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구입하고는 남편에게 먼저 양보했다. 늘 책을  끼고 있는 나보다 읽는 책은 훨씬 적건만, 늘 여유있고 활기차고 적당한 비전마저 겸비한 남편이 모처럼 호기심을 표한다.(책 읽기를 썩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부럽다.) 중간 점검삼아 몇차례 물어보니 재미있게 읽고 있노라 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읽기 전에 남편에게 물어봤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가 뭐냐고.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야한다,는 거란다. 평소 말이 길지 않은 남편다운 대답이다.  

읽고 보니 '재미있게 살아야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인데 이렇게 책으로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니...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뒤적여봐야 적이 안심되듯 책을 통해서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되는 이 요상한 습관이라니... 

(266쪽).. 내 존재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 하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 내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내 존재를 찾아 헤맬 일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어떤 일이 되었든 상관없다....내가 헤맬 때, '나'와 '내가 아닌 것'이 구분되지 않아 헷갈릴 때, 내 면역시스템을 가동시켜 내 안의 향상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 존재를 확인하는 비결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자니 곳곳에서 한 인물이 계속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글에서다.  

(139쪽) 사람은 바쁘면 바쁠수록, 정신없으면 정신없을수록, 자기반성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형편없이 망가지는 까닭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는 메타코그니션('생각에 대한 생각')능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사회적 성취가 크면 클수록, 반성적 거리는 사라진다. 

누구라고 거론하는 것조차 가치없는 일이다. 다만 그것도 권력이라고 폼 재고 다니는 꼴이 꼭 동네 골목대장 같아서 역겨울 뿐이다. 늙어가는 내 눈에는 그런 게 보이는 데, 나보다 더 늙고 더 경력이 많은 그 '골목대장' 눈에는 왜 그런 게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남들보다 높은 직급에 올라갈 일이 평생 없는 내 눈에는 너무나 잘 보이는데 말이다. 음, 그런 양반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진짜 폼은 정년 퇴직 후에 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책에 인용된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가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268)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또 하나 있다. 언젠가 딸아이를 성장 클리닉에 데려간 적이 있다. 의사가 묻는다. "마음에 걱정거리가 뭐니?"  "저요? 지구의 환경 오염이 걱정스러워요." 초등학교 졸업 직전이었다. 그래서 키가 작은가 원....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계절이 바뀌면 남자도 생리를 한다'/'도대체 갈수록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우리는 절대로 지구를 지킬 필요가 없다'/'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이 책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딸내미, 너는 지구를 지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네가 보기에는 아직 이르구나.  

청소년용 버전은 어디 없을까요? 애들에게서 '재미'를 뺏은 죄가 너무나 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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