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 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
수잔 시마드 지음, 김다히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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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처럼 찍히는 장면이 있다. 보고 또 보아도 자꾸 잊어버리는 50대의 나를 순식간에 10대로 돌려놓은 사진, 80대 노모의 알몸이다. 투명하게 증발해 버린 왼쪽 유방, 두어 겹으로 출렁이는 뱃살, 탄력을 잃은 피부, 왜소한 다리가 심장에 새겨지는 문신인 양 선명하게 각인된다. 어머니의 왼쪽 팔목이 골절되는 바람에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보게 된 몸이다.

11cm 자그마한 체구로 조각되었다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당신의 몸이 겹친다. 다산의 상징이라는 조각상 말이다. 밀로의 비너스처럼 육감적인 모습도 아닌데 왜 하필 '비너스'라 부르는지 의아하게 여기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라는 필터를 끼우니 그 이유가 한순간에 이해된다. 한때 날씬했을 몸이 그렇게 변해버린 이유를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포동포동한 몸에 미의 여신이 가당키나 하냐며 고대인의 안목을 의심했다. 가볍게 웃던 기억에 무게감이 더해진다. 더 이상 우습지 않아진다.

셀 수 없는 날들, 나를 씻겨주시던 몸을 난생처음 씻겨드리고 왔다. 그 몸이 지나온 시간을 가늠한다. 수많은 나날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그 몸에, 불완전한 세포를 내내 뱃속에 품어 온전한 생명체로 만들었던 그 몸에, 휘몰아치는 삶의 파도를 감내하며 울타리가 되어주던 그 몸에, 품 안에서 떨어져 나온 지금까지 여전히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그 몸에 '비너스'처럼 적절한 명칭이 또 있을까.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식물계의 비너스가 걸어온 내밀한 삶의 여정을 탐구한 책이다. 동시에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저자 수잔 시마드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거대한 숲을 논하는 대장정에 왜 개인의 삶이 끼어드는가. 간지처럼 끼워지는 저자의 일상이 처음에는 껄끄러웠다. 저자의 가계도를 둘러싼 배경지식까지 굳이 알 일인가. 연구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야 그렇다 쳐도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남편, 친구와의 소소한 관계까지 등장하니 마음이 뾰족해진다.

숲의 삶과 저자의 삶을 병치시킨 이유를 납득하게 된 건 책장 날개의 오른쪽 두께가 점점 줄어들면서이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과 지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나무들의 삶이 호수에 비친 그림자인 듯 닮아있음을 깨닫는다. 세상을 채우는 삶의 방식은 적자생존만이 아니었던 거다.

경쟁만이 난무하는 듯 보이는 세계에도 따스한 협력은 봄꽃으로 피어난다. 프랙탈인 양 서로 닮은 속성을 발견하며 생명으로서의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한다. 인간과 나무의 삶을 동시에 바라보니 서로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가 무너진다. 숲속 나무들 사이에 경계가 없는 것처럼. 이 나무의 영역, 저 나무의 영역이라 선을 긋는 건 숲의 정체성에 무지한 인간의 잣대일 뿐이다. 다른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니 불편하겠지, 이 나무는 영양분을 일방적으로 빼앗아 갈 거야. 제멋대로 판단하여 도끼를 휘두르고 제초제를 뿌리는 인간에게 나무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나무의 언어를 해석한다는 건 지난한 기다림을 감내하는 일이다. 왜 이곳의 숲은 무성하고 저곳은 황량해지는가. 왜 그곳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찬란하다 순식간에 사그라드는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묵묵히 뻗어나가는 삶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시간을 걸어갈 뿐이다.

비밀의 문을 열어보려는 삼림 과학자 수잔 시마드는 침묵의 언어에 도전장을 내민다. 한 사람의 뜨거운 열정은 종이 한 장 한 장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학자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을 넘어서는 저자의 사랑이 보인다. 숲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도전들이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중간중간 세상의 편견이 가로 놓인 허들 경기에서 장애물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높다.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전류의 속성과 닮아있다. 세상은 방해 요소로 보이는 나무를 당장 베어내거나 제초제를 뿌리면서 단기적인 이득을 취한다. 근시안적인 편견에 여성 과학자를 대하는 편견까지 더해지니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생명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그녀의 싸움이 시작된다.

영어로 제시되어 해석하지도 못할 참고 문헌의 기록을 보며 찡함을 느낀다. 34페이지에 달하는 책장을 천천히 넘겨본다. 연구에 담긴 열정의 땀방울을 가늠한다.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드넓은 바다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 많은 사람의 의지는 거대한 어머니 나무인 듯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낸다.

 

책 안에 촘촘히 기록된 저자의 글이 종이로 만들어지는 나이테 같다. 삶이 고스란히 찍히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말이다. 나무의 삶에는 지우개가 없다. 바람의 온기와 햇살이 머무른 시간이 화석처럼 남는다. 저자의 삶과 열정, 생명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보니 거대한 숲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한 사람의 의지가 이렇게 숲을 이루었구나.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 이 떠오른다. 흑백 애니메이션을 다시 찾아본다. 소설인지 다큐인지 경계가 애매하여 실제로 일어났음 직한, 정확히 말하면 일어났었기를 바라게 되는 작품이다. 볼 때마다 뭉클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안는다.

나무라는 존재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전해주는 이유는 무얼까. 끊임없는 나눔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나눔이 이루어지는 연결 통로, 저자의 놀라운 발견을 <네이처>에서는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 칭한다. 인터넷 네트워크처럼 나무들이 땅속 세계에서 거미줄처럼 얽힌 채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협력한다는 사실이다.

아카시아 나무들은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경우, 그들만의 소통 방식으로 향기를 퍼뜨려 이웃 나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고 들었다. 서로 다른 종의 나무들은 빛을 두고 경쟁하지만 동시에 탄소를 공유하면서 협력하는 삶을 이어간다. 가문비 나무에서 출발한 저자의 연구는 미송과 자작나무, 오리나무로 영역을 넓혀가다 숲 전체의 연결망으로 확장된다. 그 중심에는 진균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진균은 '진짜 균'이라는 의미로 곰팡이를 가리킨다. 이들은 광합성을 할 수 없으므로 기생 생활을 한다. 균근은 곰팡이의 균사와 식물 뿌리의 상호공생체를 지칭하는 용어다. 균근균은 효모, 버섯을 포함하는 균류의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균근균은 많은 식물종과 공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식물의 95%는 대부분 균근성이라고 한다. 흙 속에 뻗어있는 뿌리만으로는 생존이 불완전하다는 의미이다. 촘촘한 균근으로 땅속의 물이 식물의 뿌리에 전달되면, 식물은 그 보답으로 진균에게 영양분의 일부를 건네준다. 완벽한 공생이다.

균근균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 외생균근으로 실처럼 생긴 균사가 식물 뿌리의 표피를 둘러싼다. 식물 세포 밖에서만 존재하고 뿌리의 안쪽까지는 침투하지 않는 균근이다. 둘째, 수지상균근은 나뭇가지 모양으로 뿌리 안쪽까지 뻗는다고 한다. 80% 이상의 육상 식물이 수지상균근균과 공생한다고 전해진다.

나무와 진균의 공생 관계에 나무들 사이의 공생이 더해진다. 홀로 자라는 뿌리는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에너지와 자원을 공유하며 다른 나무나 진균과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도 저 혼자 자라지 못한다. 인간이 그러하듯이. 결국 인간 세계처럼 숲 역시 긴밀한 시스템으로 생명을 유지한다는 거다. 저자가 존경스러운 건 이 모든 사실을 사전 지식 없이 오롯이 실험으로 밝혀냈다는 점이다.

 

576쪽에 이르는 두께에 비해 실험 내용을 따라가기에는 예상보다 난해하지 않았다. 종종 전문적인 실험 과정이 등장하지만 나무보다는 숲 전체를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다만 '묘목이 찾아낸 붙어서 자랄 토양은~' 처럼 일부 문맥이 어색하며 사소한 오타가 눈에 띈다. 문체에 익숙해지면 점차 나아지지만 매끄럽지 않은 노면을 걷는 듯 시선을 멈추곤 했던 과정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천천히 저자를 따라갔다. 속도를 내려야 낼 수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버섯 이름이 꾸역꾸역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리도 버섯 천지였던가. 느타리, 양송이, 표고, 팽이 등 슈퍼마켓에 널린 버섯은 병아리 오줌이었던 거다. 애주름버섯, 비단그물버섯이 뭔지, 식용인지 독버섯인지 지식백과와 이미지를 찾으며 산책 걸음이 된다.

비글이 야외 변소에 빠져 구덩이 옆 땅을 판 이야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토양의 구조를 떠올린다. 이론적으로만 알던 기반암-모질물-심토-표토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니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통나무에 깔리거나, 통나무 틈에 짓이겨지거나, 통나무를 부수려는 다이너마이트에 손이 날아가거나, 나무 절단용 회전 초커에 손가락을 잃거나, 통나무가 등에 떨어져 허리가 굽거나. 거대한 자연과 마주하는 나무꾼들의 삶이 묘사된 장면에서는 야생의 땀 냄새가 훅 끼얹어지는 듯하다.

나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과정에서는 설계부터 실행 단계에 이르기까지 동료 과학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저자의 탐구 과정을 따라간다. 생물이니 변수가 많아 까다롭지만 그만큼 의미가 큰 작업이리라.

 

생물의 특성이 많이 알려지기 전, 생물은 흔히 동물과 식물의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동물과 식물의 삶은 흑과 백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듯 보인다.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는 나무가 아날로그라면 매일 세포가 탈락하고 재생되는 동물은 디지털 생명체에 가깝다. 동물인 나의 몸을 이루는 세포는 태어났을 때 지니고 있는 그것이 아니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삶과 인간의 삶에는 공통 분모가 있다.

외생균근의 진균 균사가 풍성하게 붙어 둘러싸인 뿌리 끝 사진을 본다. 땅속에 투명한 튜브를 넣어 뿌리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미니라이존트론이라는 기기로 촬영했다는 사진이다. 인간의 피부 아래에서 온몸에 걸쳐 존재한다는 거대 기관이 떠오른다. 유체로 채워져 있기에 피부를 절개하는 순간 허물어져서 결코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이질'이라는 기관이다. 진균 균사와 사이질 모두 생명을 보호하는 방패처럼 든든한 구조이다.

알츠하이머의 신경 연결망과 균사의 연결망을 비유하는 장면을 넘어서니 시야가 확장된다. 발로 딛고 있는 흙이 거대 생명체의 일부로 여겨진다. 지구라는 존재의 뇌 속에 식물 뿌리와 균사가 얼기설기 연결되어 있는 듯이.

생물 다양성을 접하면서 학교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각각의 학급은 모범생과 사랑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 분포하는 군집이다. 다양한 아이들이 섞여있는 공간이 숲을 닮아있다. 숲과 더불어 자라나는 나무들처럼 어쩌면 아이들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면서 성숙하는 게 아닐까.

 

거친 피부를 두른 채 성숙하는 나무를 보며 어머니를 품고 있는 비너스를 연상한다. 청순가련형이나 매끈한 몸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몸통은 군데군데 벗겨지고 패이거나 갈라져 있다. 고스란히 새겨진 삶의 굴곡이 어머니의 그것과 닮아있다. 숲을 만드는 근원, 어머니 나무 위로 나의 어머니가 겹친다.

내 생명의 근원이 사그라드는 걸 지켜본다는 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슬픔을 마주하는 일이다. 이 책에서 본 어머니 나무처럼 나의 어머니도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언젠가는 자연으로 머무시리라. 그게 자연이야, 이게 자연스러운 거야,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심장을 다독인다.

모든 사물에는 언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소립자는 끊임없이 진동하며 소리는 진동이니까. 가청 주파수에 포함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리라. 나무의 언어를 상상하며 드넓은 지하 세계를 그린다. 포슬포슬한 흙 구슬을 얼기설기 꿰어 만든 이불을 덮고 숨 쉬는 공간. 그 안에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생명들이 분주한 삶을 이어간다.

저자는 언급한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나무를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 아니라 나무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라고. 말 없는 나무의 생을 알아가는 건 인간의 생을 이해한다는 의미일까.

고요한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난한 걸음을 지켜본다. 나무의 어머니가 걸어왔고 나의 어머니가 걸어왔으며 어머니로서 내가 나아갈 걸음에 마음이 머문다. 뭉클한 감동이 진균에서 뻗어 나오는 균사처럼 심장에 퍼진다. 묵직한 파문이 인다.


p85, 5째 줄: 소량의 물이 느리게 흘러 모인 모이는 움푹 파인 지대 ~ 흘러 모이는 움푹 ~

p104, 첫째 줄: 향 해 향해

p155, 마지막 줄: 태더볼 테더볼

p169, 2째 줄: 자릴 자랄

p174, 4째 줄: 바와 대로 바대로

p180, 12째 줄: 상충부 상층부

p308, 6째 줄: 유층 유충

p318, 마지막 줄: 플루오렌센스 플루오레센스

p320, 첫째 줄: 텔리마크 텔레마크

p328, 밑에서 7째 줄: 식사으로 식사로

p377, 밑에서 10째 줄: 블루베리 블랙베리

p385, 밑에서 3째 줄: 라틴 어 라틴어

p465, 밑에서 11째 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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