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가게 될 오키나와, 이런 저런 책을 살펴보는 중이다. 기껏 4박 5일이나 5박 6일로 다녀올 곳이라 책도 가벼운 여행기나 읽으려고 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책들.
자동차를 빌리지 않고 대중교통만으로 여행했다는 대목에 끌려 읽어보니, 그대로 따라해도 될 성싶다. 어차피 우리(친구 포함) 또한 뚜벅이 여행을 하게 될 테니까.
뚜벅이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겸 여행기로 적절한 책이다.
어떤 분의 서평을 읽고 그럴 듯해 구매했는데....속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고현정을 찍은 사진이 볼 만한데, 그렇다면 고현정이 찍은 사진은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과연 글은 고현정이 직접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의구심은 둘째치고 직접 썼건, 대필했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배우가 뭐 대단한 직업이라고, 스타가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그 얘기를 다 들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내 지루해져버렸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어떻게든 될 거야."
참 가슴 먹먹한 말이다. 온갖 시련을 다 겪고 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가 깔린 표현이다.
이 책은 꼭 잡지를 보는 것 같다. 한 토막 한 토막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쪽을 펼쳐도 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쉽게 만든 책처럼 보인다.
일본인이 쓴 책이다.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슬로우'형 일상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취재한 책이다. 요즘엔 제주도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그래도 예쁜 책이긴 하다. 그들 삶이 부러워서, 시샘이 나서, 끝까지 알뜰하게는 못 읽었다.
역시 김남희의 책은 좋다. 오키나와편은 분량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할 말은 다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글에 알찬 내용, 내가 좋아하는 글의 방식을 이 책에서, 아니 김남희에게서 본다.
우리집 서가에 흩어져 있던 책을 부랴부랴 찾아내서 읽었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왜 썩혀두었는지 모르겠다.
"학교는 안 가도 좋아!"
"콜라와 캔 커피는 금지다!"
"국민연금은 낼 수 없어!"
"국민연금을 내야 한다면 난 국민을 관두겠어!"
"그자들이 집을 부순다면 나는 그 답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러주지!"
이런 도발적인 발언들을 입에 달고 사는 과격분자 주인공. 처음에는 '일본에도 이런 사람이 있나?'싶어 의아했는데 이 사람이 오키나와 출신임이 떠오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물론 고개를 끄덕이게 된 건 다음의 책을 읽고서였다.
연휴에 갈 데 없어 점심도 먹을 겸 놀러간 시립도서관에서 찾은 책이다. 약간 머리가 저려오는 책이다. 식곤증에 눈 피로에 겨우 몇 쪽 읽다가 나중에 읽을 셈으로 대출은 했는데 글쎄 얼마나 읽을 지는 의문이다. 내가 나를 아니까. 그런데 이 책, 처음부터 눈에 힘을 주게 한다. 베껴보면,
p.29 ...1945년 오끼나와전(1945.3.26~9.7)에서 오끼나와 인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12만 명이 죽었다.
p.33....2012년에도 오끼나와 본도 총면적의 약20%를 미군기지가 점령하고 있었다.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한 오끼나와현에 주일미군기지의 약 75%가 있는 것이다. 미군기지의 밀도가 본토에 비해 대략 500배나 높다는 의미다.
p.38....오끼나와인들은 자신들이 역사를 통해 군대가 사람들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안보는 이웃나라들과 가깝고 친밀하며 협력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한 안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시아/태령양에서 미국의 권력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오끼나와의 '전쟁준비'기능이 '평화 구축'기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룩셈부르크나 브뤼셀과 같은 역할을 아시아에서 담당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이 책은 솔직히, 반 만 읽고 팽개쳐두어서 이리저리 찾느라고 좀 헤맸다. 후쿠시마편만 읽고 오키나와는 '나랑 무슨 상관'이랴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어보니 그렇게나 눈에 들어오지 않던 오키나와편이 착착 안겨온다. 그래 관심이 중요하다. 관심에서 이해가 생기고, 이해에서 애정이 생기는 법이지.
이 책은 단호하다. 오키나와는 현대의 식민지라고.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인의 무의식적인 식민지주의 실태를 아주 날카롭게 비판적으로 분석한' 노무라 고야의 <무의식의 식민지주의>를 인용하면서, '일본인은 오키나와를 차별하지 않으며 오키나와는 식민지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본토 일본인들에게 '그러면 미군기지를 갖고 가라고 하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묻는다.'
일본인: 오키나와 너무 좋아.
오키나와인: 그렇게 오키나와가 좋다면 기지 정도는 갖고 돌아갈 수 있겠지.
일본인:..........(권력적 침묵)
일본인: 오키나와와 연대하자!
오키나와인: 그렇다면 기지를 일본에 갖고 돌아가는 것이 최고의 연대죠.
일본인: .........(권력적 침묵)
일본인: 오키나와인도 우리와 같은 일본인입니다.
오키나와인: 그렇다면 왜 오키나와인을 스파이라며 죽였지? 왜 히로히토는 오키나와를 미국에 팔아넘겼어? 왜 류큐 왕국을 멸망시켰지? 왜 류큐어를 금지시켰나? 왜 오키나와인에게만 이토록 많은 기지를 떠넘겼나? 왜 차별하는가?
일본인:..........(권력적 침묵)
일본인:(독백) 침묵이야말로 나의 이익. 듣지 않는 거야말로 내 이익. 반응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나의 이익. 식민지란 그런 것. 원주민의 소리 따위 들을 필요가 없어! 결국 이런 것.
p.160 ....'오키나와인의 질문에 대해, 일본인은 침묵하면서 대답하지 않고 가만있기만 하면 식민자로서의 기득권익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권력적 침묵'이다.
'권력적 침묵'이라는 단어에 자꾸 눈이 간다. 밀양 송전탑도 떠오른다. 권력적 침묵에 동조하는 이상 송전탑은 해결되지 않을 터.
그러고보면 <남쪽으로 튀어>에서 주인공 이치로를 좀 유별난 불평분자로 설정해 놓은 것이 아쉽다. 동명의 영화를 보면 더 그렇다. 앞뒤 상황이나 배경 지식 없이 이 영화를 보면 그저 지루하기만 하다. 섬 개발을 둘러싼 갈등 장면이 나오는데, 책에서는 호텔 개발로, 영화에서는 양로원이 들어서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것 또한 한 발 비켜선 표현이리라고 본다. 실제상황은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인데 흠, 그렇게 설정하면 책이나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겠지. 그렇게나마 우회적으로 얘기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오키나와 여행...실행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