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대지 품에 잠든 씨앗 머물고

피어나지 않은 꽃 가볍게 흔들릴 때

책장 속 아름드리나무 열을 지어 기다려

 

발걸음 머무는 곳 손가락 춤을 추고

작가와 독자의 삶 조용히 마주할 때

책장 속 자그마한 숲 두 영혼을 머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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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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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대신 먹는 알약이 있었으면 좋겠어. 한 알만 먹으면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책속에 언급된 내용을 보며 웃었다. !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구나.

나만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지은 적이 있던가. ‘한 끼의 밥이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스스로를 위해 정성 들여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p9)’이란 문구를 보며 곰곰 생각한다. ‘오예~ 부양가족 없는 보기 드문 기회일세! 내일 아침밥은 안 해도 되겠군! 크크!’ 좋아라했는데 이 문장이 나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갑자기 혼자가 된 그날 밤, 다음 날 아침을 고민하게 되었다.

밥을 먹는 것은 과정이었다. 오롯이 밥이 목적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 밥 먹기는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어쩔 수 없이 플러그를 꽂는 과정이었으니까. 책제목에서부터 거부감을 느낀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밥 하는 시간이라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서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한동안 내팽개치다 겨우 첫 장을 펼쳤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집과 몸과 밥에 대한 작가의 경험담이다. ‘평생 밥을 먹었지만 이 없었고, 평생 몸을 지니고 살았지만 이 없었고, 평생 집에서 살았지만 이 없었다.(p313)’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공감을 일으키며 영혼을 울린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그게 나의 이야기로 들어앉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처음에는 삐딱한 시선으로 출발한 책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집에 관해 서술된 1장과 2장의 앞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문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잔가지가 많았다. 비유와 묘사로 둘러싸인 뛰어난 표현력은 인정할만했지만 내 취향은 역시 헤밍웨이였다.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이질감은 2장의 중반을 지나 3장에 들어서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몸을 돌보고 읽는 시간에 관한 3장의 문장들은 자연스럽게 술술 쏟아졌다. 실컷 운동하고 난 몸에서 땀과 더운 기운이 절로 훅훅 끼얹어지는 것처럼. 체험한 그대로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이후의 내용들은 <저자의 말>에 이르기까지 내내 좋았다. 참 괜찮은 책을 읽었다는 개운한 느낌으로 마무리를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1장과 2장을 읽어보았다. 전체적인 맥락을 알고 접하니 거부감이 사라졌다.

 

친구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온통 헝클어지고 겹겹이 쌓여있는 물건들. 내내 우울해하던 친구의 마음속에 들어온 듯 씁쓸했다. 그녀를 담고 있는 공간은 그녀를 닮아있었다. ‘집을 청소하는 일이 나를 맑게 하는 일이고, 집의 고요가 나의 고요이며, 집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 나를 아름답게 하는 일임을 경험으로 체득한다.(p19)’ 집을 정리하거나 청소를 하는 날이면 속이 후련해진다. 이 문장을 보니 그때의 공간이 떠오른다.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집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생각한다. ‘시간은 금이다.’ 란 말도 있지만, 집을 소유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생각한다면 공간은 돈이다.’ 란 말도 할 수 있겠다. 세상 속에서 한 두 겹씩 썼던 가면을 훌훌 벗고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집 같은 사람 한 명쯤 내 가까이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 내려놓고 널브러져 있어도 존재 자체로 나를 따뜻하게 지켜볼 수 있는 존재. 상상만 해도 뭉클한 느낌이 스민다.

스스로의 장소를 마련하는 일(p72)’이라는 문장에 꽂힌다. 전후맥락 무시하고 자체의 의미로 다가오는 문장이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생각난다. 하루 가운데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나만의 장소를 마련하는 일이 시간을 마련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함을 깨닫는다.

 

늘 특별한 순간을 꿈꾸어왔던 것 같다. 드라마틱한 사람과의 만남을 꿈꾸고 삶의 어느 순간에 굉장한 사건이 찾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오십여 년을 돌아보면 그런 순간은 없었다. 간혹 특별한 의미를 지녔던 대상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 시작은 평범했다. 평범함이 점점 특별하게 변화하는 거지 처음부터 반짝이는 특별함은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평범한 나날들은 앞으로도 죽 이어지리라. ‘밋밋한 행위에서 빛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빛이 어렵다. 삶의 90퍼센트는 그런 밋밋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p118)’

악기는 오래될수록 깊어지는 음색을 지닌다. 악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점점 깊어지는 삶의 울림으로 살아가고 싶다. ‘스스로 깊어지는 악기 같은 몸이 되고 싶다.(p121)’는 작가처럼. ‘몸으로 살아낸 만큼 시간은 내 안에 쌓인다.(p267)’라는 문장을 보며 쌓이는 시간을 상상한다.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시간 말고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을 간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이란 빛나는 일상을 의미하겠지. 백년도 더 된 집을 가꾸어 정성껏 밥을 하며 살아가게 된 사람의 일상을 엿보다보니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결국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잡곡밥을 해서 먹었다. 책을 읽고 나니 자꾸만 정성껏 밥을 하고 싶어졌다. 밥을 오래 씹고도 싶어졌다. 요즘은 밥과 반찬 하나하나를 정성껏 음미하며 먹는다. ‘쌀 알갱이가 톡 터지며 씹힐 때 입 안 가득 빛이 도는 듯 환한 느낌(p10)’을 느끼고 싶어서 정성껏 씹어 먹는다. 먹는 데 정성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내 몸이 소중해지는 듯 울컥해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다음에 뭐를 할까 막연한 생각이 찾아올 때가 잦아졌다. 눈도 침침해지고 점점 기력이 쇠해질 텐데 언제까지 글을 쓰며 살 수 있을까 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다. ‘몸을 돌보는 과정 자체가 삶의 오롯한 의미가 될 때 삶은 깊은 차원에서 존재에 가까워지겠구나.(p113)’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저 마음 편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를 지닌다면 얼마나 든든하면서 따뜻한 삶이 될까.

밀가루 반죽이 된 마음을 끌어안은 기분이다. ‘나는 비로소 일상을 즐기고 일상을 통해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가볍고 유쾌한 몸으로 회복되어가고 있다. 내가 전환한 삶의 핵심에 이 있다.(p116)’ 푸석거리는 가루 같던 마음이 질척이며 겉도는 시간을 지나 몰랑한 느낌의 부드러운 반죽이 된 듯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워졌다, 익반죽의 덩어리처럼. 가벼워졌다, 그 반죽에서 만들어진 크루아상처럼. 오븐에서 갓 구워 나온 빵을 한 입 베어 문 듯 유쾌해졌다.

 

 

p226, 마지막 줄 : 마침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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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소리의 결

바람은 공기의 결

햇살은 태양의 결

파도는 바다의 결

결 따라 출렁출렁

스르르르 결 따라

 

그대를 따라 출렁출렁

어제도 오늘 하루도

나도 모르게 스르르르

어느새 그대를 좇아

그대는 내 마음의 결

두근두근 내 심장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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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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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밥을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밥알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날 때까지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따라 생각 역시 느리게 흐른다. <노인과 바다>는 이런 날 읽기에 적당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일주일가량을 보냈다. 125쪽의 분량을 읽기에는 다소 긴 시간이다. 난해한 내용도 아닌데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묵직한 몰입감이 나의 손을 사로잡았다. 바닷물이 조금씩 내안에 스며들어 마음이 점점 확장되는 느낌이다.

늙은 어부가 돛단배에서 홀로 4일 밤낮을 청새치와 싸운다는 줄거리.’ 뒤표지에 실린 문구이다. 이보다 더 심플할 수 없는 내용이다. 화려한 표현도, 감탄할만한 은유도, 반할만한 캐릭터도, 역동적인 반전 드라마도 없건만. 무엇이 나를 매료시킨 걸까. 매력적으로 다가온 요소를 짚어보았다.

 

첫째, 주인공 설정이다. <소년와 바다>였다면 감동이 덜 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p10)’있는 노인, 삶의 마침표가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다가올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짧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음에 대한 답이 책안에 있다. 바다로 나아가 거대한 청새치를 맞닥뜨렸을 때 이를 마주하는 노인의 태도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마음이 늙으면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관점으로 판단하면 주인공 산티아고는 아직 노인이 아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나 내가 100세까지 살 것 같지는 않다. 아득하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도 간혹 고개를 든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걸어갈 날들을 상상해본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글을 쓰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눈도 침침해지고 가파른 길을 미끄러지듯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들 몸을 지니게 될 나는. 줄거리만 파악하며 읽었던 학창시절과는 느낌이 달랐다. 소설의 내용이 바짝 다가왔다. 도전하는 노인의 모습은 50대에 들어서면서 마음이 복잡해진 나에게 계속 도전할 용기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위안을 안겨주었다.

 

둘째, 주 무대인 돛단배이다. 자그마한 배안에서 두 다리를 딛고 선 노인은 철저히 혼자이다. 말벗이라고는 그 자신뿐이다. 청새치와 싸우고 속속들이 다가오는 상어들과 싸우는 노인. 그의 모습과 어쩐지 닮아있는 단출한 배를 보며 저마다 홀로 끌고 가는 삶의 모습을 연상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차지할 수 있는 공간과 물건은 무엇인가. 몸뚱어리 하나 드러누울 수 있는 공간과 수의 한 벌. 소유한 돈과는 상관없이 한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의 크기는 보이는 존재의 크기 만큼이며 입을 수 있는 옷은 단 한 벌 뿐인 거다.

노인이 탄 배가 화려한 유람선이나 우람한 해적선이었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바다에서 마주하는 날것 그대로의 대상과는 인공의 껍데기 다 훌훌 털어버리고 말간 모습으로 대면하는 것이 어울린다. 청새치나 상어와 싸우는 노인을 지켜보며 민낯으로 역경과 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한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고 어떤 물건에도 기댈 수 없는 공간에서 오직 본성으로 마주하는.

 

셋째, 공간적 배경인 바다이다. 바다는 삶을 연상시킨다. ‘라 마르(la mar)’라 부를 정도로 다정한가하면 엘 마르(el mar)’라 부를 정도로 치열한 공간이다. 수많은 생명을 품은 채 잔잔하다가도 어느 순간 야누스의 얼굴로 돌변하는 무대이다. 인간이 헤쳐 나가야 할 삶의 속성과 닮아있다.

흔히 육지보다 바다에 삶을 중첩시키는 이유는 공간감으로 입체적이어서 아닐까. 바다는 눈에 보이는 물로 채워져 현실감을 더욱 또렷이 전해주니.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하는 우리는 경계에 발만 디딘 채 2차원에 존재한다.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바다는 이런 관점에서 3차원이다. 삶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바다가 삶의 무대를 비유하기에 적당해 보인다.

거리를 걷다 뺨에 와 닿는 공기의 감촉이 느껴질 때면 입체적인 육지를 상상한다. 하늘까지 뻗어있는 공간이 눈에 보이는 덩어리라면 어떨까. 가령 공기를 구성하는 기체에 색깔이 있다면? 산소는 파란색, 질소는 초록색, 이산화 탄소는 붉은색, 수증기는 하얀색, 방귀는 노란색, 이런 식으로 말이다. 공기를 가르며 걸어가는 우리는 유영하는 물고기가 되고, 길바닥에 소복한 은행잎은 노란 조개껍질처럼 구르는 풍경. 이런 식으로 가시적인 질감이 느껴진다면 삶을 헤쳐 나간다는 느낌이 실감나지 않을까.

 

넷째, 상어와 대결할 때 사용된 도구들과 이를 대하는 노인의 생각이다. 칼을 갈 숫돌을 가져왔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은 없는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걸로 뭘 할 수 있을지 그거나 생각하도록 해.(p115)’라며 독백을 한다. 마지막에 남게 된 노와 몽둥이와 키 손잡이로 어떻게 무시무시한 상어들과 대적할까 싶지만 그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도구가 하나 둘씩 떠나가는 장면들은 은근히 긴장감을 안겨준다. 암담한 상황이 올 때마다 최선을 다하여 이를 극복하는 장면은 인간 존재의 의지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온다. 위기의 상황을 만났을 때 떠올릴만한 지혜로운 태도로 소중히 품어본다.

 

다섯째, 군데군데 경구처럼 툭툭 튀어나오는 문장들이다. 좌절할만한 일이 닥쳤을 때 종종 떠오르는 질문은 이다. 왜 이런 일이? 왜 나에게만? 헤밍웨이는 를 던져버리고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으라고 말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소용없는 질문을 하지 말고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갈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노인의 독백은 따로 놓고 음미해도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보물찾기의 쪽지라도 되는 양 비슷한 일상과 만나졌을 때 빛을 발한다. 이를 테면,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p33-34)’,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p57)’,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p64)’, ‘이대로 항해나 계속하게. 그러다 일이 닥치면 그때 맞서 싸워.(p108)’라며 행동 지침으로 삼을 만한 문장을 건네어준다. 몇 번이나 곱씹다보면 마음속으로 힘이 고인다.

 

여섯째, 과장하거나 미화되지 않은 과정들이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짜잔 당당하게 700킬로그램의 청새치를 득템하는 결말이었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평범했을까. 청새치를 잡는 게 끝이 아니었던 데서 매력이 확 다가온다. 고생하며 잡은 물고기를 상어에게 물어뜯기는 상황을 마주한 노인은 치열하게 대응을 한다. 작가가 이 부분에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만신창이가 되면서, 눈앞에서 상실을 마주하면서, 기도문을 언급하면서, 그 애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이나 아쉬워하면서,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는 노인의 모습에는 삶에서 만나게 되는 상황들과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들이 담겨있다. 나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노인을 따라가며 나만의 답을 찾아보았다. 나라는 인간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일곱째, 승리와 패배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물음이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p108)’ 스스로 말했듯이 뼈다귀만 남은 물고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 노인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청새치를 잡은 순간의 성취를 고스란히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침대는 바로 네가 패배했을 때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이지(p126)’ 편하고자 하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으면 될 터이다. 작가는 시도하지 않음을 패배라 말한다. ‘그런데 널 패배시킨 것은 누구지? (중략) 아무도 아냐. (중략)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p126)’ 침대에서 떠나 바다로 뛰어 들어가는 순간, 노인은 진정한 승리자로 우뚝 선다. 삶에서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돌아와서 사자 꿈을 꾸는 듯한 노인의 모습으로 작가는 삶의 진정한 성취를 매듭짓는다.

 

물고기의 아가미와 닮은 책이었다. 공간은 별로 차지하지 않아도 켜켜이 접힌 주름을 펼칠수록 삶의 즙이 배어나와 마음과 접촉하는 면이 넓어졌다. 주름 하나하나를 펼치며 읽을수록 다가오는 내용이 많았다. 책을 읽으며 삶과 도전과 의지와 패배와 역경과 상실과 존재와 공존과 꿈과 위안을 생각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를 극복해나가는 노인 앞에서 죽음이나 늙음이란 단어는 의미를 잃었다. 오롯이 날 것 그대로의 삶이 싱싱하게 펄떡이며 뜨거웠다. 노인의 삶에 나의 삶이 더해져서 두 권의 책을 읽은 듯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동안 코끝이 찡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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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11-2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지내셨나요, 나비종님? 어쩌다가 벌써 11월도 다 갔네요ㅎㅎ
이번 책은 금방 읽었는데 리뷰를 완성하기까지 열흘은 더 걸린거 같네요. 분량이 많은 책들은 그만큼 할말도 많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너무 짧아서 쓸 내용을 엄청 쥐어짜야 했어요... 하하하.
이미 한참전에 올리신 리뷰를 살짝 눈팅했는데 진짜 자괴감이 들더군요. 그 짧은 내용으로 어떻게 이런 풍성한 글을 쓰시는지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전 사실 이번 작품은 내용보다는 작가의 글 스타일에 더 집중했던거 같아요. 워낙 간단 명료한 문체로 유명한 분이라서 오래전부터 궁금했거든요. 저또한 그쪽 방향의 글을 추구하기도 해서요. 근데 말년에 쓴 작품이라 그런지 느낌이 좀 다르더군요. 이건 아직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아 그리고 저는 작가의 연보를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말로가 영 좋지는 않았군요. 이건 좀 충격이네요, 우울증이라니... 어쩐지 책속의 노인도, 글의 분위기도 그것과 비슷했던게 이해가 되네요.

이번 리뷰는 유독 제가 캐치하지 못한 것들을 잘 집어주셨네요. 공수래공수거 인생에게 허락된 공간은 결국 땅 한평이 전부인 것도, 인생의 무대는 헤엄치지 않으면 빠져죽는 바다라는 것도 신선한 관점이었어요. 그중에 저는 다섯번째 요소가 가장 눈에 들어왔는데요. 왜?가 아닌 어떻게?를 생각하고 대처하는 노인의 모습이요. 저는 단순히 불평하지 않고 자족하며 묵묵히 견딘다는 것까지만 보였는데, 나비종님 눈에는 더 깊숙한 곳까지 보였었군요!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p33-34)’,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p57)’,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p64)’, ‘이대로 항해나 계속하게. 그러다 일이 닥치면 그때 맞서 싸워.(p108)’> 이런 빛나는 문장들이 많았는데, 노인의 캐릭터도 작품의 메시지도 간파하지 못한 제가 한심하네요 ㅋㅋㅋㅋㅋ

연륜이 있는 사람이 쓴 글은 확실히 다르게 읽혀져요. 그것이 책이 되었든, 리뷰가 되었든 말이에요. 그래서 이 책은 젊었을 때 읽은 것과 나이들어서 읽는 것의 갭이 클 것 같아요. 작가가 이 책을 마지막으로 쓰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을 노인으로 정한건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죽음과 늙음은 의미를 잃어버린 작품이었습니다. 마음이 늙지 않은 청춘을 오래오래 유지하는 나물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이 모임도 6번이나 진행되었네요~~ 다음 한달은 쉬시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는걸로 해요 ㅎㅎ 익월중에 책선정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11월도 수고많으셨습니다^^

나비종 2019-11-26 23:2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다음 주면 12월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나의 독서 기록‘을 보았어요. 서양고전문학 글씨가 중앙에 떠억 하니 가장 크더군요.ㅎㅎ 물감님 생각이 났어요. 물감님 덕분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고전문학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발가락이라도 담가본 한 해였습니다~^^

저는 문장을 메모하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는 스타일인데 이번 책은 리뷰를 어떻게 쓸지 마지막 부분까지 감이 잘 오지 않더군요. 대개는 한 권의 책을 다 읽어갈 때쯤 되면 리뷰의 방향이 대략적으로 그려지거든요. 그래서 좀 난감한 책이었어요.
오히려 전 물감님의 문체를 매번 감탄하면서 읽거든요. 가독성과 스피드함, 유머러스한 편안함이 제가 꼽은 물감님 글의 장점이예요.^^ 간단명료한 글을 추구하신가는 점은 저와 공통적이구요.

우울증은 <노인과 바다>이후 두 번의 비행기 추락 사고를 계기로 확산된 듯 보여서 작품에서 우울의 흔적은 그다지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누구를 위하여~>이후 10년만에 발료한 작품이 혹평을 받고, 그후에 <노인~>이 발표되었으니 이미 조금씩 찾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물감님이 캐치하지 못하셨거나 깊숙한 곳을 보지못하셨다기 보다는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저역시 물감님의 리뷰를 보면서 아, 이런 생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하며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보게 되거든요. 독서모임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는 바람직한 예인거죠.ㅋㅋ

요즘 도전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해서 그런 문장들만 눈에 띄었나봐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귀걸이를 사면 길거리에 온통 귀걸이 인간들만 보이고, 신발 사면 온통 신발만 눈에 확 들어오는 그런 느낌, 아시죠?^^

마음이 늙지 않는 나물모임, 우리 오래오래 유지해봐요~^^
 

당신과 함께 일 때

매번 나는 아리다

따스했던 시간은

달아나서 희미해졌을까

오지도 않은 시간이

점점 아득해진다

 

어색해진 현재는

물컹한 손 내밀어 

시간의 자취를 좇아

위태위태 흔들리는데

 

언제부터였을까

벌어져버린 시작이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지금보다 덜 아팠을까

 

당신과 함께 일 때

매번 나는 아린데

함께 라는 두 글자

차마 떨치지 못해

매번 아린 공간을 향해

잊은 척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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