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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
최하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어둠이 시작이었고 어둠이 끝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낸 고통스런 경험의 산물이 바로 예술이었다
* * *
'이럴수가!'
출근한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않아 도착한 책을 받아들고는 흔들흔들 어깨춤을 추며 미세한 생채기라도날까 무서워 아스테이지로 신속하게 포장을 먼저 했더란다. 그리고는 휘리릭, 훑어보기를 하는데 뭔가 심상찮았다. 분명있어야 할 그리고 있어야만 하는 사진 한 장 없더란다. 손에 꼽을 정도라지만 내가 알고, 읽었던 여행기행문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행문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이 그러했고 고학년의 수학여행이든 졸업여행이든 사진이 생명이라해도 과언이 아닐터인데, 이것은 대체 무슨 기행문이란말인가. 더욱이, 러시아라는 나라에 관해서는 무지하다 말해도 더 모자를판인데!
괜스레 숨을 몇 번 고르고 다시 한 번, 훑어보고는 찬찬히 목차부터 읽어보자며 바쁘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데 '첫 번째 러시아' 와 '두 번째 러시아'로 나뉘어지는 만만찮은 여행기. 결단코 책의 굵기가 얇다하여 우습게 보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야했다. 어떠한 명칭이든, 건물이든 생소하기는 물론이고 발음하기조차 난감한 목차에서 지레 겁을 먹고는 책을 덮는 찰나 - '아! 파스테르나크!' 망설임없이 목차가 가르키는 페이지를 가르면서 다소 엉뚱하게도 '두번째 러시아' 부터 작가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두 번째 러시아, 모스크바 ㅣ
파스테르나크 / 타르콥스키 / 숄로호프 / 아흐마토바 /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체호프.
실로, 목차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듯 했다. 러시아가 어디인가 ? 감히 상상도 못 할 예술인들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초반의 막막함은 물론이고 잠시잠깐 까막눈이 되었던 찰나는 모두 사라졌다. 사진 한 장 없으면 어떠랴. 한 분 한 분 이름을 뱉어낼때마다 머리속에서 잔잔한 단상으로 떠오르는 것을 , .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파스테르나크부터 시작하여 러시아의 여류시인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거부한 아흐마토바, 그리고 러시아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까지. 실로,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그들의 생과 예술과 죽음까지 기행자 최하림은 특유의 시적 흐름으로 단아하고 정갈했을법한 복잡미묘했던 그네들을 보따리에 담아 하나하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숄로호프는 최하림의 기행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임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여기서 최하림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왜 그들은 , 러시아인지. 아니 왜 그들은 러시아여야만 했었는지.
중간중간 사전과 인터넷을 구동해가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기행자 최하림이 본 것들을 나도 단 몇 프로라도 더 가까이 느끼고 함께 그 땅을, 그 예술인들의 나라위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절하리만치 긴박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것이 첫 번째 러시아에서는 인터넷이 모르는 것을 찾아주지 않으면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살짝 토로하며 최하림이 첫 번째로 다녀온 러시아를 나는 두 번째로 읽어내려간다.
첫 번째 러시아,
시베리아 / 페테르부르크 / 톨스토이 / 도스토옙스키 / 루블료프 / 안톤체호프
어느 누가 톨스토이를 모른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 우리가 아는 그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예술인이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분명 상당수임을 나는 확신한다. 두 번째 여행에 비해 다소 많은 사람들과의 기행은 우주의 궁륭이자 샤먼의 바다라 불리우는 바이칼을 횡단하는 기분으로 나 역시 그 무리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일행인마냥 발꿈치를 쫓았다. 읽는 내내 톨스토이에 대한 기행자 최하림의 각별한 애정을 양끗느끼며 다시 한 번 나의 얕은 지식과 별 볼일 없는 지식 그리고 들추어내봤자 깡그리 무시되어 부끄러워질 지식에 몸서리를 쳤다.
모두가 아는 톨스토이와 '죄와벌'의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수사화가인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소설가이자 극자가인 안톤 체호프. 모두가 러시아가 낳은 예술인이다.
기행이 아닌 러시아에 대한 공부를 하는 양, 참담함에 뱉어낸 한숨만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이 예술인들 모두가 아닐지언정 톨스토이와 어느 정도는 연관을 짓게 만드는 러시아는, 혹 톨스토이의 독무대가 아니었을지 감히 말해본다. 완벽하다 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를 여행하기 전, 최하림의 예술 기행을 읽고 떠나는 자가 있다면 이 책이 선사해주는 모든 곳의 땅을 밟지 않는 한 돌아 올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리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