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가다 - 페미니즘 미술관
정일영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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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출처: daum)

 

사진2.  (출처: daum)

 

사진1은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주인공 사진이고, 사진2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3, 이탈리아)의 자화상이다. 많이 닮았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초록색 드레스가 특히 그렇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면서 여성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는 설정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오로지 내 무지의 탓이라는 것을 <내가 화가다>라는 책을 읽고 깨달았다.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수잔 발라동

유디트 레이스테르

마리 로랑생

마리 바시키르체프

로자 보뇌르

마리 드니즈 빌레르

베르트 모리조

매리 커셋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라비니아 폰타나

소포니스바 앙구이솔라

타마라 드 렘피카

그웬 존

 

이 중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마리 로랑생 정도만 알고 있다는 건 거의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툴루즈 로트렉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와 관계가 깊은 수잔 발라동을 몰랐다는 건 툴루즈 로트렉도 제대로 아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반쪽에 불과하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사진2를 그린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에 대해서.

 

-120쪽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술 역시 여성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서양미술사를 다룬 책에서도 여성 화가에 대햔 서술은 매우 빈약하다. 이러한 푸대접 속에서 젠틸레스키는 1970년대에 시작된 페미니즘 미술사 연구의 이정표가 되었다.

  열여덟 살 되던 해, 그녀는 아버지의 동료 화가이자 미술 선생이었던 열다섯 살 연상인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재판에서 젠틸레스키가 겪은 고통과 수치는 성폭행의 끔찍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진술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타시와 대결 심문을 받으면서 '시빌레'라는 손가락 고문과 두 차례의 치욕적인 처녀막 검사를 강당해야 했다.

 

당시 여성에게 강요되고 억압된 많은 금기를 깨고 젠틸레스키는 꾸준히 예술에 매진하여 이름을 남겼다.

 

-138쪽

  능력 있는 화가 아버지에게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받고 화가로 성공한 젠틸레스키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여성 화가들에 비하면 매우 운이 좋았다. 물론 아무리 좋은 운도 노력과 치열함이 없다면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법! 그녀가 불멸의 여성 화가로 재조명될 수 있었던 답이 그녀의 자화상에 담겨 있다.

 

바로 사진2가 '그녀의 자화상'이다. 그렇다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사진1은 젠틸레스키에 대한 오마주로 봐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수잔 발라동(1865~1938, 프랑스) '보란 듯이 보헤미안의 삶을' 살았던 여성. 이 당당한 여성이 그간 툴루즈 로트렉보다 저평가된 건 부당하기 이를 데 없다. 인생도 그림도 당당하다보니 남성들의 질투심으로 도외시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여성 화가 유디트 레이스테르(1609~1660). '여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널리 인정받는 화가'였으나,

 

 

 -71쪽

  발라동과 레이스테르는 남성들이 만든 전통에 도전했다. 여성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했던 발라동은 나이들어서도 아무런 장애 없이 화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대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들과 견주어도 손색없었던 레이스테르는 동료화가 얀 몰레나르와 결혼한 후 활동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정규 미술교육을 거치지 않고 화가로 입문한 발라동은 다듬어지지 않았음에도 '여자'라는 '특별함'을 살려 유명해진 반면 레이스테르는 '여자'라는 '특별'함 때문에 오랜 세월 조명받지 못했다.

  두 화가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결혼'이었다. 발라동은 이혼을 선택한 후 자유롭게 살았으나 레이스테르는 결혼을 통해 남성의 질서에 구속되고 말았다. 수많은 여성 화가들이 레이스테르와 같은 이유로 잊혀졌다. 근대 이전, 아니 지금까지도 결혼은 많은 여성들의 재능을 매장하는 무덤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사에서 이름이라도 남긴 여성 화가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 참고: 미국의 국민 화가 에드워드 호퍼 뒤에는 신음하는 조 호퍼가 있었다.

 

https://blog.aladin.co.kr/nama/11342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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