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초라해지는 느낌, 이렇게 인생이 끝나겠지 하는 쓸쓸함. 잠시나마 제 멋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보는 것으로 그 쓸쓸함을 달래본다.

 

 

 

 

 

 

 

 

 

 

 

 

 

 

 

이 책은 완독할 마음이 없다. 영혼이 자유로운 저자의 생각 몇 줄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 저자가 직접 그려넣은 삽화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두면 참 즐겁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당돌한 인생철학이 하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말자. 왜 먼 미래 때문에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나? 그냥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고, 주변 시선일랑 싹 무시하고 하는 일을 즐기자. 학원에서 몇 년 앞을 예습하던 징글징글한 동년배들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을까? 뭐가 됐든 나는 동물이 좋고, 좋은 게 당연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적성 검사의 장래 희망을 묻는 칸에는 늘 동물학자라, 서명하듯이 적어 내곤 했었다. 그리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뭘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중략) 지금까지도 나는 가방 없이 다니며, 가방을 둘러싼 온갖 수요와 공급의 난리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사람이다. 세상을 경험하는 데 거치적거리는 사진기도 나에겐 도저히 소지하고 다니기 어려운 물건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진을 찍는 순간 그 포착이 삶을 풍성하게 해 주기는커녕 그로 인해 오히려 세상과의 만남이 변질되고 경험치가 감쇠된다.(중략) 동영상이나 기타 디지털 기기는 거의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와 무관하다. 이토록 막무가내인 나이지만 글과 그림이라는 고전적인 기록 매체에 대해서는 무한히 호의적이다.

 

진짜 숲, 진짜 야생동물을 삶 속에 들여놓는 경험은 비가역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절대로 그 경험을 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원시림의 실재성과 근원성에 대한 감을 획득한 이상 도시의 편의보다는 결여가 먼저 눈에 띈다. 그래서 사는 게 어려워지기도 한다. 대신에 자연을 감상하고 음미하는 새로운 시점을 얻게 된다. 가령 야생 동물을 한 편의 시로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음식 남기는 것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아니 성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활 철학이다. 먹을 수 있고 소화할 수도 있는 유기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한 탓이다. 음식이 넘쳐 나는 도시에 사는 이에겐 먹을거리가 잉여 자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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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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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2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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