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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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나가며 예전에 읽었던 이 분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그 책은 이 책만큼 가슴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고 다 읽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헌데, 이 책을 참 모범적(?)으로 잘 읽긴 읽었는데 리뷰를 쓰려고하니 좀 난감해진다.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선 10개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평소의 나의 신념?) 한 줄을 쓰려면 10개를 이해해야 하는데, 10개를 이해했는데도 한 줄을 못쓰는 건, 한 줄을 쓰기 위해 열 줄을 쓰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뭔가 독후감을 남겨야 할 것 같아 쓰기는 쓰는데...

 

특히 이쾌대에 대한 꼭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저자의 지식과 내공이 사뭇 느껴지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기울였을 노고가 문득 문득 떠올라서 감히 한꺼번에 단숨에 읽어나가기가 저어했다고나 할까. 소제목 '분열이라는 콘텍스트'는 이쾌대를 설명할 뿐 아니라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처럼 생각된다.

 

재일조선인 2세인 저자부터가 이미 분열된 의식의 소유자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디아스포라는 태생적으로 분열된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쾌대의 분열된 의식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던 것도 이 디아스포라는 정체성 때문일 것이다.

 

'성별조차 초월한 이단아(신윤복)' 이나 '이름이 많은 아이(미희)'도 근저에는 '분열된 의식'이 내재한다고 읽혀졌다. 그들도 경계에 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휴~...쓰고 싶은 열 개 중 겨우 한 개를 끄적거렸다. 이 시간이면 이미 잠에 빠져들었을 시간인데, 낮에 산책 나갔다가 우연히 모델하우스에 들어가서 얻어마신 커피 덕에 그나마 깨어있긴 한데 내일을 위해 억지로라도 자야 할 시간이 되었다.

 

호텔의 방 한 칸을 분양 받으면 수익률이 얼마라는, 믿지도 믿고 싶지도 않은 투자 얘기를 듣는 댓가로 얻어마신 커피. 아무래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되리라. 잠도 오지 않는 밤, '분열된 의식'을 곰곰히 내 생에 대비해보는 밤이 될 것 같다.

 

(다음 날 덧붙임)

p.243  일본인들이 가노파나 에도 시대 우키요에의 뛰어남을 칭찬하면 무신경한 내셔널리즘을 내비치는 듯 느꼈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과 문학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그런 느낌은 많건 적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내 일본 고전문학 성적은 최악이었다.

 

p.121 '한국인'이란 한국인이라는 '본질'을 지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문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정연두의 작품이 '한국적'인 까닭은 한국이라는 본질을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맥을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다.

 

p.187  따라서 이쾌대라는 화가를 하나의 '텍스트'로서 독해하기보다 이 화가 안으로 들어가 서로 모순되면서도 뒤얽혀 있는 복수의 '콘텍스트'-이를테면 동양과 서양, 조선과 일본, 전근대와 근대, 식민지 지배와 피지배,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남북 분단과 대립-가 갈등하고 충돌하는 '장'으로서 읽어보는 시도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쾌대라는 화가 개인에 대한 평가를 바로 내리지 않고 그에게 나타나는 복합적인 콘텍스트의 상호관계를,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는 것. 이것이 '프랜시스 베이컨 전'을 통해 내가 얻은 착상이며 이 글의 주요한 관점이다.

 

이렇게 '문맥'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 개념이다. '한국인', '일본인' 이라는 본질이 아니라 '일본', '한국'이라는 문맥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문맥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온 몸으로 살아낸 분의 한마디 한마디는 의미심장하고 육중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분의 삶이 그러했을 테니까. 디아스포라는 결국 '복수의 콘텍스트'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복수의 콘텍스트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분열된 의식은 어쩔 수 없는 것일 터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아티스트들 중 나중까지 내 기억에 남을 사람은 이쾌대와 미희가 아닐까 싶다.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이분들도 모두 개성 있고 나름의 세계를 펼친 분들이고, 홍성담은 이미 유명한 분, 신윤복을 보는 관점도 흥미롭지만 저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작가는 역시 이쾌대와 미희라는 분일 것 같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미희는 해외입양아이다. 이중삼중의 '복수의 콘텍스트'를 읽어내지 않고는 이 작가를 이해할 수 없다. '이름이 많은 아이-미희' 부분을 읽으면서 이 분의 얼굴이 궁금해서 뒷장을 먼저 살펴보았는데 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선머슴 같은 사내만이 수인번호 같은 숫자판을 들고 있을 뿐. 나중에야 이 선머슴이 '미희'라는 것을 알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모습,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모습이었다.

 

책의 제호 조차 '한국미술'이 아닌 '조선미술'이고, 여느 책처럼 '..미술 감상'도 아닌 '..미술 순례'다. 역시 복수의 콘텍스트로 읽어야 할 제호이다. '조선'일 수 밖에 없고, '순례'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역시 저자의 디아스포라적인 관점에서 나온 분열된 의식의 결과이리라. 미술이 '순례'일 수 밖에 없는 것... 내게는 내내 묵직한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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