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때와 장소에 따라 행동양식이 달라진다. 집에서 하는 행동과 밖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집에서는 버릇없고 제멋대로지만 학교에서는 점잖고 고지식할 정도로 규율을 잘 지키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반대로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들딸이지만 학교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학교의 규율 따위는 쉽게 무시해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예전에는 주로 전자의 아이들이 많았다. 집에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녀 때문에 속이 상한 부모는 학교선생님한테 도움을 청하곤 했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들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집에서는 모두 착한 아들딸이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지만 학교에서까지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아이가 있다. 공부는 학급에서 좀 잘하는 편에 속하는 아이여서, 공부가 많이 뒤떨어지는 급우의 학습을 도와주는 멘토의 역할을 맡기게 했다. 그러나 평소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수업 중에 엉뚱한 말로 수업분위기를 종종 흐리게 하는 이 아이는 자기가 맡은 역할에 관심이 없었던지 멘토가 해야 할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보다못해 멘토의 자격을 박탈하고야 말았는데 이 아이는 그에 대한 반성보다 멘토를 함으로써 얻을 10시간의 봉사시간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런 사정을 이 아이의 어머니께 말했다. 믿음이 좀 안 갑니다, 라는 말도 했다. 아, 이런 솔직한 심정은 그저 내 가슴 속에 묻어버리고 부모한테는 듣기 좋은 말을 해야 하는데, 선생은 원래 쓴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곧바로 이 어머니가 서운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부족한 아이라면 책임감 있는 아이로 바로 잡아주는 것도 선생아니냐는 질책을 오히려 들어야 했다. 맞는 말이지. 씁쓸.

 

2학기 반장 선거가 끝나고 얼마 후, 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반장선거 얘기가 나왔다. 자기 아이가 비록 반장선거에 떨어지긴 했지만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반장 출마 사실을 기록해줄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엉? 순간 당황했다. 이 아이는 분명 반장에 출마하지 않은 것 같은데...같은데...내가 벌써 건망증이...두뇌의 회로가 엉기기 시작했다. 얘가 반장선거에 나왔던가?

 

어머니 옆에서 전화통화를 듣고 있던 아이를 바꿔 달라고 해서 아이에게 물었다. "00야, 너 반장에 출마했었니?" " 아니요, 죄..죄송해요." 그 다음의 통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의 집요한 부탁은 기억이 난다. 2학기 때 멘토의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는 부탁. 그 부탁은 곧 나의 선생의 자질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겠지, 하는 씁쓸한 여운.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클수록 아이들은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위와 같은 행동을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착한 아들딸이 되기 위해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허나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다. 학교에서는 고삐 풀린 뭐처럼 제 기량(?)을 꺼리낌없이 발휘한다. 가정에서보다 학교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고나 할까.

 

반장은 되지 못했지만 반장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해달라는 요청은 물론 한마디로 거절해버렸지만...좀 이해가 안 된다. 그게 왜 중요한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게 부모가 당당히 요구해야 하는 사항인지. 한편 이 아이가 학교에서 왜 그렇게 점수에 집착하면서도 가볍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대충 짐작이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관리(요즘 흔히 care라고 한다)를 잘 받는 아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런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분명 학교가 예전의 학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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