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그러나 스쳐만 가는 … 현대인

[중앙일보   2006-02-17 21:56:50] 
[중앙일보 손민호.김태성] 일본엔 순수문학상과 대중문학상이 따로 있다. 아쿠타가와.가와바타 야스나리상 등은 전통의 순수문학상이고 요즘 한국에서도 호응이 높은 나오키, 야마모토 슈고로상 등은 대중문학상이다.

이 두 종류의 상을 한꺼번에 받은 작가가 있다. 38세의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사진)다. 2002년 '퍼레이드'로 아쿠타가와상을 받고선 같은 해 '파크 라이프'로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받았다. 일본 문단 유일의 기록이다. 여태 소설 4권이 소개된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은 이미 안정된 독자층을 형성했다.

신작소설 '랜드마크'(은행나무) 홍보차 입국한 그를 16일 저녁 만났다. 함께 방한했다는 일본의 유명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와 문예지'야성시대'(野性時代) 관계자도 나와있었다. 작가의 지명도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가까이서 그를 바라봤다. 깊은 눈동자는 총명해 보였고, 장난기 깃든 표정 잠깐 스쳤던 것도 같다.


-새 소설을 설명해달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조차 없는 현대사회를 그리고 싶었다. 한 공간에서 생활하더라도 만나지도 못하는 현대인의 부박한 삶을 그렸다."(소설의 공간은 35층짜리 대형빌딩 건설현장이다. 건물 설계사와 철근공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하나 둘의 삶은 늘 엇갈린다. 공동생활 구조이지만 둘의 일상은 판이하다. 한 식당에서 밥 먹고 한 곳에서 일하지만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서 일정한 패턴이 읽힌다. 대도시에 사는 지방 출신 30대 남성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내 소설은 대도시의 삶을 말한다. 도시를 말하기 위해 다른 색깔을 띤 지방이 필요했다. 지방 출신 주인공을 통해 대도시의 이질적인 무언가를 고민하고 싶었다. 30대가 대부분인 건 나와 동년배여서이다."(일본 남쪽 나가사키 출신인 그는 현재 도쿄에 거주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인 셈이다.)

-한국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한국소설은 번역된 게 드물어서인지 읽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는 '살인의 추억''실미도'등 몇 편 봤다. '살인의 추억'에서 등장인물이 땀흘리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등장인물이 먹는 음식을 너무 길게 설명한 건 아닌가.

"아, 그런가? 처음 받는 질문이다. 사람은 먹는 음식에서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 것 아닐까?"

-하루키 이후 일본소설에서 음식 이야기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리법, 먹는 방법, 음식의 특성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요즘 한국소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읽힌다.

"흥미로운 얘기다. 그런 면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보다 더 젊은 일본작가들에게선 전혀 다른 생활 습관이 등장한다. 먹는 얘기는 아예 생략된 소설도 있다. 먹는 것조차 귀찮은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한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중 어디와 가까운지를 물었다. 순간 난감해 하더니 이렇게 답했다."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높은 평가만 받는다고 해서 좋은 문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쓸 때 누군가 내 소설을 읽는다는 걸 늘 염두에 둔다."

뻔한 것도 같지만 두고두고 남는 말이다. 재기 발랄한 줄만 알았더니 생각도 깊다. 평단과 독자의 호응을 함께 끌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손민호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plove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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