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가지 소원
브랜던 로브쇼 지음, 강미경 옮김 / 두레아이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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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많다. 소시지 붙였다 떼어버린 것으로 허무하게 소원이 날아가 버린 그림형제의 동화에서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이야기 속에서도 대부분 소원은 세 가지였다. 주인공들은 무엇을 원할지 고뇌하지만 대부분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결론은 욕심 부리지 마라이다. 그런데, 100만 가지 소원이라니. 뒤표지에 나온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만약 100만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이 소원으로 무엇을 하고 싶나요?’머리 속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너무 많다.

숫자마다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3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8은 따뜻하다. 9는 설레고 1은 외롭다. 그리고 100만은 크다. 어렸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돈은 백만 원이었다. 이 다음에 크면 백만 원도 넘게 돈을 벌고 싶다 바랬던 기억이 있다. 100만이 물론 큰 숫자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천만이나 억이나 조보다 큰 느낌으로 다가온다. 100만이 커다란 이미지로 다가오기는 다들 비슷한가 보다. 백만장자, 6백만 달러의 사나이, 100만 가지 소원이란 말들이 나오니 말이다.

 

결말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짧은 동화 안에 어쩌자고. 보나마나 몇 가지 들어주다 욕심 부리면 안돼요, 어린이 여러분!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책 선정을 할 때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100만인데,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이끌렸던 것 같다.

주인공 샘은 100만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소원을 빌어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커졌다 작아졌다 걸리버 아저씨 코스프레부터 헐크, 슈퍼맨, 배트맨 콜라보 등 다양한 모험에 뛰어든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예상할 수 있는 전개이다.

하지만, 소원을 이루어가면서 주인공이 깨닫는 점이 상당히 심오하다. 가족들이나 친구의 고민을 해결하였을 때는 뿌듯해하지만, 스스로를 위한 모험은 곧 시들해져 식상함을 느끼는 샘.

노력 한 번 기울이지 않고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다면 실제로 뭘 한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p80)

삶은 고생을, 배움을, 향상을, 연습을, 그 끝에 마침내 얻는 성취를 의미한다. 하지만 뭐든 빌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면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p179)

어린이 독서모임을 위해 책을 선정하고 읽지만, 읽고 나서는 종종 어른인 내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는 기분이다.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기발한 결론의 도입도 그렇지만, 짧은 이야기에 담긴 촌철살인의 메시지에 깜짝 놀란다.

 

나만 아니면 돼!’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려운 미션을 부여받았을 때, 출연진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역으로 나만 그런 건 아니야!’라는 말은 어려운 순간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위안을 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삶에는 늘 문제가 있다는 거야.'(p172)

고등학교 때 지각을 한 적이 있다. 만원버스를 한 대 놓치고 학교까지 그 다음 버스를 타고 가면서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교문을 들어섰을 때,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대거 포진한 모습을 본 순간, 어찌나 마음이 편안해지던지. 동병상련을 체험한 기분이랄까. 동병상련이란 생각보다 따뜻한 의미를 지닌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몰려온다. 이 순간만 지나면 앞으로는 모든 것이 다 문제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런 사실이 까마득할 때도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이 책 속의 상황처럼 문제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그래, 아마도 살아있는 한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내게 다가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넘어서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삶의 폭이 더욱 넓어지기도 하고 깊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지나온 삶을 생각해보면 벅찬 기쁨을 느꼈던 순간에는 늘 과정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좋아하던 사람과 처음으로 안아본 순간을 기억한다. 그를 바라보고 그리워하고 생각했던 수많은 낮과 밤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설렘으로 두근댔다. 시험에 합격했던 순간도 생각난다. 눈이 시뻘개지도록 책을 들여다보던 시간들과 이 시험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빛이 났다. 아이를 낳았을 때에도 열 달 동안 삐질 삐질 땀 흘리고 뒤뚱거리고 조심하며 견뎌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울컥했다.

하늘거리는 광섬유가 아름다운 이유는 끄트머리에서 반짝이는 빛 때문이다. 그 빛은 가느다란 길을 거치지 않으면 결코 나올 수 없다. 기다란 광섬유는 삶에서 경험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떻게 그 길을 지나야 하는가의 문제만 남았다. 나는 빛나는 나의 삶을 위해 기꺼이 그 길을 갈 것이다.

100만 가지 소원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야할 것 같다. 만약 100만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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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0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에 힘들었던 경험의 기억이 지금에서야 그리워질 때 있어요. 예를 들면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시절을 그리워해요. 그때는 미래를 알 수 없던 시절이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문제를 안고 살면서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신의 선택을 믿으면서 살다보면 행복한 일이 찾아올거라 믿어요.

나비종 2016-08-06 21:57   좋아요 0 | URL
지나온 일이 그리운 것은 이미 지나와서 일거예요.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어떤 선택을 하여 걸어가든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니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yrus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선택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박카스 광고 중 `대한민국에서 ***로 산다는 것`편이 생각나네요. 그 때가 좋았다며 회사원, 백수, 이등병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광고요. 저 역시 힘들었던 과거였지만, 그 때가 좋았지 하며 그리워질 때가 있거든요^^
 
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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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깨졌다. 정치인이 쓴 글은 고리타분하고 제 잘난 맛으로 도배되어있을 거라는, 만화가의 글에 정치나 사회가 연결되면 재미없어지거나 감동을 느끼기 어려울 거라는.

이 책을 통해서 두 사람의 글을 처음으로 접했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어서인지 예상하지 못한 보물을 발견한 듯 뿌듯하다. 두 작가의 팬이 되었다.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서 그들의 작품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한 권의 책으로 마음이 확 당겨지는 작가 두 명을 알았으니, 전문 용어로 일타쌍피.

글쓰기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도 많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도 생각해보게 해 주니, 고마운 책이다. 같은 주제로 표현된 두 작품. 큰 맥락은 이어져있지만 독특한 개성을 지닌 두 사람의 글은 각기 다른 색깔의 매력을 지닌다. 독후감도 그래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쓰고자 한다.

 

 

<유시민의 표현의 기술이란>

 

솔직함과 당당함이 인상적이다. 고정관념 없는 쿨함이 깔끔하다.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도 느껴진다. 간혹 TV 패널로 등장한 모습을 지나치듯 본 적은 있지만, 정치인이라는 거부감에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의 다른 글을 읽고 싶어진다.

 

1왜 쓰는가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조지 오웰이 나누었다는,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미학적 열정,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충동,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p18)’ 등 네 가지 목적 중 마지막에 언급된 정치적인 목적이다. 글쓰기 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정치가 이런 의도로 이루어진다면 좀 더 밝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를 돌아본다. 나는 왜 쓰는가. 딱히 돋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을 타인과 나누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역사적인 사명감도, 정치적인 의도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쓰는가. 고대인이 생각했다던 4원소설을 넘어 영화 5원소가 나온 것처럼, 오웰이 제시한 목적과 미세한 차이가 있는 다섯 번째 이유로 내가 쓰는 목적을 결론짓고자 한다. 나는 내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쓴다. 마음이 복잡할 때 글을 쓰면 속이 후련해질 때가 있다.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글로 꺼내 놓다보면, 1인칭의 글을 쓰는 나는 3인칭의 인물이 되어 글을 읽게 된다. 객관화된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침잠시키지 않는다. 욕심을 더 부리자면 나를 위한 글이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어 동병상련식의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유 작가처럼 뚜렷한 정치적 목적은 아니지만, 조금 쉬다 다시 나아갈 그루터기의 역할이라도 한다면 정치적인 목적의 변방에라도 서성이는 것이 될 지도.

 

틀린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의견이 있을 뿐. 2장에서는 야구에서 직구를 던지 듯 진보와 보수에 대한 편견을 정면으로 깨뜨린다.

진보보수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 적이 있다. 둘 다 나름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의미대로 실현만 된다면공산주의역시 유토피아 급으로 이상적인 개념이다. 문제는 이권이 개입되어 변질 적으로 표현되는 과정이다. 한 쪽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생각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적용되어야 할 방법이 다를 뿐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쪽 저 쪽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써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에서 멀어져야 한다.(p42)’

이 문장들을 보고 놀랐다. 오규원의현대 시작법에서 말하는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에는 진보냐 보수냐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작가 의견에 동의한다. 오로지 아름다운 것과 옳은 것만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는 의견에도.

예술적으로 쓰고 싶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정해진 도그마보다 자기 자신의 눈과 생각, 마음과 감정을 믿는 게 현명합니다.(p60)’

내가 쓰는 글에 부끄럼 없이 당당하려면 끊임없이 열려 있는 시선을 가지고 가치 판단을 해 봐야 하리라.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이가 가져야할 책무라고 생각한다.

 

악플에 대해 말한 3장에서는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첫째, 화살로 비유한 내용이다.

악플 때문에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하거나 우울해 하는 것은 악플러가 쏜 화살을 주워서 자기 스스로 자기 심장에 꽂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p75)’

살아가면서 내가 악플러의 화살을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만천하에 글을 공개하는 유명 인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온라인 블로그 서재에 쓰는 개인적인 독후감에 악플이 쏟아질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살아가면서 받게 될 크고 작은 자극에 대한 반응에 응용해도 손색이 없겠다. 저마다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막을 길은 없다. 하지만 다른 이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이서 쏜 화살일지라도 깊숙하게 심장을 가격하는 일은 없다. 문제는 내 곁에 떨어진 화살의 처리 방법이다. 나의 행동에 따라 내게 미칠 영향력이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화살에 대한 비유는 적절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처 방법이다.

둘째, 처세술에 대한 생각이다.

저는 타인에 대한 기대 수준을 바닥으로 내리는 것을 현명한 처세술로 여깁니다.(p81)’

철학자 강신주와 법륜 스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해 그분들이 제시하는 대처 방법 때문이다. 인터넷 강연 동영상에 나오는 답변 내용이 위 문장과 연결된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선물을 주거나 메시지를 보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주고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대 수준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주는 행동을 하면 은근히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지만, 의식적으로라도 기대 수준을 낮추면 의외로 큰 기쁨이 따라온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40대 중반을 넘어 경험으로 깨달은 사실이다.

 

그의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든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우기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의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말한다.

말이나 글로 남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죠. 사람은 스스로 바꾸고 싶을 때만 생각을 바꿉니다.(p95)’

4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사람이 가진 고정 관념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여러 사람들을 대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작가의 의견대로 스스로의 의지만이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데미안에서 말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기존의 세상을 깨뜨려야 달라진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기 위해 계속 글을 쓸 것이라 말한다. 나 역시 생각이 바뀐다는 사실에는 희망을 갖는 쪽이다. 바뀌기 어렵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과 분명히 다른 것이니.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은 없다. 굳이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했던 직업군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쓴 자기소개서를 볼 일은 간혹 있었다. 내용의 손상 없이 글자 수를 맞춰준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문맥의 수정이었을 뿐, 직접 써본 것은 아니기에 내용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5장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이 나와 있다.

자기 자신에 관한 진실과 사실을 쓰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람이 자기한테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도록 써야 한다.(p112)’

자기소개서는 자기 자신보다는 그것을 읽을 사람이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사실을 중심으로 정해진 분량만큼만 써야 합니다.(p119)’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둘째 아이가 2학기 때 써야 할 자기 소개서로 고민했을 때, 문장은 둘째 문제이고 일단은 써야 할 내용이 중요하니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5장에 진정한 표현의 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적혀있다며 좋아라 웃었다.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는 방향을 잡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에게 5장을 보여줘야겠다.

 

내 알라딘 서재는 방문자 수가 적다. 하루 방문자 수가 내 서재의 몇 달치 방문자 수를 훌쩍 넘는 서재를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부러우면 지는 건데, 꼿꼿하게 나의 길을 가겠다는 처음의 패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서재에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함이니 뭐 그리 개의치는 않지만, 사실 부러운 점은 방문자 수가 아니라 댓글이다. 독후감에 담은 생각이 옳은 지, 매번 허접하다는 생각을 이겨내고 올리는 시가 잘 써진 건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이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하지만 너무 빠져있다 보면 스스로를 좁은 세상에 가두어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6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글이라는 베스트셀러가 갖춰야 할 요소가 나와 있다. 문장을 쓰는 기술, 훌륭한 생각과 감정,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공감을 일으키는 글 등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평소 싫어하는 유형의 글이 있다. 첫째, 지 잘난 맛에 온통 어려운 용어로 도배한 글이다. 읽는 이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어설피 알면 설명이 장황해진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조차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긴 문장으로 된 글이다. 아나콘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글은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할지 난감하다. 매력이 없다.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뜻을 알 수 있도록 써야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이 책 역시 이해가 쉽고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368페이지의 책을 사흘도 안 되어 독파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책만 붙들고 있던 것도 아니고 독서 속도가 상당히 느린 내게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다보면 잘못 탄 가리마처럼 나와는 맞지 않는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시험공부를 하듯 꾸역꾸역 읽어낸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7장에서는 그런 책을 일단 덮어 두라고 조언한다. 내게 재미있는 책,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책, 내가 감동받는 책을 읽으라고 한다. 그렇다고 마냥 덮어두는 건 아니고 내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나중에 다시 도전해보라고 한다. 읽어보려다 실패하고 잠시 덮어둔 몇 권의 책이 떠오른다. 억지로 읽을까 말까 엉거주춤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좀 더 내공을 쌓은 후에 다시 도전해보아야겠다.

느끼는 책읽기에 도전하려면 텍스트를 넘어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뭐든 대상을 알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심이 가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 세심하게 관찰을 해야 하듯이, 책이라고 다를 건 없다. 모르면 메모하고 찾아가며 파고들다보면 어느 순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깨달음이 온다.

고미숙의나의 운명사용설명서를 읽을 때 그랬다. 노트에 메모해가면서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사주에 대한 이론을 공부했다. 어려웠다. 어렵게 기술되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소한 분야여서였다.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아마도 그 책은 나와는 맞는 책이었나 보다.

학창 시절을 지나온 지금, 뭔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우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7장을 읽고 책장을 바라본다. 꽂혀있기는 하지만 절반 이상은 손길이 닿지 않은 책들이다. 깊이 있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앞으로 이 책들 중 얼마나 많은 책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마음이 설렌다.

 

특허 검색을 하면 발명 분야 역시 완전히 독창적인 작품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발명품들이 기존의 것을 바탕에 두고 더하거나 빼기를 한다.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런 점진적인 시도들이 세상을 조금씩 편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8장은 표절에 대한 글이다.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 질문을 던지며 생각의 주인이 되어야함을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말이나 생각도 온전히 나의 것이라 말하기 어렵다.

음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표절. 글 역시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글을 쓰다보면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야 할 때가 있고,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 나 역시 다른 이의 저서와 말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표절은 인용과 다르다. 저자는 표절과 아닌 것의 차이를 의도의 문제라 해석한다. 표절로 허세를 부리려는 욕망이 없다면 표절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는 나는 그래서 표절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인터넷 알라딘 서재에서 ‘cyrus’님의 페이퍼 중 리뷰와 독후감의 차이에 대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서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댓글을 남겼다. 알라딘 내 서재에 올리는 리뷰는 독후감에 가깝다. 독후감이든 뭐든 기록을 남겨야 책의 내용이 마음에 좀 더 깊숙이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읽은 책 모두를 쓰지는 못하지만 되도록 독후감을 남기려고 노력한다.

9장은 서평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서평의 조건은 객관적 정보와 주관적 해석이다. 이 기준에 비추어 봐도 주관적 해석이 주를 이루는 내 감상문은 여전히 독후감이다.

서평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른 사람의 글을 평한다는 것이 내게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것이지, 글 자체의 단점은 아니라는 생각에 섣불리 글로 드러내기 어렵다.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안 들거나 내게 미친 영향이 없다고 판단되는 책은 아예 독후감을 쓰지 않는다. 맘에 안 든다는 내용을 굳이 시간을 내서 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독후감을 쓴 책에 대한 평점이 항상 높은 이유다. 5점 만점에 3점 정도라 생각되면 아예 글을 쓰지 않으니까. 5점을 매기는 경우는 내 취향일 때,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진 책이었을 때다. 4점을 매기는 경우는 대부분 내 취향과 썩 맞지는 않을 때, 취향과 맞지 않아도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9장을 읽고 나니 감상이 주를 이루는 내 독후감에 책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다 보니 이 지경으로 길어져서 누가 읽을까 싶지만. 그래도 책의 내용도 정리하고, 내 생각도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업무적으로 일을 요구하는 메신저를 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 창작의 고통을 살짝 느낀다. 목적은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끔 하는 것. 이 때,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두 가지이다. 웃으면서 하게 만들 것, 무엇을 해야 하나 명확하게 알릴 것.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다른 메시지가 오면 짜증부터 나지만, 내 메시지의 팬이 되었다는 분도 있으니.

10장에서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과, 생활 글부터 보고서와 회의록에 이르기까지 글을 잘 쓰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을 소개한다.

일상적으로 쓰는 글은 무엇보다 유머코드를 살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면 자신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글로 사람을 웃게 만들고 싶으면 글 쓰는 사람 자신이 웃으며 살아야 합니다.(p232)’

번거로운 일을 부탁할 때 소개한 팁을 읽고 살짝 소름이 돋는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흡사하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은 두 가지이다. 되도록 짧고 명확하게 쓸 것, 읽는 사람이 웃을 수 있도록 쓸 것. 유명한 사람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나의 방식이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글이든 행동이든 관계든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진리인 것 같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있어야 하고.

글쓰기는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자기표현은 강제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표현하고 싶어야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p250)’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이란>

 

10대에 접했던 순정만화 속에는 상상하는 모든 로망이 담겨있었다. 만화 속 캐릭터들은 분위기 쩔게 폼 잡고 때로는 나쁜 남자 포스로 야성미 팍팍 풍기면서 소녀의 심장을 확 끌어당겼다. 내게 만화는 두 종류였다. 순정만화와 순정만화가 아닌 것.

명랑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꾼 건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이었다. 찡한 감동을 준 최초의 명랑 만화였다. 글자 하나하나를 샅샅이 읽다보면 풋 웃음이 나왔다. 이로서 순정만화가 아닌 것의 지위는 대폭 상승한다.

 

만화로 감동받은 경험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의 작품은 최 작가와는 다르다. 두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겨우 한 작품씩만을 읽고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 자체가 시건방진 시도이기는 하지만, 순정 만화의 세계만을 헤엄치던 인간이 어느 날 명랑 만화 두 편에게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기록하고 싶어서라 해두자. 최 작가의 작품이 사회의 그늘에 서서 그늘에 사는 사람들을 토닥토닥 보듬는 느낌을 준다면, 정 작가의 그것은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햇살 아래로 끌어와 장난을 걸며 위로하는 느낌을 준다.

 

차분하게 1장을 읽다가 p21입새에서 빵 터졌다. 쉬는 시간처럼 읽는 이들의 경계를 풀어 무장해제 시킨다. 동떨어져 보이는 정치와 사회를 친숙하게 끌어와 펼쳐놓는다. 이모티콘 하나(p69)로도 웃길 수 있는 사람, 단 몇 글자로 보는 사람의 심장에 임팩트를 주는 그는 진정 촌철살인의 달인이다. 어떻게 매 작품마다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결정적인 한 방이 있는 정훈이식 유머는 그의 다른 작품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기발한 유머 코드를 담고 있는 인간적인 시선이다. 그것이 웃음 속에서도 찡함을 이끌어낸다. 11, ‘정훈이의 표현의 기술은 이 모든 매력을 다 담고 있다. 남의 얘기에 이렇게 몰입되는 것이 얼마만인지. 11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 중에 가장 좋았다. 10장까지 중간 중간에 등장했던 그의 만화가 큭큭 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면, 11장에 등장한 그의 자서전에는 뭉클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전체적으로 담겨있는 담담함과 솔직함도, 가슴 찡하게 하다가도 웃음 포인트를 자극하는 점도,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의 구성도 좋다.

 

한 장의 그림으로 사람을 웃게 하든,

한 줄의 글로 사람을 울게 하든,

한마디 말로 감동을 주든,

그냥 무심코 한 행동이든 간에

 

가장 좋은

표현의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p360)’

한 편의 시 같은 그의 말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행과 연을 모아서 쓸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훈이는 표현의 고수임에 틀림없다. 내 마음을 이리도 많이 움직여놓았으니. 명랑만화에 감동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 만화에 대한 독후감을 쓰게 될 줄이야. 여러 가지로 새로운 경험이다.

주인공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오버랩 되며 지나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p364) 컷도,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같은 (p366~367) 컷도 인상적이다. 깔끔한 마무리이다.

 

 

<그렇다면 나의 표현의 기술이란>

 

유시민의 글이 어떤 주제에 대한 정의와 해석을 내려준다면, 정훈이의 만화는 적절한 비유를 들어 요약 정리하여 이해를 돕는다.

몇 층으로 쌓아놓은 샌드위치를 맛본 기분이다. 유 작가의 글이 담백한 식빵이라면, 글 사이사이에 끼워진 정 작가의 만화는 햄, 치즈, 계란, 양배추와 같다. 그 자체가 독립적이면서도 빵의 맛과 묘하게 어우러져 맛깔난 샌드위치를 만든다.

 

책이란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 존재이다. 무생물이지만 생물인 듯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 책을 통해 나와 마음의 코드가 맞는 두 명의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 작가가 보는 세상을 보았고,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보았다.

이 책은표현의 기술에 대한 이론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고, 두 작가의 표현의 기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표현의 기술이란? 릴레이를 하듯 바톤을 건네받은 기분이다. 나만의 표현을 위해 달려가는 일만 남은 듯이. 어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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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2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소개서가 ‘자소설’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갖고 있어요. 소설 다음으로 제일 어려운 장르(?)가 자기소개서일 거예요. ^^;;

방문자 수에 연연하지 마세요. 그냥 한 번 우연히 클릭한 것도 조회 수에 들어갈 거예요. 북플 접속자 수가 많아져서 그런지 서재 방문 수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사실 상대방이 쓴 서평을 읽고, 댓글을 남기는 일이 쉽지 않아요. 제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의 서평을 읽으면 어떠한 생각이 금방 떠올리지 않아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냥 ‘좋아요’ 누르고 지나갑니다. 저는 글을 읽고 나면 떠오른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 하는 성격인거죠. 문제가 있다면, 글과 전혀 상관없는 딴소리를 하거나 생뚱맞은 아재개그를 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항상 조심하게 생각하지만, 필터링을 세삼하게 하지 않아서 해선 안 될 말을 드러낼 때가 있어요. 이러면 저와 상대방과의 관계가 서먹해져요. ^^

나비종 2016-07-29 21:16   좋아요 0 | URL
자소설ㅎㅎ 맞아요. 정말 어려운 분야예요. 자신을 한정된 지면을 통해서만 보여줘야 한다는 게. 이것이야말로 표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댓글이 쉽지는 않죠.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댓글도 본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쓸 수 있는 거라구요.^^
cyrus 님의 글이 주는 무게도 만만치 않아 비슷한 무게의 댓글을 다는 게 고민스럽기는 합니다ㅎㅎ(고민의 결과물이 대부분 새털처럼 가벼워서 뻘쭘하기는 하지만요^^;)
제가 세운 댓글의 원칙은 `읽었으면 뭐라도 단다`이거든요.
딴소리, 아재개그 좋아합니다ㅋㅋ 제가 한 리액션하거든요~
음, 저는 관계가 서먹해졌을 땐 잠시 물러나 사태를 지켜보다 틈새시장을 노립니다만ㅎㅎ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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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G 폰을 아직도 충전한다. 10년 가까이 되었을 성 싶은데, 0시가 넘어 하루가 시작되면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전원을 켠다. 메뉴-신나는 애니콜-마이펫과 놀기. 반갑다고 뛰어나오는 개새끼에는 미안하지만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사는 4, 오늘의 행운이다.

매사를 차근차근히 풀어나가면 결코 흉하지 않는 날입니다.’여러 일이 버겁게 겹쳐왔을 때 여기 나오는 문장을 보고 힘을 얻은 적이 있다. 한 줄 문장이 뭐라고. 그 후로 생각날 때마다 이 메뉴를 찾곤 했는데, 이게 은근히 잘 들어맞는 거다. 엄청난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흔한 잠언 집에서 나올 법한 문장들이건만. 스마트폰으로 바꾼 후에도 2G폰을 처분하지 않고 간헐적으로 충전하는 이유다.

어느 날 나는 위클리 일기장 구석에 하루하루 이 문장들을 적어보는 쓸데없는 짓을 시도하게 된다. 한 달이 지나도 결코 같은 문장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후로 궁금해지는 거다. 어차피 일정한 문장으로 돌릴 텐데 얼마나 많은 문장이 심어져있을까. 222일에 시작해서 711, 드디어 문장의 사이클을 알아냈으니 대략 4개월 20일 가량, 140여 개쯤 되겠다.

역은 반복이 아니라 리듬이다. 매번 돌아오지만 다르게 돌아온다. (중략) 우주는 탄생 이래 한 번도 동일한 순간을 반복한 적이 없다. 이 차이가 곧 생성의 동력이다. ”(p53)

1년 뒤면 다시 매미소리 징하게 울어대는 여름이 오고, 오늘이 지나면 24시간의 사이클로 내일이 반복되는 듯 흘러갈 것이다. 그러한 삶의 전 과정에서 같은 순간은 단 1초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때론 나를 낮추고 소소한 용기도 얻어가면서 그 문장들과 시간을 보냈다.

 

종교에 매달리거나 운명에 끌려 다니는 인간형은 아니지만, 사주라든지 음양오행의 원리라든지 주역이라든지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다. 수많은 운명을 한정된 숫자로 분류하는 것이, 삶에 비추었을 때 간혹 들어맞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꽤 흥미를 자극한다.

이런 이유로 몇 년 전 만났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도 내용을 메모해가며 시험공부를 하듯 읽게 된다. 읽고 나서는 적용을 해봐야한다며 생년월일을 아는 부모님, 남편, 자식, 친구, 직장동료 등 주변인부터 생년월일이 인터넷으로 공개되어 있는 드라마 인간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사주를 따져보는 무모한 행동을 저지른다. 생활 무대가 다르기에 멀리서나마 얼굴이나 볼까 싶은 이민호나 정준영과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라는 게 도대체 왜 신이 났을까. 태어난 시각까지는 모르니 네 개의 기둥 중 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4분의 3만 알 수 있지만, 명리학에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나는 정화, 그들은 임수야.’따져보며 혼자 히죽거리며 좋아라했던 기억이 있다.

 

정치라든지 경제라든지 이런 용어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삿대질하며 눈을 부라리는 인간들도 마음에 안 들 뿐더러 돈 때문에 휘둘려야하는 초라하고 지리한 삶이 지겨워서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이유도 있다. 아웃 오브 안중이라 독서모임의 토론 도서로 읽힘을 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련 책을 굳이 찾아 읽어본 적은 없다.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비호감 용어가 포함된 이 책의 겉표지에서부터 거부감을 느낀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이니까. 그녀의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주니까. 첫 장을 펼치고 마지막 장까지 순두부를 목구멍으로 넘기듯 부드럽게 책장을 넘긴다. 결과는 역시나 성공적이다. 나처럼 정치나 경제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명쾌하다. 초록빛 수박을 반으로 쩍 가르고 선명하게 붉은 수박을 서걱서걱 숟가락으로 퍼먹은 기분이다. 콩나물, 고사리, , 김치 등을 잘 버무려 쓱쓱 비빈 소박한 비빔밥처럼 정치, 경제, 몸과 우주의 콜라보가 조화롭다. 저자가 지닌 방대한 지식을 결코 뽐내지 않는다. 토할 듯이 난해하고 현학적인 언어로 읽는 이를 어지럽히거나 뭐 좀 아는 체하지 않는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시원시원하게 말해주니 속이 후련하다. 날카롭지 않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풍자적인 문장이 좋다.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이 아닌, 서민의 삶이 담긴 김홍도 그림이 그려진 부채로 일으키는 자연스런 바람을 맞은 기분이다. 그래서 좋다. 마음에 들어온 문장이 하도 많아서 무엇을 꺼내놓아야 할지 난감할 만큼.

 

탈정치, 탈경제의 삶을 살고 싶지만 정치와 경제의 영향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안다.

한 정의에 따르면 경제학은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 질문을 다루는 학문이란다. 정치는 본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다.”(p23)

몸과 우주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며 해석하는 시선이 신선하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정치와 경제를 끌어와 관계에 대한 자연스러움으로 흘러 절로 내 몸을 들썩이게 한다.

운명의 핵심은 창조와 순환이다. ”(p75)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신체 깊숙이 새겨진 리듬과 강밀도를 변환하라!”(p83)

요컨대 핵심은 관계와 활동이다. 관계가 활동을 낳고, 활동이 곧 관계를 생성시킨다. ”(p109)

그렇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나니 답을 알 것 같다. 정치건 경제건 과학이건 그 어떤 분야이건 핵심은 삶과 사람이다. 그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몸과 내 몸을 담고 있는 우주이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사람이고, 나만큼 소중한 또 다른 사람이고, 나와 그를 연결하는 관계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럭셔리한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p140~141)

 

다시 읽어보니 독후감에 별 내용이 없다. 328페이지에 담긴 내용을 눈꼽만큼 제시해놓고 그저 좋단다. 하지만 무엇이 좋았을까, 리뷰를 읽는 나도 좋을까 궁금한 마음에 한 번 읽어볼까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 이것으로 리뷰의 역할은 충분할지도.

 

늘 그렇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나를 아끼게 되고, 또 다른 내가 담긴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뜨뜻한 아랫목에서 이불 하나 둘러 덮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군고구마를 먹는 기분이다.

길은 가면서 만들어지는 법, 가다 보면 다른 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중요한 건 계속 가야 한다는 것. ”(p278)

뭐가 됐건 핵심은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다. ”(p280)

걸어가고 싶다, 내 발로 나의 길을. 자신의 길을 가는 또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싶다. 그들과 의지하며 우주의 시간을 나누고 싶다. 결코 외롭지 않을 이 세상을 향해 한 발 힘껏 대딛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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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중학교 인정교과서) - 청소년들의 행복 수업을 위한 첫걸음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문용린.최인철 외) 지음, 문다미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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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ness. 영어 필기체를 처음으로 배웠을 때, ‘행복을 뜻하는 이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살짝 꼬부라지는 지팡이 같은 시작이 좋았고, 두 번씩 들어가는 알파벳 ppss를 발음하며 쓰다보면 풀피리를 불 듯 초록 바람이 입 안에서 맴도는 듯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에 찍는 i 위의 동그란 점은 기분에 따라 커다랗게, 앙증맞게, 때로는 빨간 하트 모양의 악센트로 마무리되곤 했다.

 

사춘기 때 가장 좋아하던 시는 유치환의 <행복>이었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란 행이 어찌나 멋져보이던지.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에도 단골로 등장하던 아이템이었다. 지금도 시가 외워지는 걸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던가 보다. 시에 담긴 의미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을 10대에게.

 

13.9. 행복감을 극대화시켜 준다는 온도라고 한다.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나라, 행복하게 해주는 음식들, 행복한 날씨, 행복감을 가져오게 하는 행동 등 행복의 조건이 쏟아지다 못해 이제는 온도까지 측정하는 세상이다. 심리학적, 사회학적, 과학적인 시각에서 수많은 연구가 쏟아진다. 인터넷 검색창에 행복을 치면 자동 완성되는 첫 문구가 행복주택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주제일 것이다.

 

<행복 교과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행복 관련 수업의 교재로 적합해 보인다. 성인을 위한 강좌에 쓰여도 괜찮을 것 같고. 전체적인 짜임은 요소별로 호기심을 일으키는 사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이야기들, 실험적인 연구 결과, 삶에 적용할 활동, 생각의 확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전개-정리3단계로 이루어지는 수업 방식에 걸 맞는 체계이다.

학창 시절에는 졸다 그어진 연필의 행위예술과 침 세례를 받았지만, ‘교과서야말로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지혜가 듬뿍 담긴 인간계의 바이블이다. 작은 아이의 역사책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도덕책도, 과학책도, 다른 교과서들도 내용에 대한 서술 방식이 매우 체계적이다. 여느 논설문 못지않다. 책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지나고 나서야 장점이 보이다니.

뼛속까지 교과서인 듯 단원 마무리 형식으로 요점 정리가 되어있다. 차례를 가만히 펼쳐놓고 삶에 적용할 부분을 생각한다. 새삼 특별할 것도 없이 크고 작은 경험으로 깨달은 내용들이지만, 읽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달라지는 <어린 왕자>처럼 신선하다.

 

관점 바꾸기, 감사하기, 비교하지 않기, 목표 세우기, 음미하기, 몰입하기,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나누고 베풀기, 용서하기9가지는 어느 하나이거나 마음에 드는 몇 가지를 택하여도 행복으로 가는 길과 통하는 원리들이다. 이번에는 음미하기몰입하기가 눈에 들어온다.

현재를 충분히 만끽하고 음미하면 주변이 느리게 흘러간다. 하나하나의 맛이, 한 음 한 음이, 한 걸음 한 걸음이, 한 호흡 한 호흡이, 단어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행동을 볼 때에도 천천히 관찰하게 되고, 뭔가를 느리게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한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한다. 요즘은 책 읽기와 글쓰기에 몰입하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봐야겠다.

행복의 또 다른 원리를 나에게 제시하라 한다면 버리기를 말하고 싶다. 집에 있는 물건 중에는 의외로 쓸데없는 것들이 많다. 이럴 때에는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좋다. 비워야 채울 수 있으니. 버리면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듯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버리기는 물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은 비우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카톡을 시작한 후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도 반드시 답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떨 때에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만 주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안부 카톡 한 번 보냈다가, 반응이 늦어지거나 답변의 내용이 내가 세운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거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카톡을 보낸 후에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훌훌 털어버린다. 곧바로 하던 일에 집중한다. 그러다보면 한참 후 상대에게서 카톡이 오면, 작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1인의 임상 실험으로 검증된 원리이다.ㅎㅎ

 

행복은 어떤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빨간색은 열정적이고, 파란색은 차갑다. 노란색은 밝고 보라색은 신비스럽고 초록색은, 황토색은. 어느 한 가지를 상상해보아도 행복이 주는 이미지로 나타내기에는 다소 강렬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에는 이 모든 색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흰 색이 어울릴까. 모든 빛들이 합쳐져 있지만, 그 빛들을 모두 반사해야 낼 수 있는 빛. 관점에 따라서는 반사를 거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나는 그것을 기부로 생각하고 싶다.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빛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대가 없이 건네어준다. 진정한 무소유라는 생각에 흰 색의 물체를 보면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행복해요? 행복해. 어떻게 행복을 확신해요?’드라마 남주인공의 대사가 여운이 되어 남는다. ‘살아있고, 좋아하는 사람 있고, 이렇게 같이 밥 먹고, 이러면 행복이지 뭐, .’

평범하고 당연한 일만큼 평범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일이 또 있을까. 쉬워 보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절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 편히 밥을 먹고,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세상은 어쩌면 이미 행복으로 가득한 지도 모른다. 가시광선의 영역을 넘어 존재하기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처럼, 진동수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초음파처럼, 이미 곁에 와 있지만 다만 느끼지 못하는 지도.

지금 행복한가? 스스로 질문해본다. 이렇게 행복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지금, 글을 쓰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지금, 책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지금,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손가락이 있는 지금. 살아있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지금, 나는 행복한가? 그래, 그래,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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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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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철봉의 녹처럼 잊고 있던 기억의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칼자국>에 나오는 어머니의 칼이었을까, <도도한 생활>에서 흐느끼던 피아노의 울림 때문이었을까. 소설 속 공간이, 길처럼 갈라져 나온 문장이, 불쑥 튀어나온 단어가 물처럼 스며든다. 한동안 굳어있던 기억의 알약들이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소설은 빛을 품는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 작가의 치열한 시간과 마음이 함께 버무려진 빛이다. 그 빛을 반사시키거나 통과시키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빛은 독자를 거쳐 다양한 명도와 채도를 지닌 또 다른 빛으로 탈바꿈한다. 별 감흥 없이 통과시킬 때 독자는 거울이 된다. 굴절시켜 마음에 담는 독자는 여러 형태의 렌즈이거나 프리즘이 되기도 한다. 한 편의 작품이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되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의식을 일깨우고 탄성을 자아내는 상상력이 담긴 작품도 매력적이지만, 나를 움직이는 건 일상적인 이야기, 그 안에 담긴 사소함이다. 소설 속 인물을 접한 나는 소설 밖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이면 세상에 하나뿐인 또 한 편의 소설이 내 옆에 놓인다. 다큐에 가까운 나만의 이야기이다.

 

8편의 작품에 담긴 각기 다른 방들을 보며 어린 나를 담았던 방을 생각한다. 벽에서 피어나던 곰팡이와, 구멍 뚫린 천장 밑으로 툭툭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내던 세숫대야와, 걸레 꽁꽁 얼던 방문 앞에 커튼처럼 드리워지던 쑥색 담요와, 반 지하의 공간에서 방향제인 듯 맴돌던 연탄가스 냄새를 떠올린다.

 

<침이 고인다>에서는 후배를 지겨워하는 심리가 집요하리만큼 치밀하게 묘사되어 내게 심어져있던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일깨운다. <성탄 특선>에서는 서툴기만 했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일이 생각난다. 이유 없는 행동은 없고, 의외로 다른 이들에겐 사소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진지해서 서글픈 이유가 많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기도>,<네모난 자리들>TV에서 보았던 다큐를 생각나게 한다. 내겐 다소 생소한 내용이라 깊이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평소 바라보지 못한 삶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뭉클하고 감동적인 한 편의 영화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식당서빙과 설거지, 인형 눈 붙이기, 파출부, 밤 깎기, 절의 공양주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으셨던 당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TV 앞에서 꾸벅꾸벅 조시던 어머니 곁에는 늘 글리세린이 놓여있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어머니의 손에 부드럽게 스며들던 액체. <칼자국> 속 어머니의 칼은 글리세린 병을 떠올리게 한다. 매끄럽지만 살짝 칼에 베인 듯 쓰라리다. 모든 감당은 당연하지 않고 세상에 당연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궁핍 혹은 넉넉함을 떠나, 말 그대로 누군가의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라웠던 까닭이다.'(p169)

 

<도도한 생활>의 피아노는 내게로 와서 하모니카로 변신한다. 어릴 때 유일하게 욕심이 났던 악기. 간절히 바라던 그것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숨을 불어넣던 순간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생생한 느낌이다. 언제 사라졌나 기억조차 나지 않던 물건이 왜 그리도 갖고 싶던지. 가끔 생각한다. 하모니카가 담고 있었을 부모님의 마음과 궁핍에 부딪혔을 망설임의 시간들을.

 

<플라이데이터리코더>라는 제목은 푸르게 빛나는 플레이아데스성단을 연상케 한다. 일시적으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던 블랙박스에 등장한 우주의 윤리는 짠함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하다. <칼자국>의 주인공이 사과를 돌려 깎는 모습을 지구의 자전으로 비유하는 우주적인 묘사 역시 신선하다.

 

김애란의 소설은 밝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어둡지만도 않다. 웃기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세밀화처럼 그려진 현실에 우주적인 상상력이 조미료처럼 뿌려진 서술이 그저 담담하다. 통통 튀는 팝송처럼 화려하지도, 헤비메탈처럼 자극적이지도 않다. 조금씩 출렁이는 담담한 랩을 듣는 느낌이랄까. 그다지 유쾌하지 않아 굳이 찾아 읽지 않는 색깔이다. 하지만 순전히 취향의 차이일 것이다. 그녀의 글에는 읽다 도중에 덮어버릴 수 없게 하는 끌림이 있으니. 코끝 찡한 느낌이 마음을 덮는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깊은 곳에서 서서히 흘러드는 심해 해류인 듯 뭉클함이 묵직하다.

 

살아가면서 마음속에는 자그마한 블랙박스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 깊이 간직한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만나면 봉인이 풀린다. <포켓몬스터>의 포켓볼처럼 하나씩 뚜껑을 열고 나오는 과거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있다.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기쁨도 있지만, 깊은 곳에 있던 감정은 짙푸른 바다를 닮은 슬픔이기 마련이다. 가끔은 필요한 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시간을 보냈다. 울컥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위태위태하고 가슴 아팠던 시간을 지나왔다는 안도감과, 현재의 시간과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시간과 공간과 사람의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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