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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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빠졌다. 이 나이에,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사람에게 반하다니! 나의 눈과 귀와 집게손가락을 사로잡은 <, , >.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른다. 수십 번의 조회 수는 한 사람의 소행임을 살짝 고백한다. 방탄에 빠진 딸내미의 마음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뮤직 차트 순위 좀 올려보겠다고 스트리밍을 해놓은 채 방에 폰을 놓고 등교하고, 멜론 자유이용권을 넘어 앨범 구입으로 충성도를 증명하던 마음을.

평소 음악을 좋아해서 <판타스틱 듀오> 동영상을 자주 찾아 노래를 듣는다. 리듬깡패와 태양이 부른 그 노래, 조회 수가 우월하게 많아서 호기심에 그냥 한 번 본 것뿐인데. 그 날 이후 며칠 째 노래 한 곡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었다. 출근길에는 음악으로 듣고, 퇴근 후 집에 왔을 때나, 밤에 자기 전에는 동영상을 반복 재생한다. 중간 중간 생각했다. 나만 그런 건가, ~

그즈음 접하게 된 책이다. 마음속에 맴돌던 말이 제목으로 떠억 나타나니, 그럴 때가 있던 나는, 약간은 절박한 마음으로 후루룩 책장을 넘긴다. 남들도 그럴 때가 있는 걸까.

 

책의 내용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그럴 때 있으시죠? 우리가 보이기는 합니까? 우리 이렇게 살 수 있는데라는 제목 안에 작가와 그의 주변, 사회적인 사건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350쪽의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 있는 입담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중간 중간 맞장구도 치고 때로는 코끝 찡한 마음을 안고 가끔은 나를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의 이야기 속에 나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비벼 넣었다.

글을 읽었는데 몇 시간 동안 따뜻한 대화를 나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구어체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토크콘서트의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리라 짐작케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문장을 읽었다는 표현보다 이야기를 들었다 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라고 언제나 웃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제 인생 목표는 모두가 함께 웃는 거예요.(p6)’ 라는 그의 목표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중간에 섞인 단어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는 이 책 안에서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마음이다.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만 웃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니. 부록으로 실린 <성주 사드 연설 전문>에는 모두와 함께 하려는 그의 노력이 담겨있었고, 그 연설은 행동이 답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마인드가 좋다. 책표지 안쪽에 있는 친필 사인 복사본에 적힌 글귀를 보고 들던 생각이다. ‘아직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은 달’(p7)이란다. 그가 한 말이니, 그의 말이라면 왠지 믿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 때 가장 좋아하던 말은 자유였다. 구속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받침도 없는 두 글자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자유로운 분위기부터 좋아서였다. 그의 시각은 독특하고 깊이가 있다. ‘자기 이유로 사는 것, 그게 바로 자유겠지요.’(p18) 이 문장에서 한참 마음이 머문다. 나의 이유는 무엇일까. 내 삶에 대하여, 내 삶의 이유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야겠다.

 

그 노래를 부를 때의 태양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정도로 섹시했다. 남성적인 매력이 훅 다가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내 마음 한 가운데로 들어온 것은 세 가지 면이었다. 눈빛과 목소리와 발걸음. 함께 하는 파트너에 맞춰 배려하며 노래하려는 마음이 눈빛에서 드러나는 순간, 마음이 두근거렸다. 가성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목소리도 좋았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발걸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발의 움직임이었다. 무대 바닥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 편의 이야기와 같던 노래. 감정이 고조되면서 한 걸음씩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가던 발걸음은 몇 번을 보아도 숨을 멈추고 바라보게 했다. 그 장면이 섹시하면서도 아팠다.

이제는 모든 감정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감정이 올라온 거 아닐까요? 슬픈 건 나쁜 감정이 아니고 이유가 있으니까 슬픈 거겠죠. 그러니 그 슬픈 감정을 존중해줘야죠.’(p112)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태양의 발걸음이 다시 떠올랐다. 발걸음이 불러일으켰던 나의 감정을 생각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슬픔이, 외면하고 늘 덮어버리기만 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한 곡의 노래와 한 권의 책에 담겨있는 몇 개의 문장들이 봉인을 풀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조금은 덜 아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책에서 가장 좋았던 말은 당신은 늘 옳다!’(p115)였다. 느낌표가 가슴에 찍히는 것처럼 보는 순간 뭉클했다. ‘누구도 당신만큼 당신 인생을 고민하지 않았고, 누구도 당신만큼 당신을 잘 알지 못해요. 그러니 당신은 늘 옳다!”이 한마디, 믿으셔도 좋아요.’(p115) 어쩌면 이제껏 누군가로부터 가장 듣고 싶던 말은 아니었을까.

 

책표지를 감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다시 바라본다. 깊은 데서 우러나온,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에 확 끌린다. ! 섹시하다는 생각까지! 조만간 투덜대는 딸내미를 소년들의 앨범으로 유혹한 뒤 콘서트 현장에 같이 앉아있을 지도 모를 일이겠다.

난롯가에서 딱 한 개 남은 군고구마를 나눠먹은 기분이랄까. 둘 다 배고프지만, 둘 다 든든하고, 둘 다 따뜻해져있는. 두 손 가득 뜨끈한 고구마를 감싸 안고 절반 딱 갈라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호호 불어가며 달짝지근하고 노오란 속살을 한 입 가득 베어 문 느낌이다. 읽는 내내 찡한 코끝을 지나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르는 상대에게서 이런 친근감이 느껴지다니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의 힘이 놀라웠다.

 

오매불망 동영상의 댓글을 훑어본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내 나이또래의 글로 추정되는 수많은 댓글은 사람의 느낌이란 게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만 본 줄 알았던 그 눈빛을 이 사람도 보았고, 나만 느낀 줄 알았던 영화 같은 분위기를 저 사람도 느꼈던 거다. 사람에게 반하는데 나이는 걸림돌이 되지 않음을. , 내가 태양과 어찌 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평생 만져(^^;)보기는커녕 만나보지도 못할 남자 인간 한 명 잠시 마음에 둔다고 남편에 대해 역모를 꾀하는 것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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