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병원에 다녀오면서 즉흥적으로 서점에 들러 구입한 책이다. 

 

안정제가 들어간 위염약 덕분에 위가 잠잠해지면서 정신이 약간 흐릿해지고 잠이 솔솔 온다. 한차례 자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버티는 삶..'은 지인이 두 번에 걸쳐 사진과 서평을 보내준 덕에 알게 되었고, 특히 제목이 몹시도 자극적이어서 확 구미가 당겼다.

 

그렇잖아도 사는 게 '견뎌내는 일', '버텨내는 일'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리멸렬하게 상기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차에 이 책은 무슨 계시처럼 가슴에 콕 다가왔다.

 

서문에 해당하는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 우리는 버텨야 합니다. 버티는 것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어느 누가 손가락질하고 비웃더라도, 우리는 버티고 버티어 끝내 버티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남아야만 합니다....제 인생이 닳고 닳아 한줌의 비웃음밖에 사지 않더라도 끝내 그거 하나만은 챙기고 싶습니다. 그래도 쟤 꽤 오래 버텼다, 라는 말 말입니다.

 ....타인의 순수함과 절박함이 나보다 덜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정하며 어느 한 편에만 서면 명쾌해질 것이라 착각하지 말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우리의 지상 과제는 성공이나 이기는 것이 아닌 끝까지 버텨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읽고자 했고 찾고자 했던 부분은 딱 여기까지다.

 

1부 나는 별일 없이 잘 산다

2부 부적응자들의 지옥

3부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4부 카메라가 지켜본다

 

이렇게 구성된 책을 처음엔 꼼꼼하게, 나중엔 성큼성큼 읽어내려갔다. 물론 글을 읽는 맛이 있었다. 건조하고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인 문체가 매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몸과 정신을 약으로 달래가면서 모처럼의 휴일을 늘어지게 빈둥거리며 읽기에는 결코 위로가 되는 책이 아님을 책을 거의 다 읽을 무렵에야 깨닫게 된다. 그래도 끝까지 읽은 건, 제목 때문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삶도 버텨내는데 책 한 권 못 버티랴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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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대표이사인 오연호의 책에서, '얀테의 법칙'을 읽고는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이거다. 교실에 프린트해서 붙여 놓고, 가정통신문에도 몇 줄 인용하고 싶다.

 

책에는 1,4,8,9,10 만 나와 있어서 검색해보니 이미 널리 알려진 법칙이라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얀테의 법칙

1.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 말라.

2. 자신이 다른 사람처럼 착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3.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똑똑할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

4.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착각하지 말라.

5.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 말라.

6.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 말라.

7. 자신이 뭐든지 잘할 것이라고 생각 말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9. 누가 혹시라도 네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 말라.

10.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 말라.

 

p. 96..얀테의 법칙은 한마디로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사람이 특별하고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

 

'우리는 모두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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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울적한 기분이 들게 된다. 세상의 다양한 직종에서 투쟁하며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인, 신부, 판화가, 해고노동자, 다큐멘터리 감독,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음악가, 만화가, 학습지노조 지부장, 기타리스트, 문화활동가, 실험예술가, 놀이운동가, 연극인, 노동운동가 등...새삼 내가 몸 담고 있는 세계가 한없이 좁고 어리석고 폐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유는, 내가 그들처럼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가열차게 생존을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투쟁이 아닌 투정이라고나 할까. 열심히, 라기 보다는 꾸역꾸역 산다고 할까. 이미 타성에 젖은 지 오래고...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

 

울적한 기분이 든 건, 우리의 자녀들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나의 딸이 살아야 할 세상이 매우 우울하기 때문이다. 잊고 싶은 사실들을 이 책이 구석구석 들춰주고 있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저출산 시대. 정말 애 낳고 싶지 않은 세상이다. 내가 20대였을 때는 실존적인 이유로 출산에 부정적이었는데 이제는 그 실존적인 이유가 그리워지는 세상이 되었다. 온통 유물론적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사는 건 점점 더 팍팍해지고 지배층은 점점 더 교활하고 교묘해지고 지능적이어서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깨어있는 일조차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 책이 이러한 사실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괴롭다.

 

크게 와닿은 것 두어 가지만 옮겨놓는다. 바쁘다.

 

p.261 김규항: 지금 게임이라는 게 부모들이 하던 테트리스나 갤러그하곤 다르잖아요. 게임 산업의 규모가 10조 원이 넘었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이들을 자기네 게임에 얼마나 오래 앉혀놓는지가 숙제가 되었는데 그건 단순히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어선 안 되고 중독을 시켜야하는 거죠. 말씀대로 면역 능력이 중요한데 어른들은 게임의 폭력성이나 선정성만 이야기합니다.

편해문:...게임의 진짜 해악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 없음'입니다. 정말 무서운 해악이죠. 게임중독은 놀아야 낳아요. 부모님들 만나면 늘 그러죠. "다 소용없고요. 어릴 적엔 노는 게 남는 거예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 없음'...요즘 내 고민중의 하나를 이 말이 요약해주고 있어서 반가웠다(?). 게임중독으로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보기 때문이다. 또랑또랑하여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고 공부에도 의욕을 보이던 아이가 어떤 말에도 자극 받지 않고 해야할 일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난감하다. 부모는 알고 있을까?

 

또 하나.

 

p.289 김규항: 군사독재가 무서웠다고들 하지만 시장주의라는 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고문하고 잡아가지 않아도 스스로들 힘들어하고 무너져가요. 말씀대로 뭔가에 꽂혀 있지 않으면 살 수가 없죠.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민주화'라는 이론.

 

p. 150  김규항: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일반화한 담론이 한국에선 감쪽같이 없는 경우도 있지요. 이를테면  '신자유주의적 민주화'같은 이론 말입니다.

한형식: 유럽이 아닌 주변부 국가에서 신자유주의가 도입될 때 정치적 민주화라는 당근을 함께 제공하여 민중이 겪는 고통과 저항을 다스린다는 이론이죠. 가설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진행된 주변부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진행된 상황이라 진보적인 학계를 넘어 보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개념인데 한국에만 없었죠.

 

p. 153 한형식: 지배계급은 자신들에 대한 반대가 실제 위협인가 아닌가를 정확히 파악하고 위협이 아닌 반대는 오히려 대중이 그쪽으로 쏠리게 부추깁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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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토요일.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는 날. 우리가 발길을 옮기는 서울역-시청-종로 일대는 온통 경찰 무리만 보인다. 숫적으로 엄청나다. 밋밋하고 무의미하던 일상이 이곳에 오면 삶에 대한 의지로 팽팽해진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친구들과 희희낙낙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지만...

 

오가는 전철에서 펼쳐본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p.58  이창근: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긴 해요. 파란 잔디 위에서 5,000명이 모여서 조용히 책을 읽는 거예요. 주제가 만일 '삼성 비판'이라면 삼성 문제와 관련한 모든 책과 자료를 다 모아서 앰프나 확성기는 일절 쓰지 않고 조용히 그걸 읽는 거죠. 저놈들이 정말 아파하는 일을 함께 해보는 거죠.

 

시청 앞 서울광장 잔디밭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거다. 햇볕이 따가운 사람들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돗자리를 펴놓고 앉고, 데이트하는 젊은 남녀들은 덕수궁이나 창덕궁의 나무 그늘에 앉아 스마트폰 대신 책이나 자료를 펼쳐보는 거다. 평소 어린 자녀를 도서관이나 서점에 데리고 다니는 젊은 부모들은 그냥 도서관 대신 풀밭으로 나오는 거다. 김밥 싸들고. 곳곳에 위치한 잔디구장에서도 축구 대신 책을 들고 끼리끼리 앉아 있는 거다. 시위 저지에 나선 경찰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서 꾸벅꾸벅 졸며 고개를 떨군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몇 시간의 독서와 정보 공유로 갑자기 똑똑해지면서 '저놈들'의 속셈을 낱낱이 깨닫게 되는 거다. 주제를 정해 하나씩 격파해나가는 거다. 삼성 문제, 사교육 문제, 대통령의 권한, 세금 문제, 비정규직 문제....주제는 끝이 없을 테고. 덕분에 책도 많이 팔리고....

이런 시위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파란 풀밭만 보면 날을 정하고 주제를 정해 책에 빠져드는 거다. 그래서 사악한 무리들의 속을 꿰뚫어보는 거다. 생각이 모이면서 행동이 변하는 거다.

 

이런 시위 해보고 싶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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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4-10-1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화같은 시위가 되겠네요. `으뜸헤엄이`라는 동화가 생가납니다.
작은물고기를 잡아 먹는 아주 커다란 물고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으뜸헤엄이가
이렇게 말하지요.
˝좋은 방법이 있어, 우리 작은 물고기들이 서로 몸을 붙이고 자기자리에서 헤엄을
쳐서 바다에서 제일 큰 물고기 모양을 만드는 거야. 나는 눈이 될게.˝
기득권의 불평등과 횡포에 대항할 큰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가야 겠지요.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결정적인 으뜸헤엄이. 빌게이츠보다 탄생되기 힘든 존재임엔
틀림없나 봅니다...

nama 2014-10-12 16:09   좋아요 0 | URL
`으뜸헤엄이`...멋진 동화입니다.
빌 게이츠보다 탄생되기 어렵지만은, 아닌 것 같군요. 잘 살펴보면 세상에 `으뜸헤엄이`같은 살아있는 존재들이 많아요.
아래 사진은 홍콩판 으뜸헤엄이쯤 될까요?

http://img.hani.co.kr/imgdb/resize/2014/1011/00515407301_20141011.JPG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659248.html?_fr=mt2

sabina 2014-10-1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하! 그렇네요. 정말 절실함이 묻어나는 인상적인 사진입니다.
각 분야마다 많을 거예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파키스탄의 소녀도 그런 살아있는 존재중의 한사람이겠죠
그런데... 빌게이츠(사실은 요즘 자본주의 비관론에 관심이 있어서)를 비교한 것은
그런 사례가 나오기 힘들다가 아니라, 자본주의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빌게이츠
보다 그분들의 투지, 신념을 관철시키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데,표현이 부족했네요.


 

 

 

 

 

 

 

 

 

 

 

 

 

 

 

열등생에 관한 책이어서 반갑다. 세상엔 우등생보다 열등생이 더 많지 않을까. 1등을 제외한 대다수가 스스로를 열등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막연한 늪지에서 질척거리'게 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글을 보고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부진아수업을 해보면 안다. 다음 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이들은 '축적된 슬픔, 두려움, 걱정, 원한, 분노, 채워지지 않는 부러움, 광포한 포기, 이 모든 게 켜를 이루고 있는 양파'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깨닫게 된다. 때로는 내가 그들의 학교생활을 망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의감에 사로잡힌다는 것도. 물론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p.81~82  우리의 '공부 못하는 학생들'(앞날이 없다고 여겨진 학생들)은 학교에 결코 홀로 오지 않는다. 교실에 들어서는 것은 한 개의 양파다. 수치스러운 과거와 위협적인 현재와 선고받은 미래라는 바탕 위에 축적된 슬픔, 두려움, 걱정, 원한, 분노, 채워지지 않는 부러움, 광포한 포기, 이 모든 게 켜를 이루고 있는 양파. 저기 다가오는 학생들을 보라. 성장해가는 그들의 몸과 책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거운 짐들을. 수업은 그 짐이 땅바닥에 내려지고 양파 껍질이 벗겨져야만 진정으로 시작될 수 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단 하나의 시선, 호의적인 말 한마디, 믿음직한 어른의 말 한마디, 분명하고 안정직인 그 한마디면 충분히 그들의 슬픔을 녹여내고 마음을 가볍게 하여, 그들을 직설법 현재에 빈틈없이 정착시킬 수 있다.

물론 그런 호의는 일시적이며, 양파는 밖으로 나서는 순간 다시 겹을 두를 것이고, 당연히 내일 또다시 시작해야먄 할 것이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선생이라는 직업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다시 시작하는 일. 만일 우리가 한 명의 학생을 우리 수업의 직설법 현재에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의 앎과 그것의 활용에 대한 안목이 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실존은 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막연한 늪지에서 질척거릴 것이다. 물론 우리 선생들만이 그런 갱도를 파낸 것도 아니고, 그걸 메울 줄 몰랐던 것도 우리 책임만은 아니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혹은 몇 년의 어린 시절을 우리 앞에 마주앉아 함께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망쳐버린 학교생활 일 년은 하찮은 게 아니다. 어항 속에서는 영겁의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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