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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2 (단풍 에디션) ㅣ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평점 :
책은 글자들의 숲이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의미를 지닌 글자들이 무성해지면 거대한 숲이 된다. 숲이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집합인 것처럼, 숲을 이룬 책은 생명체처럼 기능한다. 어떤 이에게는 지저귀는 새로, 곧게 뻗은 나무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풀잎으로, 꾸준히 꿀을 실어 나르는 꿀벌로 다가온다.
어떤 책은 그림 같다. 음악 같은 책도, 음식 같은 책도 있다. 우리의 시각과 청각, 미각과 후각, 피부 감각을 자극하며 의미를 전달한다. 이런 이유로 책은 감각적인 생명체다. 무생물인 종이에 실린 글자가 펼쳐지는 순간, 독자들에게 서서히 스며 들어가 숨을 쉰다.
『불편한 편의점2』는 피부 감각을 자극하는 소설이다. 편의점 온장고 속 호빵처럼 소박하게 따스하다.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나름의 이유로 한겨울을 지나는 중이다. 그 안에 호빵 같은 주인공이 그들 마음속의 허기를 채워주며 두 손에 온기를 나누어준다.
전편처럼 시트콤 같은 구성을 보인다. 시놉시스를 연상케 하는 문장을 따라가면 머릿속에는 동영상이 재생된다. 등장인물들의 목소리와 공간적 배경과 이야기가 음악 소리 들리는 산타 할아버지 입체 카드처럼 생생하다. 인물, 사건, 배경 모두가 살아있다. 현실에서 마주칠 법한 이야기, 다큐스러우면서 그 안에 담긴 온기가 나는 좋다.
점장 오선숙을 시작으로 익숙한 캐릭터가 문을 열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한 명씩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다. 소설 중간에는 본격적으로 주인공의 서사가 등장하여 그를 중심으로 인물 사이의 연결 고리가 드러난다. 하나도 버릴 것 없이 긴밀하게 엮인다. 캐논변주곡처럼 전편의 익숙한 멜로디에 약간의 변주를 준다. 지루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속편으로 연결된다.
김호연 클라스는 독보적이다. 2편에서도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인물의 서사에 궁금증을 유발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흡인력은 여전하다. 전편과의 차이점은 시대적 배경의 비중이 커지고, 점장과 정육식당 사장과 편의점 주인 등 관리자 입장의 에피소드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시대의 흐름은 아날로그적이지만 인간의 역사를 디지털로 묘사한다면 지난 3년은 격변의 경계라 칭할만하다. 2020년 1월 20일 이후 세상을 굵직한 나이테적 사건을 경험한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약간의 굳은 살은 배겼지만, 변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글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시대상을 반영해야 겉돌지 않고 독자의 심장으로 스며들 수 있다. 생활이라 표현하면 밋밋할 정도로 삶이 달라졌다. 코로나를 소재로 하는 문학작품들이 쏟아졌다. 질병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책, 팬데믹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하는 책 등 현실을 생중계하는 다큐멘터리가 많다. 몇몇 책들을 읽었지만, 별반 해답을 얻을 수 없어 여전히 답답했다.
내내 품고 있던 답답함이 해소된다.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어느 방향으로, 어떤 의지로 삶을 걸어가야 하나 어렴풋이 답을 얻는다.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에게 빙의하여 진지하게 상황을 직시하니 내가 보인다.
소설은 거리두기를 만들어준다. 주인공들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자로서 바라보면서 독자는 스스로 삶을 비추어본다. 나라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혹은 맞아, 맞아, 나도 그랬을 거야 하며 공감한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본다. 코로나를 녹여낸 작품 덕분에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다 더 이해하게 된다. 더불어 나의 삶도 둘러본다.
편의점에 관한 책을 읽는 중이어서였을까. 인터넷 뉴스에서 편의점 체험이 담긴 기사문이 눈에 들어온다. “소주병 '쾅'무례함에 심장 '쿵쿵'...'심야 편의점' 알바해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2023.01.14.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이라는 제목이다.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라는 편집자 주를 읽고 아! 이 기자 찐이구나 싶다.
책을 통해 편의점 예습이 이루어진 상태여서일까. 기자의 체험담이 현장감 있게 다가온다. 몰입감을 주는 문장과 중간중간 사진 설명 글에서 파편처럼 뿜어져 나오는 재치 덕분에 재미있는 소설을 보듯 정신없이 읽는다. 유튜브도 아닌데 결국 내 손가락은 구독과 응원을 누르고야 만다.
기자의 기사문들을 모은 메인 페이지를 방문한다. “쓰레기를 치우는 여사님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소외된 곳을 떠들어 작은 거라도 바꾸겠습니다.” 에 적힌 비전이 마음에 든다. 세상 곳곳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퉁이의 모습을 알리고 있구나. 작가는 소설로, 기자는 기사문으로 무심코 흘려보내는 장면을 붙드는구나.
이 책과 기사문을 읽고 나니 뚝배기가 된 기분이다. 글은 독자를 각기 다른 그릇으로 만드는 걸까. 커다란 용광로로, 작은 종지로, 뚝배기로, 라면 냄비로 말이다. 폭발적인 열정이나 오소소 스릴러나 처절한 냉기는 없어도 오가는 이야기들이 물컹하고 따뜻하다. 심장을 은근하게 데워준다. 데워지는 데 오래 걸리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온기가 한동안 머문다.
등장인물들의 배경은 한결같이 시리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준다. 웃어서 뭘 먹은 효과가 난다는, 걱정은 독이고 비교는 암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불씨로 날아온다. 이 불씨에 나만의 신선한 산소를 모아 삶을 뜨거운 열정으로 이끌어 시린 이들과 더불어 걸어가고 싶어진다.
관성에 의해 굴러가는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비관한 적도 있다. 내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까. 흔히 듣는 말, 흔히 하는 생각처럼. 이제는 달라졌다. 어쩌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기사문으로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듯이. 찬란하게 빛나는 별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기체인 수소가 꾸준히 모여들어 만들어지니까.
세상은 꾸준히 두드리는 '하나'들로 변한다. 작은 거라도 꾸준히 두드리면 서서히 반향을 바꾸어가면서 다듬어진다. 어쩌면 내가 쓴 이 글이 누군가의 심장을 두드려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지 모른다고 믿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