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있다. 20년 넘게 인연을 유지해온 단골 내과의원이다. 주로 위염이나 감기 때문에 드나들다가 언젠가부터는 혈압이 높다하여 순순히 받아들였고, 또 얼마 지나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 하여 그런가보다 하고 고분고분한 환자가 되어버렸다. 의심 같은 것, 하지 않았다. 20년 넘게 쌓아온 신뢰감이 있지 않은가.

 

미용실이 있다.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은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작은 곳이다. 처음에는 특정 헤어스타일을 요구하다가 요즘은 그냥 맡겨버린다. 알아서 잘라달라고 하면 더 좋아하시는데 그 좋아하는 표정이 좋아서 그냥 맡겨버린다. 그전에는 유명 미용실에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담당 미용사가 직장내에서 승급했다며 미용료를 오천 원 더 내야한다는 말에 발을 끊었다. 지금의 동네 미장원은 그 유명 미용사의 1/3 가격도 안 되는 미용료를 받지만 내게서 돈을 더 받아내려는 생각은 안한다. 염색을 해달라고 하면 몸에 안 좋을 수도 있으니 그냥 지내라며 염색을 거부한다.

 

요즘 읽은 몇 권의 책.

 

   

 

 

 

 

 

 

 

 

 

 

 

 

 

이 책들을 읽고 고민이 깊어졌다. 그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가 믿어왔던 단골의사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의사선생님은 환자들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사근사근해서 의원은 늘 환자들로 넘쳐난다. 1시간 이상 대기하는 건 보통이다. 긴 시간 대기실에 앉아 멍청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환자의 순번을 어기고 중간에 슬쩍 진료실로 들어가는 말쑥한 차림의 남자들을 볼 수 있는데 다름아닌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들이다. 자주 본다.

 

이 의사선생님은 콜레스테롤 처방을 하면서 이 약이 골다공증 예방도 하는 약이라고 했다. 콜레스테롤이 높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안 좋은지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 역시 없었다. 친절한 분이라서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지 않았음에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위의 책들을 읽다보니 나의 맹신이 여실히 드러났다. 콜레스테롤 약을 그대로 먹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일었다.

 

유명 미용사의 미용비 인상에는 그렇게 칼날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서 내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처방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볼 때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권위에 복종하고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콜레스테롤약이 골다공증에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의사들이 믿고 권유하는 것...<의사들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에 실린 내용을 읽고서야 비로소 내 단골의원에 왜 그렇게 자주 제약회사의 영업사원들이 드나드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의심 없는 의사에 의심 없는 환자. 그 사이 나는 진짜 환자가 되어 가고 있고.

 

여기에 넘쳐나는 온갖 정보도 한 몫 한다.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에 나오는 한 대목.

 

p.83...정보가 너무 많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다. 인터넷과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건강 정보와 뉴스들은 사실 잘 포장된 마케팅 의도들을 숨기고 있는 수가 많다. 때로는 거의 공해 수준이다. 그것이 알기 싫다.

 

<콜레스테롤은 살인자가 아니다>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어떵게 그렇게 의심 한 조각 없이 의사의 처방을 그대로 따를 수 있었는지 소위 '지성'이라는 게 내게 있었는지 반성하는 마음이 들 지 않을 수 없다. 참담할 정도이다.

 

이제는 의심할 수는 있는데 이제부터가 문제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고민이 깊어진다.

 

염색의 부작용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는 경우도 있다며 염색을 극구 말리는 동네 미용실 원장님의 상식과 양식이 새삼 돋보인다. 병원 단골의사선생님은 콜레스테롤 처방을 하면서도 혹여나 있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고 나 역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건 상식도 양식도 아니다. 그냥 맹신이다. 의료생태계의 먹잇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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