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쁜 자식인데 영어가 시원찮다. 영어가 오죽이나 어렵나. 다른 건 몰라도 영어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해놓아야 사람 노릇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살 때부터 영어 학원에 다니게 했는데도 이렇게 되었다.

 

다른 사교육은, 7살 때 피아노 학원을 2개월 정도 다닌 게 사교육의 전부다. 외손잡이인 딸아이는 주로 오른손을 사용하는 피아노의 건반 연습이 힘겨웠던지 어느 날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툭 던졌다." 나 피아노 계속 하면 병원에 다녀야 할 것 같애." 이 말을 듣고 나는 단박에 결론을 내렸다."그래? 그래! 그러고보니 우리집안에 음대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네. 피아노 그만 해."

 

초등학교 때는 그 흔하디 흔한 학습지 한번 시키지 않았다. 소신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일상이 바쁘다보니 학습지를 어떻게 시켜야하는지 방법부터 몰랐고 굳이 애써서 알아보지도 않았다. 단, 독서에는 좀 신경을 썼다. 주로 단행본 위주로 책을 고르고 필요한 책은 거의 구입해서 읽혔다. 전집류라고는 헌책방에서 구입한 위인전(효과는 전무)과 대만 작가인 채지충이 그린 중국고전만화(효과 만점)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오로지 영어 하나만을 시켰으니 영어 만큼은 잘 해주리라 믿고 있었다. 물론 딸아이는 영어 학원 하나 다니는 것 조차도 다니기 싫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투정 부리며 나를 들들 볶아댔다. 그런 불만을 귓등으로 들으며 영어학원을 중학교 1학년 봄까지 다니게 했으나, 끝내 딸아이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을 다녔으니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영어를 곧잘 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영어학원마저 끊었으니 사교육으로부터는 완전 해방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학습지 한번 시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2학년때 부터 수학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영어학원에 질렸는지 딸아이는 학원이라면 질색을 하며 머리를 흔들었으나 저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수학공부방에는 다니겠단다. 그래서 친구가 다니는 공부방에 잠시 몇 개월 다녀서 수학 성적은 처음에는 올랐으나 이내 약발이 떨어졌는지 제자리 걸음을 치면서 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나마 공부방도 끊어버렸다.

 

그렇다고 딸아이의 전체 성적이 바닥을 친 건 아니었다. 중1때는 과학이 어렵다고 훌쩍거리기도 했으나 2학년에 올라가서는 스스로 이치를 깨달았는지 학년말에는 전체 1등을 하기도 했다. 하여튼 딸아이 말마따나 '저비용 고효율'운운하며 사교육 없이 그럭저럭 버티긴 버텼다.

 

그런데 문제는 고등학교 올라와서 시작되었다. 수학은 다행히(?) 생각을 바꿔 학원을 다니겠다고하여 역시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 등록을 시켜주었고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학원 선택도 딸아이에게 맡겼다. 나는 정보에 둔하다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고나 할까. 게으른 엄마다.) 중학교때에 비하면 말이다. 하지만 영어가 문제였다. 여전히 학원을 거부하며 은근히 개인과외를 받고 싶어했다.

 

어디서 영어 개인교사를 구한단말인가. 내 주변에 영어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도움 받을 만한 곳은 없었다. 역시 이번에도 딸아이가 해결책을 구해왔는데 다름아닌 길거리 광고였다. 달랑 전화번호 하나였다. 그래 해보자.

 

개인교사는 30대 초반의 법학과를 졸업한 총각으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단 하나, 흡연 습관으로 몸에 배인 냄새를 없애기위해 향수를 즐겨 사용하는 덕에 늘 진한 향수 냄새를 뿌리고 간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일주일에 이틀, 세 시간 배움에 25만 원을 주기로 했다. 주로 영어공부를 봐주는 식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따로 문법책이 있었으나 진도는 더디게 나갔고 모의고사 문제나 시험 대비 수업을 했다. 그러나 수업에 활기가 부족했다. 딸아이의 표현에 따르면, "선생님이 나를 이끌고 가야하는데 그게 부족한 것 같아."

 

2개월이 흘러갔으나 영어공부를 하는 딸아이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따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이틀 공부하는 것이 영어공부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게으름의 원인을 은근히 개인교사의 무기력 탓으로 돌리는 듯한 낌새를 보였다. 사실 무기력이라기 보다는 수업을 강력하게 이끌지 못하는 나약함 같은 거였다.

 

결단을 내리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개월을 끝으로 개인과외를 끝냈다. 마지막 날,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이 총각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이 결정은 누구의 생각이신가요? 어머님이신가요, 따님이신가요?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될 것 같아서요."

 

평소에 남의 감정을 헤아리는데 무척이나 서툰 나는 곧이곧대로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딸아이의 생각입니다." 라고. 나는 이야기를 돌려서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좀 무례하고 재미없는 성격이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참 어쩔 수 없는 성격이다.

 

그러고 얼마가 지났는데 여전히 딸아이는 영어를 힘들어했다. 다시 과외이야기를 꺼냈다. 학원은 절대 다니고 싶지 않단다. 마침 같은 교무실에 정년을 앞둔 선배교사가 있는데 그분의 남편이 윤선생영어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개인교사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이번에는 나이가 제법 든 아줌마 선생님이었다. 프로다운 면모를 보이는 분으로 직업정신에 철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수업료는 먼저 선생님의 두 배인 50만원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과외를 시키면서 생각지도 못한 힘든 부분이 생겼다. 늦은 밤인 오후 9시 30분에 시작하는 과외시간이 되면 우리 내외는 안방에서 숨 죽이고 있거나 집 밖으로 나가있어야 했다. 근처 대형마트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쇼핑을 하거나 안방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해야 했다.

 

이번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운가. 에어컨은 절대 불가하다는 남편의 고집을 꺾고 드디어 딸아이방에 에어컨을 달아주었다. 모두 딸아이의 과외를 돕자는 의미에서였다. 그렇게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였으나...

 

문제는 딸아이였다. 영어공부를 따로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과외로 하는 영어가 전부였다. 그리고 과외선생님의 방식 하나하나가 내 눈에 비판적으로 들어왔다. 독립심을 키워주는 학습이 아니라 과외선생을 의존하게 하는 방식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시험 때는 딸이 다니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시험범위를 묻고는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단어를 모조리 뽑아왔다. 마치 '내가 다 떠먹여주마' 하는 식이었다. 따로 사용하는 교재를 살펴보니 이건 보통의 학생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설명 없이는 보기 힘든 어려운 책이었다. 역시 학생을 선생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책이었고 영어는 어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도 한 번 가르친 적이 있어서였다고 하는데, 원래 개인교습이라는 게 사람에 따라 다른 건데 가르치는 사람 위주나 편의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만화영화인 <슈렉>을 교재로 공부를 시켰는데,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만화 한편을 마스터하면 영어가 완성된다는 거였다. 물론 무슨 얘긴지는 알고있다. 뭐가 되었든 한 권을 마스터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요령도 생긴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슈렉>은 초등생이나 중학생 정도에 어울리지 어려운 지문을 읽어내야 하는 고등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과외선생님의 너무나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주장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고 믿기지가 않았다. 나도 평생을 영어와 씨름하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저런 자신감이 나올 수 있는건가. 내가 소심한 건 아닐까 돌이켜보았지만, 끝내 신뢰감이 생기지 않았다.

 

잠정적으로 과외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딸아이에게 또다른 과외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이번에는 내가 나서기로 했다. 아이에게 'The Giver'라는 청소년 영어소설을 여름방학 내내 읽혔다. 지난 겨울 내가 먼저 읽은 책이었다. 더불어 영어문법책인 <맨투맨>도 꾸준히 읽게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을 부릅뜨고 시간을 체크했고 나 역시 더위와 싸워가며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드디어 두 번째 과외도 끊었다. 2개월만이었다. 중단시킨 이유가 또 있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따지면 따질수록 영어과외비는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달 내내 아이들과 싸워서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해 영어과외로 지불되는 액수는 훨씬 높았다. 노력 대비 대가가 너무 높다는 사실이 내 별 볼일 없는 자존심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9월 초에 딸아이의 모의고사가 있었다. 드디어 결과가 나타날 때였기에 속으로는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결과는, 영어는 영어듣기에서만 한 문제를 틀렸다고 한다. 남편과 딸아이에게 은근히 나의 공이 크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었는데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그래도 과외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애.  'The Giver'도 짱이었어."

 

딸에게 물었다.

"영어과외 또 할래?"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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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 - 카투니스트 동범의 네팔 스케치 포엠
김동범 지음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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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이 예쁘다, 예쁘다, 그저 예쁘다. 둘 다 뛰어나긴 쉽지 않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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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 - 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프랑수아 데르모 그림, 고정아 옮김 / 효형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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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에 넋이 나감. 여행 자체는, 걸어갔던 곳을 자동차로 복습하는 여행. <나는 걷는다>를 읽어야 제 맛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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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인 인도의 <마하바라따>가 드디어 나왔다. 예전에도 나오긴 나왔었다.

 

 

 

 

 

 바로 이 책.

 1994년에 발간된 이 책을 읽었었다. 2000년이 되기 전에 읽었으니 기억에 남는 건, 물론 없다. 단지 이야기의 뻥이 굉장했다는 것(시간과 공간의 스케일이 정말 어마어마하다)과 세상에 나온 모든 이야기의 할아버지 격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엄청난 이야기들을 이 한 권에 실었으니, 사실,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이 책이 그나마 의미가 있었던 건, 아쉽지만 그래도 대강의 맛이나마 볼 수 있었다는 점일 터이다.

 

 

 

 

어제,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실린, 다섯 권으로 된 위의 책 소개를 보고 나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이 책을 번역한 박경숙이라는 분을 소개한 기사가 읽을 만하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51780.html 

 

박경숙이라는 분은 20년 간이나 이 책을 번역하는데 매달렸다고 한다.

다음은 기사 중에 나오는 부분이다.

 

....고대 산스크리트 고문헌들과 씨름한 끝에 <마하바라타>의 산맥을 넘었지만, 내처 인연의 힘으로 풀려나간 자신의 학문 역정은 언제나 물 흐르듯 편안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아, 이런 삶도 있구나. 한편으로는 농사를 지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학문의 길을 묵묵히 닦았다는 사실에 부러움과 감탄이 절로 흘러 나왔다. 이렇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아름다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다섯 권이 전부가 아니라는데 나의 고민은 깊어져간다. 내년까지 10권이 나온다는데, 흠 언제 다 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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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언젠가 만날 - 인연을 찾아 인도 라다크로 떠난 사진가 이해선 포토에세이
이해선 글.사진 / 꿈의지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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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해보고 싶은 여행은, 인도 라다크 지방에 있는 절대 오지의 곰파(사원)에서 한 철을 지내보는 것이다. 특히 오가는 길이 뚝 끊긴다는 한겨울을 그곳에서 나는 것이다. 재작년 여름 라다크를 여행하면서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에는, 숨이 멎을 것 같은 황량함에서 오는 어떤 신비감 내지는 신성, 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마음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 있었다. 떠나보낸 연인 보다도 더 절절하게 다가왔던 그 히말라야의 풍광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아, 이 책! 내 그리움에 불을 당기는 책이다. 이 책의 지은이인 이해선. 나는 그의 책 <모아이 불루>를 읽은 적이 있다. 여행자로 살아간다더니 여행도 여행기도 익을 만큼 익어가는구나, 하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황량하고 험한 곳에 위치한 라다크의 곰파에서 며칠씩 머물며 그곳의 풍광이나 사람들 얘기, 자신의 외로움 까지도 오롯이 펴보이는 문장들을 숨을 죽여가며 읽었다. 물론 부러움과 한숨을 섞어가며.

 

이 책은 그러니까. 라다크를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가슴으로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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