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울적한 기분이 들게 된다. 세상의 다양한 직종에서 투쟁하며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인, 신부, 판화가, 해고노동자, 다큐멘터리 감독,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음악가, 만화가, 학습지노조 지부장, 기타리스트, 문화활동가, 실험예술가, 놀이운동가, 연극인, 노동운동가 등...새삼 내가 몸 담고 있는 세계가 한없이 좁고 어리석고 폐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유는, 내가 그들처럼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가열차게 생존을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투쟁이 아닌 투정이라고나 할까. 열심히, 라기 보다는 꾸역꾸역 산다고 할까. 이미 타성에 젖은 지 오래고...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
울적한 기분이 든 건, 우리의 자녀들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나의 딸이 살아야 할 세상이 매우 우울하기 때문이다. 잊고 싶은 사실들을 이 책이 구석구석 들춰주고 있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저출산 시대. 정말 애 낳고 싶지 않은 세상이다. 내가 20대였을 때는 실존적인 이유로 출산에 부정적이었는데 이제는 그 실존적인 이유가 그리워지는 세상이 되었다. 온통 유물론적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사는 건 점점 더 팍팍해지고 지배층은 점점 더 교활하고 교묘해지고 지능적이어서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깨어있는 일조차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 책이 이러한 사실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괴롭다.
크게 와닿은 것 두어 가지만 옮겨놓는다. 바쁘다.
p.261 김규항: 지금 게임이라는 게 부모들이 하던 테트리스나 갤러그하곤 다르잖아요. 게임 산업의 규모가 10조 원이 넘었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이들을 자기네 게임에 얼마나 오래 앉혀놓는지가 숙제가 되었는데 그건 단순히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어선 안 되고 중독을 시켜야하는 거죠. 말씀대로 면역 능력이 중요한데 어른들은 게임의 폭력성이나 선정성만 이야기합니다.
편해문:...게임의 진짜 해악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 없음'입니다. 정말 무서운 해악이죠. 게임중독은 놀아야 낳아요. 부모님들 만나면 늘 그러죠. "다 소용없고요. 어릴 적엔 노는 게 남는 거예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 없음'...요즘 내 고민중의 하나를 이 말이 요약해주고 있어서 반가웠다(?). 게임중독으로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보기 때문이다. 또랑또랑하여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고 공부에도 의욕을 보이던 아이가 어떤 말에도 자극 받지 않고 해야할 일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난감하다. 부모는 알고 있을까?
또 하나.
p.289 김규항: 군사독재가 무서웠다고들 하지만 시장주의라는 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고문하고 잡아가지 않아도 스스로들 힘들어하고 무너져가요. 말씀대로 뭔가에 꽂혀 있지 않으면 살 수가 없죠.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민주화'라는 이론.
p. 150 김규항: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일반화한 담론이 한국에선 감쪽같이 없는 경우도 있지요. 이를테면 '신자유주의적 민주화'같은 이론 말입니다.
한형식: 유럽이 아닌 주변부 국가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될 때 정치적 민주화라는 당근을 함께 제공하여 민중이 겪는 고통과 저항을 다스린다는 이론이죠. 가설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진행된 주변부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진행된 상황이라 진보적인 학계를 넘어 보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개념인데 한국에만 없었죠.
p. 153 한형식: 지배계급은 자신들에 대한 반대가 실제 위협인가 아닌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위협이 아닌 반대는 오히려 대중이 그쪽으로 쏠리게 부추깁니다.
한번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