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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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글은 늘 무겁다. 절대로 마음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기억과의 싸움'을 주문하고, 한 눈 질끈감고 대충 살아가는 안이한 삶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 늘 무언가를 깨우치려고 한다. 그것도 집요하게.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과정은 때론 참회가 되고 때론 둔중한 깨우침이 되기도 한다. 그의 책 한 권을 읽고나면 잠시 그 무게에 짓눌려 생각이 무거워지지만, 조금씩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피할 수 없는 글의 흡입력이요, 매력이다. 

딱히 어느 부분이라고 집어낼 수는 없지만, 책의 어느 페이지에선가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속으로 눈물이 흘렀다. 마치 속으로 피는 무화과의 꽃처럼....이런 것이 고뇌라는 것일까? 

서경식의 글에서는 그의 가족사가 늘 등장하는 것 같다. 아닌가? 나는 그의 두 형을 떠올리지 않고는 그를 생각할 수 없다. 누구나가 그런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 같은 부분들 말이다. 운명이랄까 혹은 천형 같은 것.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카라바조,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는 한편 한편이 뭔가 깨달음을 주는 바가 크다. 그러나 내게는 역시 고흐가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그 중 다음 인용 부분에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게도 가족이라는, 형제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멀어져가는 감각의 모티프'를 추구한 고흐와 같은 사람이 내 주위에도 존재하기에...얼마 전에 읽은 <덕혜옹주>에서도 말 못할 아픔에 몹시 허우적거렸었다.  

부연하자면 이것은 내가 서경식을 읽는 방식이다.

291. (야노 시즈아키와의 대담중에서 야노의 말) ..현세를 살아가기 위한 가치관, 혹은 필수품 같은 것이 인간에게는 있는 법이지만, 고흐에게는 그런 것을 뚫고 나아가는 감각이 있습니다. 뚫고 나가는 것은 일종의 비극이지만, 인간 중에는 그런 비극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현실로 환원되거나 현실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이건 고흐의 풍경화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고흐의 풍경 속에는 잠재적이긴 하나 멀어져가는 감각의 모티프가 있습니다.... 

312...(서경식) 우리 근대인, 혹은 현대인에게 자신의 형제나 가족 중에 '예술 내지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이념이나 이상을 그대로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싫을지, 쉽게 상상해볼 수 있는 일입니다. 단지 개인적인 기분에서가 아니라, 무언가 보편적인 것 내지는 높은 것과 공명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끝까지 철저하게 실현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테오도 결국 그 이상을 형과 공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글.  화가는 그림과 관계를 맺는 다는 얘기는, 글은 머리 보다 몸으로 쓰는 것이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318.  (야노 시즈아키)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화가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하고 관계를 맺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싶다는 욕구지요. 한 줄의 선으로 그리면 끝나버릴 것을 점으로 그린다면...점을 찍다 보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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