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인간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은 한 편의 영화에서였다. 시에 관심이 가던 시기였고 시인의 삶이 궁금했다. 배우 강하늘이 나온다는 것만 알고 별 기대없이 혼자서 조조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고, 주인공의 마지막 한 마디 !’는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뭉클한 느낌으로 한참을 맴돌았다. 그와 함께 알게 된 배우 박정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더불어송몽규라는 인물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윤동주 못지않은 비중으로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안고 있던 세계는 박정민에 의해서 구석구석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주인공이 두 명인 영화 동주는 이렇게 한 명의 배우를 새롭게 각인시켜 주었다.

 

책을 선택하기 전에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다. 혹시 자기 자랑만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협소한 글은 아닐까. 내 시간과 돈을 들여서 굳이 다른 사람의 삶을 구경하는 관람객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산문집을 그리 선호하지 않게 된 요즘이었다. 영화가 주었던 여운이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아있었기에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저런 연기를 하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쓸까.

 

20136월부터 20168월까지 4년간 topclass라는 잡지사에 연재한 칼럼들이다. 한 달에 한 편꼴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주변에 이르기까지 삶의 소소한 풍경들이 담겨 있다. 치열하면서도 경쾌했다. 톡톡 튀는 문장에 미소가 지어지다가 썰렁한 농담에 큭큭 대기도 했는데, 매번 칼럼의 마지막에는 왠지 모를 여운이 뭉클하게 남았다. 영화 동주가 주던 느낌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자꾸 뭔가를 하고 싶었다. 영화 동주의 제작 과정에 관한 글 <>을 읽을 때에는 나도 여러 사람들과 뭔가를 같이 하며 끈끈한 동지애를 느끼고 싶었다. <상실의 시대>에 얽힌 일화는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강박>에 대한 글은 내게도 있는 정리 벽을 생각하며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 사무실의 내 책상에 키 순서대로 정렬된 종이와 책들, 욕실에 키 순서대로 상표가 앞에 가게 놓여있는 샴푸, 린스, 바디 클린저 통을 생각했다. 배우라는 그의 직업상 영화와 연기에 대한 글이 많이 등장하는데, 생소한 분야의 이야기가 왜 그리 공감이 되던지. 그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묘사한 이야기들은 나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될 만큼 일반적이었고 설득력이 있었다. 담백한 에너지바를 먹고 마음을 충전한 듯한 기분이 들어 개운하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글을 말로 옮기는 일을 하다가 말을 글로 옮기고 싶어졌다.’(p11) 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교과서에 나와 있는 글을 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을 글로 옮기고 싶어졌다는 말에 공감했다. 가끔 나와 주변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그런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평소 내가 말로 옮기는 글은 다른 사람의 생각인 셈이니.

 

솔직한 심리 묘사와 간결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계속 도전하며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습이 좋았다. 자기 자랑이 없으면서도 스스로에 대해 갖는 자신감이 좋았고, 뭔가를 하고 싶어지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표현 방식은 웃기지만 결코 우습지 않았다. 모든 칼럼의 마지막 부분에 담겨있는 삶에 대한 긍정은 많은 위안을 주었다. 다 잘될 거라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는 문장은 따끈한 호빵을 먹은 듯이 든든하고 훈훈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믿는다.’(p186)라 말하는 그의 글에는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가 궁금해졌다. 이런 책을 쓸 만한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쓸 만한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 그가 조금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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