거닐다가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꽃이나 새, 나무가 되기도 한다. 마치 보물찾기처럼. 그 보물찾기는 다음 문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p.74 산에서 가장 짧은 경로는 탈진과 실패의 길이다...... 신발끈처럼, 즉 경사를 따라 좌에서 우로 그리고 역으로, 한 번에 조금씩만 오르며 걸으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가까이 갈 수 있기 위해서 거리를 둘 줄 아는 것, 이것이 걷는 사람의 발걸음 아래 새겨지는 아름다운 격언이다. 그는 산 밑자락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선을 산비탈에다가 성급히 그어버리지 않는다. 그 대신, 전체를 섬세하고 사랑스럽게 껴안는 일련의 교차하는 끈으로 산을 엮는다......자신의 목표로부터 둔 거리, 타인을 감싸며 교차하는 끈, 세상으로 향하는 시선 같은 것이 자신을 상승시켰고, 이 상승을 통해 그 자신을 되찾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신발끈의 교훈은......멀리 돌아가는 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삶으로 나아가는, 가장 풍요롭고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나는 이게 늘 불만이다. 옆으로 샐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이 집에서 직장으로 다시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아마 직업 자체를 바꿔버렸거나 이사를 갔을지도 모르는데 다행스럽게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10분 거리를 1 시간 거리로 늘려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운이 좋아 주변에는 작은 산과 드넓은 자연생태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나를 언제나 늘 반겨준다. 오늘도 온갖 불만, 걱정, 분노, 피곤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산과 들을 거닐며 집으로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할 것이다.


  *한마디 더: 책의 나머지 1/3을 차지한 철학자들의 일례들은 소개하다 만 듯한 인상이다. 마치 다이제스트판을 읽는 것 같다고나할까. 짧은 식견으로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따라가기가 벅차다. 신발끈이 너무 짧게 묶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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