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커피숍에서 책 읽고 있어.”

혼자?”

.”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서 읽지, 왜 혼자서 그러고 있어.”

집은 노동의 공간이라 집중이 잘 되지 않아. 3 둘째가 밤 10시 반 넘어서 집에 오니까 겸사겸사 기다리는 거야.” 가뿐한 듯 말을 보탰다.

집에서 나는 밥통이다 세탁기였다 가전제품이 되는 기분이 들어. 정서적인 교류 없이 왔다갔다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이랄까. 그래서 집에서 나오는 거야. 여기서는 커피 값만 지불하면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니까.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공간이지. 억지로 마음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점점 가라앉다 방바닥이 되어버릴 것 같거든. 나는 지금 안간힘을 쓰는 중이야.’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는 말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다 모습을 감추었다.

얼른 읽고 집에 들어가.”

그래.”

마음 따뜻한 친구지만 내 마음을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버티는 중이었다. 맨발로 얼음 바닥을 걷는 마음은 종종 휘청휘청 시렸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야. 스스로 다독일 때면 감각이 마비된 듯했지만 탄성력을 지닌 채 되돌아오는 냉기를 안아야 했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글쓰기 대회에 참여하며 나의 존재를 활자로 확인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고요하고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휘돌고 지나갔다. 글을 쓰며 마음에 박힌 가시를 하나 둘 빼내었다. 하지만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낮 동안 웃고 말하는 가면을 쓰던 나는 퇴근 후 말간 민낯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마주했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도 걸린 듯 가슴 깊숙이 고여 있던 물컹함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커피숍으로 가는 길은 따끔한 자유였다. 껄끄러움이 먼지처럼 눈가에 고여 물기가 어렸다.

 

5교시에 들어가 보니 여학생들 대부분이 자리에 없다. 하나 둘 들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무슨 일 있었니?”

점심시간에 배드민턴 반 대항을 했는데 졌어요.” 남학생들이 답을 해준다.

훌쩍거리며 다시 울먹이는 몇몇 여학생들. 맨 마지막에 자리로 돌아온 A의 눈이 뻘겋다. 본인 생각에 억울한 상황이 있었던 거다. 수업을 진행하는 내 눈치를 보며 뒷자리 친구에게 억울함을 토로한다.

‘CPR의 핵심은 타이밍이다.(p304)’ 수업보다 더 중요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가 많이 속상한가보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상했을까?”

제가 한 시합은 이겼는데요, 친구에게 체육복 바지를 빌려주고 저는 친구 치마를 입고했는데 그게 짧아서 움직이기가 불편했는데 선생님이 자꾸친구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는 A.

아이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가 어떤 좋은 질문보다 더 좋다.(p275)’ 가만히 옆에 서서 A의 말을 들어주었다. 본인의 옷까지 빌려주고 불편을 감수했는데도 그 노력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진행 과정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나보다. 다시 생각해도 속상한지 A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진행하는 선생님 입장에서 말하고, 시합을 하다보면 질 때도 있는 거지 승부에 연연하지 마라 정도의 말을 하고 수업을 진행했을 터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이들의 섬세한 뜨거움이 필요하다.(p12)’ ‘공감 과녁의 마지막 동그라미는 존재가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이다.(p145)’ 이 문장이 떠오른 나는 A의 마음을 공감하는 말을 건넨다.

저런! **샘이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가 많이 속상하고 억울했겠구나.”

어깨를 감싸고 토닥이며 A가 친구들에게 디테일한 상황을 다시 설명하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고 단지 아이의 울컥함을 다독이기만 했다.

!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잠시 후 A가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한다.

그래! 세수도 좀 하고. 어유! **가 많이 속상해서.”

결과적으로 아이의 마음이 낸 문제를 맞힌 셈이 되었다. 이전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들어간 느낌이었다.

 

6교시에는 한창 수업을 하는데 B가 벌떡 일어나서 아무 말 없이 뒷문을 열고 나가려한다.

갑자기 어디 가니?”

그제야 물을 뜨러 간다며 500mL 빈 페트병을 흔든다.

아니, 허락을 받고 나가야지 갑자기 그렇게 나가려하면 어떻게 해? 이따 쉬는 시간에 가!”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살짝 황당해하며 조금 높아진 톤으로 이랬을 거다.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0)’ 순간 이 문장이 떠오른다.

잠깐 복도로 나와 볼래?” 부드럽게 말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쟤 또 시작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종류의 행동을 자주 하며 수업의 흐름을 깨뜨리는 아이였다.

물을 뜨러 가고 싶다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먼저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B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을 했다.

샘 말씀하시는 도중 끊길까봐 말씀이 다 끝난 다음에 허락을 받으려했어요.”

그랬구나. 샘이 잠깐 오해를 한 거네. 미안하다. 얼른 다녀오렴.”

B를 보내고 교실로 들어와서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온 나를 조금은 의아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위기를 모면하려 둘러댄 말이었는지, 말한 대로의 마음이었는지 진실은 B만이 알 것이다. 이 작은 경험에서 나는 세 가지를 얻었다. B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내가 B에게 입혔을 지도 모를 상처를 주지 않게 된 것이다. 관성대로 B는 원래 저렇게 버릇없는 아이라 규정짓고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거다. B의 말이 거짓이었더라도 목이 말랐을 아이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니까 귀여운 거짓말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나의 감정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점이 내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이었다.

 

제목이 따뜻해서 집어 들었다. 영감자 이명수가 표현했듯 읽는 책이 아니라 행하는 책(p7)’이다. 번드르르하고 거만한 전문가의 냄새 없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전지침서라서 좋았다. 두 명의 학생에게 적용해본 결과, 생각보다 효과가 커서 놀랐다. 막연하게 가정했던 효과 이상이었다. 소박한 집 밥 같은 치유라는 적정심리학은 맞춤형 옷인 듯 어울리는 말이었다. 아이들을 상담하는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받은 느낌이다. 그동안 교사로서의 나는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에 심리적 CPR은 하지도 않고 시술부터 하려고 달려든 셈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공감하는 행동을 제일 처음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요즘 왜 지치는지 알았다.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해 누가 재가 돼버리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p264)’ 나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던 거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듣고 위로해주고 답을 제시해주는 축에 속한다. 그들은 자신의 얘기를 하느라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관심이 없다. 대화를 끝낸 상대방은 뭔가를 잔뜩 얻은 듯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떠난 후 혼자 남은 나는 종종 공허함을 느꼈다. 그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거다.

누구에게도 나의 무거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혼자서 견디다 결국 연락을 하게 되는 두 사람이 떠오른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는 대상은 아니지만 가만히 분석해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A는 매번 대화의 끝에 “**은요?”라며 나의 마음이 어떤가 묻는 이다. B는 나의 존재가 얼마나 의미 있고 소중한 지 표현해주는 사람이다. 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는 B와 대화하다보면 내가 썩 괜찮은 인간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듣고 싶어 했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가 적절히 섞여 들어가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 된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이니 그 사람만이 내 삶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p68)’ ‘요즘 마음이 어떠냐는 질문은 바로 그곳, 그녀 존재의 핵심을 정확하게 겨냥한 말이다.(p103)’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거였나. 요즘 넌 어때? 네 마음은 어때? 라는.

 

어젠 좀 울적했어. 글짓기 대회 결과가 나왔는데 떨어져서 좌절했어.”

뭐 그런 걸 가지고 좌절씩이나 하냐?” 안부전화를 건 그 친구는 웃으며 가볍게 넘겼다.

사실 내 마음은 내가 한 말보다 더 의기소침한 상태였는데.

글짓기대회에 도전하는 내 심리를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답이 보였다. ‘자기 존재가 집중 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p45)’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각보다 강해졌던가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적인 곳에 기대고 싶었나.

총량 불변의 법칙은 여러 모로 적용되는 규칙으로 보인다. 어느 한 쪽이 많아지면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백혈병에 걸려 암세포인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면 정상 백혈구나 적혈구나 혈소판의 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빈혈 등이 생기는 거라 들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인정 욕구로 채우고 싶었던 마음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리고 황량한 적막함이 출렁거리는 마음을. 매일 밤 울고 싶은 마음으로 잠들곤 했던 시간들을. 먹고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멀쩡한 직업 있고 그럭저럭 사는데 이런 감정은 사치이지 않나. 사람들이 했을 법한 말을 스스로 내안으로 던져 넣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p162)’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p218)’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p274)’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잘 아는 내가 나의 마음을 거부하고 있었던 거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세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은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해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연인의 환영과 계속 대화를 하면서 지낸다. 주변 친구들은 자살까지 시도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저 마음 아프게 지켜보기만 한다.

어제는 그녀가 본인의 상황을 인지하고 친구들에게 손을 뻗는 장면이 등장했다. “나 힘들어!” 그녀의 투명한 연인에게 건네는 말인 줄 알고 친구들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그녀가 말한다.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야. 나 힘들어!” 그제야 그녀에게 울컥하며 다가선 친구들과 그녀의 남동생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말한다. “고마워, 힘들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카카오 톡의 프로필 뮤직을 이하이의 <누구 없소>로 바꿨다. ‘누구 없소/ 나를 붙잡아줄 님은 없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데/ 어디 있소~’ 매력적인 목소리와 가사 내용이 와 닿아서. 표현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책속에서는 당신이 옳다란 문장이 몇 번이나 등장했다.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p48)’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아픈 배를 문지르는 엄마의 손길을 느낀 아이처럼 내 마음은 그녀의 문장들에 반응했다.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몰랐었구나.(p9)’ 책속에서 저자가 슬며시 걸어 나와 나를 향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로구나. 순간적으로 목이 메었다.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진 책속의 그림이 적절하게 어울렸다. 두 사람이 안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한붓그리기다. 소제목 옆에 간단한 테두리로 있는 그림은 차라리 장식에 가까웠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울컥했다.

안는다는 것은 참으로 뭉클한 스킨십이다. 저마다의 정체성으로 따로 뛰던 하나의 심장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안는 순간 심장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이의 가슴을 데워준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경계에서 심장은 두 개로 뛴다.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지 당신의 심장이 펄떡이는 건지. 공명하는 울림은 구분하기 어렵다. 구분할 필요도 없는 순간이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그림들과 정혜신의 문장들이 뜨끈한 차 한 잔이 되어 나의 숨결을 데워주었다. 마음을 정면으로 들여다본 내 눈엔 계속 눈물이 스몄지만 내내 따뜻한 다독거림을 느끼며 위안을 받았다. 두 개의 심장을 느껴본 시간이었다.

 

 

p109, 1째줄 : 숨길 숨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9-07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7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카롱 에디션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가 된 기분이었다. 차라투스트라님은 산에서 내려왔다 동굴로 왔다갔다 500여 페이지를 지나오시는 동안 끊임없이 말하셨건만 내 귀에 캔디도 아니고 내 귀에 경 읽기였던가. 그대 앞에서 나는 왜 이토록 작아졌는지.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깨달았다. 메타포의 향연이구나. 망했구나. 광활한 뷔페식당에 무모하게 발을 들여놓았구나.

입구에서 갈등했다. 그냥 돌아갈까. 계속 들어가 볼까. 두께에 망설이고, 무려 니체에 망설이고, 무엇보다 초라한 나의 그릇에 망설였다. 간장 종지에 한 솥 끓여낸 곰국을 쏟아 붓는 격 아닌가. 선뜻 표지를 넘기기 어려웠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호흡 크게 하고 첫 장을 펼친 건 부끄럽게도 지적인 허영심 때문이었다. 제목을 들어본 사람은 많아도 정작 끝까지 완독한 사람은 드문 책. 차라투스트라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몇 걸음 더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첫 문장은 바다에 관한 것이었다. ‘더럽혀진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오염이 되지 않으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p18)’ 가슴이 한껏 넓어지는 듯했다. 문장이 은유하는 의미가 어렴풋이 다가왔다. 신영복 선생님의 바다가 떠올랐다. 강물이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된다는 내용 말이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일단 나에게 익숙한 요리를 골라먹는 것으로 만족하자. 마음을 울린 문장들을 메모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삶과 자신에 대한 고찰이 담긴 문장들이 와 닿았다. 핵심이 되는 한 단어를 말하라면 자기 자신의 주인을 의미하는 위버멘쉬를 꼽고 싶다. 삶의 여정을 동물에 비유한 문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개념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총총히 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처럼, 정신은 자신의 사막으로 총총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쓸쓸하기 짝이 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이곳에서 정신은 사자가 되고, 자유를 쟁취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p36)’ 사막의 주인을 위버멘쉬라 한다면 나의 삶은 어느 즈음 왔을까. 낙타와 사자의 중간정도일까.

 

적절한 비유들에 소름이 돋았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깊은 데서 나와 그 높이에 도달한다.(p212)’라는 문장은 지적인 사유의 깊이를 의미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상상했다. 산맥의 꼭대기에서는 조개 화석이 발견된다. 과거 바다 밑에서 생성된 두터운 퇴적층이 융기하여 만들어진 거대 산맥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단단한 바위를 뚫고 단단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p236)’라는 문장은 물질세계의 속성으로 정신세계를 설명한다. 가시적인 세계가 모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양초가 연소하면 물과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뀌는 화학 변화이다.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자는 언제나 파괴해야 한다.(p83)’라든지, ‘먼저 재가 되지 않고 어떻게 거듭나려고 하는가?(p90)’와 같은 문장들은 화학 변화를 연상케 한다. 원자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원자가 해체되었다 재배열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도 비슷한 맥락의 파괴가 일어나야 거듭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p159)’ 불을 붙이는 도화선처럼 극복을 위해 필요한 건 용기일 터이다. 결국 철학이란 보이는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는 학문이 아닐까.

 

인문고전의 의미를 톺아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식들이 차려진 뷔페식당의 풍경을 상상했다. 거대한 공간에 들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저마다의 그릇에 담긴 서로 다른 음식들의 조합을. 당신과 나는 이토록 다르다. 한 사람마저도 상황에 따라 매번 덜어가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평소의 취향만으로 선택하면 결코 새로운 맛을 알기 어렵다. 원숭이 골처럼 도무지 그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도, 독서도 이와 같다. 인문고전이란 뷔페식당에서의 새하얀 접시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들고 있지만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 공통된 삶의 본질이 고유성을 거슬러 몇 백 년 이어지는 인문고전의 힘이 되어 나오는 것이리라.

 

종교적사회적철학적 배경 지식의 내공이 있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책이다. 니힐리즘을 넘어 세계의 본성, 위버멘쉬나 초인, 진리의 본질에 대한 대략적인 냄새는 맡았지만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그리기에는 아직 무리이다. 다른 이들에게 명확히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일단 엄지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최대한 찢어본 셈이다. 고통스럽지만 아직 유려한 연주까지는 하지 못하는 초보자처럼.

손가락을 한껏 벌려보았다는 시도 자체로 의의를 찾고 싶다. 어쨌든 이 식당의 출구를 빠져나왔으니. 과장된 어투나 상황에서 종종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던내용 중 입맛에 맞는 몇몇 문장들을 단편적으로 소화시켰다. 화려한 중화 요리 식당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만 먹고 온 셈이다.

매년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메뉴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주고 싶다.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년에는 탕수육을, 이후에는 반월침강까지 도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500여 페이지를 지나오면서 결론으로 남는 한 문장은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다.(p209~210)’이다. 삶의 의미를 천천히 정리해본다. 안도감이 드는 것은 이미 지나온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다만 이에 대한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두렵지만 설레는 것은 다가올 삶은 온전히 내 의지의 몫이라는 점이다.

변한 건 아직 없다. 여전히 나의 삶은 혼란으로 가득하고 미래에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갈등의 고비들이 넘어야할 허들로 놓일 것이다. 그래도, 가보려 한다. 깨뜨려야 변화할 수 있으니. 나의 삶을 나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나만의 걸음을 떼어보려 한다. 차라투스트라가 한 말을 따라와 보니 나는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 2019. 8.-9. 2019년 I 독후감 대회, 가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시 몇 분 전. 신데렐라라도 된 듯 벌떡 일어났다. 어쩌다보니 오늘도 최후의 1인이 되었구나. 나의 독서에 방해라도 될까 조심조심 행사대형 의자를 세팅하고 있던 주인장에게 인사를 했다. 서점 문손잡이를 미는 손길이 가뿐했다. 0. 참 적절한 마감시간이다 싶었다. 운동화 한 짝이라도 슬쩍 투척하고 왔어야 했나.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상상에 웃음 한 모금 머금고 집을 향한 발걸음을 옮겼다.

심야책방 독서의 밤 : 편 김에 끝까지’. 이번으로 세 번째 참여이다. 교통수단의 마지막 운행시간을 검색할 필요도 없이 가볍게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동네서점 <삼요소>가 내가 사는 동네에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행운이다.

이제껏 마셔보았던 최고의 커피를 내리던 친구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던 내입으로도 부담감 없이 흘러들던 부드럽고 향긋한 맛을 기억한다. 그녀는 현실적인 경영난에 근근이 버티다 결국 커피숍을 접었다. <삼요소>에 들를 때마다 그 친구가 종종 떠오른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이 장악하는 요즘 동네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터이다. 책만 판매하는 서점이라면 건조하게 푸석거렸을 지도 모르는데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가 물기를 더하는데다 각종 문화공간까지 겸한다는 점이 매력적인 공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삼요소>의 최고 매력은 주인의 운영 철학이다. 올해 참여한 세 번의 심야책방 운영방식은 매번 달랐다. 커다란 틀을 굳건히 유지한 채 운영시간이나 책 선정 방식 등 디테일한 부분에 변화가 있었다. 캐논인 듯 일어나는 변주는 주인장의 깊은 고민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려는 그의 열정에 <삼요소>를 향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지난 223. 심야책방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집에 있던 이강산 소설가의나비의 방을 가져가서 읽었고 김영민의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구매했다. 다음 날 새벽 310분에 마지막 주자로 서점 문을 나섰다.

426. 두 번째 참여한 심야책방에서는 <삼요소>에서 직접 구매한 책을 읽는 방식이라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선택했다. 우수독후감을 제출하면 준다는 상품에 눈이 멀어 노트북까지 가져가서 의욕적으로 글을 썼다. 마감시간을 지정했다는 주인장의 말을 듣고 새벽 310분의 주인공인 나는 살짝 찔렸다. 읽을 책으로 가뿐한 책을 선정했지만 독후감까지 써서 제출하다보니 마지막으로 나오게 되었다.

며칠 후, 내 맘대로 고른 은유의다가오는 말들을 독후감의 상품으로 받고 서점에서 인증 샷을 찍었다. 그 새벽까지 주인장의 귀가를 저지한 인간이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니지만 미안하면서도 어쩌나 기분이 좋던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싶은 내가 유일하게 물욕을 부리는 물건이 책이다. 꼭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는 소비패턴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대상이다. 당장 보지도 않을 책을 구입할 때도 많다. 표지가 좋아서, 제목이 좋아서, 작가가 좋아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삼요소>가 운영하지 않는 날이면 들르는 커피숍 주인이 어느 날 물었다. ,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 봐도 되요? 네에. 매번 여기서 읽으시는 책이 바뀌시던데 그거 대여하시는 건가 직접 구매하시는 건가 궁금해서요. 주문한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을 보았나보다. 직접 사는 거예요. 남들 옷 사듯이 책을 산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웃으며 답했다.

어제로 세 번째 심야책방. 신청 마감일까지 고민하다 신청문자를 보냈다. 요즘 일이 많아 몸이 피곤한데다 1050분에 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마음에 꽂힌 드라마를 포기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로는 어려운 일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또 다른 인력이 필요하달까. 결국 <심야책방>이 이겼다. 너무 늦게까지 운영하니까 다음 날 몸이 피곤해서 일하는데 어렵더라고요. 사건현장에 온 듯 찔렸다. 너무 늦게까지 운영하게 한 범인이 바로 나라서. 이번에는 12시까지로 정했습니다. 주인장의 멘트를 들으며 독서속도가 느린 나는 이번에도 마지막을 장식하겠구나 싶었다.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버전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설렘이다.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려는 주인장의 과감한 용기를 응원한다. 엄청 거대한 미션은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없던 운영방식의 현장에 동참하는 것은 그래서 두근거리는 모험을 떠나는 기분을 건네어 준다. 이번 심야책방은 다섯 가지 면에서 마음에 들었다.

첫째, 휴대폰을 끄고 독서한 점이다. 평소 휴대폰을 테이블에 뒤집어놓고 책을 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간혹 카카오 톡 메시지를 확인할 때가 있다. 어제는 아예 휴대폰을 끄고 진행하는 것이 어려우신 분들은 아쉽게도 참석이 어렵습니다.’ 라는 규칙을 정해주니 깔끔하게 가방에 넣고 시작을 하게 되었다. 휴대폰이 없다면 시간은 어떻게 알지? 안내 문자를 읽으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다음 문장에서 나의 염려는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시계는 화면에 띄워둘 예정입니다.’ 나는 이게 좋다는 거다. 휴대폰을 끄고 책을 읽자는 규칙을 정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 점이다. 새로운 규칙을 적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고민한 그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하얗고 거대한 스크린에 검은 글씨로 흘러가는 숫자들을 보면서 웃었다. 80대 어르신도 알아볼 만한 디지털시계의 숫자 크기로 느껴지는 배려가,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그 어떤 배경 화면도 없이 시계만 띄워져 있는 깔끔함이 주인장을 닮았다 싶었다.

둘째, 책읽기에 앞서 세 문장 자기소개와 책 선정 사유를 돌아가면서 말한 점이다. 전날 안내 문자를 받고 살짝 고민이 되었다. 자기소개라... 독서모임이나 새로운 자리에 참석할 때면 인트로에 자주 언급되는 순서이다. 몇 십 년 전, 여럿이 바라보는 자리에서 나를 소개하며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많이 떨었던 기억들이 스쳤다. 이후 여러 독서모임이나 작은 행사의 참여 횟수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이 그리 떨리지 않게 되는 단단한 심장을 만들어주었다. 이번에는 이전에 하지 않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름, 나이, 직업, 꿈 등 비슷한 패턴의 자기소개 말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뭘까. 새삼스럽게 나라는 존재를 고민하게 된 거다. 직업이나 나이 등 외적인 요소 말고 나란 인간을 뭐라 설명할 것인가. 심야책방에 참여하러 가는 길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책방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르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려워하는 인간인지 알려야겠다 싶었다.

제 이름은 ***입니다. 동네주민이구요, 글을 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말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하아! 근데 어쩌다 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인간이구요. 속으로 말했다.) 제가 선정한 책은 정신과 의사이신 정혜신 님의 당신이 옳다입니다. 제가 정말 옳은지 궁금해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의 소개를 했다. 요즘은 군더더기 없는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듣기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서 나온 말에서 지겨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셋째, SNS에 후기를 남기게 한 점이다. 독후감대신 후기쓰기를 제시한 점이 신선했다. 일석이조를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식이라며 감탄했다. 참여자는 참여 소감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주인장은 ‘#삼요소 #심야책방이라는 태그를 통해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다. 세 분을 골라 추천도서를 선물로 드린다는 말에 혹해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이다. 선물이 취향저격이다. 다른 물건이었다면 별 욕심이 안 났을 텐데 책을 준다는 말은 매번 나의 물욕을 자극한다. 궁금하기도 했다. 주인장이 추천하는 도서는 무엇일까.

넷째, 자정까지로 시간을 지정한 점이다. 그전에 가도 좋고.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게 행사를 진행할 적절한 시간을 고민한 결과물일 거다. ‘저 인간 언제 가나. 시간제한 없다고 했더니 정말 제한 없이 죽치고 있네.’ 라는 생각으로 시계만 보게 되는 상황보다 서로 부담 없이 함께할 무게중심을 찾았다는 느낌이랄까. 이번에도 마지막으로 서점을 나왔다. 3분의 1 조금 넘게 111쪽까지 읽고 일어섰다.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부담이 없어 후련했다.

다섯째, 음료 하나와 소소한 간식이다. 소소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많이 푸짐한 간식 옆에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배고프리라 생각하고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온 인간 맞나. 10시 즈음 되자 나의 위는 무소유가 되었고 살짝 간식 뚜껑을 연 나는 먹음직스러운 김밥을 집어 들었다. 딱 한 개만 먹자던 초심과는 다르게 이것만 더, , 더 하다 보니 어느새 김밥초밥세트 안에는 깨알 몇 개만 남게 되었다. 엄청 큰 김밥 6, 초밥 3, 컵 과일을 아메리카노와 함께 클리어 했다. 시리얼 바는 집에 와서 먹었다. 나는 위대했다.

 

한 명이라도 진행하겠다는 부담 없는 행사는 7명의 참여로 진행되었다. 소소한 분위기에서 포근함이 스며들었다. 다른 내용의 책을 들고 각기 다른 이유로 선정한 이유와 함께 독서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 오롯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좋았다. 퇴근 후 커피숍에 혼자 가서 책을 읽으며 가끔 외롭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독서나 글쓰기에 집중할 때 나는 혼자였다. 나를 독대하는 이는 오로지 작가 뿐이었다. <심야책방>은 그런 면에서 묘한 경험이었다. 서로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는 각자의 세계가 공존하는 공간은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이 되면서 따로 또 같이가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저마다의 이유로 함께하는 시간은 따뜻한 울림을 주는 장면을 건네주었다.

디지털에 쫓겨 오다 잠시 아날로그의 세상을 여행하고 난 기분이 들었다. 0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는 불빛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면서 다시 고요로 빨려들어 간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별 하나. 휴대폰을 꺼내어 별지도 앱을 켜고 하늘을 향했다. 알타이르였구나. 오랜만에 보는 별 하늘이었다. 하늘에 구름이 하얗게 나풀거렸다. 어둠속 하양이 숨죽이는 깊이를 지닌 채 흘러가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 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찌릿찌릿 귓가를 두드렸다. 그래, 가을이 오고 있구나. 살짝 서늘한 바람이 뒷목을 간질이며 스쳐갔다. 머리카락의 작은 흔들림조차 고스란히 느껴지는 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몬드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색맹인 사람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에서는 흑백 사진 속 풍경과 비슷할 거라 한다. 전색맹은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명암만을 감각한다. 이 세상 누군가는 잿빛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색맹 중 가장 흔하다는 적록색맹은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가까이 있을 때 두 색은 모두 회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미술이나 운전 관련 직업 선택에 제한을 받을 뿐이야.” 수업을 하며 나는 말했다. 다만 불편한 거라며 이해한다는 듯 오만한 말을 뱉어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인간의 감정을 무려 48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48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희로애락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 이 책의 주인공 윤재가 지닌 감정 표현 불능증이다. 아몬드를 닮은 뇌 속 편도체가 발달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전두엽 이상으로 생긴다는 사이코패스는 들어봤어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존재는 생소했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의사 요한>의 주인공 요한은 ‘CIPA’라는 병에 걸린 인물이다. ‘CIPA’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각증이다. 뜨거움도 차가움도 그 어떤 고통에도 그의 몸은 반응하지 못한다. 몸에 칼을 대고 수술을 하는 순간조차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주사바늘에도 벌벌 떠는 나는 그런 질병을 품고 사는 이의 마음을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통각을 느끼지 못해 몸을 피하지 않으니 위험하겠다, 그러니 불안하겠다,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즈음 이 책을 읽었다.

아프지 않으면 좋지 않나. 1차적으로 드는 생각이지만 무통각증 환자에게는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생명에 위협을 가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의 그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외부자극이 와도 감각하지 못해 피하지 않으니 위태로운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아픈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구나. 아파야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으니.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지. 별개라 생각해왔다. 공통적인 속성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드라마와 이 책을 통해 몸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병이 든다는 것은 몸이 말을 하는 거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슬픔이나 괴로움과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마음이 말을 하는 것이리라. 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라고. 몸이 느끼는 감각, 마음이 느끼는 감정에는 통증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아프다, 아프다며 몸이 통증으로 말하고, 아프다, 아프다며 마음이 통증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통증이란 언어와 같은 의미인걸까.

 

삶이 힘들 때마다 믿지도 않는 신을 종종 원망했다.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어렵냐며 투덜댔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p81)’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문장이다. 이 책 속에는 다르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뭘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굴 기준으로 잡지?(p65)’ 평범함이 그토록 도달하기 어려운 가치라면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준도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p9)’라는 문장을 음미해보면, 존재하는 많은 대상들이 마찬가지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윤재의 삶에 뛰어든 곤이는 흔히 말하는 평범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이다.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폭력을 행사하고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고 어른들에게 반항한다. 학급에 한두 명씩은 있는, 전형적으로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는 친구이다.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때렸던 곤이를 착한 친구라 여기는 윤재의 모습은 교사로서의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다. 지난 학기에 수업 진행을 방해하며 나를 화나게 했던 몇몇 아이가 떠오른다. 나는 편견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걸까. 단지 다를 뿐인데 틀린 거라 규정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을까. 모든 아이들을 저마다 다른 들꽃으로 여기며 예뻐했던 20대의 나도 있었는데. 부끄럽다. 언제부터 편견의 벽이 이토록 두꺼운 더께가 되었나.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녀들을 그저 바라만보는 윤재의 모습은 아수라장이 된 주변 사람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 장면에서 나는 주인공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더욱 시선이 갔다. 곤이에게 씌워진 누명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대다수 학생들의 반응도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윤재의 덤덤한 내레이션은 소위 방관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도드라지게 묘사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p218)’ 촌철살인의 뾰족함을 품은 문장이다. 이 문장 앞에 오래 머무르며 종종 방관자의 영역으로 들어갔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윤재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크다 말할 수 있을까. 판단하기 어렵다.

이 책을 20대에 읽었다면 참 독특한 병도 있다며 가볍게 넘어갔을 것이다. 50대에 읽은 이 책은 깊숙이 스며들어 나를 흔들었다. 주인공 윤재와 친구 곤이의 세상과 현실에서 내 앞에 마주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상처 입은 아이들의 언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에서야 이런 마음인 것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마음인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런 표정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야 그런 표정을 짓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비교적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사람마다 감각의 역치가 다르므로 고통을 느끼는 정도 역시 다를 것이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오만한 시각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첫 발령을 받고 이듬해인가 상담했던 아이가 생각난다. 엄마가 절 미워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되었대요. 큰딸이었다. 먹먹하게 울먹이던 아이에게 나는 어쭙잖은 조언을 했다. 무늬만 현란한 교과서적인 상담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20대의 나는 꽤 멋진 말을 해주었다 자만하며 우쭐했다. 얼마나 무모한 오만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지금이라면 조금 더 조심스러운 공감으로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었을 텐데.

적록색맹을 단지 불편하리라 생각했던 마음도 오만이었다. 1차적인 현상만을 바라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그로 인해 달라질 세상의 풍경과의 싸움, 찬란한 256색상환을 바라보는 것을 평범하다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과의 싸움, 쓰러질 것 같은 자신을 부여잡고 살아내야 하는 스스로와의 싸움에 던져진 마음을 배재한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감히 상상할 수 없어 이해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제는 그가 틀린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라며 내가 사는 세상을 향한 것과 동등한 시선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19-08-2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생각했던건 사람은 모두 다른데 정상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였어요. 직장에서도 업무의 로직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과, 직원간에 원활한 소통을 더 높게 보는 사람이 서로를 이해못하지만 사실 둘다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정답의 기준으로 살아가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제 생각과 판단을 무조건 옳다고 여기려 하지 않게되었어요. 제모습도 누군가에겐 평범하지 않을테니까요^^;

나비종 2019-08-21 18:56   좋아요 1 | URL
‘다르다‘란 말이 자주 나오는 만큼 저 역시 다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후감을 쓰고 개학이 되어 교실에 들어가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전형적인 곤이의 모습과 놀랍도록 싱크로율 100%인 아이들이 각 반에 있거든요. 그 아이들로부터 받아왔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달까요.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을 함부로 단정짓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행동인지 깨달아지더라구요. 제 자신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라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점을 상대의 매력으로 여기기로 했어요. 그런 면에서 저도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을 터이니 물감님처럼 매력적인 인간으로 등극하렵니다.^^;
 
내게 무해한 사람 (리커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강아지풀을 천천히 만져본 적이 있다.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접사를 찍을 무렵이었다. 촘촘히 그어진 연두 빛 결을 반대 방향으로 훑어 내렸을 때 손끝으로 까슬까슬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냥 부드러우리라는 예상과 달랐다. 묘하고도 생경한 감촉은 뜬금없는 순간에 종종 생각이 났다. 마음이 따끔따끔해지면서 심장에 눈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힐 때면 세상을 향해 희미한 웃음을 짓던 나는 강아지풀을 떠올렸다. 부드러움과 까슬까슬함을 품은 채 흔들리는 가뿐함. 그 푸르스름한 먹먹함에 나를 겹쳤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아치디이다. 대조되는 상황의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마주쳐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조각들을 덤덤히 꺼내어놓는다. 이야기에 몰입할수록 책에서 튀어나온 감정들이 가까이 다가와 나를 건드렸다. 따끔거렸다. 미세한 칼날에 베어 아린 듯 중간 중간 걸음을 멈추었다. 소설 속 상황 때문인지 그 속에서 발견한 내 모습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주인공 하민에게서 학창 시절의 나를 본다.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았고 가지 말라는 길은 가지 않았던 나는 대학 다니면서 주말과 휴일이 가장 싫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이틀 동안 과외를 두세 탕씩 뛰면서 학비를 충당하고 집에 돈을 보탰다. 의욕이 없는 대상을 가르치는 일은 삐거덕거리는 나사를 돌리는 행위 같다. 아무리 힘을 주고 돌려봐도 헛돌면서 손끝만 아릿하다. 채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번 지쳤다. 제대로 이해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그들의 나른함이 지겨웠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부유함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면서 치열한 4년을 보냈다.

 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라는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hard’는 보통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말 아닌가. ‘hardworking’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p265)’ 남주인공 랄도가 하민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 부분이 눈에 밟혀 마음에 고인 채 맴돌았다.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일하는 건 아니니까. 하루하루를 일하듯 살아오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매캐한 공기가 가슴으로 훅 끼얹어졌다.

 

하민과 대조되는 인물인 랄도에게 주변인들은 질문을 던진다. 너 왜 여기 있어?(p240, 259, 260, 261, 289, 290)’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이다. 불교에서의 화두처럼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기라는 낱말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 내지는 삶의 과정에서 이 장소에 네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지?’라는 의미가 짙다.

대마초를 하면서 피폐한 삶을 살았던 랄도는 집밖의 삶을 간절히 원했지만 한 달 가까이 방에서 나가지 않기도 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는 뻔뻔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는 편이 쉬웠다.(p261)’는 사람. 너 왜 여기 있어?’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나갈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고 싶었는데도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그랬으니까(p261)’ 이였다.

첫 번째 과외 집에서 두 번째 과외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종종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 있지? 있고 싶지 않은 공간에 있을 수밖에 없던 어쩔 수 없음이 생각났다. 3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선명한 스냅 사진들이 부레처럼 떠올랐다. 불현듯 코끝이 찡해졌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직장에 들어갔다. 타고난 완벽주의로 인해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는 편이었다. 못 다한 일은 집으로 싸들고 와서 했다. 1순위는 직장 일이었다. 로봇처럼 일하는 간호사였던 하민의 모습에서 또 나를 보았다. 아치디에 와서 그녀가 기르던 여덟 마리의 말들 중 게으른 녀석과 나이가 제일 많은 녀석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일종의 부러움이리라. 게으른 사람이고자해도 천성적으로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 부류다. 부지런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계속 채찍질 당하는 말처럼 마음 불편하게 달리는 것이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마냥 달리기만 하는, 그래서 너 왜 여기 있어?’라는 물음조차 해보지 못하는.

스스로를 멈출 수 없었다. 멈춰보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에 매달려 13여년을 관성으로 달려왔다. 조금씩 속도가 느려진 건 10년 정도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4년 전 즈음이다. 퇴근 후 나는 커피숍을 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시를 지었다. 직장일과 집안일을 숙제처럼 마치고 커피숍으로 향하는 길은 고단한 기쁨이었다. 퇴근하기 위해 출근을 했다. 글을 쓰고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비로소 나는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배려하는 아이, 양보하는 아이, 욕심 없는 아이였다. 월급을 집안에 보태면서 언니의 결혼자금에도 큰 힘이 되었다. 내가 결혼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아버지께서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신 이후로 수입에 비해 다소 많은 돈을 부쳐드렸다. 너도 살아야지 친정에 이렇게 갖다 주면 어떻게 하니. 친정어머니께서는 매번 미안해하셨다. 번듯한 호강은 못시켜드리더라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소소한 일상을 누리시는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에 대해서 이다음에 잘해드릴 기회는 없을 테니까.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나는 착한 아이였다. 별명처럼 따라다니던 이 말에 착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선이 점점 글 쓰는 삶을 향한다. 글을 쓰는 동안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자유롭다. 앞으로의 삶은 글을 쓰며 글로 채우고 싶다. 연금이 나올 때까지만 직장을 다닐까. 올해로 28년째면 많이 한 거지. 4년 더 일하다 과연 그만둘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과속방지턱처럼 매번 걸리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께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돈이라도 벌어야 용돈을 마음 편하게 드릴 수 있을 테니까.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p282)’  이 문장이 나를 흔들었다.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사실은 나의 직업이 본성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아이가 지닌 막무가내의 잔인함에 거부감을 자주 느꼈던 내가, 의욕이 없는 대상을 가르치는 일을 그토록 지겨워했던 내가 중학교 과학교사다. 예전부터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현상과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썩 기발한 방법으로 비유를 하곤 했다. 그래서 잘 가르치는 것이라 착각을 해왔던 거다. 돌이켜보면 단지 표현력이 좋았을 뿐인데. 문과와 이과 성향이 반반이라면 좋아하는 분야와 나의 성향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교사의 첫 번째 조건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말 잘 듣고 수업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성실한 아이가 예뻐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든 마찬가지일터이다. 결핍된 아픈 손가락을 보듬는 마음은 가르치는 기술보다 우선이어야 한다. 나에게 과연 그런 마음이 있을까. 요즘은 자신이 없다. 한때 교실에서 제일 행복했던 내가 며칠 전에는 아이들을 만나러가는 복도를 지나면서 가뭄에 말라비틀어지는 나뭇가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코 던져진 몇 마디 말로 쉽게 상처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과 마주보는 시간들이 무거워지는 만큼 즐거움으로 채워지는 가뿐한 순간들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밀려드는 의기소침은 현재진행형이다. 28년 동안 켜켜이 쌓인 더께로 인해 낡아버린 걸까. 처음부터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던 걸까.

 

너 왜 여기 있어? 며칠 동안 마음을 붙들었던 문장이 지금까지 맴돈다. 나는 후각과 같은 삶을 살아왔던 걸까. 자극이 계속되면 순응하여 더 이상 그 냄새를 못 맡는 것처럼 그저 습관처럼 만들어진 결에 맞추어 살아왔던 건 아닐까. <아치디에서>는 나에게 다가온 다른 종류의 냄새였다. 자극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움찔했다. 작가의 문장들이 거울인 듯 관성의 결을 거슬러 나를 향해 걸어 들어왔다. 넌 네 삶을 살 거야.(p298)’ 스스로에게 이 말을 던져본다.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을까. 강아지풀처럼 얼핏 부드러워 보이는 문장들이 마음의 작은 솜털들을 건드린다. 나는 내 삶의 결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까슬까슬한 감각에 심장이 간질거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