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고요 산책길
한상경 지음 / 샘터사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떠나며 만나기로 한 장소가 김포공항이었다. 비행기를 타야만 공항인가, 우리는 운전병을 자처한 친구의 편의를 위해 공항을 집합 장소로 택했다. 

마음먹고 나섰더니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하릴없이 서점을 기웃거렸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서점에 익숙해진 이후 서점에서 서너 시간을 보내던 일은 까마득한 옛 일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시집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우선 시집 코너를 둘러보았다. 꿈도 크시지, 웬만한 매장에서도 찾기 힘든 시집을 공항의 작은 서점에서 기대하다니. 현실감이 떨어지는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롯한 두툼한 인문한 서적들이 버젖이 누워있는 인문학 코너에선 다소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전문 서적을 얼떨결에 공항에서 구입한다고? 얼떨결에 혹은 우연하게 혹은 아무렇게나 한 권 집어드는 곳이 이런 공항의 서점일텐데. 

저런 두툼한 책을 집어들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며 겨우 한 권 집어 들었다. 아침고요 수목원을 만든 사람이 쓴 책이다. 물론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면 할인이 되는데.... 

문장과 문장을 성큼 성큼 건너뛰며 읽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나무만 잘 심으면 됐지 글까지 기대하면 과하겠지 하면서 읽었다. 글 중에, 옻나무와 붉나무 얘기가 나왔다. "그 붉은 빛에 취해 산야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서 이 나무의 존재를 확실히 아는 이들은 드물다."는 붉나무. 내가 알고 있는 많지 않은 나무 중에서 확실하게 알고 있는 나무였다. 정원수로도 어울린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떠벌리기까지 한 나무였다. 잠시 으쓱했다. 

이 책을 또 뒤적일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이 한 쪽이 나중에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다. 나무를 전정할 때 전정 기준이 되는 모양새에 대한 설명이다. 

"수직으로 곧게 자란 가지(직립지, 도장지), 나무의 안쪽을 향한 가지(내향지), 아래로 향한 가지(하향지), 동일 방향으로 겹쳐지는 가지(평행지), 같은 높이에서 서로 경쟁하는 가지(대생지), 그리고 병든 가지...."(180족) 

그러다가 이어지는 다음의 글에서 잠시 마음이 머문다. 

"전정을 하면서 생각한다. 때로 정신없이 살다보면 나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피해를 받고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는 주변 사람들을 잊을 수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은 존재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남에게 폐를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양를 바라보며 감동할 때 이미 내 뒤에는 그늘이 던져지고 있다. 고목 곁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이치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사라져야 할 시기까지 예상해야 할 것이다....누군가가 아직 나를 붙잡아줄 때, 나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을 때, 그때가 바로 돌아가야 할 시기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나는 전정을 한다." 

퇴임식이 이어지는 요즈음. 아쉬움과 미련으로 퇴임 후의 친목계를 결성하는 어떤 교장이 떠오른다. 퇴임 교장끼리의 모임이 아닌 수하에 있던 사람들과의 모임이라...깨끗하게 떨어져버리는 동백꽃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면 너무 과한가? 

나무를 한 번도 옮겨 심어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를 사람으로서, 다음의 귀절도 인용해둔다. 

"이른 봄에 나무를 옮겨심을 때는 먼저 뿌리를 둥글게 끊어서 조심스레 새끼줄로 감아야 한다. 그리고 본래의 뿌리가 잘려나간 만큼 비례하여 지상부의 나뭇가지를 솎아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며 잘려자간 뿌리에 비하여 가지가 너무 많아 충분한 수분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나무가 말라죽기 십상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여 더 크레 자라기 위해 나무는 뿌리가 잘려진 비율만큼 가지도 잘려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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