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09.7.25일자 한겨레 신문기사이다. 제목은 <'미래형 교육과정' 벼락치기식 개편> 

현재 10년(초1~고1)으로 돼 있는 국민공통 기본 교육과정은 9년(초1~중3)으로, 1년 단축된다. 이와 함께 현재 10개(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실과, 외국어, 체육, 음악, 미술)인 국민공통 기본 교과군이 7개(국어, 사회·도덕, 수학, 과학·실과, 외국어, 체육, 예술)로 줄어든다. 또 주당 수업시간이 1~2시간인 도덕·실과·음악·미술 등의 과목은 한 학기에 몰아서 수업하는 ‘집중 이수제’도 도입된다. 이에 따라 현재 최대 10개인 초등학교 학기당 이수 과목 수가 7개로, 최대 13개인 중·고교는 8개로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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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졸속이다. 학교 현장에 얼마간이라도 몸 담아봤다면 이런 식으로는 절대 밀어부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니 정책 따로 현장 따로라고 말할 수 밖에. 상식이 통할 여지는 없는가. 

소위 말하는 기타 과목이 살아 남아야하는 이유를 말해야겠다. (참고로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필수 중의 필수 과목이다.) 

1.아이들은 몸을 제대로 부릴 줄 모른다. 예를 들어 칠판 분필가루 제거시 손걸레질 한 번 시키면 속 터져 죽는다. 도대체 걸레를 다를 줄 모른다. 걸레를 꼭 짜서 닦아내야하는데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레로 대강 닦아낸다. 그래서 전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아이를 창턱으로 데리고가 시범을 보여준다. 구정물이 쭈르륵.....계속 나온다. 시범을 보이는 이유는 다른 아이들도 배우라는 뜻인데 다음 날 다른 아이를 시켜보면 똑같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 아이들은 교복에서 단추가 떨어져도 제 손으로 다는 아이가 별로 없다. 손은 모셔두었다가 어디에 쓰는지 도무지 제 손 사용법도 모른다. 단추 하나 못달고, 형광등 하나 갈아끼우지 못하고, 변기 막힌 것 뚫어볼 엄두도 못내는 인간 길러서 뭐하나. 언제까지나 남에게 기대서 살게 만드는 머리만 큰 바보 만드는 게 이 나라의 교육과정인가?  

가정과 기술 과목에서 손을 사용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2.우리의 교육은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교육이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하위 30% 범위의 학생들은 예외를 빼고는 대부분 온순하고 성실하다. 수업 시간에도 열심히 듣는다. 그런데도 교사의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척 어려워한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대부분은 기가 죽어있고 의기소침해서 감히 손을 들어 물어본다거나 하는 유별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길들여져왔다. 나름의 생존전략을 터득했다고나할까, 불쌍하고 안타깝게도. 

이런 아이들에게는 음악, 미술, 체육이 숨통 과목이다. 체육시간이라고 눈을 빛내며 기대에 차있는 아이들을 본다면 절대로 체육 시간 없앤다는 말 못한다. 다른 과목에서는 기가 죽어도 체육시간에는 팔팔 날아다니는 아이들을 본다면 그들의 숨통을 더 옥죄지는 못할 것이다. 반대로 공부는 되지만 체육이 힘든 아이들에게는 체육 시간에 겸손을 배울 수 있다. 살아가는 데 머리보다 몸이 우선임을 조금이나마 깨칠 수 있는 시간이 체육 시간이다. 

3. 음악이나 미술을 제대로 가르쳐야한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지방의 소도시에 있는 신설 사립학교였다. 한 학년에 2학급씩, 전체 6학급이 전부인 작은 학교였다. 그래서인지 음악과 미술과목을 음악을 전공한 한 선생님이 모두 가르쳤다. 그런대로 배우긴 배웠다. 색종이 모자이크로 무엇인가 형상을 만들어나가는 미술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 펑펑 쏟아지는 흰 눈을 검정색으로 표현했다. "눈은 흰색이잖아?"라는 선생님 말씀이 들려왔다. 내가 이때 "눈은 흰색인데 왜 검정색으로 표현했니?"라고 묻고 내 말에 귀기울여주는 선생님 모습을 봤더라면 적어도 그 선생님을 마음에서 지워나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미술대학 입학을 꿈꾸고 그림 공부를 할 때 알게 되었다. 중학교라는 기간이 그림의 단절기였다는 것을. 물론 별 볼일 없는 재주였기에 그림에서 손을 떼었지만 중학교에서 배워야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원망은 길게 남았다. 음악이나 미술은 자신에게 있을지 모르는 작은 재주 하나쯤 발견해서 삶을 다양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기회와 소양을 쌓게 해주는 과목이다.  

 

필수 과목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기타 과목에서마저 소외된다면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배움은 곧 지겨움이 될테고 더욱 더 진한 패배감과 열등 의식으로 지루한 학창 시절을 보내야할 것이다. 그러고도 남는 것은?  

제 몸을 제대로 부릴 줄 모르고 삶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고 즐길 줄 모르는, 그저 머리만 멀뚱하고 크게 남아있으나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반편이로 만드는게 이 나라의 교육이라는 것인가? 물론 반편이로 만들면 통치하기는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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