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아이가 신호등 앞에서

시선을 벗어난 양 춤을 춘다.

수요일 오전, 체육복을 입은 채

시간과 공간을 불쑥 찢고 나와

무작정 학교 밖을 향해 내달렸을까.


목적지를 잃은 걸음이 잠시

신호등 앞에서 쉼표로 머무는 동안

아픈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

세상 안에서 세상을 벗어난 듯

파르르 앙상한 손끝이 출렁인다.


경계 모호한 노란불을 닮은 걸음이

위태위태한 삶의 거리로 이어지기까지

숨 차오르는 일상 속 서툰 심장은

초록과 빨간불 사이를 허덕이며

무수한 깜빡임을 반복했으리라.


불현듯 심장에 작은 신호등이 켜진 날

날아드는 유성의 자유를 잠시나마 품었기를.

몇 번이나 망설였을 눈물 고인 신호등이

무심하게 점멸하는 거리의 신호등과 함께

상처 입은 몸부림이 되어 흐늘거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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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왜 공인가교양 체육에서 끝날 줄 알았다대학을 졸업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체육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몸운동이면 운동춤이면 춤도무지 주인 말을 듣지 않는 몸치의 표본이다한데친목 피구라니마스크에 갇히기 전까지 체육은 직장에서도 피구배구족구때로는 듣도 보도 못한 공으로 둔갑해서 지긋지긋한 관절염처럼 나를 쫓아다닌다정말 피!하고 싶다구

 

공과 함께 한 기억 속의 나는 바보스럽기만 하다피구농구배구발야구테니스(...)…. 무슨 노무 구기 종목은 이리 많은지그 중 공 던지기는 공에 대한 흑역사의 정점을 찍는다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체력장 시험 종목구멍 뽕뽕 뚫린 시퍼런 공을 있는 힘껏 던지기만 하면 되었건만이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멀리 뻗어나가는 45°의 포물선이 왜 실전에서는 적용이 안 된단 말인가마음만은 투포환 선수인 나를 가까이서 목격한 친구는 살며시 다가와 말한다. “공을 왜 땅으로 내리꽂냐?” 5m 간격으로 그려진 거리 라인의 두 번째 칸을 넘어보는 게 원이었던 나는 끝내 평균 5m, 최고 8m의 저질스런 기록으로 학창시절을 마무리한다.

 

동화 소리 질러, 운동장(진형민, 창비, 2015.5.)에서는 막야구부 아이들이 등장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다놀고 싶다빈곤의 악순환처럼 반복되던트라우마에 가깝던 공에 대한 거부감이 살살 부는 바람에 걷히는 아침 안개처럼 사라진다. 공을 두려워하기 훨씬 이전의 나를 불러온다친구들을 따라 원피스를 입고 철봉에서 거꾸로오르기를 해도 전혀 민망하지 않던 그 때로어느새 나는 정글짐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린다힘껏 달리던 시절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선을 긋고 사방치기를 하던비석치기를 하던 모습이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두루루 풀린다.

 

진형민 동화 속의 아이들은 탱탱볼을 연상시킨다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함과 투명함이 공존한다유리처럼 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쉽게 깨어지지는 않는다차돌 같은 단단함과 맹랑함이 있다천방지축해도 짐짓 당당하고 슬기롭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수학 50점을 맞는 게 평생 소원인 아이들에자신이 속한 팀에 불리해도 아웃!을 외치는 솔직함에어디서든 당찬 모습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푸하! 웃음소리를 따라 찡한 감동이 배어든다. ‘원래 노는 데에는 큰 땅이 필요 없었다.(p143)’ 운동장을 넘어서는 자유가 있는 그들은 노는 것이 뭔지 뭘 좀 아는 놈들이다.

 

나른한 오후,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인조 잔디 운동장에서 공을 쫓는다. 교무실 창문을 열고 공을 쫓는 아이들을 좇는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완벽한 운동장은 아직까지 없는 듯하다. 천연 잔디에서는 잔디의 마모와 배수 지연 및 미끄러움이, 인조 잔디에서는 유해 물질이, 친환경적으로 여겨지는 흙에서조차 석면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는 걸 보면 말이다. 아이들의 운동장이 아무 걱정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의 티 없는 마음을 하루 빨리 닮아가기를 바란다.

 

체육을 못했던 아이못했기에 안했고 안했기에 못했던 순환 고리를 맴돌았다. 어쩌면 나는 너무 복잡한 편견으로 체육을 어렵게만 바라봤던 건 아닐까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놀면 되는 거였는데좀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주최 측 줄바꾸기)

운동장에서 놀아본 지가 언제였더라어느덧 운동장에서 마음껏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지나간 시간은 늘 아쉽다마음 한 켠 남아있는마음껏 뛰어놀지 못한 미련이 공처럼 운동장을 구른다추억을 더듬듯 운동장이라도 천천히 밟아보고 싶다.



* 2022. 2. 5. J교단만필 보냄, 2022. 4.1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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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을 사발 째 들이켰습니다. 9월 말에 참가한 시조대회에서 생각지 않은 쾌거를 이룬 것이 화근이었죠. 자신감이 치솟은 저는 또 다른 시조대회에 참가합니다. 읽고 또 읽어도 너무도 뛰어난 수작입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풍부한 상상력으로 상금을 어디에 쓸 건지 궁리합니다. 결과는요? 이 문단의 첫째 줄입니다.

당선자들의 명단을 두어 번 훑어도 가장 마지막 줄에서조차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명중합니다. 오만방자해진 저는 저만의 과녁을 만들어놓고 화살이 명중했다며 좋아라했던 겁니다. 주최 측이 설정한 과녁이 저만치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지금은 퇴근 후 커피숍.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쓰는 중입니다.

 

더듬더듬 저만의 글과 함께 한 지 16년이 되어갑니다. 넘치는 감성에 글이 장황해지더군요. 절제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전한 분야가 입니다. 쓸수록 산문보다 어렵더군요. 과학교사로 일하면서 전공과 다른 분야의 문을 두드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시조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운명이라 여기고 싶은 몇몇 장면들이 생각나네요. 시조에서는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밥알의 매력이 있습니다. 고리타분한 옛것이라 여기던 마음이 바뀐 건 시조에서 심장의 박동을 느끼면서부터입니다.

 

대부분 배설하듯 저만을 위한 글을 써왔습니다. 글은 시린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집니다. 글이라는 화살로 다른 이들의 심장의 과녁을 두드린다면, 그들 가슴속의 얼음을 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럴 수 있는 기회의 출발선에 섰다는 생각에 두근거립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 <시조**> S상 소감문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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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까기


늦은 밤 단칸방에 달을 깎는 어머니

포대 자루 안에는 알알이 가을 풍년

손 안에 말간 달덩이 주렁주렁 열리네

 

까칠한 껍질 닮아 갈라지는 손끝 따라

갈색 옷 훌훌 벗어 매끈한 달 뜨는데

땀방울 흘러내려도 겨울인양 손이 트니

 

휘어진 허리만큼 둥근 달이 쌓일수록

입 벌리는 아기 제비 눈동자는 빛나는데

달 하나 건네지 못해 저린 칼끝 아리네


*******


가족사진


빙하인 듯 흐르던 연탄재 밟고 가면

골목 끝 여섯 식구 복닥복닥 사진관

그믐달 몸을 부비며 밤의 문을 닫았지

 

걸레 꽁꽁 방바닥 뜨끈뜨끈 아랫목에

웃음소리 모락모락 옹기종기 시린 발끝

겨울밤 한 이불 위엔 가족사진 쏟아져

 

스무 계절 넘어와 사진관은 닫혔지만

온기 품은 사진들은 선명하게 떠올라

앨범을 들출 때마다 꽃잎인 듯 날리네



*2021.10.  I 시조공모전, 우수상(글제: 가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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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더욱 마음이 안 좋았던 건 아이가 떠나기 하루 전에도 나는 그 반에서 아이들을 웃겨가면서 수업을 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갈등했던 영혼 앞에서 나는 무엇을 가르쳤던 걸까. 그날 밤 늦게까지 뒤척이며 시를 적어 내려갔다. 시 말미의 독백 사이사이에 툭툭 떨어지던 말줄임표가 교사로서의 무기력을 자책하던 눈물처럼 점점이 박혔다. 한 아이의 죽음이 내 시의 시작이었다.

 

*****

 

마음의 색맹

 

수업을 한다 // 색맹을 얘기하고 / 유전자를 말하고 / 가계도를 칠판에 그려낸다 // 아이들은 듣는다 / 푸른빛 마음으로 / 분홍빛 마음으로 / 회색빛 마음으로 // 나는 바라본다 / 각기 다른 빛깔의 마음으로 // 어디를 바라보고 / 무엇을 바라보고 / 누구를 바라보고 수업한 것일까? / 나는 // 누구를 바라보고 / 무엇을 듣고 / 어떤 것을 느끼며 앉아있는 것일까? / 아이들은 // 마주 서 있다고 / 서로를 보는 것은 아니다 // 마음의 색을 보지 못하는 나는 / 마음에 대한 색맹일지도 모른다

 

*... 견디기 힘든 것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영혼을 보지도 못하고. 그 앞에 서 있었는데도 이미 그 존재 앞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조차 되어주지 못했었다는 거지... 알아볼 수 있었다면... 따스한 말 한 마디 안겨주었더라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때늦은 후회를 해 본다는 거지... 인생이라는 것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만하는 것을 말하고 있고, 말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이 순간에... 인생 참 허망하다... 라는 느낌을 안고 있다는 거지... 이제는 어깨를 눌렀던 그 짐을 툭툭 털어내고 날아가기를... 하늘로 올라 별이 되기를...

 

*****

 

16년 만에 먼지 앉은 기록을 들춰본다. 운율도 안 맞고 서툴지 그지없다. 형식은 허술하지만 내용 앞에서 나의 심장은 여전히 뛴다. 건조하게 푸석거리던 꽃차에 물을 부은 듯 마음이 물컹해진다.

(주최 측 줄바꾸기)

그때나 지금이나 OECD 국가 중 여전히 자살률이 1위인 나라. 하루 평균 36.1명이 삶을 저버리는 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9년 연속 자살인 나라. 절반에 가까운 1318 청소년들이 공부 문제로 고민하는 나라에서 나는 교사다.

(주최 측 줄바꾸기)

공부를 꽤 잘하는 아이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 아이가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이유가 절반의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그 이유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리라.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을 영혼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눈물짓고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가끔 상상한다. 마음의 색깔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몹시 곤란할 때도 있겠지만 흑백의 마음이라도 눈에 보인다면 좋을 텐데. 무채색이 색깔을 띠는 순간에는 초신성처럼 폭발한 다음 은밀하게 사라지더라도 말이다.

(주최 측 줄바꾸기)

색맹은 관련 유전자가 성염색체인 X염색체 위에 있는 반성 유전이야. 유전자형은 XX, XY로 표시해. 열성으로 유전이 되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욱 많이 나타나. , 이제 가계도에서 유전자형을 분석해볼까?’ 지금도 나는 여전히 색맹을 가르친다. 색맹을 둘러싼 과학지식을 창고 대방출하며 각기 다른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주최 측 줄바꾸기)

나에게 색맹이란 과학을 넘어서는 뜨거움이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다보니 각기 다른 표정이 눈으로 들어온다. 문득 깨닫는다. 강아지풀의 솜털을 바라보듯 바라본다면 이들의 색깔을 구분할 수도 있음을. 마음의 색맹에는 관심이라는 치료제가 있다는 사실을. 어쩐지 눈동자에서 색깔이 보이는 듯하다.



* 2021. 10. 6. J 교단만필 보냄, 2021. 11. 1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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