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쉽게 버리지는 않지만 물건 수집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그나마 책은 약간 있지만 구색을 맞춰 구입한다거나 희귀본을 소장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 읽은 책에 대한 미련도 별로 없어서 친구에게 주어버리기도 한다. 물론 아끼는 책은 아끼지만 점점 아까운 책이 줄어든다고나 할까.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몇 개 있긴 하다. 바로 재봉틀이다.
1950년대 후반쯤에 결혼한 작은 어머니가 사용하던 재봉틀로 1970년대 초반에 우리 어머니가 물려 받았다.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나는 어깨 너머로 저 재봉틀 사용법을 익혔다. 중학교 가정 시간에 선생님이 '자기 집에 재봉틀 있는 사람?'하고 물을 때 손을 들었는데 '무슨 재봉틀이니?' 물으셔서 '싱거 재봉틀이요.'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오신 건 아니지만 하여튼 집에 재봉틀이 있었으니 자못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몇 차례 수리를 했지만 끝내 작동하지 않는 저 손재봉틀을 버리지 못하고 소장한 지 몇년쯤 지났을 때 재봉틀 몸체에 써있는 DRESS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 싱거가 아니었나?
트레이드 마크가 드레스였다. 그럴리가.... 검색해보니 드레스 재봉틀을 70년대에 대우에서 인수해서 그 이후로는 저 자리에 '대우'라는 글자가 들어가게 되었다 한다. 그러니까 저 재봉틀은 대우에서 인수하기 전인 60년대나 50년대에 나온 제품이었다. 그건그렇고 왜 싱거로 기억하고 있었지?
바로 이 박스 때문이었다. 아담한 나무 상자에 당당하게 쓰여있는 '싱거', 나는 이 글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싱거에서 나온 드레스인가? 검색해보니 싱거는 싱거고 드레스는 드레스이지 같은 회사 제품이 아니었다. 이걸 노쇠하신 작은 어머니께 여쭤보나? 우린 그런 살가운 사이가 아닌데...
요즘은 보기 힘든 손재봉틀. 근대사박물관에나 있을법한 물건이다. 주물로 만든 거라서 무게도 꽤 나간다. 고쳐서 사용할 날이 올까?
20여 년 전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삼베 베겟잇. 삼베 수세미를 만들면서 찾아본 이 베겟잇을 보고서야 며칠 전에 작업을 끝낸 삼베수세미가 떠올랐다. 국산 삼베는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만만찮은데 이런 값진 것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전 삼베로 만든 홑청을 쓰레기로 버린 것을 떠올리니 가슴이 쓰려왔다.
그나저나 이미 만들어놓은 50여 개나 되는 삼베 수세미는 어찌하나? 아무래도 진짜 삼베가 아닌 것 같은데....여기저기 주겠다고 말씨도 뿌려놨는데.... 수세미 하나에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