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올레길을 걸었다. 1코스부터 차례대로 7코스까지 일단락지었다. 퇴직한 남편이 있어서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못 할 일은 아니지만 여성에게는 불리한 조건을 무시할 수 없는 구간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혼자가 두려워서 함께 걷지만 함께 걷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길은 자연의 길보다 더 복잡하고 복합적이어서 정신줄 놓고 터덜터덜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자연의 길은 마음 놓고 걷지만 사람의 길은 절대로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또한 상대방에게는 그런 존재. 단순함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놀이 같은 것, 내가 밟은 올레길이 그랬다.
(사실은 이 책보다 더 오래 전에 나온 2008년판을 읽었다. 예전 것은 검색창에 뜨지 않으니 비슷한 걸 올리는 수밖에.)
하여튼 예전부터 이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내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는 것. 책 갈피를 보니 반 정도 읽긴했는데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는 것. 그래서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후반부쯤 되어서야 속도가 붙었다. 그간 제대로 읽지 못한 건 자투리 같은 시간을 내어 미적미적 읽었기 때문이지 싶다. 나이를 먹으니 이해력도 생겼나?
요런 페이퍼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은 일. 가장 인상적인 부분만 적어본다.
".....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그러면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는 겁니다. 이 이야기면 설명이 되겠군. 어렸을 때 말입니다. 나는 버찌에 미쳐 있었어요. 하지만 돈이 있어야지요. 돈이 없어서 한꺼번에 많이는 살 수 없고, 조금 사서 먹으면 점점 더 먹고 싶어지고 그러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버찌 생각만 했지요. 입에 군침이 도는 게, 아, 미치겠습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화가 났습니다. 창피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아시오? 나는 밤중에 일어나 아버지 주머니를 뒤졌지요. 은화가 한 닢 있습디다. 꼬불쳤지요.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 한 소쿠리를 샀어요.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 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렇습니다, 두목.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보기만 해도 견딜 수 없었어요. 나는 구원을 받은 겁니다. 언제 어디서 버찌를 보건 내겐 할 말이 있습니다. 이제 너하고는 별 볼일이 없구나 하고요. 훗날 담배나 술을 놓고도 이런 짓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끊고 싶으면 언제든지 끊어 버립니다. 나는 내 정열의 지배를 받지 앟습니다. 고향도 마찬가지예요. 한때 몹시 그리워하던 적이 있어서 그것도 목젓까지 퍼 넣고 토해 버렸지요. 그때부터 고향 생각이 날 괴롭히는 일이 없어요. -302~303쪽
여자 밝히는 난봉꾼 얘긴가 할 정도로 전반부는 순 여자 얘기만 나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조르바의 진면목이 드러나는데..... 조르바란 인물을 탄생시킨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이 달에 읽은 또 한 권의 소설.
감히 이 책에 대해선 말을 못하겠다. 보물 같은 이 책을 내가 어떻게 알고 구입해놨을까 생각하면 내가 기특해진다고나 할까.
읽기 보다 걷기에 치중하다보니 컴퓨터 자판 치는 것도 어설퍼졌다. 균형감각을 잃었으나... 읽기와 걷기를 선택하라면... 음, 아직은 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