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좋은 일 -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정혜윤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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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좋다 읽으면서 느낌이 전해지는 책이 있는가하면 읽고 나서 돌아보면 마음에 파스를 붙인 듯 후끈거리는 책이 있다. 정혜윤의 책은 후자이다. , 자아, 사랑과 우정 등을 주제로 다른 책들을 통해 다양한 작가들이 했던 말들을 정혜윤의 생각과 함께 엮어놓은 책이다. 각각의 짧은 글들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로 귀결된다. 사랑에 대해서 A는 이런 말을 했고, B는 이런 말을, C는 이런 말도 했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식이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했던 말들을 나열해놓은 점이 처음에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책을 덮고 나서도 개운한 느낌은 없었다.

변화는 그 후에 일어났다. 메모해놓은 문장들을 정독해보니 문장들이 꿈틀거리며 일어나 마음을 툭툭 건드렸다. 마음 언저리를 맴돌아 자꾸 걸리는 말들이 버블 넷이 되었다. 흑고래들이 청어 무리를 사냥할 때 만들어낸다는 원기둥 모양의 거품 벽, ‘버블 넷말이다. 내게 버블 넷이 된 것들과 뜻밖의 좋은 일이 되어준 일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끔 내가 스스로 기특한 게 고독을 글을 승화해낸 점이다. 외롭거나 마음이 아플 때면 나의 머릿속에는 종종 문장들이 떠다녔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버블 넷을 뚫고 나온 청어 새끼라도 된 듯 글을 쓰는 순간 외로움은 물거품처럼 툭 터지곤 했다. 나의 글은 나의 고통을 나누어 들어주었다. ‘이 우주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따뜻함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따뜻함뿐이다.(p116)’ 내가 만들어낸 따뜻함은 나의 글이었다. 글로 인해 마음의 고통이 조금은 녹아내렸으니까. ‘우리는 풍요로움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과 부족함으로 글을 쓴다.(p250)’ 요즘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나를 가장 외롭게 하는 사람이지만 그로 인해 나의 글이 더욱 깊어진 것 같아서이다. , 돌려 까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팩트일 뿐이다. 그는 단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다. 맞지 않음이 좋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이 미묘한 차이점을 구분할 만큼 이제는 성숙해졌다. 책과 글의 힘 덕분이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무슨 책이든 읽을 때마다 스스로 던지게 되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미래가 알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예언이 아니라 지향점이다.(p325)’ 곰곰 생각해보면 내 글의 소재는 어머니가 많다. 당신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릿하다. 생기는 마음을 길어 올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그 안으로 들어가 흠뻑 젖어 쓸 수 있는 소재이다. 함께 살아온 27년을 생각해도, 함께 살아오지 못한 24년을 생각해보아도 매번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당신의 모습을 길어 올린다. ‘나는 단 하루, 딱 한 단어를 정복해본 일이 있다. ‘일몰이다.(p314)’ ‘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게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이런 의미인 듯하다. 가족, 이팝꽃, 선물, 향기, 아침, 겨울에 대한 글들도 모두 어머니로부터 출발했으니 나의 글에 있어 어머니란 우주와 같은 맥락이다. 어머니, 세 글자 안에 이토록 많은 요소들을 품고 있으니.

 

다들 그렇게 살아. 아마 몇 십 년 전의 당신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거다. 며칠 후의 한 끼도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에 네 명의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려는 당신에게 그냥 실업계 고등학교로 보내라고 종용했을 거다. 그 형편에 무슨 대학이냐고. 얼른 여상 졸업시켜서 돈 벌게 하라고. ‘다들은 누구인가? (중략) 왜 자기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보편성을 끌어오는가?(p126)’ 작가의 문장을 보고 나를 돌아본다. 주변 사람들을 어쭙잖게 위로한답시고 다들이란 말을 남발한 적은 없던가.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개입하지 말아야 함을 생각한다. 당신은 결국 자식들 모두를 대학에 보내셨다. 경제적인 상황의 버블 넷을 뚫고 나오신 당신. 과감한 결단이었으리라. 그로 인해 지금, 커피숍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있다.

뭔가를 하고 있다면 다른 것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p184)’ 당신이 안간힘을 써서 해주신 일. 새삼 당신이 하지 못한 다른 것을 상상한다.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40대의 나이에 놓아버렸을 것들을 생각한다. 다시 가슴이 아릿해진다.

 

어제 친정집 주방. 배달시킨 생선가스를 배부르게 먹고 나서 참외 하나를 깎았다. 지난번에 청주 갔을 때 외삼촌께서 사주신 단팥빵을 꺼내셔서 얼마나 속이 알찬 지 열변을 토하시는 아버지. 싸줄 테니까 너도 한 번 먹어봐라. 어머니가 내리신 커피 잔을 쟁반에 놓으신다. 이 빨간 게 네 꺼야. 커피 잔을 살펴보니 두 개는 땡땡이 무늬가 있고, 하나만 민무늬다. ~ 커플이야?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마셔. 환하게 웃는 어머니. 작은 행동으로 우린 서로 사랑해 라는 말을 하신다. 행동만큼 확실한 말은 없다는 듯이. ‘언제나 말에 깊이를 주는 것은 행동이다.(p299)’

쟁반에 놓인 참외 접시, 커피 세 잔. 이게 행복이구나 싶은 느낌이 바닷가 파도처럼 심장 언저리에 찰랑찰랑 밀려왔다. ‘우리에게 한 가지 좋은 일이 생기기 위해서 그전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걸까?(p27)’ 행복의 가치는 그전에 일어났던 많은 고통과 버블 넷을 넘어선 용기만큼 저울 반대편에 놓이면서 매겨지는 것일까. 어려웠던 시절의 무게가 심장을 훑고 지나는 순간 마음이 부력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p88, 밑에서 6째줄 : 메피스토텔레스 ~펠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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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많은 햇살을 함께 바라본 기억이 없다. 친정아버지의 휠체어를 끌고 어머니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나왔다. 탁 트인 시야에 바삭한 잔디와 싱싱한 브로콜리들이 들어왔다. 지금껏 가져보지 못한 부모님과의 시간들이 연둣빛 조각에 담겨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얼핏 불어오는 바람에 5월이 흘러들어왔다. 당신들과 보낸 병원에서의 시간들이 도미노처럼 좌르르 넘어지며 떠올랐다. 병원 냄새가 향기로웠다. 나와 당신들의 5월이 겹쳐진 시간. 괜히 눈물이 나왔다.

 

작년 5월 초, 여든이 되신 친정아버지께서 왼쪽 무릎 수술을 하셨다.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뛰시다가 넘어지셨다고 했다. 당황하신 당신들은 119를 부를 생각도 못 하셨다. 가방 속에 있던 화장지로 철철 흐르는 피를 닦고 또 닦아내다 가까스로 몸을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하루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며칠을 지내신 후 뒤늦게 자식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무릎뼈가 몇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셨다고 했다. 어쩐지 도무지 걸을 수가 없더라.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셨다.

 

먹고 살기 바빴다. 10년 동안 계속되었던 아버지의 실업으로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찾아서 하셨던 어머니. 경제적으로 늘 어려웠기에 제대로 된 5월을 누린 기억은 없다. 그러다 나는 결혼을 했다. 직장 일에, 육아에 끌려가던 나는 당신들을 한 달에 한 번 찾아뵙기도 힘들었다. 둘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만큼 커서 시간적인 여유가 다소 생겼어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죄송한 마음을 밀어두고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정 안에서 살아갔던 건 어찌 보면 습관 비슷한 것일지도 몰랐다.

 

딸 딸 딸 아들 중 나는 둘째 딸이다.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간병은 어머니의 몫이었지만 여든을 1년 앞둔 당신 혼자 감당하시기 에는 벅찼다. 대전에는 언니와 내가 사는데, 하필이면 그때 즈음 언니는 해외교육을 받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다른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는 지라 주말이면 모를까 평일에 병원을 들르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나의 몫이 되었다. 퇴근 후 병원을 배경으로 한 5월의 시간들이 펼쳐졌다.

 

어버이날에 무릎사진이나 찍어보자고 동네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그 길로 종합병원 응급실과 입원실로 직행하신 아버지. 고통은 느끼셨지만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며칠을 버티셨던 당신은 무릎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왜 이제야 오셨냐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심적인 부담이 크셨나보다. 치매에 걸리신 게 아닐까 철렁할 정도로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하셨다.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나타나는 증상이라 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역시 많이 힘드셨을 터 였다. 근 한 달 가까이의 입원 기간은 당신들이 감당하기에는 커다란 시간이었다. 자식으로서의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퇴원하실 때까지 퇴근 후 매일 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어서, 조금씩 나아지시고 부터는 이 때가 아니면 언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나 싶은 생각에 갔다. 뭐라도 하기 위해 병원을 갔지만 사실 내가 한 일은 별로 없었다. 병원 밥 나온 거 많다 하셔서 같이 밥을 먹고, 가끔 휠체어를 끌고 물리치료실로 가고, 샤워하실 때 보조한 것, 어머니께서 집에 다녀오실 동안 아버지 곁을 지켜드린 것 밖에 없었다. “피곤할 텐데 내일은 오지마라.” 내 모습만 보면 활짝 핀 꽃이 되시는 당신들의 웃음은 매번 나의 발걸음을 병원으로 끌어당기셨다.

 

집으로 가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걸면 늘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훅 끼쳤다. 오십여 년 살아오면서 병원 냄새를 가장 많이 맡아본 5월이다. 1년이 지나 다시 오월. 작년 이 시간 병원에 있던 나를 생각한다. 병원 마당에서 바라보던 5월이 당신들과 겹쳐진다. 난 참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구나. 가장 향기로운 5월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자 따뜻한 물에 던져진 수란이 된 양 물컹해진다.

 

 

* 2019.5.18. H백일장(글제: 향기로운 5월),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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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록볼록 연달아 샛노란 과속방지턱
살짝살짝 들썩이며 가로로 빙글빙글
이제껏 가보지 못한 느릿느릿 산책길

꼭대기서 바닥까지 허겁지겁 오르내려
후다닥 끊어지는 직진 길만 걸어보다
조금만 바꾸어 봐도 이렇게 새로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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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밍 업 - 문장과 소설과 인생에 대하여
서머싯 몸 지음, 이종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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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있었다. 무려 ‘1938의 작품인데다 ‘64외국작가가 쓴 책이라니! 유행지난 옷처럼 식상하지 않을까. 고루하지 않을까. 외국인과 정서가 어긋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403페이지의 두께감도 부담을 더했다.

일단 겉표지를 넘겼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다. 소설도 아닌 글이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 작가의 문장과 생각들이 날렵하게 스며들었다. 미사여구 없이 문장이라는 주제를 향하는 직진성이 마음에 든다. 80여 년 전을 살던 작가의 생각에 이리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내 문장은 분명함, 단순함, 좋은 소리를 지향해야 한다(p45)’ 그의 문장은 작가의 의도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원문을 읽지 못해 좋은 소리를 지향 했는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분명하고 단순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점은 번역된 내용으로도 충분히 감지되었다.

 

서밍 업은 문장과 연극과 소설과 인생에 대한 서머싯 몸의 문학적 자서전이다. 요즘 문장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기에 문장론이 담긴 첫 번째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좋은 문장은 노력의 흔적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종이에 써 놓은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써진 것처럼 보여야 한다.(p60)’ 어미를 바꾸어보아도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좋은 문장은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써진 것처럼 보인다.’하고. 뛰어난 시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사실은 한붓그리기를 한 듯 술술 써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막상 시를 써보면 절감한다. 그리 만만치 않은 과정이라는 것을. 그건 생밤을 깎는 과정과 흡사하다. 갈색의 두꺼운 겉껍질과 까슬까슬한 속껍질을 지나면 섬세한 칼질과의 싸움이다. 깎아지른 밤이 탄생하기 위해 얼마나 디테일한 각도의 보정이 필요한지 깎아본 사람은 안다.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를 때가 쉽게 써졌다. 2006년부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14년째다. 어떤 내용으로 쓸지 구상만 떠오르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데 어찌 된 게 그만큼 써댔으면 걸리는 시간이 짧아져야 하는데 점점 늦어지고 있다. 뼈대를 구성하는 시간은 비슷한데 퇴고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쓰고 나면 나의 문장들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메뚜기가 된다. 전체적인 흐름에 어긋난다 싶으면 문단 전체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일부분이 다시 부활하기도 한다. 고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전체의 3분의 2정도는 되는 듯하다.

걸어온 시간만큼 더 가면 나아질까. 지금으로서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 이제는 낱말 하나, 조사 하나도 떼었다 붙였다 바꾸며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껄끄러워지는 중이니까. 됐어! 이 정도면 음하하! 뿌듯하게 부르짖으며 서재블로그에 떠억 올리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쩜쩜쩜. 뭔가 조금은 더 나올 것 같은데 어정쩡한 상태로 끊게 되는 응가처럼 매번 찜찜하다. 단 한 번도 깔끔하게 쾌변한 기억이 없다, .

 

나의 글을 돌아보게 된다. ‘내 영혼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표류하여 불편하게 여겨온 생각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이 책을 쓴다.(p22)’ 서머싯 몸의 생각에 동의한다. 써야하니까 쓰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품고 있기 어려워지면 생각이 밖으로 빠져나온다. 생각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므로 고통스럽지만 글로 마주한 생각은 묘한 희열을 가져온다. 그래, ‘해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다만 나의 글이 혼자만을 위한 감정의 배설이나 넋두리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서재블로그에 처음으로 올렸던 글을 찾아 읽어본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읽고 쓴 내 삶의 주인으로라는 제목의 글이다. 내 리뷰의 시작이 담겨있다. 7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다소 나아진 듯하다. 시간과 경험은 내적 성숙을 가져다주고 글은 써본 만큼 느니까. 첫 글을 냉철하게 분석하니 좀 장황하다. 떡집 가래떡 나오듯 주저리주저리 뽑아지는 문장들이 지루하다. 혼자 말하고 혼자만 웃는 인간처럼 갇혀있는 느낌이다.

 

장황한 글은 매력이 없다. 이건 길이의 문제가 아니다. 길어도 속도감이 있는 글은 독자를 마지막으로 순간 이동시켜주니까.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어디서 들은 내용 같거나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면 하품이 나온다. 내가 아니어도 쓸 수 있는 글은 재미가 없다.

과감한 버리기와 팔딱거리는 표현이 절실했다. 그래서 시를 썼다. 시는 배추 겉잎 다 떼어내고 고갱이만 남기는 과정이니까. 문학적인 기초도 없이 무모하게 달려들었다. 초라한 시들이 적립금처럼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였다. 버릴 것이냐 남길 것이냐 매번 그것이 문제였다. 힘들게 길어 올린 문구들이 아까웠지만 내버려두면 지루했다. 현명한 버리기가 필요했다.

시 쓰기는 청소하기와 비슷했다. 청소의 시작은 비우기이다. 새 물건이어도 쓰지 않으면 내게는 쓰레기나 마찬가지이다. 주제와 상관없는 문장은 화려한 모양새를 갖춘 쓰레기와 같다. 이런 생각을 갖자 버리기가 수월해졌다. 시의 각 연에 비슷한 무게감을 주듯 독후감의 문단들도 균형 잡힌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문장의 소리 팟캐스트>에서 이강산 소설가의 나비의 방편을 들었다. 작가가 설명하는 작품 속 인물은 실존 인물이면서도 가공인물이었다. 소설이 현실 같고 현실이 소설 같은 세상이다. 소설가는 주제에 맞게 등장인물들을 변형시켰던 것이다. 서머싯 몸의 말이 떠올랐다. ‘소설은 예술가이고, 예술가는 삶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자기 목적에 맞게 수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p279)’ 많은 소설이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수정된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가공인물들은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듯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아바타가 된다.

정상에 대한 서머싯 몸의 생각도 소설에 적용된다. ‘정상은 당신이 발견하려고 애쓰지만 별로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다. 정상은 이상(理想)이다.(p91)’ 의대에 다녔던 사촌 언니가 시체 해부에 대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해부학 책에 나온 것처럼 사람의 장기가 그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제대로 있는 경우가 없어. 심장이 왼쪽에만 있는 줄 알았지?” 정형화된 틀은 없는 걸까. 우리 몸 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도, 어쩌면 정상적인 삶도.

 

얼마 전, 기도의 목적이 진정으로 타인을 위한 것인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와 연관된 문장이 있어 화들짝 놀랐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 쾌락만을 추구하는데, 그가 남들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는 그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이런 희생을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p320)’ 누군가 말했다. 이타적인 사람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여겨질 수 있다고. 남을 위하는 행위가 결국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것이니. 다소 극단적인 뾰족함이 담긴 생각이지만 한 때 내가 했던 생각을 과거의 누군가 했다고 생각하니 묘했다.

위안을 얻기도 했다. ‘노년에는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비록 종류가 다르지만 청춘의 즐거움 못지않다.(중략) 노인은 시간이 더 많다.(p366)’시간이 더 많다는 문장에 웃었다. 너무 공감이 가서. 큰 아이는 타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둘째 아이는 고3이라 밤 1030분 넘어서 집에 오니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할 수가 있다. 다만 이에 상응하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날아갈 듯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시간이 많아졌다. 그 나름의 즐거움이라. 희망적이다. 인디언 추장의 현명한 말처럼 64세의 노작가가 했던 말이니 어느 정도 믿어보고 싶어진다.

 

초고에 썼던 첫 문장이 최종판의 첫 문장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독후감의 첫 문장은 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썼다.’였다. 제목 없이 글을 쓰다 일단 저장하면 첫 문장이 저장된다. 그래서 이토록 민망한 첫 문장을 알아버렸다. 짐작하셨겠지만 버려졌다. 처음에 생각했던 이 독후감의 제목은 뭐였더라.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제목은 글을 쓰면서 수시로 바뀐다. 내용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써야겠다며 구상하지 않는다. 필이 꽂히는 내용이 떠오르면 무조건 노트북을 연다. 한데 쓸수록 글이 나를 당겨 손가락을 끌고 간다. 계속 생각이 흘러나온다. 받아쓰기를 하듯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글과 문장을 통해 인생을 말하는 작가를 따라갔다. 77장으로 요약된 작가의 글을 따라 나의 문장과 삶을 더듬었다. 분명 작가 자신에 대하여 쓴 글인데도 나를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글의 매력이다. 작가가 쓴 글은 나의 생각을 끌어내어 글을 쓰게 하고, 내가 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마도 당신의 생각을 끌어냈을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도미노처럼 바로 그 순간 글의 매력은 마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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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0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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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6: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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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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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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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만 하면 몸은 피곤에 흠뻑 젖은 빨랫감이 되었다. 간헐적인 두통과 함께 걸핏 하면 체한 듯 명치가 답답해 액체소화제를 음료수인양 마셔댔다. 격하게 일하기가 싫었다. 평소에도 딱히 좋았던 건 아니지만 심한 거부반응이 일었다. 가끔 식은땀도 났다. TV에서 드라마 오빠를 영접하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농담으로 넘어갔을 말들이 뾰족한 침이 되어 고막을 쿡쿡 찔렀다. 혹인 줄 알고 찾아갔던 산부인과에서 새끼손톱만한 고름을 짜냈다. 다음날에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무릎 때문에 관절 병원에 가서 X-레이 사진을 찍었다. 아프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이틀이요. 너무 예민하신 것 같네요. 약은 안 드릴 게요. 물리치료만 받고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물리치료 한 번에 찌릿하던 증상은 금세 날아갔다. 무릎은 여전히 말끔하지 않지만 지난 한 달간 몸에서 일어났던 변화의 데이터들은 한 단어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의 일생에는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시기가 필연적으로 두 번은 오는 듯하다. 그 시기는 성호르몬의 분비와 관계가 깊어 보인다.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몸에서 남과 여로 구분되는 시기. 신체와 함께 마음 역시 커다란 폭으로 달라지는 사춘기이다. 삶의 전 과정을 색채로 표현한다면 이 시기가 첫 번째 이유기로서 도약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시기일 거다. 이제 나는 두 번째 이유기를 맞는 중이다. 만 오십의 가파른 비탈은 높은 과속방지턱으로 다가왔다.

 

오십을 건너는 삶의 이사를 위해 평온하게 안착해있던 세포들이 짐을 꾸리는 과정이었나. 몸이 힘드니 마음이 힘들고, 마음이 힘드니 몸이 또 힘들고. 나중에는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헷갈렸다. ~ 나는 나이가 들어버렸어. 이러다 땅속으로 푸욱 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무기력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몸이 낡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혼란스러웠다.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에 마음도 덩달아 들썩이며 머물 곳을 잃었다.

우리가 스쳐 지나지 않고 머물 어떤 곳이 있을까?(p189)’ 줌파 라히리의 소설내가 있는 곳은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론 시간을, 추억을, 사람을, 관계를 의미한다. 46개의 장소를 천천히 지나는 주인공을 좇아가며 혼돈의 시기를 맞이한 나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었다.

내 몸과 글이 찾아가는 장소를 떠올린다. ‘내 집에서는 빈둥거릴 수가 없어. 늘 할 일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잠깐 앉지도 못해. (중략) 내게 작은 구석자리면 충분하다는 거 아니?(p55)’ 나에게 충분한 구석자리는 커피숍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 글에는 왜 자주 친정어머니가 담기는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답은 마음이 향하는 장소였다.

 

어두운 바탕의 책 표지에 찍힌 별들을 바라보며 북쪽 하늘의 일주 운동을 떠올린다. 지구의 자전으로 별들은 천구 상에서 1시간에 15도씩 움직인다. 천체망원경에 사진기를 부착한 후 조리개를 열어두면 별빛이 계속 흘러들어 빛이 그려내는 선이 찍힌다고 한다. 사진은 하늘의 방향에 따라 다르다. 나는 북쪽하늘이 가장 좋다. 나머지 방향들은 뭔가 잘린 듯 날카롭지만, 북쪽 하늘 별빛의 선은 둥글고 부드러운 원 모양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심이 보인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북극성이다.

일주운동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관계의 본질을 찾는다. 몸과 마음의 관계, 나와 주변과의 관계, 그리고 내가 머물러야 할 곳까지. 나를 중심으로 멀고 가까운 관계가 지속되는 시간을 선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 비슷할까. 사실 얼핏 동심원처럼 보이는 그 어떤 선도 완벽히 닫히지 않는다. 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으므로 선은 길어봤자 밤의 길이만큼의 시간인 180도 가량을 넘을 수 없다. 실제 일주운동 사진과의 차이점은 각각의 지속시간이 다르다는 점일 뿐 이들은 모두 언젠가는 떠난다. 이런 이유로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리라.

 

영원히 머물게 되는 곳은 없다. 삶의 길 중간 중간에 다만, 우선멈춤의 순간이 존재할 뿐이다. 추억도, 사람도, 관계도. 그리고 또 다시 걸어갈 때 존재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리라. 나를 담은 많은에서의 멈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두 번째 이유기의 문턱에서 우선멈춤을 한 것은 마음이 따라올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몸과 마음이 함께 오십의 과속방지턱을 씩씩하게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라고.

있는 그대로의 변화를 인정하자 하니 몸도 차츰 안정되어 갔다. 아름다운 오십대를 걸어가며 깊어지는 나를 꿈꾼다. 삶의 일주운동 사진을 멋지게 만들고 싶다. 내가 있을 곳은 흔들리지 않는 북극성의 자리. 몸과 마음을 함께 놓고 주변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거다. 조리개를 오래 열어두면 선이 길게 연장되듯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둘 것. 어두울수록 사진이 선명하게 찍힌다는 마음으로 너무 우울해하거나 외로워하지 말 것. 이제 마음이 머무는 곳을 따라 나의 몸을 움직이면 되겠다.

 

*p49, 3째줄 : 것일지 도 → 것일지도

p189, 7째줄 : 쌓다가 푸는 → 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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