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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추웠다. 바싹 말라버린 낙엽처럼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자니 으스스 한기가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감성이 소설 밖으로 튀어나와 우리 사회의 바탕으로 채색될 것만 같아서.
무채색을 연상케 하는 소설에서 나는 무성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냥 웃겼던,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눈에 띄는 무엇이든 두 손으로 조이는 모습에 가벼운 코미디 영화려니 여겼던 영화 <모던 타임즈>. 영화가 전하려 한 메시지를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을 지나서였다. 제대로 된 해석과 함께 듣게 된 의미는 전혀 다른 영화를 접한 듯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공장 노동자로 나사 조이는 일을 하며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으로 전락해버린 주인공 채플린은 자본주의의 체제 안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제작된 시기는 1936년이다.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났건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인공 지능을 가진 새로운 로봇이 등장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인간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져간다는 조바심을 지울 수가 없다. 과학과 체제의 발달 속에 인간의 존재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함몰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소설이 주는 느낌 역시 영화와 비슷한 패턴을 그린다. 처음에는 술술 읽히고 주인공의 엉뚱한 생각에 피식 웃음이 담겼던 책장이 후반부로 갈수록 느리고 무겁게 넘어간다.
편의점 알바로 살아가는 서른여섯의 주인공 후루쿠라. 그녀의 신체 리듬부터 모든 생활 패턴은 편의점의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버린다. 편의점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 그녀에게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감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식사를 ‘먹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이 날카롭게 아프다.
틈만 나면 우리 시대가 조몬 시대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시라하 씨와 함께 그녀는 소위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이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p98) 섬뜩한 문장이다. 주류는 옳고, 비주류는 그렇지 않은 것인가. 바람직한 삶이란, 보통의 삶이란 무엇인가. 나와는 다른 삶이라고 타인의 삶을 배재하고 비난하고 간섭할 권리가 있는가. 나는 주류일까, 비주류일까. 안정적이라고 믿어왔던 삶에 대한 기준이 살짝 흔들린다.
인간의 ‘인(人)’이란, 서로 기댈 수 있는 존재여야 하고, ‘간(間)’이란, 그 사이에 흐르는 따스한 감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은 인간다움으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근접하여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자신 있고 경쾌하게 답변하지 못하겠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의 삶 역시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의미 있는 무거움을 준다. 인간은 무거운 존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