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 - 필립스 저가 전집

데카, 필립스에서 나온 저가 전집 세트들. 이런 음반을 모으면 쏠쏠하다. 고음악에서 대편성 교향곡, 원전 연주에서 합창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그 면면이 상당히 다양하다.
우선 하이든, 슈베르트, 말러 교향곡이 담긴 필립스의 박스 세 종이 눈길을 끈다. 이 중 프란츠 브뤼헨의 하이든 교향곡집(13CD)은 지난 1988년부터 2000년까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18세기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것으로, ‘질풍노도’ ‘파리 교향곡’ ‘런던 교향곡’이라는 표제 아래 각각 열아홉 곡, 여섯 곡, 열두 곡의 교향곡과 한 곡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수록하고 있다. 표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각 교향곡은 하이든의 가장 중요한 세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연주의 완성도는 수준급이다. 원전악기 특유의 명쾌함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현대적 감각의 신선함도 잘 살아 있다. 열아홉 곡의 ‘질풍노도 시기’ 교향곡도 뛰어나지만, 여섯 곡의 ‘파리 교향곡’이 특히 듣기 좋다. 순도 높은 완성도는 물론이고 악기 간의 조화와 아기자기한 미감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명연이다. 또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놀람’ ‘군대’ ‘시계’ ‘큰북연타’ 등 ‘런던 교향곡’의 현대적인 감각의 유려한 음색과 발랄하고 상큼한 템포는 듣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네빌 매리너와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의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6CD)도 브뤼헨의 음반처럼 알찬 연주가 담겨 있다. 이 전집물의 단적인 특징은 교향곡 작곡가로서 슈베르트의 업적을 세심하게 점검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알려져 있는 아홉 개의 교향곡은 물론 슈베르트가 교향곡 6번을 끝낸 뒤 몰두한 두 교향곡의 창작 노트(D.615, D708a)를 새롭게 복원해 선보였고, 교향곡 10번의 피아노 스케치도 오케스트레이션을 거쳐 어엿한 교향곡의 모습으로 내놓았다. 또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7번과 8번을 손질해 완전한 모습의 작품으로 선보인 것도 주목할 점이다.
매리너는 모두 브라이언 뉴바울드의 판본을 따르고 있다. 특히 낭만적인 어법과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고, 연주하기가 곤란하다고 알려진 교향곡 10번의 완성본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교향곡 8번, 9번의 연주도 훌륭하다. 격조 높은 앙상블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그려놓은 전체 형상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실내악에서 교향곡, 원전 연주에서 오페라까지

오자와 세이지의 ‘말러 교향곡 전집’(14CD)은 연주 수준이 들쭉날쭉해 초보자에게 추천하기는 껄끄럽다. 수많은 말러 교향곡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완성된 오자와의 연주는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말러다운 정열과 탐미적인 낭만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게 가장 큰 흠이다. 그렇지만 악보를 충실히 재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음폭이 균일하고 안정된 음색이 장점이며 오자와는 이를 통해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밝은 울림을 알맞게 이끌어내고 있다.
이 전집에는 ‘대지의 노래’를 제외한 열 곡의 교향곡과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담겨 있으며 이 중 1번, 2번, 3번, 7번 교향곡이 들을 만하다. 또 제시 노먼의 엄숙한 목소리가 빛을 발하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도 좋은 연주에 속한다. 모두 보스턴 심포니와 연주한 녹음.
아슈케나지의 슈만 피아노 독주곡집(7CD)은 저가 전집 박스 세트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슈만의 대표적인 독주곡이 대부분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연주도 아슈케나지의 보편적인 이상이 잘 구현되어 있어 합당한 가격에 좋은 연주라는 아이템과 잘 들어맞는다. 소품 연주보다는 ‘어린이 정경’ ‘카니발’ ‘교향적 연습곡’ 등 대곡의 연주가 더 뛰어나다.
또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연주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외스트만의 모차르트 오페라곡집(10CD)도 인상적이다. 이 박스에는 외스트만이 드로트닝홀름 궁정극장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가 담겨 있다. 마니아들에게는 수집 대상으로 알려진 음반이지만, 다소 밋밋한 원전 연주의 실내악적 분위기를 싫어하는 이도 많다. ‘코지 판 투테’를 제외한 작품에 바리톤 하칸 하게고드와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가 공통으로 출연하고 있으며, 두 사람의 미성이 외스트만의 관현악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술피리’에서는 조수미의 ‘밤의 여왕’ 아리아도 들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고음악 팬들이 좋아할 만한 전집물 두 세트도 선보였다. 아카데미 체임버 앙상블의 헨델 실내악 전집(9CD)과 피케트, 룰리, 노링턴의 몬테베르디 작품집(8CD)이 그것이다. 헨델 음반에는 세 곡의 오보에 소나타, 여섯 곡의 리코더 소나타, 아홉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다섯 곡의 플루트 소나타가 담겨 있으며, 몬테베르디 음반에는 ‘성모 마리아의 저녁 기도’, 오페라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 ‘오르페오’, 발레 음악 ‘새침데기 아가씨들의 춤‘, ‘마드리갈 곡집 4, 5권’ 등이 수록돼 있다. 이 밖에 주빈 메타,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로린 마젤, 안탈 도라티 등의 연주를 모은 R.슈트라우스 교향시(6CD)와 니콜라이 코르니예프가 지휘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체임버 합창단의 러시아 종교 합창곡집(7CD)도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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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하모닉 스페셜 에디션
‘더 말러 브로드캐스츠 1948∼1982’ & ‘번스타인 라이브’

라이브의 참맛을 담은 ‘뉴욕 필하모닉 스페셜 에디션’. 1996년부터 발매되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20세기 뉴욕 필하모닉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그야말로 특별한 음반이다. 사실 이 시리즈의 존재는 이미 국내에 폭넓게 알려져 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직거래 구입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마니아에 의해 소문이 조금씩 돌기 시작한 것. 특히 이번에 소개된 ‘더 말러 브로드캐스츠 1948∼1982’는 진지한 ‘말러리안’이라면 거의 하나씩 소장하고 있을 만큼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유명한 음반이다.
1842년에 창단해 올해로 창립 160주년을 맞은 뉴욕 필하모닉은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오케스트라이다. 또 이 악단을 거쳐간 무수한 거장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그 자체로 클래식 음악의 연주 역사가 될 만큼 영향력도 드높다. ‘뉴욕 필하모닉 스페셜 에디션’은 이런 오랜 역사와 전통에서 비롯된 품목이다. 더불어 1922년부터 악단의 라이브 연주가 라디오 방송에 중계된 영향도 크다(현재도 뉴욕 필하모닉의 실황 연주를 WQXR-FM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음원이 존재하게 됐고, 이와 같은 특별 에디션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반의 세심한 구성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1차분으로 수입된 두 타이틀 ‘더 말러 브로드캐스츠 1948∼1982’(10CD)와 ‘번스타인 라이브’(10CD)에는 각기 두 권의 두터운 책자가 담겨 있다. 246페이지 분량의 책자에는 연주가, 작곡가, 곡목 해설, 사진, 인터뷰 자료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누구라도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말러에게 조련된 세계 최고의 말러 오케스트라 말러 음반은 타이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948년에서 1982년 사이에 방송된 연주를 모아 전집 형태로 구성한 것이다. 큰 줄기는 ‘말러에게 조련된 세계 최고의 말러 오케스트라’이다. 곧 1908년 말러가 악단을 맡은 후 뉴욕 필하모닉이 말러 교향곡에 관한 한 최고의 악단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게 골자다. 사실 뉴욕 필하모닉이 말러 교향곡 해석에 끼친 영향은 말 그대로 지대하다. 이는 음반에 수록된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증명 가능하다. 바비롤리(1번, 9번·1959, 1962), 메타(2번·1982), 불레즈(3번·1976), 솔티(4번·1962), 텐슈테트(5번·1980), 미트로풀로스(6번, 10번·1955, 1959), 쿠벨릭(7번·1981), 스토코프스키(8번·1950), 발터(대지의 노래·1948), 피셔 디스카우(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1964) 등 하나같이 말러 해석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들의 연주가 담겨 있다. 굳이 이 사람들의 연주를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고른 완성도를 갖춘 최상의 해석을 들려주고 있다.
‘번스타인 라이브’는 뉴욕 필하모닉의 황금기를 연출한 번스타인의 업적을 기린 것이다. 1958년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1969년 사임하기까지 번스타인은 이 악단과 함께 생애 최전성기를 보냈다. 음반에는 1958년에서 1977년까지의 연주가 담겨 있으며 여기에는 모두 번스타인 나름의 보편적인 개성이 표출되어 있다. 특히 수많은 현대음악 음원을 복원해 번스타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케 한 점이 높이 살 만하다. 번스타인의 해설과 함께 수록된 코플랜드, 크세나키스, 브란트, 불레즈, 케이지의 작품을 비롯해 브리튼, 바레즈, 루글레스, 아이브스, 헨체 등의 곡이 세련된 모습으로 해석되어 있다. 그리고 베르만(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뒤 프레(슈만 첼로 협주곡), 켐프(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아슈케나지(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등과 함께 한 연주와 독특한 브루크너 교향곡 6번, 스트라빈스키의 ‘나이팅게일의 노래’ 등이 담겨 있다. 모두 디지털로 리마스터링되어 비교적 음질이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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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벤트로트ㆍ잔데를링ㆍ길렌
독일에서 태어난 세 명의 지휘자, 헤르만 아벤트로트와 쿠르트 잔데를링, 미하엘 길렌의 특별 에디션을 살펴보자. 이들은 서로 연주 경향은 다르지만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정치적 좌파라는 공통점과 국내에 뒤늦게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아벤트로트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동독에 머물며 음악 세계를 이어갔고, 잔데를링은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망명했다가 되돌아와 동독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각광받았다. 길렌은 서독을 비롯한 서유럽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열렬한 사회주의 신봉자였다.

서유럽에 있으면서 자본주의를 신봉하지 않았던 길렌은 자신의 사상을 음악 속에 투철하게 구현하려 했다. 지금은 비교적 자주 나오는 편이지만, 한때 길렌은 레코드 산업과 스타 시스템을 극도로 싫어해 소규모의 음반만 선보였다. 잔데를링도 마찬가지. ‘서독의 카라얀, 동독의 잔데를링’으로 비교되곤 했지만 그의 음반은 카라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이다. 제일 선배격인 아벤트로트의 음반은 더욱 처참하다. 188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1956년에 사망한 그는 당시 푸르트벵글러와 맞먹는 명성을 날렸지만, 동독을 기반으로 활동한 터라 정식 음원이 별로 남아 있지 않는 실정이다.
음반이 별로 없다고 해서 이들이 뛰어난 음악가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레코드 산업은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산물에 불과하다. 세 사람은 지리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음반만 내놓게 됐고, 이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명성이 알려졌을 뿐이다. 연주의 척도를 음반만으로 판단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들의 음원을 때늦게 접할 수 있는 것만도 분명 반가운 일이다.

푸르트벵글러와 맞먹는 명성, 아벤트로트 바로 세우기
각설하고 헤르만 아벤트로트의 음반부터 살펴보자. 아벤트로트의 유산은 그간 프랑스의 타라 레이블에 의해 많이 복원됐다. ‘아벤트로트의 예술’ ‘아벤트로트의 초상’ 등을 비롯한 일련의 시리즈로 타라는 아벤트로트를 20세기의 거장 지휘자로 새로이 자리 잡게 만들었다. 이번에 선보인 음반도 타라가 주창하는 아벤트로트 바로 세우기의 일종이다. 아벤트로트의 음반은 크게 세 흐름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번에 수록된 것은 그의 말기에 해당되는 연주이다. 1948년에서 사망할 때까지 아벤트로트는 라히프치히와 베를린 방송국에서 라이브 연주를 꽤 많이하며 명성을 쌓았다. 이를 주목한 체코 레이블 수프라폰은 1951년과 그 이듬해 아벤트로트와 몇 차례 레코딩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이번에 선보인 음반이 바로 아벤트로트가 수프라폰에서 발매한 음원으로 타라가 수프라폰의 정식 허락을 받고 자칫 수장될 뻔한 음원을 리마스터링을 거쳐 복원한 것이다.

음반에는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 한 브람스 교향곡 1, 2번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프라하 방송 교향악단과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3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4번이 담겨 있다. 브람스 교향곡 전곡과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연주는 아벤트로트의 옛 명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초기인 1927년 연주(THA 102)보다 약간 템포를 빨리 하면서 중후한 낭만을 얇으면서도 텁텁하게 그려나가는 브람스 교향곡도 멋지지만,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베토벤 9번 교향곡도 놓치기엔 아깝다. 푸르트벵글러와는 또 다른 맛을 풍기는 주정주의 해석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연주다.
잔데를링의 음반에는 지난 5월 19일에 열린 그의 90세 기념 연주회 실황이 담겨 있다(이 연주를 끝으로 잔데를링은 은퇴를 선언했다). 1912년생인 그는 같은 나이인 귄터 반트, 게오르그 솔티 등은 이미 세상을 등졌지만, 여전히 음악계의 신화로 남아 있다. 은퇴 연주회는 1960년에서 1977년까지 17년 동안 몸담았던 ‘그의 악단’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다. 서독의 베를린 필하모닉에 대항해 동독 정부가 1955년에 설립한 베를린 심포니는 잔데를링의 지도 아래 세계적인 악단으로 거듭났다. 우치다 미츠코와 함께 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슈만 교향곡 4번,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이날의 레퍼토리였으며, 지휘자는 일생 동안 펼쳐온 자신의 음악 신념을 세심하면서도 힘차게, 그리고 즐거운 하모니로 아로새겨놓았다.

잔데를링, ‘그의 악단’과 함께 음악계를 떠나다
이와 더불어 1966년 이고르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한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965년·1971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함께 한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2번, 1972년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가진 연주 실황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 담겨 있다. 모두 잔데를링의 즉물적이면서도 유유자적한 연주 경향을 분석하는 데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 밖에 이 음반에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주목할 만한 연주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바이올린에서 일가를 이룬 오이스트라흐는 한때 지휘자의 역할에도 상당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베를린 심포니의 바이올린 파트를 자주 지도했고 가끔 지휘를 겸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과 슈베르트 교향곡 2번,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이 담겨 있다. 이 중 쇼스타코비치 연주가 단연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스탈린 체제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내면 세계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강렬하게 펼쳐져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길렌의 음반은 그의 75세 생일을 기념한 재발매 세트로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를 비롯해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스크랴빈, 부조니의 음악이 담겨 있다. 길렌은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특히 그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는 국내에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는데, 과장이나 감정이입을 일체 배제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다이내믹과 긴장감을 발휘하는 연주가 다소 생소했기 때문이다. 이 경향을 오롯이 견지하고 있는 교향곡 8번이 이번 세트에 포함되어 있으며,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브루크너 교향곡 6번에서도 텍스트의 투명한 구조를 일관되게 구현하는 그의 뚝심 있는 연주를 접할 수 있다. 아방가르드 성향의 현대 작곡가이기도 한 그는 현대음악 해석에 탁월한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의무와 경향’을 비롯해 쇤베르크의 ‘행복한 손’, 베르크의 ‘포도주’, 베베른의  ‘다섯 개의 관현악 소품’, 스토이에르만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곡’이 담긴 음반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의 손에 의해 현대음악의 구조가 속속들이 파헤쳐지며 좀더 쉽게 마음속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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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 그러나 스쳐만 가는 … 현대인

[중앙일보   2006-02-17 21:56:50] 
[중앙일보 손민호.김태성] 일본엔 순수문학상과 대중문학상이 따로 있다. 아쿠타가와.가와바타 야스나리상 등은 전통의 순수문학상이고 요즘 한국에서도 호응이 높은 나오키, 야마모토 슈고로상 등은 대중문학상이다.

이 두 종류의 상을 한꺼번에 받은 작가가 있다. 38세의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사진)다. 2002년 '퍼레이드'로 아쿠타가와상을 받고선 같은 해 '파크 라이프'로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받았다. 일본 문단 유일의 기록이다. 여태 소설 4권이 소개된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은 이미 안정된 독자층을 형성했다.

신작소설 '랜드마크'(은행나무) 홍보차 입국한 그를 16일 저녁 만났다. 함께 방한했다는 일본의 유명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와 문예지'야성시대'(野性時代) 관계자도 나와있었다. 작가의 지명도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가까이서 그를 바라봤다. 깊은 눈동자는 총명해 보였고, 장난기 깃든 표정 잠깐 스쳤던 것도 같다.


-새 소설을 설명해달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조차 없는 현대사회를 그리고 싶었다. 한 공간에서 생활하더라도 만나지도 못하는 현대인의 부박한 삶을 그렸다."(소설의 공간은 35층짜리 대형빌딩 건설현장이다. 건물 설계사와 철근공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하나 둘의 삶은 늘 엇갈린다. 공동생활 구조이지만 둘의 일상은 판이하다. 한 식당에서 밥 먹고 한 곳에서 일하지만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서 일정한 패턴이 읽힌다. 대도시에 사는 지방 출신 30대 남성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내 소설은 대도시의 삶을 말한다. 도시를 말하기 위해 다른 색깔을 띤 지방이 필요했다. 지방 출신 주인공을 통해 대도시의 이질적인 무언가를 고민하고 싶었다. 30대가 대부분인 건 나와 동년배여서이다."(일본 남쪽 나가사키 출신인 그는 현재 도쿄에 거주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인 셈이다.)

-한국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한국소설은 번역된 게 드물어서인지 읽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는 '살인의 추억''실미도'등 몇 편 봤다. '살인의 추억'에서 등장인물이 땀흘리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등장인물이 먹는 음식을 너무 길게 설명한 건 아닌가.

"아, 그런가? 처음 받는 질문이다. 사람은 먹는 음식에서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 것 아닐까?"

-하루키 이후 일본소설에서 음식 이야기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리법, 먹는 방법, 음식의 특성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요즘 한국소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읽힌다.

"흥미로운 얘기다. 그런 면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보다 더 젊은 일본작가들에게선 전혀 다른 생활 습관이 등장한다. 먹는 얘기는 아예 생략된 소설도 있다. 먹는 것조차 귀찮은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중 어디와 가까운지를 물었다. 순간 난감해 하더니 이렇게 답했다."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높은 평가만 받는다고 해서 좋은 문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쓸 때 누군가 내 소설을 읽는다는 걸 늘 염두에 둔다."

뻔한 것도 같지만 두고두고 남는 말이다. 재기 발랄한 줄만 알았더니 생각도 깊다. 평단과 독자의 호응을 함께 끌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손민호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plove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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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황보석 옮김 / 문이당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절판되었다가 다시 발간된 책. 부커상을 받았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이 책이 우리 독자들에게 읽히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외국 서평 자료를 보면 이 책의 장점은 "언어의 묘미"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번역된 책을 보면 그것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역자가 서문에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역자와 출판사의 불성실함이다. 지은이가 서술해놓은 인도의 문화(언어, 신, 관습)에 관한 설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자료 조사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가 무수히 오가기 때문에 정독을 하지 않으면 흐르을 놓치기가 쉽다. 작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에게도 성실하게 생명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장황하고 복잡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곧 책을 끝까지 다 읽어야 줄거리를 총체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아룬다티 로이의 문학세계가 문학의 본질에 근접해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더 이상 소설은 쓰지 않고 환경운동과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에 치중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에 한가하게 소설 따위를 쓸 수는 없다"는 것이 그녀의 항변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문학의 본질'과 그녀가 더 이상 '소설 따위는 쓰지 않는다'는 뜻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그 두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겠다. 문학에는 두 사람이 말한 이상의 무엇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말한 본질적인 질문에 계속 답하면 하나씩 읽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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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눌 2007-03-1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가 소설을 쓰지않고 환경운동 신자유주의 반대운동등에 힘쓰는 것 자체가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문학에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