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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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거주하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헝가리 출신의 소설가' 1935년 생으로 딱 우리 부모 세대의 사람이다.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부모님은 일제시대 때 태어났고, 제도권 교육보다 집안 형편에 따라 교육이란 걸 조금 받았을 뿐이었다. 서당에서 한문 위주로 교육을 받은 아버지는 평생 한문을 벗삼아 사신 분이었다. 제도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출중한 한문 실력 덕분에 6.25 전쟁으로 남으로 피난을 와서도 공무원 생활을 그대로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츰 시절이 바뀌어 한문 보다는 한글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한글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부친은 한글 맟춤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어머니의 경우는 더 열악했다. 그나마 다닌 소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곤 일본어가 전부였는데, 이후 정식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는 자식들에게는 이것이 하등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머니는 셈을 할 때도 일본어로 했고, 한글은 겨우 읽을 수는 있지만 글을 쓸 수는 없는, 평생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문맹을 얘기할 때 내가 우리 부모님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시대 흐름에 민감했던 부친은 대학교육이 가능해보이는 딸에게 영문과 입학을 강요했다. 앞으로는 영어가 대세가 될 터이니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영어 만능시대가 오리라는 걸 예측한 부친이었으나 영어의 알파벳도 모르는 분이었다. 영어는 부모님에게 문맹 정도가 아니라 외계의 언어였다.

 

그렇게해서 그 딸은 영어를 공부하고 영어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어인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거나 글을 쓰지는 못했으니 설사 문맹은 아니었다고 해도 완전히 문맹에서 벗어났나고는 볼 수 없었다.

 

 

이 책 <문맹>은 마치 갓 배운 외국어로 글을 쓴 것처럼 보인다. 문장이 짧고 명확한 게 한 글자씩 꾹꾹 눌러가며 쓴 것 같은(외국어로 옮길 때 그렇듯이) 분위기를 풍긴다. 말의 낭비가 없다. 문맹을 얘기하면서 그 문맹에서 겨우 벗어났음을 절제된 모습으로 잘 표현했다고나 할까.

 

 

마지막 부분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112~113 쪽

 

위 글에서 '프랑스어'를 '영어'로 바꾸면 그대로 내 얘기가 되는 것 같아서 놀랐다. 마치 내가 쓴 것처럼 쩌릿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어로는 글을 쓰지 않았다는 점.

 

이게 어디 나 뿐이랴. 영어에 한이 맺힌 사람들은 알리라. 이것이 그 누구의 얘기도 아닌 자신의 얘기라는 것을 말이다. 영어 때문에 우리는 평생 도전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또 영어 뿐이랴. 우리 부모님에겐 한문이, 일본어가, 한글이 도전이었고 문맹이었다. 누구나 문맹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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