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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 아득한 밤 반짝이는 돛단섬

부드러운 햇살 품고 고이고이 접혀서

짙푸른 바람결 타고 출렁출렁 떠가네

 

내 안의 깊은 바다 오도카니 섬 하나

시린 눈물 머금고 점점 더 가라앉다

따스한 돛단섬 좇아 서서히 떠오르네

 

섬과 섬이 만나면 육지로 이어질까

당신과 나의 섬도 언젠가는 저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길 한발씩 디뎌보네

 

 

*2019. 9. 28. H 시조 백일장, 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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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 신영복의 세계기행, 개정판
신영복 글.그림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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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나는 책이 있다. 천천히 읽다보면 향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흠뻑 젖는 책. 마지막 책장을 덮고 일상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코끝으로 깊숙이 스며들던 향기가 오래 맴 도는 책이다. 그의 책에서는 나무 향이 난다.

그의 책들은 매번 읽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때론 불편하고 가슴 아프지만 잊은 듯이 그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본다. 일상의 관성에 마음을 내맡긴 채 심장이 굳어가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종종거리다 이 책을 만났다. 심장이 차츰 몰랑거린다. 분명 달달한 문장들은 아니다. 나를 들썩이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여행 관련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요즘 TV에서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 부류라던가. ‘여행하기, 먹기, 여행가서 먹기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불과 몇 년 전보다 여행을 향한 관심들이 부쩍 높아졌다. 여행에 대한 책들도 많이 등장했다. 여행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여행지에서의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듬뿍 담겼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강의>, <처음처럼>으로부터 얻은 작가의 이미지에서 여행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의 책은 여행의 무엇을 소개해줄까.

책날개를 넘기니 세계지도가 펼쳐진다. 각 대륙에 분포한 54개의 장소들이 빨강, 초록, 파랑, 보라, 회색빛 LED전구를 심어놓은 듯 점점 박혀있다. 우와! 참 많은 곳을 기행 하셨구나. 위키 백과적인 지식만이 실려 있지는 않을 텐데. 맛 집이나 여행 경비를 절약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실 리도 만무하다. 이 많은 장소에서 그가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 점점 더 궁금해진다.

 

1부는 콜럼버스의 우엘바 항구에서 출발한다. 원주민과 신대륙 발견에 대한 역사의 서술은 강자의 논리를 숙고하게 만든다. 땅을 소유하고자하는 인간의 욕심은 집착에 가까우리만큼 집요하다. ‘대륙의 발견이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원래부터 그 땅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존재를 투명하게 만드는 잔인한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 바꾸기를 말하는 것부터 그의 세계여행은 시작된다.

그의 여행지를 따라가며 세계사에 등장하는 전쟁들을 새삼 들추어본다. 스페인 내전,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30년 전쟁, 베트남 전쟁, 2차 세계대전, 프랑스 혁명, 피의 강 전투 등 전쟁의 현장들이 다른 의미로 자리한다. 전쟁으로 스러져 흙이 된 사람들의 존재가, 무심코 잊혀져있던 과거의 그들이 저자의 발밑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유럽 여행을 그려볼 때면 알프스 산맥의 광활한 순백, 에펠탑의 화려한 조명, 그리스 로마 시대 유적지의 찬란함,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을 압도적인 미술품 등이 궁금했다. 그는 여행지의 풍경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했던, 앞으로 존재할 인간을 본다. 성채와 신전들 아래 묻힌 수많은 주검들을, 콜로세움에서 혈투하던 동물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만리장성의 거대함을 보고 감탄하기보다 건축물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속에 담긴 무수한 인간의 희생을 본다. ‘건물을 바라볼 때는 크기를 보기 전에 먼저 그것이 무엇을 위한 건물인가, 누구를 위한, 누구의 건물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p148)’ 건물 이전에 그 건물을 세운 사람들과 그 안에 존재했을 사람들을 망각한 채 껍데기만 보려한 거다, 나는.

 

2부에서 저자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을 읽으며 스타의 꿈이 좌절된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이며 어떤 가능성을 열어 주는 꿈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214)’, ‘꿈보다 깸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p218)’ 꿈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해야하는지 곰곰 생각해본다.

마야, 아스텍, 잉카 문명의 고대인들이 인간을 희생으로 치른 의식들은 무엇을 위한희생이었을까. 인간의 구원이 오로지 인간의 희생으로서만 가능하다던 그들의 믿음은 맹목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행해지는 그보다 더한 세상의 모습들을 보면 과거의 그들이 마냥 미련했다 치부하기는 어렵다.

건물을 지탱하는 힘은 보이지 않게 묻혀있는 기초공사의 탄탄함에서 온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진정한 변화는 지상의 변화가 아니라 지하의 변화라야 합니다.(p253)’ 지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중이라 불리는 집단일 터이다. 먹이피라미드로 보면 생산자인 식물이 같은 맥락일까. 나무 한 그루는 힘이 없는 듯 보이지만 나무와 나무가 더불어 모인 숲은 막강한 존재가 된다. <더불어 숲>이라는 책의 제목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울창한 숲이 되려면 나무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숲을 연상하며 손과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작가의 글에 BGM처럼 흐르는 인간이라는 음악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예전에는 빠른 게 좋았다. 이제는 느린 게, 기계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대상들이 좋다. 그의 문장은 느림의 미학을 구체적인 비유로 보여준다.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p370)’ 느리고 향긋한 가을 길의 풍경을 상상한다. 천천히 호흡을 한다. 마음이 화해지면서 평온해진다.

 

차례 자체가 화두이면서 한 줄의 경구 같다. 차례만 따로 천천히 읽어보아도 마음이 정갈해진다. 1부와 2부는 어찌 보면 대조적이다. 1부가 서사시라면 2부는 서정시의 색채가 짙다. 1부는 땅, 전쟁, 역사, 과거를, 2부는 하늘, 관계, 문화, 미래를 떠올리게 한다. 여행지마다 이러한 요소를 중심으로 이야기와 생각이 펼쳐진다. 1부를 지나 2부까지 모두 건너니 오롯이 현재가 남는다.

꽉 차지 않은 여백이 좋다. 그의 글이 건네는 여백은 깊고 넓다. 엽서 그림들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 안으로 포옥 들어간 나는 문장 사이사이에 나의 생각을 채우며 그를 따라 걸었다.

여행은 돌아옴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되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p14)’ 막연하게 꿈꾸던 여행에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준 책이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 가슴에 신선한 공기를 품고 돌아와 어떻게 현재를 걸어가야 할지 이끌어주었다.

2020일의 시간과 함께 흘러들어왔을 방대한 지식을 그는 결코 앞세우지 않았다. 담담하게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며 스스로의 울림을 지닌 내용은 편지글 형식의 친근함과 함께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그게 공명이 되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걸까. 흔들리는 나무가 된 나. 이 글을 읽고 그의 책을 펼칠 당신 역시 흔들리는 나무가 된다면. 이렇게 흔들리는 나무들이 어느 순간 더불어 숲을 이루는 걸까.

그의 여행기는 달랐다. 그는 여행지와 사람을, 역사와 문화를, 개별적인 존재와 관계를 연결하여 나에게 목적어를 넘겨주었다. 현재에 있는 나는 무엇을 볼 것인가. 목적어를 안게 된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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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9-2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지내시나요, 나비종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감성이 한층 더 깊어진 리뷰로 잠시 마음에 쉼을 얻고 갑니다.

저도 이제는 신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날로그가 더 그립고 클래식한게 저랑 맞더라고요. 젊은 나이지만 마음은 아재가 되었나봅니다ㅎㅎ

요즘에 도통 독서를 못했는데 그나마 나물모임덕에 끈을 놓지는 않았어요.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래서 나비종님과 빨리 책 수다를 떨고 싶어지네요^^

나비종 2019-09-28 01:24   좋아요 1 | URL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부드러운 휴식처럼 읽는 이를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그런 글의 향기가 제 리뷰에 조금 묻어나왔나 봅니다.^^

아날로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이메일이란 게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0.1초만에 상대에게 전달되는 그 스피드함에 감탄을 한 기억이 납니다. 한데 요즘에는 어쩌다 천연기념물 보듯 드물게 눈에 띄는 빨간 우체통을 보게 되면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고픈 생각이 들곤 해요. 상대에게 전달될 순간을 상상하며, 다시 상대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시간까지의 기다림이 정말 행복하고 설렜거든요.ㅎㅎ

저역시 요즘 이래저래 좀 바빴는데 나물과의 소박한 약속 덕분에 무사히 읽어냈어요. 이 댓글 달고 얼른 물감님 방으로 놀러가야겠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카롱 에디션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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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된 기분이었다. 차라투스트라님은 산에서 내려왔다 동굴로 왔다갔다 500여 페이지를 지나오시는 동안 끊임없이 말하셨건만 내 귀에 캔디도 아니고 내 귀에 경 읽기였던가. 그대 앞에서 나는 왜 이토록 작아졌는지.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깨달았다. 메타포의 향연이구나. 망했구나. 광활한 뷔페식당에 무모하게 발을 들여놓았구나.

입구에서 갈등했다. 그냥 돌아갈까. 계속 들어가 볼까. 두께에 망설이고, 무려 니체에 망설이고, 무엇보다 초라한 나의 그릇에 망설였다. 간장 종지에 한 솥 끓여낸 곰국을 쏟아 붓는 격 아닌가. 선뜻 표지를 넘기기 어려웠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호흡 크게 하고 첫 장을 펼친 건 부끄럽게도 지적인 허영심 때문이었다. 제목을 들어본 사람은 많아도 정작 끝까지 완독한 사람은 드문 책. 차라투스트라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몇 걸음 더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첫 문장은 바다에 관한 것이었다. ‘더럽혀진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오염이 되지 않으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p18)’ 가슴이 한껏 넓어지는 듯했다. 문장이 은유하는 의미가 어렴풋이 다가왔다. 신영복 선생님의 바다가 떠올랐다. 강물이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된다는 내용 말이다. 그래, 끝까지 가보자. 일단 나에게 익숙한 요리를 골라먹는 것으로 만족하자. 마음을 울린 문장들을 메모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삶과 자신에 대한 고찰이 담긴 문장들이 와 닿았다. 핵심이 되는 한 단어를 말하라면 자기 자신의 주인을 의미하는 위버멘쉬를 꼽고 싶다. 삶의 여정을 동물에 비유한 문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개념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총총히 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처럼, 정신은 자신의 사막으로 총총히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쓸쓸하기 짝이 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이곳에서 정신은 사자가 되고, 자유를 쟁취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p36)’ 사막의 주인을 위버멘쉬라 한다면 나의 삶은 어느 즈음 왔을까. 낙타와 사자의 중간정도일까.

 

적절한 비유들에 소름이 돋았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깊은 데서 나와 그 높이에 도달한다.(p212)’라는 문장은 지적인 사유의 깊이를 의미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상상했다. 산맥의 꼭대기에서는 조개 화석이 발견된다. 과거 바다 밑에서 생성된 두터운 퇴적층이 융기하여 만들어진 거대 산맥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단단한 바위를 뚫고 단단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p236)’라는 문장은 물질세계의 속성으로 정신세계를 설명한다. 가시적인 세계가 모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양초가 연소하면 물과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뀌는 화학 변화이다.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자는 언제나 파괴해야 한다.(p83)’라든지, ‘먼저 재가 되지 않고 어떻게 거듭나려고 하는가?(p90)’와 같은 문장들은 화학 변화를 연상케 한다. 원자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원자가 해체되었다 재배열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자신에게도 비슷한 맥락의 파괴가 일어나야 거듭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p159)’ 불을 붙이는 도화선처럼 극복을 위해 필요한 건 용기일 터이다. 결국 철학이란 보이는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는 학문이 아닐까.

 

인문고전의 의미를 톺아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음식들이 차려진 뷔페식당의 풍경을 상상했다. 거대한 공간에 들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저마다의 그릇에 담긴 서로 다른 음식들의 조합을. 당신과 나는 이토록 다르다. 한 사람마저도 상황에 따라 매번 덜어가는 음식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평소의 취향만으로 선택하면 결코 새로운 맛을 알기 어렵다. 원숭이 골처럼 도무지 그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도, 독서도 이와 같다. 인문고전이란 뷔페식당에서의 새하얀 접시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들고 있지만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 공통된 삶의 본질이 고유성을 거슬러 몇 백 년 이어지는 인문고전의 힘이 되어 나오는 것이리라.

 

종교적사회적철학적 배경 지식의 내공이 있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책이다. 니힐리즘을 넘어 세계의 본성, 위버멘쉬나 초인, 진리의 본질에 대한 대략적인 냄새는 맡았지만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그리기에는 아직 무리이다. 다른 이들에게 명확히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일단 엄지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최대한 찢어본 셈이다. 고통스럽지만 아직 유려한 연주까지는 하지 못하는 초보자처럼.

손가락을 한껏 벌려보았다는 시도 자체로 의의를 찾고 싶다. 어쨌든 이 식당의 출구를 빠져나왔으니. 과장된 어투나 상황에서 종종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던내용 중 입맛에 맞는 몇몇 문장들을 단편적으로 소화시켰다. 화려한 중화 요리 식당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만 먹고 온 셈이다.

매년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메뉴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주고 싶다.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년에는 탕수육을, 이후에는 반월침강까지 도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500여 페이지를 지나오면서 결론으로 남는 한 문장은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다.(p209~210)’이다. 삶의 의미를 천천히 정리해본다. 안도감이 드는 것은 이미 지나온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다만 이에 대한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두렵지만 설레는 것은 다가올 삶은 온전히 내 의지의 몫이라는 점이다.

변한 건 아직 없다. 여전히 나의 삶은 혼란으로 가득하고 미래에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갈등의 고비들이 넘어야할 허들로 놓일 것이다. 그래도, 가보려 한다. 깨뜨려야 변화할 수 있으니. 나의 삶을 나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나만의 걸음을 떼어보려 한다. 차라투스트라가 한 말을 따라와 보니 나는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 2019. 8.-9. 2019년 I 독후감 대회,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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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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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인 사람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에서는 흑백 사진 속 풍경과 비슷할 거라 한다. 전색맹은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명암만을 감각한다. 이 세상 누군가는 잿빛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색맹 중 가장 흔하다는 적록색맹은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가까이 있을 때 두 색은 모두 회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모든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미술이나 운전 관련 직업 선택에 제한을 받을 뿐이야.” 수업을 하며 나는 말했다. 다만 불편한 거라며 이해한다는 듯 오만한 말을 뱉어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인간의 감정을 무려 48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48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희로애락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 이 책의 주인공 윤재가 지닌 감정 표현 불능증이다. 아몬드를 닮은 뇌 속 편도체가 발달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전두엽 이상으로 생긴다는 사이코패스는 들어봤어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존재는 생소했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의사 요한>의 주인공 요한은 ‘CIPA’라는 병에 걸린 인물이다. ‘CIPA’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각증이다. 뜨거움도 차가움도 그 어떤 고통에도 그의 몸은 반응하지 못한다. 몸에 칼을 대고 수술을 하는 순간조차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주사바늘에도 벌벌 떠는 나는 그런 질병을 품고 사는 이의 마음을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통각을 느끼지 못해 몸을 피하지 않으니 위험하겠다, 그러니 불안하겠다,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즈음 이 책을 읽었다.

아프지 않으면 좋지 않나. 1차적으로 드는 생각이지만 무통각증 환자에게는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생명에 위협을 가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의 그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외부자극이 와도 감각하지 못해 피하지 않으니 위태로운 상황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아픈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구나. 아파야 몸의 이상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으니.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지. 별개라 생각해왔다. 공통적인 속성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드라마와 이 책을 통해 몸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병이 든다는 것은 몸이 말을 하는 거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슬픔이나 괴로움과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마음이 말을 하는 것이리라. 어서 나의 마음을 돌아보라고. 몸이 느끼는 감각, 마음이 느끼는 감정에는 통증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아프다, 아프다며 몸이 통증으로 말하고, 아프다, 아프다며 마음이 통증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통증이란 언어와 같은 의미인걸까.

 

삶이 힘들 때마다 믿지도 않는 신을 종종 원망했다. 난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어렵냐며 투덜댔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p81)’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문장이다. 이 책 속에는 다르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뭘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굴 기준으로 잡지?(p65)’ 평범함이 그토록 도달하기 어려운 가치라면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준도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p9)’라는 문장을 음미해보면, 존재하는 많은 대상들이 마찬가지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윤재의 삶에 뛰어든 곤이는 흔히 말하는 평범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이다.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폭력을 행사하고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고 어른들에게 반항한다. 학급에 한두 명씩은 있는, 전형적으로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는 친구이다.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때렸던 곤이를 착한 친구라 여기는 윤재의 모습은 교사로서의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다. 지난 학기에 수업 진행을 방해하며 나를 화나게 했던 몇몇 아이가 떠오른다. 나는 편견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걸까. 단지 다를 뿐인데 틀린 거라 규정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을까. 모든 아이들을 저마다 다른 들꽃으로 여기며 예뻐했던 20대의 나도 있었는데. 부끄럽다. 언제부터 편견의 벽이 이토록 두꺼운 더께가 되었나.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된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녀들을 그저 바라만보는 윤재의 모습은 아수라장이 된 주변 사람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 장면에서 나는 주인공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더욱 시선이 갔다. 곤이에게 씌워진 누명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대다수 학생들의 반응도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윤재의 덤덤한 내레이션은 소위 방관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도드라지게 묘사한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p218)’ 촌철살인의 뾰족함을 품은 문장이다. 이 문장 앞에 오래 머무르며 종종 방관자의 영역으로 들어갔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윤재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크다 말할 수 있을까. 판단하기 어렵다.

이 책을 20대에 읽었다면 참 독특한 병도 있다며 가볍게 넘어갔을 것이다. 50대에 읽은 이 책은 깊숙이 스며들어 나를 흔들었다. 주인공 윤재와 친구 곤이의 세상과 현실에서 내 앞에 마주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상처 입은 아이들의 언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에서야 이런 마음인 것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마음인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런 표정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야 그런 표정을 짓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비교적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사람마다 감각의 역치가 다르므로 고통을 느끼는 정도 역시 다를 것이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오만한 시각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첫 발령을 받고 이듬해인가 상담했던 아이가 생각난다. 엄마가 절 미워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되었대요. 큰딸이었다. 먹먹하게 울먹이던 아이에게 나는 어쭙잖은 조언을 했다. 무늬만 현란한 교과서적인 상담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20대의 나는 꽤 멋진 말을 해주었다 자만하며 우쭐했다. 얼마나 무모한 오만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지금이라면 조금 더 조심스러운 공감으로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었을 텐데.

적록색맹을 단지 불편하리라 생각했던 마음도 오만이었다. 1차적인 현상만을 바라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그로 인해 달라질 세상의 풍경과의 싸움, 찬란한 256색상환을 바라보는 것을 평범하다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과의 싸움, 쓰러질 것 같은 자신을 부여잡고 살아내야 하는 스스로와의 싸움에 던져진 마음을 배재한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감히 상상할 수 없어 이해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제는 그가 틀린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라며 내가 사는 세상을 향한 것과 동등한 시선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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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8-2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생각했던건 사람은 모두 다른데 정상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였어요. 직장에서도 업무의 로직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과, 직원간에 원활한 소통을 더 높게 보는 사람이 서로를 이해못하지만 사실 둘다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정답의 기준으로 살아가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제 생각과 판단을 무조건 옳다고 여기려 하지 않게되었어요. 제모습도 누군가에겐 평범하지 않을테니까요^^;

나비종 2019-08-21 18:56   좋아요 1 | URL
‘다르다‘란 말이 자주 나오는 만큼 저 역시 다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후감을 쓰고 개학이 되어 교실에 들어가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전형적인 곤이의 모습과 놀랍도록 싱크로율 100%인 아이들이 각 반에 있거든요. 그 아이들로부터 받아왔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달까요.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을 함부로 단정짓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행동인지 깨달아지더라구요. 제 자신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라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점을 상대의 매력으로 여기기로 했어요. 그런 면에서 저도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을 터이니 물감님처럼 매력적인 인간으로 등극하렵니다.^^;
 
내게 무해한 사람 (리커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강아지풀을 천천히 만져본 적이 있다.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접사를 찍을 무렵이었다. 촘촘히 그어진 연두 빛 결을 반대 방향으로 훑어 내렸을 때 손끝으로 까슬까슬한 느낌이 전해졌다. 마냥 부드러우리라는 예상과 달랐다. 묘하고도 생경한 감촉은 뜬금없는 순간에 종종 생각이 났다. 마음이 따끔따끔해지면서 심장에 눈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힐 때면 세상을 향해 희미한 웃음을 짓던 나는 강아지풀을 떠올렸다. 부드러움과 까슬까슬함을 품은 채 흔들리는 가뿐함. 그 푸르스름한 먹먹함에 나를 겹쳤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아치디이다. 대조되는 상황의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마주쳐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조각들을 덤덤히 꺼내어놓는다. 이야기에 몰입할수록 책에서 튀어나온 감정들이 가까이 다가와 나를 건드렸다. 따끔거렸다. 미세한 칼날에 베어 아린 듯 중간 중간 걸음을 멈추었다. 소설 속 상황 때문인지 그 속에서 발견한 내 모습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주인공 하민에게서 학창 시절의 나를 본다.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았고 가지 말라는 길은 가지 않았던 나는 대학 다니면서 주말과 휴일이 가장 싫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이틀 동안 과외를 두세 탕씩 뛰면서 학비를 충당하고 집에 돈을 보탰다. 의욕이 없는 대상을 가르치는 일은 삐거덕거리는 나사를 돌리는 행위 같다. 아무리 힘을 주고 돌려봐도 헛돌면서 손끝만 아릿하다. 채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번 지쳤다. 제대로 이해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그들의 나른함이 지겨웠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부유함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면서 치열한 4년을 보냈다.

 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라는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hard’는 보통 부정적인 느낌으로 쓰이는 말 아닌가. ‘hardworking’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p265)’ 남주인공 랄도가 하민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 부분이 눈에 밟혀 마음에 고인 채 맴돌았다. 사는 게 일하는 건 아니니까, 일하는 건 아니니까. 하루하루를 일하듯 살아오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매캐한 공기가 가슴으로 훅 끼얹어졌다.

 

하민과 대조되는 인물인 랄도에게 주변인들은 질문을 던진다. 너 왜 여기 있어?(p240, 259, 260, 261, 289, 290)’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이다. 불교에서의 화두처럼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기라는 낱말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 내지는 삶의 과정에서 이 장소에 네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지?’라는 의미가 짙다.

대마초를 하면서 피폐한 삶을 살았던 랄도는 집밖의 삶을 간절히 원했지만 한 달 가까이 방에서 나가지 않기도 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는 뻔뻔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는 편이 쉬웠다.(p261)’는 사람. 너 왜 여기 있어?’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나갈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고 싶었는데도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그랬으니까(p261)’ 이였다.

첫 번째 과외 집에서 두 번째 과외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종종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 있지? 있고 싶지 않은 공간에 있을 수밖에 없던 어쩔 수 없음이 생각났다. 3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선명한 스냅 사진들이 부레처럼 떠올랐다. 불현듯 코끝이 찡해졌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직장에 들어갔다. 타고난 완벽주의로 인해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는 편이었다. 못 다한 일은 집으로 싸들고 와서 했다. 1순위는 직장 일이었다. 로봇처럼 일하는 간호사였던 하민의 모습에서 또 나를 보았다. 아치디에 와서 그녀가 기르던 여덟 마리의 말들 중 게으른 녀석과 나이가 제일 많은 녀석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일종의 부러움이리라. 게으른 사람이고자해도 천성적으로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 부류다. 부지런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계속 채찍질 당하는 말처럼 마음 불편하게 달리는 것이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마냥 달리기만 하는, 그래서 너 왜 여기 있어?’라는 물음조차 해보지 못하는.

스스로를 멈출 수 없었다. 멈춰보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에 매달려 13여년을 관성으로 달려왔다. 조금씩 속도가 느려진 건 10년 정도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4년 전 즈음이다. 퇴근 후 나는 커피숍을 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시를 지었다. 직장일과 집안일을 숙제처럼 마치고 커피숍으로 향하는 길은 고단한 기쁨이었다. 퇴근하기 위해 출근을 했다. 글을 쓰고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비로소 나는 숨을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배려하는 아이, 양보하는 아이, 욕심 없는 아이였다. 월급을 집안에 보태면서 언니의 결혼자금에도 큰 힘이 되었다. 내가 결혼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아버지께서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신 이후로 수입에 비해 다소 많은 돈을 부쳐드렸다. 너도 살아야지 친정에 이렇게 갖다 주면 어떻게 하니. 친정어머니께서는 매번 미안해하셨다. 번듯한 호강은 못시켜드리더라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소소한 일상을 누리시는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에 대해서 이다음에 잘해드릴 기회는 없을 테니까.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나는 착한 아이였다. 별명처럼 따라다니던 이 말에 착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선이 점점 글 쓰는 삶을 향한다. 글을 쓰는 동안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자유롭다. 앞으로의 삶은 글을 쓰며 글로 채우고 싶다. 연금이 나올 때까지만 직장을 다닐까. 올해로 28년째면 많이 한 거지. 4년 더 일하다 과연 그만둘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과속방지턱처럼 매번 걸리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께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돈이라도 벌어야 용돈을 마음 편하게 드릴 수 있을 테니까.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p282)’  이 문장이 나를 흔들었다.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사실은 나의 직업이 본성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아이가 지닌 막무가내의 잔인함에 거부감을 자주 느꼈던 내가, 의욕이 없는 대상을 가르치는 일을 그토록 지겨워했던 내가 중학교 과학교사다. 예전부터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현상과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썩 기발한 방법으로 비유를 하곤 했다. 그래서 잘 가르치는 것이라 착각을 해왔던 거다. 돌이켜보면 단지 표현력이 좋았을 뿐인데. 문과와 이과 성향이 반반이라면 좋아하는 분야와 나의 성향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교사의 첫 번째 조건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말 잘 듣고 수업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성실한 아이가 예뻐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든 마찬가지일터이다. 결핍된 아픈 손가락을 보듬는 마음은 가르치는 기술보다 우선이어야 한다. 나에게 과연 그런 마음이 있을까. 요즘은 자신이 없다. 한때 교실에서 제일 행복했던 내가 며칠 전에는 아이들을 만나러가는 복도를 지나면서 가뭄에 말라비틀어지는 나뭇가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코 던져진 몇 마디 말로 쉽게 상처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과 마주보는 시간들이 무거워지는 만큼 즐거움으로 채워지는 가뿐한 순간들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밀려드는 의기소침은 현재진행형이다. 28년 동안 켜켜이 쌓인 더께로 인해 낡아버린 걸까. 처음부터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던 걸까.

 

너 왜 여기 있어? 며칠 동안 마음을 붙들었던 문장이 지금까지 맴돈다. 나는 후각과 같은 삶을 살아왔던 걸까. 자극이 계속되면 순응하여 더 이상 그 냄새를 못 맡는 것처럼 그저 습관처럼 만들어진 결에 맞추어 살아왔던 건 아닐까. <아치디에서>는 나에게 다가온 다른 종류의 냄새였다. 자극적이지도 과격하지도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움찔했다. 작가의 문장들이 거울인 듯 관성의 결을 거슬러 나를 향해 걸어 들어왔다. 넌 네 삶을 살 거야.(p298)’ 스스로에게 이 말을 던져본다.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을까. 강아지풀처럼 얼핏 부드러워 보이는 문장들이 마음의 작은 솜털들을 건드린다. 나는 내 삶의 결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까슬까슬한 감각에 심장이 간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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