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홍콩에 여러 번 가게 되었다. 딸아이의 말이, 부산보다 홍콩을 더 자주 가게 되는 것 같단다. 일부러 홍콩에 간 것은 단 한번. 인도 여행 끝이나 말레이시아 여행 끝에 잠깐 들르다보니 홍콩에 자주 가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홍콩은 무엇보다도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접근이 무척 단순하고 옥토퍼스라는 교통카드의 사용이 편리할 뿐더러 넓지 않은 지역에 재미있는 여행 요소가 많아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홍콩에 가게 되면 편리함 때문에 그냥 별 생각없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을 이용하게 된다. 빌딩의 한 부분을 임대해서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하여 여행자 숙소로 만든 곳이다. 내가 그간 묵었던 곳은 세 곳이었는데 공통점은 아침밥이 제공된다는 것, 방이 비좁다는 것, 실내에서 빨래를 건조한다는 것, 외국인 여성을 가정부로 두고 있다는 것 등이다.

 

이번에 묵었던 민박은 유달리 정갈한 곳이었다. 다른 두 곳은 청소도 대충이었고 음식도 그저 그랬는데 이번 민박은 청소, 음식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틀째 되는 날은 솔직히 청소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다른 곳처럼 대강하거나 내버려두겠지 싶어서 입던 옷도 그냥 침대에 걸쳐놓고 양말도 침대 머리맡에 널어놓고 가방도 구겨진대로 방치해 놓고 외출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너무나 말끔히 정돈되어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정리해놓고 나가는 거였는데,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고나서였다. 어젯밤부터 눈물을 글썽거리던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울먹거리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득 고였다. 왜 우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간밤에 한국인 주인이 와서 혼을 내고 갔다고 한단다. 누군가 홈페이지에 그녀가 손님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서러운 호소를 들어주었다.

 

그녀가 보여준 그녀의 작은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침대 자체가 들어갈 방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공간에 단지 얇은 매트 한장 깔고 자는 방이었고, 그 방마저 누군가에게 주고나면 그녀의 잠자리는 빨래를 널어 말리는 구석진 곳 바닥이라고 한다. 천정에는 빨래 건조대가 걸려있고 바닥에는 냄새 제거를 위해 선풍기 따위가 널려 있는 아주 협소한 공간이다. '그게 네 방이다'라는 소리를 듣는다며 6년간 일한 곳에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며 그녀는 다시 울먹거린다. 

 

잠깐만 보아도 민박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열 개 가까운 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리하는 사람은 그 필리핀 여성 혼자였다. 아침 밥 준비부터 청소, 손님 체크인, 체크아웃 등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운영하는 곳 치고는 정말 완벽하게 깨끗한 곳이었다. 웬만한 호텔 수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빨아널은 양말은 건조대에 걸려 있었고 화장실 바닥은 물기가 닦여져 있었고 소지품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민박에서 이런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미안했다.

 

아직 싱글인 이 필리핀 여성은, 하루 중 자기 시간이라고는 잠잘 때 뿐이라며 하루 종일 일, 일, 일, 일 뿐이며 휴일도 없다고 한다. 마치 노예의 하루 같았다. 한국인 주인이 꼬박 챙기는 것은 손님의 숙박 요금이라며 아마도 철저하게 챙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님 대부분이 한국인인데도 한국말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그냥 영어만 사용하란다며 그 부분에도 불만이 쌓여 있었다. 6년간의 분노와 슬픔과 피곤으로 얼굴의 표정이 몹시 상해있었고 아마도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랬으리라. 더하면 더했을 터.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작은 민박이었지만 일거리는 상당했다.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거리의 정도가 금방 파악이 된다.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깨끗하게 유지될 수가 없다. 그래서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한 덕분에 누군가는 하루종일 밖에서 맛있는 것 먹고 룰루랄라 놀다 들어와서는 깨끗하고 깔끔하게 치워놓은 방을 보고 콧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그걸 당연한 대우라고 여겼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한 돈을 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렇게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고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먹는 아침 밥과 만족스러운 방 청소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한숨과 눈물이 숨어 있는데 그걸 몇 푼의 돈으로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여행이 징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을 무시하며 자기 이익만을 노리는 한국인 주인과 내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종일 빨래를 했다. 빨래를 건조대에 널면 몇시간 동안은 세제냄새가 온집안에 가라앉아있어 냄새를 견뎌야한다. 냄새가 싫어 헹굼을 여러번해도 냄새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빨래 냄새를 맡으니 다시 그 필리핀 여성의 눈물 범벅 얼굴이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그 가녀린 몸매와 큰 눈망울이 내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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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야기 2012-04-2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공감가는글이네요.

그 아줌마는 대단하네요.

저도 얼마전에 셩완에 민박을 오픈+테스트운영 중인데, 루이아줌마는 위에서 소개하신 분 정반대로 보시면 됩니다.
민박을 새로시작한건 아니구요, 그동안 임대하는 집여러 곳중 일부를 한인관광객들에게 오픈했는데, 다녀가신 분들의 입소문으로 일이 많아지면서 아줌마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울 아줌마는 인도 사람인데요, 마음씨착하고, 정직한편이고, 일은 못하나 음식은 잘하는편. 허나 민박한다는이유로 월급을 두달치요구를 해서 지금은 다른 아줌마를 물색해서 데려오는 중예요.
방청소를 해도 제가 다시해야하고, 제가 검사 안하면, 보이는데만 잘해놓고,그렇다고 저희 집이 더럽거나그롷진 않아요
인태리어가 무지 밝게 되어서 조그만 머리카락도 다보이는 그런 집이예요.
울 아줌마는 혼자서는 방 6개짜리 집을 혼자 청소 못해요. 우리는 조식포함이 아니라서
일도 적어요, 우리식구 밥도 저녁한끼만 채려주면되는데,하루 종일 꿈지락, 그리고 전화 통화..또 통화..또 통화...그러고도 월급 두배.아줌마침대는 손님들침대와 동격인 질좋고 깨끗한 침대.
방이 모자라면, 아둠마는 방의 침대에서, 나는 바닥잠....우린 이래요.

다 위에 소개한 아줌마 같지 않아요. 홍콩엔 노동법이란게 있구요, 그아줌마도 특별 페이를받으면서 불평을 할것이예요. 물론 힘든일이죠. 그 아줌마도 월급 많이 더 받을껍니다.보통월급에 그렇게 많은 일해야한다면, 벌써 노동청에 일러서 다른집에 갔을껄요..
물론 돈만 더준다고 고용인들이 행복해하고 고마워 하진 않습니다.
인격대접을 원하는데, 어떤 가정부들은 인격대우해주면, 주인을 괴롭힙니다.

모든게 양면이 있지만, 그 아줌마는 특히 맘이좋고,일도 열심히 하고, 참을성도 많고 그런 사람 같네요.

그민박집도 딱하네요. 빨래건조기하나면,일이 훨 수월할텐데...
그래서 우리집에 오시는 분들이 그러셨군요.

홍콩원룸텔 잠자리가 뽀솔뽀송하다구요,
이상입니다.다음엔 홍콩섬쪽 민박도 체험해보세요.
 

딸아이의 고등학교 배정을 앞두고 여행을 갔었다. 배정학교 발표, 신입생 임시소집 따위 남의 일처럼 무시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는데 다급하게 딸아이의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 경우도 남편만 겨우 로밍을 해서 휴대폰을 대여해 갔기에 가능했다.) 2월 2일까지 등록을 하지 않으면 합격 취소란다. 우리는 2일 늦게나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한창 홍콩에서 Symphony of Light를 신나게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주셨고 딸아이와 딸의 친구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여럿 떠올랐는데, 문제는 내가 그들의 전화번호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남편 친구도 있었지만 그림이 그리 이쁜 모양이 아닐 터이다.

 

이때 기특하게도 딸아이가 알라딘을 생각해냈다. 알라딘 문자서비스에 전화번호부가 있어서 내가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당장 숙소로 돌아와서 (다행히 숙소에는 방마다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가 있었다) 친한 선생한테 부탁하니 그건 일도 아니라며 걱정 말란다. 그렇게해서 무사히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새삼 알라딘이 든든했다.

 

그리고 조금 전. 늘 해왔던대로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려고 알라딘에 들어와서 문자를 입력하는데 조금은 황당한 창이 뜬다. '일반회원'이라서 문자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다나. 늘 '플래티넘'을 유지해왔는데 요사이 도서관 활용을 좀 하고 여행을 다니는 등 책 구입과 거리를 두었더니 당장 서비스가 중단된거다. 가차없구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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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말레이시아는 스콜이라는 소낙비가 간간히 혹은 새벽부터 쏟아져 내리고, 한나절은 더위에 쩔어 절절매며 돌아다닌다. 덥다. 더워서, 습한 더위 때문에 두번 다시 말레이시아에 오고 싶은 생각을 스스로 접게 만든다.

 

더위 속을 8일간 헤매다가 드디어 홍콩에 오니 여긴 초가을 날씨다. 조금은 센티멘탈해지는 기온이다. 여행이라는 게 이런 묘한 기분을 만끽하는 맛이긴한데, 흠, 쇼핑 천국에서 쇼핑에는 젬병인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이렇게 한국을 떠나있으면 생각이 단순해지는 게 좋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뒤돌아볼 일 아니 앞을 향한 일만 남아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때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홍콩거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사실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미안하다. 죄송스럽다. 내가 여행을 잘하는 것이 그 미안함을 잊지 않는 방법임을 참 염치없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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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ver (Mass Market Paperback)
로이스 로리 지음 / Dell Laurel-Leaf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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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제시된 소설 배경은 이렇다. 슬픔, 기쁨, 사랑, 분노 등의 보통의 인간 감정이 거세된 동일화된 세계에서 모든 일은 예측 가능하고 갈등이나 다툼도 없이 안정된 삶을 이어나간다. 열한 살이 되면 진로가 결정되어서 그 사회를 이루고 유지해나가는데 필요한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애 낳는 사람이 되거나,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거나, 노동자로 살거나 하는데, 만약 더이상 그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을 상황이 될 경우에는 추방의식을 거쳐 그 구성원을 추방시켜버린다. 추방(release)이 무엇인지는 후반부에 가서야 정확하게 나오는데 한마디로 죽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쌍둥이가 태어나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기는 살리고 그렇지 못한 아기는 약물주사로 간단히 생을 마치게 하는 것이다.

 

감정이 없는 세계에 살다보니 어떠한 죄의식도 없고 심각한 고민 같은 것도 없다. 주어진 스케줄에 따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주는 대로 먹고 주는 대로 입고 때가 되면 간단하게 생을 마치는 것이다. 불필요한 모든 감정은 한 사람-지식 전달자-이 떠맡으면 된다. 그래서 제목의 The Giver는 그 감정을 아랫 세대에게 전달해주는 사람이고, 대를 이어 그 역할을 떠맡는 사람은 The Receiver가 되는 것이다.

 

11살 짜리 주인공 Jonas는 The Receiver로 결정되어 그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The Giver로부터 인간의 희노애락을 전수 받는 이야기가 말하자면 이 책의 줄거리이다.

 

우선 재미있다. 그냥 집중하게 되는 책이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알라딘에서 제공되는 단어장이 있어서 골치아프게 일일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된다. 페이퍼백이라 글씨가 작은 게 약간 고문이었지만 읽다보면 그 고통도 잊어버릴 만큼 재미있다. 딸아이의 의향을 묻고 구입했건만 딸아이는 손도 대지않고 대신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것은, 의미있는 것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야 알 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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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We Bought a Zo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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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영화라서 좋았는데,10대인 딸은 가족영화는 질색이라나. 잔잔한 감동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값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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