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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힘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내 눈에 요상한 거름종이 능력이 장착되었다. 마음에 드는 내용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데 어, 이건 아냐 싶은 건 화이트홀처럼 거부하니 말이다. 의도고 나발이고 내용이 튕겨져 나가 머릿속이 클리어 되는 게 거의 무조건반사 수준이다.
무릇 리뷰어라면 눈 가리고 양팔 저울 들고 계신 여신님 모드를 장착해야하거늘. 디케를 따라가기는커녕 눈 부라리며 용수철저울 들고 마음에 드는 내용만 골라 담는 이 비루한 마인드, 어케?
구구절절 서론의 외침에는 두 가지 예고가 담긴다.
첫째, 이 리뷰는 가치 편향적 관점에서 서술될 것이 예상되므로 이게 전부다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면 망하기 십상이라는 것. 다른 책이 아닐까 의혹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둘째, 경제학 관련 책에 대한 리뷰인데 돈에 대한 내용은 적을 거라는 것. 돈에는 환장하지만 학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이게 머니?’ 쩜쩜쩜. 눈에 힘을 주어도 도무지 독해가 되지 않는 기현상을 경험한 리뷰어의 글을 어쩌다 읽게 되셨나요. 572쪽을 완주만 한 이 인간은 결국 갯벌에 널린 맛조개처럼 쏙쏙 내용을 빼먹는다. 소화되지 못하고 허망한 대변이 되어버린 내용도 상당수 있음을 미리 인정한다.
『행동경제학』은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가 쓴 책이다. 8개의 장에 걸쳐 행동경제학이 세상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기까지의 여정이 담겨있다. 전통경제학과 대조되는 학문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합리적일 수 없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토록 완벽한 인간을 호모이코노미쿠스, 줄여서‘이콘’이라 명명한다. 화학 분야의 이상기체와 같은 존재랄까. 이론적으로는 퍼펙트 하지만 실제로는 구현되지 않는 대상 말이다. 이론의 맹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저자에게서 반란의 패기가 느껴진다. 전통경제학이 양반들의 학문이라면, 행동경제학은 백성을 위한 학문이랄까. 경제학의 대중화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저자의 열정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뜨겁게 느껴진다.
어떤 분야든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저자는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조차 종종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인간의 심리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최적화 작업을 거쳐 선택을 한다는 전통경제학의 가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그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학자로서의 저자는 어떤 주장이든 튼튼한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힘이 실린다는 사실을 안다. 이런 이유로 책 속의 내용은 실험 상황과 결과 해석이 주를 이룬다.
경제학과 심리학이 접목된 학문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두께에 주춤했지만 서두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읽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재미있는 이야기책으로 읽을 수 있을 거야, 재미와 즐거움을 전달하려고 노력했거든.’ 저자의 이 말을 믿어버리고 말았다. 이럴 때만 순진무구함이 발동된 거다. 넘겨야 할 책장이 줄어들수록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다녔다. 대체 어디가? 재미는 언제? 정녕 이게 재미있는 이야기? 마지막에 도달할 때 즈음 깨달음을 얻는다. 심리학과 관련해서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소개된 건 사실이지만 내 관점은 탈러의 것과 심히 다르다는 것을. 학자와 범인의 재미 사이에는 범접할 수 없는 레벨 차이가 존재하는 건가요.
모든 사회과학을 떠받치는 학문이 심리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사회는 사람들의 집단이고 그들의 행동은 심리를 떠나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의 실험이든 심리학적 분석이 등장하면 나의 흥미를 자극한다. 심리학이 내게 매력적인 이유는 인간의 활동 결과를 해석하는 데 리듬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왜?’라는 물음에 ‘이래서 이런 거야.’ 답한다. ‘이런다면?’이라는 물음에는 ‘이럴 걸?’하며 여유 있게 예측한다. 답이 도출되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되는 실험이 등장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증명에 성공한다. 문이과 통합인간처럼 인문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요소가 의외로 많다.
몇 년 전에 꽤 흥미롭게 보았던 짤막한 영상이 있다. <소셜컨트롤>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캐스트에 소개된 내용이다. 3가지 영상이 등장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자발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담은영상이다.
첫째, 과속을 줄이는 방법이다. 도로에 장치를 부착하여 정속으로 주행할 경우 노래 소리가 나오는, 일명 ‘노래하는 도로’가 소개된다.
둘째, 과식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그릇, 식탁보, 조명에 이르기까지 식당의 분위기를 온통 파란색으로 처발처발한다. 대조군과 비교한 결과, 파란색은 식욕을 억제하는 데 꽤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셋째, 에스컬레이터 대신 자발적으로 계단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계단에 비트박스를 구현하는 장치를 설치한다. 사람들이 계단을 디디면 층층마다 각기 다른 비트박스 소리가 난다. 기존의 피아노 계단은 여러 명이 이용할 경우 소리가 뒤섞여 소음으로 작용한다. 타악기는 난타처럼 박자 감을 즐기면서 연주할 수 있다. 영상 속 사람들은 몇 명이 그룹을 만들어 합주를 하며 리듬을 타기도 한다. 매우 획기적이다.
책 안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몇 가지 실험 결과가 있다.
첫째, 소유 효과이다. 가질 수 있지만 아직 소유하지 않은 것보다 이미 자산의 일부가 된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가질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의 고통이 크다는 해석을 읽고 나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불확실한 상황일 때 인간이 결정을 하는 방식도 소유 효과와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은 이익을 좋아하지만 손실은 더욱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이익과 손실 앞에서의 결정 방식 차이로 드러난다. 이익에서는 위험 회피적으로, 손실에서는 위험 선호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새 구두에 뒤꿈치가 까여도 벗을 수 없는 이유도 소유 효과를 연상케 한다. 이미 구입한 물건에 지불한 돈은 되돌려 받지 못하므로 매몰된 비용에 해당한다. 매몰 비용은 무시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인간은 물건이 비쌀수록 포기하기까지 더 오랜 고통을 견딘다는 것이다.
현상 유지 편향 역시 소유 효과와 연결된다. 바꾸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는 한 소유한 것을 소유하려하며 심지어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바꾸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심리 계좌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심리 계좌를 가지고 있기에 모든 돈을 똑같이 대우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제학을 돈과 관련된 고도의 심리학으로도 볼 수 있겠다.
셋째, 할인 취소는 가격 인상만큼 강력한 반발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험에서는 결과적으로 같은 상황인데도 프레이밍하는 방식에 따라 디폴트값이 달라짐을 보여준다. 공정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사례들을 보면서 ‘아’ 다르고 ‘어’다르다는 속담을 떠올린다.
넷째, 의사 결정과 관련된 5가지 발견이다. 저자는 뛰어난 운동선수를 영입하기 위한 전략을 언급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착각하는 요소들을 짚어낸다.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자만심, 지나치게 확신하는 극단적인 예상, 지명된 선수를 과대평가하는 바람에 직면하게 되는 승자의 저주, 타인의 취향이 자신과 비슷하리라 여기는 허위 합의 효과, 지금의 승리를 원하는 현재 편향 등이다.
나는 주식을 해본 적이 없다. 투자나 돈 관련 분야는 젬병이다. 허걱! 어렵사리 책장을 넘기며 꾸역꾸역 따라간 나는 6장 앞에서 좌절한다. 주식 관련 내용이 대거 등장한 길을 기어가다시피 통과했다. 생소한 용어, 갈수록 낯설어지는 내용 앞에서 학습부진학생의 기분을 공감했다. 스승은 신이 나서 방대한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창고 대방출하는데 그 앞에 선 제자는 침묵한다. 지진을 경험했다. 동.공.지.진.
이제 좀 팔자가 피려나. ‘인간만큼 흥미로운 존재는 없다’라는 제목을 달고 등장한 7장. 대회 선수들을 드래프트한 사례, 교수들의 연구실 고르기 소동 등의 이야기는 분명 재미로 제시했을 터인데. 그들만의 리그가 뿜어내는 이질감. 웃자고 한 얘기가 다큐로 다가오는 이 기분을 탈러님은 아실까. 관심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또 다른 고역이었다. 여전히 나는 흥미의 빈곤을 느껴야했다. 딱 제목만 흥미로웠다.
원래 저자의 문체가 이런 건지, 불편한 번역 탓인지 원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알 턱이 없다. 안타까운 건 내 수준에서 매끄러운 독해를 하기 어려웠다는 팩트이다. 관계대명사가 두어 번 들어간 문장을 읽는 기분이었다. 읽다보면 주어가 헷갈려 되돌아가서 몇 번씩 읽어야하는 문장이 툭툭 튀어나왔다.
학문을 다루는 클라스는 등장인물도 남달랐다. 어찌나 많은 학자들이 인해전술을 펼치는지. 행동경제학을 빛냈거나 빛내게 해준 100명의 위인들 버전이던가. 상대팀 선수인 전통경제학자들에 심리학자들까지 대거 포진했다. 게다가 철수, 영희 등 한글판도 떼거지로 나오면 헷갈릴 판인데 캐머런, 카너먼, 캐머러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마지막 8장에 ‘넛지’ 관련 내용이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넛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의 사소한 특성이라고 한다. 남자화장실의 소변기에 파리 그림을 그려 넣었더니 주변에 오줌 방울이 튀는 현상이 80퍼센트 줄어들었다고 한다. 저자가 완벽한 넛지 사례로 꼽는 아이디어이다. 예전에 나의 흥미를 끌었던 ‘소셜컨트롤’이 다시 떠올랐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는 『넛지』를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이 부분은 수월하게 읽혔다.
학문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찬데 수많은 걸음으로 한 문장씩 완결해나간 당사자는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즐기지 않았으면 도달하지 못했으리라. 행동경제학이라는 한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서 저자 스스로 얻었다는 교훈은 3가지이다. 첫째,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둘째, 이야기는 머릿속에 오래 남으므로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라는 것이다. 저자의 가설은 수집된 데이터가 있었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셋째, 조직적인 차원의 실수를 방지하려면 목소리를 높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의 삶에 가까이 자리해야 할 학문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날마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찾고, 모의실험을 진행하고, 분석하고, 어떻게든 원리를 찾아내려고 탐구한다. 그들의 목적은 순수하다. 사람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은 분명 다르다.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실의 인간은 불완전투성이이다.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보다 더 불합리할 수 없는 순간도 허다하다.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알면서도 관성에 의해 멈추지 못하기도 한다. 사소한 요인에 어찌나 많이 영향을 받는 갈대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이 인간의 매력인걸까. 냉혈인간 ‘이콘’보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니 샴푸향이 느껴지는 어설픈 인간이 더욱 정겹게 다가오는 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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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3, 밑에서 6째줄: 한두 → 한 두
p155, 3째줄: 나둔 → 나눈
p264, 4째줄: 그 들의 → 그들의
p293, 3번째 단락 첫줄: 캐머런 → 캐머러
p308, 2번째 단락 4째줄: 관찰보고 → 관찰하고
p426, 4째줄: 해다. → 했다.
p538, 밑에서 2째줄: 그래 →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