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글을 읽고 심보선의 <형>이라는 시를 읽기 위해 책을 샀다.

 

 

 

 

 

 

 

 

 

 

 

 

 

 

 

 

누군가가 그랬듯이 나도 이 긴 시를 옮겨본다. 

 

 

                 

 

형은 어쩌면 신부님이 됐을 거야.

오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형 생각이 났어.

나이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나한테 자율성이랑 타율성 외에도

신율성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쳐줬어.

 

신의 계율에 따라 사는 거래.

 

나는 시율성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해줬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거라고.

신부님이 내 말에 웃었어.

웃는 모습이 꼭 형 같았어.

 

형은 분명 선량한 사람이 됐을 거야.

나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나보다 어머니를 잘 위로해줬을 거야.

당연히 식구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잠들었겠지.

문들을 다 닫고.

불들을 다 끄고.

 

형한테는 뭐든 다 고백했을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형이 우리 중에 제일 슬펐을 텐데.

 

그래도 형은 시인은 안 됐을 거야.

두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니까 말야.

 

이것 봐. 지금 나는 형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형이 이 시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까?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고 할까?

아마도 그냥 말없이 웃었겠지.

아까 그 신부님처럼.

 

시가 아니더라도 난 자주 형을 생각해.

형이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형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가고

형이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형이 하지 않았던 사랑을 해.

 

형 몫까지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끔

내가 나보다 두 살 더 늙은 것처럼 느껴져.

 

그럼 죽을 때 두 해 빨리 죽는 거라고 느낄까?

아니면 두 해 늦게 죽는 거라고 느낄까?

그건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그런데 형은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모르는 일이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지.

불행이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야.

 

만약 그랬다면 내가 형보다 더 슬픈 사람이 되고

형은 감옥에서 시를 썼을까?

그것도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했는데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네.

 

형 때문에 나는 혼자 너무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됐어.

이것 봐. 지금 나는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시를 쓰고 있잖아.

문들도 다 열어두고.

불들도 다 켜놓고.

 

형,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형.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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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해져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다가 뚝 멈추고 말았다.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이 부분에서다. 애초에 없는 형 얘기를 이렇게 쓰다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한동안 속이 부글거리는 와중에 이런 책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태초에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지구라는 행성도 우주에서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부글대던 속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얘기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해지면서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언니가 지난 5월 28일에 세상을 떴다. 68세. 50여 년 간 병원과 요양원에서 생을 보내다 마감했다. 언니와 놀았던 기억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도, 다툰 적도 없다. 병원에서 쓸쓸한 생을 보낸 언니도 억울하지만 나 역시, 우리 오빠들 역시 억울한 세월을 보냈다. 누구도, 그 누구도(하느님 포함)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니....

 

 

평소에 tv를 보지 않기에 <우리들의 블루스> 시리즈를 넷플릭스로 몰아서 보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눈이 시뻘개졌다. 은희, 선아, 영옥이 얘기를 합치면 내 얘기가 되는구나, 생각이 드니 더욱 서러워졌다. 그래도 극중 영옥이만큼 경제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월남한 부모님은 나머지 자식들을 미더워하지 못해 언니의 병원비를 끝까지 책임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불쌍한 나의 부모님.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놨다.

 

 

 

 

 

 

 

 

 

 

 

 

 

 

 

작가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다. 매끈한 소설은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

 

 

 

 

 

 

 

 

 

 

 

 

 

 

 

 

남에게 읽히는 글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책.

 

 

 

 

 

 

 

 

 

 

 

 

 

 

 

 

<엔드 오브 타임>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여행 고수들도 많은데......

 

 

 

 

 

 

 

 

 

 

 

 

 

 

 

읽다보니 읽었던 책이었다.

 

 

 

 

 

 

 

 

 

 

 

 

 

 

 

 

목소리 큰 왕언니의 일침 같은 책

 

 

 

 

 

 

 

 

 

 

 

 

 

 

 

 

내가 욕심낼 책이 아니었다. 관심도 거의 없고.

 

 

 

 

 

 

 

 

 

 

 

 

 

 

 

 

힘을 좀 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숨통이 트였다. 벌써 내용은 가물거리지만, 작가의 유쾌한 글에서 기운을 얻었다.

 

 

몇 권 더 집어들었었는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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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14: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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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1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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