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가도 결국 여행다운 여행 한번 못한 채 끝을 냈다. 오랫만에 좀 챙긴 긴 휴가였는데... . 엉덩이가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큰 맘 먹고 나선 길에서 예기치 않게 돌아와야 할 일이 생긴 것도 멀리가지 말라는 경고 같은 건가? 비가 오락가락한다는 걸 핑계로 집에 틀어박혔다. 젊은 직원들의 휴가 계획은 눈부시더라. 난 그들의 발랄함과 경쾌함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라 언제부턴가 왠지 위축되고 조심스러워진 면이 있다. 과감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욕심을 일에서도 맘껏 좀 부려주길.  

드디어 [모비딕]을 읽기 시작했다.  

 

 

 

 

 

 

 

   

압도되고 있다. 집안에 틀어박혀 꿈꾸는 망망대해라서 더 그런건가. 비극을 향해 가는 이야기인 것 같다. 압도적인 우울함과 비극적 위엄이, 아마도 깊이 새겨질 소설을 만난 것 같다. "바람이 불어가는 쪽이 안전하다 할지라도 수치스럽게 그쪽으로 내던져지기 보다는 사납게 으르렁대는 그 무한한 바다에서 죽는 것이 더낫다." 이 도저한 낭만성이 나를 사로잡는다. 죽음을 대해가 포용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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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봤자...지금 10대나 20대 사람들보다 오래 살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갖춰진 생각이나 방식으로 보자면 앞날이 그냥 두렵다. 하긴 젊은것들은 나름 생기로 살아가는 건데, 뭔 걱정이겠냐. 종편채널의 개국 드라마들이 속속 모습을 갖춰나가는 듯싶다. 일단 질러야하니까 인물들이 만만치않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들의 의식이 중요하겠지만 그 믿음을 품는 것조차 너무 순진해져버렸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갖춰야할 덕목이다.  

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표백]은 신형철이 핵심을 잘 짚어준 리뷰 덕분에 읽게 됐다. 난 신형철빠다.  

 

 

 

 

 

 

 

 

"어떤 모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또 어떤 모순도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쌓이지 못한다. 

...... 

나는 나의 새롭고 무시무시한 자유를 확인하기 위해 자살할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자살선언서의 일부다. 신형철은 이 소설이 다루는 '조직적 자살'에 기여하는 3단 논리를 잘 정리해줬다.  

1. 오늘날 세계는 완성됐다. 2. 그래서 삶은 무의미하다. 3. 그러므로 자살만이 대안이다.  

여기에 이끌어져온 고전들은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역사의 종말]), '카뮈의 부조리론'([시지프신화]), '도스토예프스키의 논리적 자살론'([악령)). 

 

 

 

 

 

 

 

 

  

'악마적인 논리'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조직적인 자살들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참 기함할 얘기고 '이 소설은 맹독을 지녔다'고 소설가 김선우가 말한 것처럼 '벼락같이' 내리치는 독한 면이 있었다. 자살을 이토록 '운동'적 차원에서 다룬 한국 소설이 있었나싶다. [악령]을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 아, 또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은데. 최근에 읽은 오종우의 [백야에서 삶을 찾다]에서 시베리아 유형 이후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경향을 갖게 된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서 악령들린 상태를 떠올리기도 했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다. 오종우는 '정치팜플랫' 성격의 소설이 [악령]이라고 짤막한 평을 했었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악령]을 읽을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런 혐오와 두려움을 느낄 수는 있었던 것 같다.   

[표백]의 작가 장강명은 조직적 저항으로서 자살을 주창한 세연에 맞서 평범하고 사소한 삶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와이두유리브닷컴'에 대항하는 '디스이즈리즌닷컴'을 계획하며 삶을 추스리는 주인공의 결심으로 소설의 결말을 삼는다.  

주인공 '나'는 세연에 대해 생각한다. 문제적 인간인 세연의 주장은 '어린이다운 것이었다'고,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고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애정과 관심을 바라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어른스럽게 삶을 사는 법을 세연에게 보여줬어야 했다."고 분석한다. 세연은 자살로써 자신의 주장에 힘을 불어넣었고 그 선언을 제대로 반박하려면 반대로 멋있게 사는 법을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위대한 정신이라면 ([그것이 빛을 발하고 인정될 때까지])그 고독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꼭 위대한 정신이나 "아무도 전에 시도하지 못했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 그 일 이후에는 모든 사람의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것,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무시할 수는 없게 되는 그런 일, 진화론이나 상대성이론 같은 것"'을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저 사는 것 자체가 고독한 것인데 그 고독을 견디며 가는 것 자체가 위대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게 대항논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결국 세연은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두려움에 제 정신이 아니었고 자기 주장을 부정하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얘기해준다. '와이두유리브닷컴'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주도하는 세력이 형성되고 '나' 는 여기에 맞서는 형국으로 드라마는 끝을 내는데,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처럼 느껴졌다. 이 대결은 시시해졌다.   

신형철은 '작가와 작품의 격전'이라고 봤다. 그 전례로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작가가 이기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는 작품이 이겼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묻는다. 이 소설에서는 어느 쪽이 이겼나?  "어느 쪽이건 이것은 패자가 없는 싸움이다."   

도발적이고 선언적 의미로서 이 시대의 '조직적 자살'을 생각한 건 문학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울림이 있는 것같아 보였다. 어떤 논리나 주장, 의지 따위가 아예 구축되지 않는 도저한 허무로서 자살, 자신의 생을 거두는 것, 글루미. 사회적 의미를 깨알같이 찾아 갖다붙이기 전에 홀로 존재하는 자살, 그게 더 막막하고 진짜로 무서운 거 아닐까.   

다소 놀랍고 아찔했던 건, 고시원에 퍼진 스팸냄새를 묘사한 대목이었다. 이 정도인가. ...  

"구운 스팸 따위 때문에 그렇게 구차해지는 꼴이라니..... . 그런데 정말 먹고 싶었다. 고시원 방까지 스팸 냄새가 따라오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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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는 어찌할 수 없는 가련한 여인이었다."  

 

 

 

 

 

 

 

 

 

[백야에서 삶을 찾다]에서 오종우는 덧붙인다. "어떠한 출구도 없는 비극의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역시 과잉에 있다." 

[안나 카레니나]를 폭풍처럼 내쳐 읽지는 못하고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을 것이다. 아마 지난 겨울 내내 읽었던 것 같은데, 리뷰나 페이퍼까지는 아니더라도 읽은 날짜라도 써두어야 하는데 왜 맨날 잊어버리는 건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듯, 너무 오래 잡고 있었던 책은 읽은 게 아니다.  

책을 읽지 못했던 기간이 길어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즈음 처음 든 생각이 안나는 왜 기차에 뛰어들었지, 라는 질문이었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안나의 마지막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들여다봤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낯익은 갈등이 펼쳐지는 장면의 연속이지 않는가, 안나와 브론스키 간의 애증이란. 생각이 어쩌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여주인공 미자(미희)에 이르렀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기록을 보면 어딘가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 얼굴. 그녀는 가장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로 미자를 꼽았다. 그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새삼 다시 봤었는데.  ...

안나 카레니나와 미자는 많이 다른가?  

오종우의 [백야에서 삶을 찾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읽기를 통해, 각각 '신은 우리 곁에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짜 실용적인 삶이란' 테마를 살피는 책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테마를 다루는데, 뛰어난 디테일을 통해 인물들이 취하는 삶의 태도를 심리나 상황의 본질을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의 불륜과 불행, 레빈의 각성 이야기가 평행으로 전개된다.  석영중이 언급했듯이, 레빈이 나오는 장면들은 특별히 관심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건너뛰고 싶을 정도로 '지독한 설교'가 깔려있다.  

 

 

 

 

 

 

 

 

오종우의 책을 읽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다 며칠 뒤에 다시 한 번 읽었다.  

"안나의 일탈과 사랑을 통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 한다"고 오종우는 말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도리질쳤다. 아니, 안나나 미자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짐한다 해도 죽었다깨나도 그들은 그 바람대로 살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은 오종우가 말했듯 그 과잉과 결핍의 악순환에서 결코 벗어나기 어려운 비극적인 인간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남편 카레닌이 위선적이지 않고 솔직했다면, 안나는 브론스키한테 그렇게 빠져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안나는 결코 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종우 역시 이렇게 진술한다. "이성만으로 세상을 온전하게 포착할 수 없는 일이다." 톨스토이의 이율배반적 인생까지 아우르는 말이지만, 그건 안나나 미자를 이해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쓰고 난 후 마흔아홉 살에 쓴 이 소설에서 과잉을 억제하여 세상을 보존하는 불멸의 진리를 깨달은 것에 대해 오종우는 평가했다. 의지와 자연이 만나는 지점에서 좋은 삶을 말할 수 있다고. 그 진리를 톨스토이는 레빈을 통해 보여준다. 의지와 자연이라. 너무 순전하다. 2011년 8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월이 더 흘러 다시 읽으면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안나 카레니나는 범우사판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민음사판을, 닥터지바고는 열린책들판을 인용했는데, 나는 안나 카레니나는 민음사판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범우사판을 가지고 있다. 닥터지바고는 책으로 읽어보지 못했다.   

  

 

 

 

 

 

 

 

 

 

 

 

 

 

 

 

 

휴가 일정 중 며칠 보내기로 한 곳에서 예정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 밤새 차를 달려 그냥 돌아왔다. 불편해할까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조심하느라 마음써야 했다. 피곤했다. 우연치 않게 처음으로 내 사주에 대해 짧은 얘기를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런 얘기가 이상하게 마음에 맴돈다. 도화살.... 더 많은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전화로 듣는 것도 불편했고, 몇 마디 말만으로도 나의 어떤 면이, 지나온 일들이 꿰어져나와서, 알 수 없던 수수께끼 중 어느 부분이 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저래 참 신기하기도 하고, 공부 한 번 해볼까? 도망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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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명세 감독의 M> 예고를 봐 버렸고 보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결국 볼 수밖에 없었다.  ......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김경주 시인은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시 중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에서 썼다고, 나는 신형철의 에세이 [느낌의 공동체]에서 읽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을 것이다. ......

지난주부터 책에 좀 집중할 수 있었던 나는 미뤄뒀던 문재인의 [운명]을 먼저 읽었다. 책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싱거운 책. 문득 7.80년대 시국사건들에 주가 달린 걸 보고 기분이 묘했다. 그렇구나. 이젠 소개하고 설명이 필요한 역사가 되었구나. 새삼스럽긴. 책으로 돌아가서, [운명]이 별로 재밌지 않아서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문재인이 직접 쓴 글이라면 문재인스러운 것일 수 있고, 관여한 이들의 것이라면 컨셉을 잘 잡았다고 할만하다.  

 

 

 

 

 

 

 

 

 

문재인. 이 사람, 이 남자가 이런 핫한 인물로 드러나는 일련의 시간을 돌아보면 드라마 같다. 앞으로 어떤 드라마를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관련 글들이나 뉴스가 많아서 나중에 한꺼번에 들여다보려고 스크랩만 해 두고 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요즘 같아선 나의 감정상태가 위험하다보니 어느 것 하나 쉽게 볼 수가 없다. 얼핏 훑어본 것 중에, 문재인에 대해 '간지'라든지 김어준 같은 경우 '타고난 애티튜드의 힘'으로 표현한 것들이 흥미로웠다. 그것만으로 앞으로의 일이 감당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한 사람의 운명의 한자락을 지켜보게 생겼다.   

이명세 감독의 타임... 퇴근 후 영화 <M>의 늦은 회차를 관람하고 집에 돌아가던 2007년 그 밤이 생각난다. 그후로 4년이 더 보태졌고, 지나갔다. 영화, 그 지독한 사랑. "영화감독을 그만둘까 생각했다.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분명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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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바빴다. 책, 뭐 읽었나? 심농의 [생폴리앵에 지다]와 오토 켄즐러가 엮은 [라인업]을 작가별로 조금씩 읽었고, 지난 주 일요일에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위험한 관계]를 겨우 읽었다.   

 

 

 

 

 

 

 

   

 

 

[생폴리앵에 지다]는 앞에 읽었던 두 권 보다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위험한 관계]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전작(번역된 것으로) [빅픽쳐]를 재밌게 봐서 이번에 나온 작품도 읽었는데 둘 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에 대처하는 주인공들을 다루고 있다.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서 페이지터너의 맛을 지대로 보여준다. [위험한 관계]에서 주인공의 산후 우울증을 다루는 대목은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너무 우울했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만 읽을까 할 정도로. 기자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기자씩이나 했던 사람이 대응하는 능력이 좀 무력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빅픽쳐]가 더 강렬했던 것 같고, 이 작가의 소설들은 그럭저럭 킬링타임용 정도가 될 것 같다.   

[라인업]은 아는 작가와 통 모르는 작가로 나눠서 보고 있는데, 그 작품도 읽어보고 싶게 하는 작가도 있고, 별로 기대안되는 작가도 있고, 지금은 여력이 없으니 나중에라도 작가별로 작품 섭렵도 하고 싶지만... 가능할까 싶다. 점점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유혹도 좀 있고, 마음이 싱숭생숭도 하여 갈피를 못잡는 와중에 비가 몹시도 쏟아지는 바람에 더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피곤한데 밤에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대개 불면증은(불면증까지는 아니지만) 불안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무엇이 불안한가. 밥맛이 없어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마다 걱정을 듣는다. 나도 퍽퍽 떠서 우적우적 먹고 싶다고, 안들어가는 걸 어떡하라고.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걱정마시라. 쨍하고 해뜰날 돌아올테니. 

또 하나, 내가 도대체 얼마나 변하려는지 잘 모르겠는데, 좀 얼척없는 드라마를 열심히 본다는 거. <최고의 사랑>과 <시티헌터>를 놓고 사람들이 유치한(...흠) 언쟁을 해대곤 했는데, 나야 <최고의 사랑> 같은 로코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당연 <시티헌터>를 봤다. 이 드라마... 좀 그렇긴 한데(결혼이나 재산 때문에 아버지와 싸우는 게 아니라 지대루 아버지(들)와 싸우는 아들(들) 얘기다), 이번 달에 그나마 설렘을 주었던 유일한 것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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