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철학> 서평단 알림
걷기의 철학 포즈 필로 시리즈 1
크리스토프 라무르 지음, 고아침 옮김 / 개마고원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걷기라면 자신 있는, 나름대로 걷는 다는 것에 대한 철학과 경험이 풍부하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던 나는 반가움과 설렘으로 이 <걷기의 철학>을 읽게 되었다.

  페이지 마다 보석같이 박혀있는 아름다운 말들에 깊은 공감을 하며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음미하여 읽어나갔다. 언제였던가. 장마가 한창이던 어느 출근 길 아침, 갑자기 요란한 물소리가 들린다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100여 미터 우측에서 소나기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굵은 빗줄기를 퍼붓는 구름 밑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이 황홀한 빗속에 갇힌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아 우산을 접어야했고 곧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꿈인 듯싶고 착시인 듯싶었다. 그때의 감동을 가슴 속에만 품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감동을 설명해주는 멋진 말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p.26  "웅장한 자연 속을 걷는 사람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단어 하나를 언급해야 하는데, 그 단어는 ‘숭고’다....... 철학적 용어로 숭고는 자신을 초월하는 뭔가를 마주했을 때 사람을 사로잡으며 감탄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아주 특이하고 드문 감정을 가리킨다. 이때 사람을 그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함과 장엄함을 경험한다.


  걷기에 대한 마인드 맵을 저자는 다음의 몇 개의 단어로 풀어놓았다: 측량, 느림, 노력, 리듬, 숭고, 겸허, 관광, 순례, 시우, 산책, 원정. 여기에 나는 단어 하나를 더 추가해보았다.

방황. 인생의 어느 시기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 어귀를 하염없이 거닐며 자신을 달래며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던 시절, 결국 그 지역의 지형을 완전히 익히게 되고 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내어 또 하염없이 거닐던 그 시절의 걷기를 설명하기에는 위의 단어들로는 부족했으니까. 그러나 이 책에는 이런 걷기를 설명해주는 구절이 또 있었으니(좀 약하긴 하지만)...


p.44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백 가지 것들을 시작하고 그 어느 것도 마무리 짖지 않는 것,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오고 가는 것... 그리고 하루 종일 순서도 계획도 없이 빈둥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은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또 다른 걷기, 산책이다.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문장들은 때로 위로가 되고 공감을 자아내게 하여 마치 숲 속을 거닐다가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꽃이나 새, 나무가 되기도 한다. 마치 보물찾기처럼. 그 보물찾기는 다음 문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p.74 산에서 가장 짧은 경로는 탈진과 실패의 길이다...... 신발끈처럼, 즉 경사를 따라 좌에서 우로 그리고 역으로, 한 번에 조금씩만 오르며 걸으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가까이 갈 수 있기 위해서 거리를 둘 줄 아는 것, 이것이 걷는 사람의 발걸음 아래 새겨지는 아름다운 격언이다. 그는 산 밑자락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선을 산비탈에다가 성급히 그어버리지 않는다. 그 대신, 전체를 섬세하고 사랑스럽게 껴안는 일련의 교차하는 끈으로 산을 엮는다......자신의 목표로부터 둔 거리, 타인을 감싸며 교차하는 끈, 세상으로 향하는 시선 같은 것이 자신을 상승시켰고, 이 상승을 통해 그 자신을 되찾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신발끈의 교훈은......멀리 돌아가는 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삶으로 나아가는, 가장 풍요롭고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나는 이게 늘 불만이다. 옆으로 샐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이 집에서 직장으로 다시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아마 직업 자체를 바꿔버렸거나 이사를 갔을지도 모르는데 다행스럽게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10분 거리를 1 시간 거리로 늘려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운이 좋아 주변에는 작은 산과 드넓은 자연생태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나를 언제나 늘 반겨준다. 오늘도 온갖 불만, 걱정, 분노, 피곤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산과 들을 거닐며 집으로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할 것이다.


  *한마디 더: 책의 나머지 1/3을 차지한 철학자들의 일례들은 소개하다 만 듯한 인상이다. 마치 다이제스트판을 읽는 것 같다고나할까. 짧은 식견으로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따라가기가 벅차다. 신발끈이 너무 짧게 묶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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