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뉴튼 - 관음과 욕망의 연금술사 현대 예술의 거장
헬무트 뉴튼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19금이 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이 책에 비하면 매우 건전한 범생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했을 때 책갈피끈이 한번도 손을 대지 않은 듯 정중하게 꼬여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책을 접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알고 있을 이 책의 운명 덕택에 다행히 19금이라는 딱지는 붙지 않았고, 글쎄 앞으로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이 책의 존재를 모를테니까.

 

356쪽의 절반 정도를 읽을 때까지도 여자와의 섹스 이야기는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데, 한편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 재밌기도 하여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어떤 사람은 겨우 겨우 목숨 부지해가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데(<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처럼), 어떤 사람은 수많은 여자와 질펀하게 놀면서도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개척해 나간다. 이 책의 저자인 헬무트 뉴튼이 그랬다. 그 찬란한 섹스 경험을 고스란히 살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가당치도 않을 이야기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단일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되바라진 삶'이 되어버린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책의 내용이 성공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거들먹거리거나 있는 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19금으로 분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어쨌든 헬무트 뉴튼은 대단한 작가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리고 그의 사진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마음 속에 묵직한 그림 하나를 남기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의 작가정신-헬무트 뉴튼에게는 좀 더 자극적이고 센 표현이 있어야겠지만-을 다음 구절에서 읽는다.

 

264쪽....카메라는 현실과 나 사이에서 하나의 보호벽 역할을 한다. 불쾌한 일, 가령 나의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과 1971년 뉴욕 병원에서 지지부진한 회복에 직면했을 때, 병원 침상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82년 준이 대수술을 받았을 때, 나는 카메라 덕분에 수술대 위에 누운 그녀와 그녀의 몸에 가해지는 수술 행위를 냉정하고 용기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늘 그랬다. 카메라는 내게 그런 적당한 거리감을 제공해주었다. 종군 사진기자들은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전쟁의 참상과 자신 사이에 카메라가 없었다면 과연 그 유혈 사태와 전쟁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제목에 붙인 '역발상'의 사진작가...그의 사진 작품이 사람들로 하여금 역발상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나 어쩐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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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0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a 2013-10-15 07:18   좋아요 0 | URL
오해라니요...리장 어쩌고 써놓고보니 괜히 자랑하는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3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고행 같은 여행을 했던 인도가 떠올라서 마음이 들떴습니다.
쓰고보니 아, 이런 주책,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달아올라서 그냥 삭제했답니다.
여행 얘기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되거든요.

고맙습니다.

2013-10-14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a 2013-10-15 07:1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댓글 다는 게 무척 둔한 저를 보고 혼자 막 웃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