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는 바간을 이렇게 소개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와 더불어 미얀마의 바간을 세계 3대 불교유적지라고 한다. 바간은 이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며, 미얀마 속담에는 바간에 400만 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실제는 약 5천 개의 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 프랑스 건축가에 따르면 2,834개에 이른다고 한다.(<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다 미얀마>차장섭)

 

이런 대단한 곳을 하룻만에 섭렵했다. 단체여행의 허와 실 중에 '허'에 해당하는 부분을 경험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곳은 적어도 삼 일 정도 머물면서 천천히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지평선은 사방에 펼쳐져 있고 그 너른 들판은 나무로 울창한데 온갖 탑들이 이곳저곳에 점점이 박혀 있는 광경은 입을 쩍 벌리게 만든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초록 벌판에 키세스 초코렛을 점점이 박아놓은 형상이다. 감히 단언하는데 내가 평생 보아왔던 불상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불상을 단 하룻만에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불상의 숫자에 관한 한 상위 1%에 해당하는 고농축 경험을 했노라는 인솔자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기에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되었나, 싶지만 사실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무릎이 나가는 줄 알았다. 절을 올려서가 아니라 신발과 양말을 벗고 다시 신고 다시 벗고 다시 신으며 하루종일 오르락내리락하느라고 고달펐기 때문이다.

 

 

바간으로 가는 국내선. 74인승 정도 되는 작은 비행기는 이미 내 마음을 읽고 있었으니 'you're safe with us'로 내 신뢰를 얻고자 애를 쓰고 있다. 비행기 사고로 한 순간 비명에 사라지는 게 내가 원하는 죽음의 방식이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란 말이다! 왼쪽으로 보이는 빨간 테두리는 비상구로 비상시 잘라내라고 쓰여 있다. 잘라내기도 전에 비행기는 소멸할 지도 모르겠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올라간 쉐산도 탑 계단. 인파에 가린 일출 감상은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카메라가 어딘가에 부딪혀 카메라렌즈 보호경으로 쓰이는 필터가 깨지고 말았다. 그저 내 짧은 기럭지를 원망하는 수 밖에.

 

투덜대며 마침내 전망대에 올라갔을 때 끝내 못마땅하다는 듯 딸이 한마디 던진다. "아휴, 수능보다 싫어! 이런 데 올라오는 거."

 

 

 

 

 

 

 

 

 

 

 

 미얀마 모든 탑의 모델이라고 불리는 쉐지곤 탑

 

 

 

 

 

 

 

 

 

 

 

 

 

 

 

 

 

 

 

 

 

 

 

 

 

 

드디어 일몰. 해 지는 광경보다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장관을 이루고 있다. 태양은 매일 뜨고 지건만 왜 여행지에 와서야 유독 일몰과 일출에 열을 올리는 것인지, 알 수 없어요.

 

해 떨어지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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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2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처님 머리 형태와 (뭐라고 용어가 있었는데 잊어버렸어요 ㅠㅠ) 탑 꼭대기 모양이 닮았어요.

해가 뜨고 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해 이상의 어떤 것의 시작과 마지막을 연상하나봐요. 그래서 그렇게 열을 올리는지도.

저 쉐산도 탑 계단이 까마득해보이네요. 가파르기도 하고요. 저길 다 올라가셨다는 말씀이지요? 와...

nama 2015-01-28 09:3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 머리 형태를 보통 육계(불두화모양)라고 하고, 곱슬머리 형태는 나발형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소승불교인 미얀마의 뾰족한 머리형태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하는지 모르겠어요. hnine님 덕분에 일어나자마자 찾아보아서 겨우 알아낸 게 이 정도입니다. 덕분에 부처님 머리형태에 관심을 갖게 되네요.~~
저 쉐산도 탑에 오르내리느라고 단번에 근육이 뭉쳐서 며칠간 고생했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