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지인이나 친구들은 주민등록상의 생년월일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주민등록상 한 살 어린 덕분에 지금까지 일 년 젊게 살아왔는데 드디어 나도 공적으로 우대 받는 노인이 되었다. 전철 무임 승차! 


비둘기호를 아시는가. 정확한 사실을 알기 위해 제미나이한테 물었다. 다음은 답변.


'비둘기호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까지는 특별한 명칭 없이 '보통열차'로 불렸습니다.

*명칭의 도입(1984년): 철도청이 열차 등급 체계를 정비하면서 가장 낮은 등급의 완행열차에 "비둘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당시 위 등급으로는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가 있었죠.)


이건 사실과 달라서 구글에서 검색해보았다. 다음은 위키백과의 답변.


<역사>

*1967년 9월 1일: 운행 개시

*1974년 8월 15일: 통일호로 통합되며 폐지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비둘기호와 함께 했다. 읍사무소가 있는 동네에서 수원 소재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내 인생이 꼬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고생은 착실하게 했다. 고등학교는 열차로 30분을 타고 내린 후 25분을 걸어야 했다. 왕복 2시간을 길에서 소비했다. 대학은 더 했다. 열차로 1시간 30분, 다시 30분을 걸었다. 왕복 4시간이 걸렸다. 열차 통학이 힘들어서 잠깐씩 자취, 하숙, 친척집 신세도 졌지만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아서 몇번 시도하고 말았다. 마음보다 몸이 힘든 쪽을 택하다보니 7년 가량을 비둘기호를 벗삼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동네는 중학교 4개, 고등학교 3개가 있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중고등학교를 두고 중학교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한 학교로 배정 받았고, 고등학교는 도내에서 가장 입학이 치열했던 곳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원한 것은 집 근처의 남녀공학이었는데 그게 또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은 수원 소재 대학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나고보면 다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비둘기호는 내가 통학하던 내내 비둘기호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70년대 중반에도 비둘기호였고 80년대에도 비둘기호였다는 말씀이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도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비둘기호 정보를 뒤질까. 나 같은 사람이나 뒤져보며 모처럼 목에 힘을 주는 거지.


장구한 7년 간의 비둘기호 열차는 내 심신에 여행 세포를 확실하게 심었다. 열차의 리드미컬한 질주가 몸에 새겨졌다. 떠나라, 떠나라, 하고 늘 부추기는 듯했다. 학교는 책상에 앉아 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었고, 열차 통학은 평생 여행을 꿈꾸는 몸으로 만들어 주었다.


결론. 무임 승차를 기념하기 위해 여주에 가서 돌솥밥을 먹고 왔다. 식당 공기밥에 예민하던 차, 모처럼 밥다운 밥을 먹고 잠시 행복했는데 그만 집에 와서 뻗었다. 왕복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한 일이라고는 밥 먹고 온 것 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게 다 젊을 때 열차에서 오랫동안 시달린 탓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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