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횡단보도 앞 모퉁이 나무 그늘이나 버스 정류장 근처에 조용히 서 있는 두 사람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깔끔한 옷차림을 한 이 두 사람은 손바닥에 들어오는 작은 선교 책자들를 정갈하게 진열한 진열대 뒤에서 은은한 미소를 띠고 지나다니는 행인과 눈을 맞추려고 눈을 반짝인다. 나는 이 선교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이들에게 자주 눈이 가는데 간혹 눈인사를 하면 조용히 눈인사로 답례를 해준다. 무례하게 들이대지 않으니 보는 사람도 무례해지지 않는다.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다.

 

종교는 무엇인가, 를 오래 고민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러다 발견한 글.

 

 

 

 

 

 

 

 

 

 

 

 

 

 

 

 

아름다운 것, 맛있는 것, 예쁜 것, 비싼 것, 귀한 것은 그 자체로 다 신의 한 부분을 구현하는 것일 뿐 신은 아니기에 우리는 거기서 결국 허무 외에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다. 약처럼 생긴 약을 아무리 먹어도 약효가 없는 것과 같다. 어떤 신부님은 심지어 섹스 중독자나 알코올중독자도 실은 그 안에서 그들이 하느님을 찾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후로 무언가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말이다.       -69~70쪽

 

 

또 다른 예.

 

 

"당신은 종교에 빠질 때처럼 그림에 빠지기 위해 그들을 떠났다. 그때부터 당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작품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 아나벨 뷔페

 

 

베르나르 뷔페의 평생의 반려자였던 아나벨 뷔페의 말이다. 뷔페의 죽음이 기괴하긴 하지만 그림이 종교였던 그였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진작가 메이플소프의 기괴한 인물 사진이나 숨을 멎게 하는 꽃 사진을 접했을 때 처음엔 충격으로 다가왔으나 한편으론 구도자의 깊이 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어디 예술가 뿐이랴. 죽음을 무릅쓰고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서도 그들이 추구하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하나 더.

 

 

 

 

 

 

 

 

 

 

 

 

 

 

 

"아~ 내 강의를 정말 잘 들으셨군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불교는 무신론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종교를 논할 수 없고, 근대정신을 논할 수 없어요. 종교가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테마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 없어도 인간은 종교생활을 향유할 수 있어요. 인간의 종교적 과제는 산적해 있어요."      -135쪽

 

 

'모든 기도는 한 곳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목회자의 말을 거부하련다.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시 하는 종교인도 거부하련다. 설령 묵주를 염주로 사용하든, 불교도가 성당에서 기도하든 그건 몸에 걸친 옷에 불과하지 않을까. 자신의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예를 갖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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