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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 노동자들 피눈물 공정무역 통해서 보듬어야”
입력: 2008년 02월 19일 18:19:43
 
ㆍ한국공정무역연합 박창순 대표

어느 때부터인가 ‘공정무역(Fair Trade)’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제3세계 생산자들이 만든 생산품을 최소한의 유통과정을 통해 소비자가 구입하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상품에 대한 공정한 가격을 지불해 제3세계 노동자들이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아동노동으로 만들어진 물품은 제외한다고 해서 ‘아름다운 거래’ ‘윤리적 소비’라는 말로도 불린다.


‘공정무역’이라는 낯선 개념과 그 의의가 알려지게 된 데는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61)의 공이 적잖다. 2005년 방송본부장을 끝으로 EBS를 퇴직한 그는 지난해 4월 이 단체를 결성하면서 공정무역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195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이후 공정무역은 날로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교역량 세계 11위의 한국도 제3세계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정무역=정의로운 무역’이라고 했다. 공정무역은 유통과정에서 폭리를 취하는 다국적 기업의 개입을 배제하고, NGO 등을 통해 생산물의 거래가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통과정이 거의 직거래에 가깝기 때문에 생산자는 물건 가격을 20~30% 정도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농약을 살포해 대량생산하는 다국적기업의 농산물과 달리, 소농가에서 생산하는 공정무역 농산물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적 제품이라는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무역이 세계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있는 자가 더 돈을 벌고 없는 자는 궁핍해지는 자유무역의 폐해를 외면한 주장”이라며 “공정무역을 통해 생활이 향상된 사람이 전세계 700만명에 이른다”고 반박했다. 이어 “공정무역이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밖에 안되는데 무슨 질서를 교란하겠느냐”면서 “오히려 공정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만 돼도 1억2800만명의 극심한 빈곤층이 혜택을 입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퇴직 후 ‘아름다운 거래’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국내에서 농산물의 도농직거래 등을 다루는 ‘한살림운동’에 참여해온 터라 공정무역이 낯설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공정무역’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공부모임과 교육강좌를 개최하고 교재를 개발해 일선 학교 등에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2월14일 ‘발렌타인 데이’때는 ‘피아노와 이빨’이라는 콘서트를 열고, 공정무역을 통해 만들어진 ‘착한 초콜릿’을 홍보해 성공을 거뒀다. 오는 4월에는 공정무역의 생산지인 네팔 등 제3세계 국가들을 방문하는 ‘공정무역 여행’을 떠난다는 계획이다.

〈 이용욱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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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구출하라](4) 바리케이드를 쳐라
입력: 2007년 12월 11일 18:31:45
 
“이제 토플책 덮고 거리로” 자각하는 침묵의 세대
청소년들이 지난 10일 서울 이랜드 앞에서 비정규직 탄압에 항의하는 모임을 갖고 있다. |프레시안 제공
- 권익을 위해 싸우는 프랑스 청년들-

지난달 초 프랑스의 파리1·4, 툴루즈, 루앙, 페르피낭, 렌 등 전국 10여개 대학 학생들은 각 캠퍼스에서 시위를 했다. 등록금 인상과 기업 기부금 모금을 허용하는 내용의 ‘대학 자치법’이 대학을 사유화하고 대학 평준화를 깬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1월 프랑스 정부가 최초고용계약법(CPE)을 발표했다.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는 최초 고용 2년간 특별한 사유없이도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첫 취업하자마자 해고에 직면하게 된 청년들은 법안 철회를 요구하며 대대적 시위를 벌였다. 3월에는 100만명이 대학과 거리에 모였다. 그리고 3개월 뒤 정부는 법안을 폐기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악조건 하에 있는 한국의 88만원세대는 조용하다. 교육권·노동권과 밀접한 등록금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초·중·고 때부터 사회 과목에서 노동기본권은 물론 플래카드 작성법, 모의 노사 교섭까지 가르치는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 달리 노동 문제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 한국의 제도권 교육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교육부와 전경련이 함께 만든 경제교과서가 등장하고, 기업이 대학을 평가할 정도로 과도한 시장주의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조한혜정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같은 책을 읽으며 자란 이들 세대는 ‘모든 게 너 하기 나름’이라는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젊은 인재들은 자기 주도적으로 노동시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저 삼성을 바라면서 시스템에 그대로 포섭돼 버립니다.”

- 88만원세대 책읽기로 시작된 자각 -

최근 발간된 ‘88만원세대’는 이런 침묵과 순응, 체념에 맞서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제안했다. 88만원세대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저항하고 조직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요구는 너무나 얌전하고, 기성체제에 안주하는 88만원세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88만원세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소수이지만, 이런 문제 인식에 대해 공감하고 자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공감은 우선 ‘88만원세대’라는 책을 사서 읽는 작은 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88만원세대’는 출간 4달 만에 2만5000부를 돌파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꿈의 1만부’라는 판매량을 2배 넘어섰다. 지난 5일 8쇄로 1만부를 더 찍었다. 출판사 레디앙의 이광호 대표이사는 “젊은 세대를 소비 주체가 아닌 사회 경제적 의미로 분석한 이 책이 광고를 낸 것도 아닌데, 젊은 층에서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 서적의 20대 구입 비율은 20%. 그런데 ‘88만원세대’는 40% 이상이다. 20대에게 인기 있는 책이 ‘부자학’ ‘처세술’ ‘취업교재’라는 점을 고려하면 ‘88만원세대’의 판매량이나 판매 추세는 이례적이다.

20대 블로거들이 온라인에 올린 ‘독후감’도 수백 건에 이른다.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시민독서프로젝트 교재로 사용하는 등 각 지역의 여러 독서모임, 문화사랑방에서도 책 읽기가 활발하다. ‘수유+너머’ 독서프로젝트 매니저 김연숙씨는 “우리의 ‘불안정한 삶’이 독서프로젝트의 키워드였는데, ‘88만원세대’는 사회 비정규직 문제와 세대 문제를 지식이 아닌 현실로 다루고 있어 교재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에 항의하며 쓴 구호, ‘비정규직 악법이 뿌린 저주, 다음은 우리 차례예요’라고 적혀 있다. |프레시안 제공
- 21세기의 의식화 교재로 -

성공회대·연세대·인천대 일부 수업에서도 ‘88만원세대’를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인천대에서 ‘한국사회노동문제’라는 이름의 교양 강의를 맡고 있는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이 책은 지금의 20대들에게 가장 적나라하게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는 “학생들이 아주 공감한다. ‘이제 내가 정말 왜 불안한지 알겠다. 책 읽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짱돌을 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부분 똑똑하게 핵심을 간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교수 수업에 들어간 학생들이 과제로 써 낸 서평에서는 상위권 대학 학생들도 ‘88만원세대’로서 느끼는 불안감이 드러난다. 다음 학기 졸업을 앞둔 박모씨(25)는 지원 회사 10곳 중 7곳 정도가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다. “(회사를) 골라가기는커녕 백수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시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말 88만원을 받고 회사를 다니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나는군요.”

기성 세대를 향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김윤하씨(19)의 말이다. “기성 세대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요.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손을 내밀고 관심 가져주시면 될 텐데….” 윗세대의 관심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서명선씨(20)는 “기성세대에게 ‘우리 불쌍하니까 가엾게 여겨서 고쳐주세요’라고 할 건가. 그들이 나누어 줄 것 같은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 개인아닌 사회문제로 보자-

이원희씨(20)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인 문제이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이제 이야기 좀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잖아요.” 안슬기씨(20·여)는 “밤새 토플책을 읽기보다 하루치 토플 시험을 보지 말자. 시사 공부를 위해 신문 스크랩을 하기보다 아름다운 반항으로 신문의 기사거리가 되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최모씨(19)는 “지금은 ‘노동 기회 소멸의 시대’다. 이제 이 판을 한 번은 엎어볼 때다. ‘배틀로얄’에서 게임의 룰을 한번 정도는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가 존재함을 서로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88만원세대들이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도 했다. 성공회대에서는 11월27일부터 3일간 ‘비정규직 전시회 시즌 1’이 열렸다. 민주자료관과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가 주최하고 학생들도 참여했다. 유소라씨(24)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친구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다 같이 함께 노력하고 뭉치는 것이 대안임을 알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참여 학생들은 ‘우리가 바로 미래의 비정규직’이라며 전시 참여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전시장에는 홈에버, 롯데호텔 노조 등 비정규직 농성장에서 기증받은 글과 영상물로 빼곡히 채웠다. 3일 동안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녀갔다. “4학년으로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저 역시 불안해요. 시험 때면 예민해져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해결하려면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잖아요.” 유씨의 말이다.

- 저항하는 사이 경쟁 탈락 걱정도 -

그러나 누가 나서서 바리케이드를 칠 것인가. 김모씨(20·여)는 “내가 (책에서 말한대로) 짱돌을 드는 사이에 다른 ‘현명한’ 이들은 좁은 취업문을 벌써 비집고 들어가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5% 정규직을 향해 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김씨의 손목을 붙들어 맨다. 박모씨(22)도 “짱돌을 들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모호함보다 누군가 짱돌을 들 때 나는 GRE(미국일반대학원 입학자격시험)를 공부해 얻을 수 있는 작은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경씨(25·성균관대)는 “20대가 처한 고민을 친구들과 나눠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세대 중심으로 20대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와 닿지 않는다. 결국은 계급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아직 소수지만 곧 운동으로 확산될 것 -

이들 88만원세대들의 자각과 공감이 사회 변화의 에너지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하종강 소장은 “이랜드 신촌 본사에 와서 깃발 들고 오는 청소년들이 소수지만 있다”며 “소수의 정서가 다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1970~80년대 소수 극렬 운동권의 정서가 80년대 말 대중의 정서가 됐다”며 “지금도 대학 내에서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운동권은 백안시 되지만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면 대중의 정서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세화씨는 “20대들은 이념적으로 보수적인 게 아니라 탈정치 때문에 보수적이 된 것”이라며 “88만원세대가 정치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질 때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목·유정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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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李 지지·정책연대”…노동자의 ‘자기 배반’
입력: 2007년 12월 10일 02:56:27
 
-“계급 정체성 잃은 인기투표 아니냐”
-대상 제한 문국현·권영길은 아예 배제해 논란
-“85만 중 10만표로 결정 대표성 의문”

한국노총은 정책연대 후보 선정을 위해 지난 1~7일 휴대폰 번호를 제출한 조합원 45만6152명을 대상으로 총투표를 실시한 결과, 유효투표 23만6679표(투표율 52%) 중 이명박 후보가 9만8296표(득표율 41.5%)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7만3311표(31%),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6만5072표(27.5%)를 얻었다. 한국노총은 10일 이명박 후보측과 정책연대 협약체결식을 갖고 공개지지를 선언한다.


한국노총의 총파업 진군대회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노동계 내부에선 “항상 여당을 지지하던 20여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노총으로서의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10월초 이후보와의 정책간담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해고 자유 확대’를 언급하는 등 대통령 후보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보는 지난 7월 당 경선 울산 합동연설회에서 “정치노조, 강성노조, 불법 파업을 없애겠다”고 했고, 지난 9월 대구 중소기업인 타운미팅 때엔 “우리나라처럼 비효율적이고 불법적이고 극렬한 노동운동을 하는 곳은 없다”며 노조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됐을까. 후보들의 정책을 자신의 정체성에 비춰 판단하기보다 당선 가능성 등 일반 유권자의 눈으로 이미지만 좇음으로써 ‘인기투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혁재 경기대 교수는 “우리는 노동자들이 계급적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노동자 의식의 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제고하고 그 결과가 반영될 수 있는 충분한 장치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각 후보들로부터 ‘10대 과제, 12대 요구’에 대한 답변을 받았지만 차이점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제 ‘동일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계속 사용 규제’에 대해 이명박 후보가 ‘인사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실상 반대인 ‘논의 필요’로 응답했지만 그 의미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한국노총의 핵심 관계자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만든 답변 분석표가 중립적이어서, 어느 후보가 우리 요구를 더 잘 반영했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노총 내부에서 별도의 평가위원회를 구성, ‘노동자적 평가’를 위한 잣대를 제공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지도부가 특정후보 지지를 유도한다는 비판을 살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특히 MBC와 공동 추진한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이명박 후보측 거부로 무산되면서 조합원들은 공개적 비교·검증 기회도 잃었다.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선택을 제약한 측면도 지적된다. 정책연대 대상을 지지율 10%로 제한하면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아예 제외됐다. 한 조합원은 지난 2일 한국노총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한국노총이 상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전화투표하는 세 후보 말고 다른 분을 찍겠다”면서 투표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영삼 한국노총 대변인은 “현재의 보수화된 여론이나 정치구도를 넘기엔 힘들었던 것 같다”면서 “이명박 후보 집권후 반노동(자)적인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정책연대는 언제든 파기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불안한’ 정책연대라면 조합원 총투표까지 실시하며 연대를 시도하는 명분이 약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조 진영은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득표가 원칙인데, 한국노총 조합원 85만여명 중 10만표가 안되는 지지를 가지고 노총의 공식 방향을 잡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광호·김창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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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한국인의 자회상](4)‘보금자리’ 아닌 ‘복권’이 된 아파트
입력: 2007년 06월 19일 17:49:34
 
동창회, 술자리, 회식자리에서 이처럼 검질기게 따라 다니는 주제가 또 있을까.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가족이 복닥거리며 사는 ‘집’이 아니라 이익이 남으면 털어버리고 다른 것을 찾아야 하는 ‘자산’이 됐다. 사서 한몫 챙길 수 있는, 그러면서도 상당히 승률 높은 ‘복권’이 됐다. 왜 그럴까. 비강남지역 아파트에 거주하는 최상렬씨 등 4명이 4월19일 경향신문사 인근의 한 식당에서 최우규 기자의 사회로 3시간30분 동안 아파트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비강남지역과 경기지역 소형아파트에 거주하는 최상렬, 김두규, 김문식, 이상섭씨(왼쪽부터)가 지난 4월 경향신문 인근 한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김영민기자>
사회=요즘 사는 게 어때요.

이상섭=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힘들어요. 친척 부부랑 우리 부부가 결혼생활 시작할 때 종잣돈은 비슷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맞벌이라서 집을 ‘질렀고(상황을 따지지 않고 구매했고)’, 그 집 부부는 남편이 혼자 버는 처지라 못 질렀죠. 우리 집 값이 올랐고, 두 집안 순자산을 비교해보니 1억원 차이가 납니다. 이게 정상이 아닙니다.

김두규=저도 맞벌입니다. 집값이란 게 오를 때는 많이 오르고 떨어질 때는 조금 떨어질 것이라는, 누구나 그런 인식을 하는 것 아닐까요. 집사람은 ‘여기 말고 다른(더 오른) 데 샀어야 하는데’ 하는 말을 합니다.

최상렬=집 한채 가진 사람에게는 집값이 오르는 게 의미가 없어요. 당장 팔아 차익을 실현할 게 아니니까. 저는 원래부터 집에 관심이 없었어요. 뉴스를 보면 샐러리맨이 집을 마련하는 데 평균 7년 걸린다기에 ‘앞으로 4년 정도 있으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아내가 2005년 아파트를 사기로 한 거죠.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죠.

이상섭=첫째 애는 본가에서 봐줬는데 둘째 애가 태어났어요. 아내가 둘째는 직접 키우고 싶어하는 눈치였죠. 그런데 아파트 사느라고 대출받은 1억8000만원에 대한 이자가 한달 120만원 정도예요. 한 사람이 버는 돈은 통장에 하루 머물러 있다가 빠져나가는, 정거장인 셈이죠. 돈 모으려면 맞벌이를 해도, 아는 사람이 결혼도 해서는 안돼요. 축의금 나가야 하니까(웃음). 그렇게 고생해봐야 3년에 3000만~4000만원밖에 모을 수가 없죠. 그런데 애들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고 돈 쓸 데가 많아요. 지금 사는 아파트를 전세주고 줄여서 작은 집에 전세로 들어가고, 둘째는 시골에 내려보내더라도 큰애만이라도 키울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육아와 주택이 다른 문제 같지만 실제는 같은 문제죠.

김두규=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애가 영어학원도 다니고 학교에서 시험도 보고 하는데, 할머니가 봐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한번은 애가 ‘딥송(diphthong·이중모음)’이라는 걸 묻는데 저도 몰랐어요. 학원에 안 보내고 놀이터에서 놀게 할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에요. 애 봐가면서, 맞벌이하면서 집 늘리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해요.

사회=꼭 아파트여야 했나요.

이상섭=대출을 받았는데, 이자 보전 정도는 되겠지 싶었어요. 어차피 전세에 살면 전세금을 묵혀두는 데 대한 이자비용이 있지 않나요. 그것을 생각하면 비슷비슷하죠. 다른 것보다 아파트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잖아요.

김두규=전세를 살면 계약 기간이 끝나고 이사가야 하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살려면 집을 사야 했죠. 맞벌이 하기 때문에 애를 봐주실 부모님 댁 가까운 곳을 찾다보니 지금 아파트로 가게 됐습니다. 저는 여유가 생기고 은퇴하면 마당이 있는 곳에 사는 게 꿈이에요. 아파트가 안전이나 방범, 집값 등 좋은 요소가 있지만 마당에서 하늘보고 저녁에 삼겹살 구워먹는 게 좋아요.

최상렬=결혼하면서 처음 아파트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살아보니 편하더라고요. 집사람은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 살아와서 편하게 생각합니다. 관리비만 내면 알아서 다 해주니까. 전세 4년 살다가 집을 사게 된 계기는 애가 둘이 돼서죠. 애들을 처가가 봐주기로 해서 따라간 거죠. 경기 광주 아파트 전세를 알아봤는데 값이 싸기에 대출받아서 샀어요.

김문식=1998년 결혼해 서울의 서강대 근처 다세대 13평짜리 방을 얻었는데 도둑을 맞았어요. 아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아파트가 일단은 안전문제가 해결이 되죠. 지금 사는 빌라에서도 도둑이 들 뻔했어요. 현관 벨이 울려 아내가 잠결에 ‘당신이야’라고 물으니까, ‘어’라고 대답하더래요. 문을 열어 보니 아무도 없고. 도둑이 사람이 있나 확인해보고 그냥 내뺀 거예요. 환금성도 다른 무엇보다 강합니다. 바로 팔아 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사회=직장생활하면서 아파트 마련하기가 쉽지 않죠.

최상렬=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 6000만원을 얻었어요. 20년 상환으로 1년 거치이고, 올해부터 원금을 갚게 됩니다. 그거 때문에 맞벌이가 길어지고 있죠. 아파트는 2배쯤 오르더군요.

김두규=3억원을 주고 샀는데, 1억원을 대출받았습니다. 이자가 100만원쯤 됐는데, 회사를 옮기면서 이전 직장 퇴직금을 받아 갚았습니다. 둘이 맞벌이하면서 9년 만에 빚없는 내집을 갖게 된 셈이죠.

김문식=2000년 아파트 조합 설립 때 참가해 대출 3000만원 포함, 1억3500만원을 주고 샀어요. 집사람 직장이 신촌이고, 그래서 아파트로 안가고 계속 그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지금 사는 빌라에는 2004년 1월 보증금 80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상섭=지난해 5월 재개발 아파트에 분양권을 사고 입주했어요. 2001년 결혼하던 해 전셋값이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그래서 경기 평촌 15평짜리 아파트를 대출 끼고 8300만원에 샀죠. 집사람 직장이 사당동이어서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 뒤 우리 부부는 우스갯소리로 ‘직장이 강남에 있었으면, 가까운 분당에 집을 얻었고 그럼 가격이 더 올랐을 텐데’라는 말을 하곤 해요.

김문식=예전에 전세가 8000만원이라면 매매가가 1억1000만원 하던 때 자기 예산 안에서 안전하게 그냥 전세 산 사람이 있어요. 반면 빌려서라도 ‘에이, 사자’고 한 사람은 돈을 벌었고요.

김두규=운인 것 같아요. 저는 아파트 갈아탈 때마다 재미를 못봤어요. 결혼하기 전에 대출받고,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샀어요. 돈이 안될 거 같아 팔았는데 나중에 올랐습니다. 배가 아프더군요(웃음). 2004년에 31평형 아파트를 샀는데 애가 초등학교까지 들어갈 참이어서 팔아서 본가 아파트 근처로 갔어요. 그랬더니 판 집이 오르더라고요.

이상섭=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상가 임대료는 강남 수준입니다. 그런데 상가 사람들 ‘집집마다 최소 1억원씩 대출한 상태라서 일반 주택가보다도 구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해요. 집에 몽땅 털어 부었기 때문에 통닭도 한마리도 못시켜 먹는 거죠.

최상렬=지금 살던 아파트를 팔고 서울에 가면 강남으로는 도저히 못가고, 다른 데도 전세밖에 안돼요. 결혼할 무렵 집 장만하기 좋은 때를 놓친 게 아쉬워요. 부동산을 몰랐어요. 1억원짜리 30평대 연립주택인데 수중에 2000만원이 전부였어요. 지금 같으면 무리해서라도 대출받아 샀을 텐데…. 2년 정도 있다 그 연립주택은 재개발로 수용됐고, 죽전 쪽에 조합원 가격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주더군요. 그때 연립주택을 샀으면 지금쯤 재산이 6억~7억원은 됐을 거예요.

이상섭=은행에서 집단 대출이라는 걸 해주는데 아파트 거래 가격의 60%까지 돼요. 아직 투기지역이 아니고, 등기가 안돼서 그렇다더군요. 은행에서 하는 말이 ‘등기되면 40%로 떨어지니까 지금 받을 수 있을 때 왕창 받으라’고 하더군요. 제가 창업을 하면서 온갖 서류를 다해갔어도 달랑 500만원 받았는데, 아파트 담보만 하면 그냥 3억원씩 해주는 거예요. 빌라나 단독주택은 그렇게 안돼요.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빌라같은 게 아니라 돈을 잘 받을 수 있는 아파트로 갈 수밖에 없죠.

최상렬=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올랐어요. 지금 집을 팔면 바로 다음날도 그 돈 갖고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조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본가에 올 때마다 ‘삼촌집은 몇평이야. 우리집은 현대아파트인데 얼마전에 현대아이파크가 됐다. 우리 동네에는 푸르지오가 제일 좋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얘가 뭘 알겠어요. 어른들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자기들도 그러는 거지.

이상섭=우리 아파트 인근에 경전철이 놓인다고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그런데 얼마전에 경전철이 기차처럼 요금 먼저 내고 타는 식이 아니라 먼저 타고 요금을 계산하는 버스처럼 다니는 것으로 바뀐다고 사람들이 데모를 했어요. 요금을 먼저 내는 방식이 편하다는 거예요. 그래야 집값도 더 오르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집값을 올릴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 같아요.

김문식=이제 ‘아파트는 돈’이라는 공식이 진리가 됐어요. 농경시대에는 땅 많은 사람이 최고였는데…. 지금은 아파트 몇채를 어디에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직장이 좋아도 불안하고.

최상렬=아파트는 능력보다 큰 것을 사고, 차는 능력보다 작은 거를 타라, 그게 부자되는 길이라고 하더라고요.

김문식=우리 부부는 일산 아파트를 팔아 지금 사는 곳에서 눌러 살기로 했어요. 성산동에 공동육아제가 있는데요, ‘도토리 방과후’라고 공동육아협동조합입니다. 부모가 출자해서 교사를 불러 학교 숙제도 점검해주고 간식도 주고, 부모 퇴근때까지 프로그램 진행도 합니다. 애들에게는 언니, 오빠가 있어 좋습니다. 아파트를 처분하고 지금 전세 보증금을 받으면, 지금 사는 근처에 아파트를 하나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민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파트를 장만하기란 쉽지 않고 어렵사리 장만한 아파트도 비강남권의 경우 강남지역보다 집값이 잘 오르지 않는다. 사진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단지.
(공동육아제를 체험한 이를 처음 보는 듯 다른 참석자들은 김문식씨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맞벌이 부부들이 특히 더욱 관심을 갖는 게 자녀 교육이다. ‘부모가 어린이집 운영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데 힘들지 않느냐’는 등 질문이 쏟아졌고, 자신들의 경험담도 이어졌다.)

최상렬=시골에서 중1 때 서울로 전학 왔습니다. 지금 중학교 동창 중에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애들을 생각한다면 정착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중간에 친구와 떨어뜨리는 거는 안좋은 거 같아요.

이상섭=재테크를 할 여건이 되는 사람은 따로 있어요. 평범한 샐러리맨도 ‘집을 사고난 뒤 나중에 재건축되면 뜬다’고 알지만 돈이 있나요. 2년전쯤 아파트 입구에 ‘하교부터 귀가까지 자녀를 책임진다’는 내용의 학원광고가 붙더군요. 한마디로 집을 마련하기 위해 나머지는 다 ‘아웃소싱’하는 거예요. 부부는 맞벌이 하고, 얘들은 학원으로 내몰고.

최상렬=직장이 서울 강남에 있는데 다닌 지 10년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에 강남에 집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어요. 종부세가 엄청난데 대출받으면 이자비용에다 종부세까지 부담할 수 있나요.

김문식=유럽에서는 교육문제를 사회적으로 책임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되죠. 그러니 아파트를 갖고 있다가 팔아서 그런 거 해결하는 거죠. 단독주택이면 시세도 보고, 환경도 봐야하고 복잡하지만 아파트는 인터넷으로도 시장 가격이 바로 나오잖아요. 잘 팔리고.

이상섭=정부가 여러차례 부동산 정책을 내놨는데 지난 2월에 나온 것이 가장 강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조치를 왜 지금에서야 내놓았는지. 예전에 총선 직후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때 그런 정책을 내놓았으면 지금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것 같아요.

사회=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어떤거죠. 어떤게 행복인지요.

김문식=애가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돈이 제일 문제예요. 학원비다, 뭐다 들어갈 데는 많고. 이제 앞으로 돈 벌 시간이 10년 정도밖에 안남은 거 같고. 그래서 걱정입니다. 행복이라…. 저는 ‘만족’이라고 봐요. 남이랑 비교해보면 끝이 없고, 그저 어느 정도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고. 행복이라는 것도 스스로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싶군요.

김두규=나이 40이 되고,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되고, 회사에서 부장이 되니까 ‘아,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부쩍 듭니다. 삶의 무게라고 할까. 가족이랑 오순도순 살고 있으니 그마나 괜찮네요.

사회=정치에 대한 견해는.

김문식=저는 정치인 수준은 그 유권자 수준이라고 봅니다. 정치인 욕해봤자 스스로에게 욕하는 거죠. 참여는 하지 않고, 정치인에 대한 기대 수준은 높고, 뽑아놓고 소홀히 여기고. 그런 모순적인 상황인 듯해요.

김두규=감정적으로는 정치 혐오감, 그런 게 있어요. 당리당략, 싸움, 그런 거죠. 하지만 내 목소리를 내서 고쳐보자거나, 시민운동을 해볼까 하면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사회=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시죠.

김문식=토지공개념이 위헌이 아니라니까 좀 더 밀어붙였으면 해요. 집으로 재산을 불릴 생각을 하지 말도록요. 그리고 뉴타운이니 뭐니 하는 각종 개발은 3~5년에 걸쳐 할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측이 되고 주민도 선택권을 갖고, 투기도 줄어들 거 같아요. 저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지지하는 정당은 없습니다. 대선 후보 중 아직 확실히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문국현씨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최상렬=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사는 이상 소득에 따라 누리고 사는 게 필요합니다. 문제는 모두가 부동산으로 몰리니 불로소득 개념이 생긴다는 것이죠.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을 수 있다면 엄청날 것 같아요. 그런 인식전환의 기반은 마련해줘야 합니다. 요즘 후보 중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나은 거 같아요.

이상섭=1가구 1주택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할 후보가 있으면 지지하고 싶어요. 주택은 공공재 성격이 있다고 봐요. 이를테면 아빠와 아들은 타워팰리스 한채에 살고, 엄마와 딸은 아이파크 한채에 살고 이러지는 않죠. 대부분 한 집에 살죠. 또 무주택자들에게도 돈이 없어도 형편에 맞춰 집을 살 수 있게 공영 아파트를 싸게 공급해줬으면 합니다. 고급자재를 쓰지 않더라도요. 민주노동당을 죽 지지해왔고, 심상정 의원을 지지합니다.

김두규=지지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어요.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이 부동산값과 관련해 공급이니 수요니 하면서 얘기하는데 정답을 누가 알겠어요. 정책에 일관성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모든 국민을 투기 전문가로 내몰지 않지요.

〈최우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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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한국인의 자화상] “0.7평에 갇힌 희망…탁상에서 어찌 알아”
입력: 2007년 06월 04일 18:15:29
 
“여기는 바깥 세상과 달라. 한번 들어오면 못나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서울 종로 쪽방촌에 살고 있는 이택희씨가 지난달 16일 자신의 0.7평 짜리 방에서 TV를 보면서 소일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이런 곳이 있을까 싶다. 하루종일 빛을 볼 수 없는 쪽방. 얼기설기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뼈대를 엮고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만든 비닐하우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는 한국, 한 평에 2000만원에서 3000만원 한다는 아파트가 빼곡한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 주거 극빈층이 잃어버린 꿈 사이에서 부유하듯 사는 늪 같은 곳.

비가 내리던 지난 5월1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돈의동. 깔끔하게 정비된 서울 피카디리 극장 광장에 맞닿은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갑자기 어두워진다. 골목길이 두 명이 함께 지나기에도 좁아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건물 사이에 난 길은 매우 복잡하다. 처음 온 사람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굽이굽이 길을 꺾고, 두 손을 잡고 기듯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간이 계단을 밟고 3층에 있는 이택희 할아버지(68) ‘집’에 닿았다.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복도 양쪽으로 문이 3개씩 나 있다. 방문을 열고 0.7평짜리 방에 앉는 이 할아버지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기 몇 번 당했죠. 있는 돈 다 털어먹고 (서울) 을지로 지하철 입구에서 6개월 노숙하다 2000년 12월 여기로 옮겼어요. 친구에게 100만원 빌려 보증금 내고 한 달에 20만원 내면서 살고 있어요.”

젊었을 때 그는 중공업 단지에서 기계 조립하는 일을 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술 한잔 먹고 도장 찍으라기에 찍었는데 그게 노조 가입서였다. 영문도 모르고 회사에서 쫓겨났고, ‘노조 가입자’라는 낙인은 이후 평생을 쫓아다녔다. 취직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일해 돈을 벌었는데 돈 몇 번 떼이고 나서 종로 쪽방 촌으로 흘러 들어왔다.

여기는 바깥 세상과 달라요. 젊은 놈이나 늙은 놈이나 힘센 놈이 최고지. 위·아래도 없고. 복지관에서 쌀을 독에 넣어놓고 갖다 쓰라고 하는데, 그걸 퍼다가 술 사먹는 놈들도 있고.”

장기 체류하는 이들은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뜨내기는 다르다. 이따금 노숙자들이 하루 7000~8000원을 내고 들어와 밤새 술을 마시며 떠들기도 한다. 싸움도 곧잘 일어난다. 벽이 원체 얇아 그 소리가 다 들린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이용하고, 세수는 1층 수도쪽지에서 대충 한다. 그런데도 이 할아버지는 “여기 사는게 중독성이 있는 거 같다”고 한다.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가요. 돈도 없고, 나가 봤자 여기보다 나은 데 찾기도 어렵죠. 양로원 같은데 갔다가도 다시 돌아옵디다. 기도해라, 몇 시에 일어나고 자라, 담배와 술은 안된다 이러니 답답하고. 그러니 다시 오는 거 같아요.”

부인과는 이미 7, 8년 전부터 연락이 안된다. 빚쟁이들이 쫓아다니니까 남들 모르는 곳으로 가버렸단다. 자식과도 연락이 안된다. 그나마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등록돼 한 달에 37만원을 받는다. 거기서 월세 20만원 떼고, 당뇨 약값 내고, 담배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정부’ ‘정치인’ 단어가 나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선거철만 되면 누군지 몰라도 비디오 찍어가고 뭐든지 해결해주겠다고 하지만, 말짱 헛것”이란다. 그는 “이제 이 동네 사람들은 그런 말 안 믿는다. 하도 속으니까 비디오나 사진 찍자고 해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 살고 있는 이택희씨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달 16일 좁고 어두운 쪽방촌 입구를 들어서 자기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정근 기자
박창석씨(69) 방도 다르지 않다. 1평이 안되는 쪽방에는 TV, 전기밥솥, 그릇 3개 겨우 놓을 밥상, 간이 책장이 세간의 전부다. 신의주 출신인 그는 1·4 후퇴 때 내려왔다. 선친은 주택 건축 일을 했고, 자신은 명문 사립대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유통업을 하면서 전국에 지점 15곳을 거느린 적도 있단다.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왔는지 묻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대신 그는 “의정부 집을 전세로 돌렸다가, 여관으로 갔다가 하숙집, 여인숙을 거쳐 이리로 왔다. 처음에는 며칠만 있으려다 주저앉아 5년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밥을 지어 전기 밥솥에 보관하면서 1주일 저녁 식사를 해결한다.

박씨는 수 일 전에 찾아왔던 공무원들을 떠올리며 “꼭 왜놈 순사들 같두만”이라고 못마땅해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사람이라는 게 어조를 통해 느낄 수 있어. 한 서른살이나 됐을까 하는 공무원이 ‘왜 그 학력을 갖고 여기 사느냐, 임대아파트에도 능력이 없어 못 들어가겠네, 양로원에 들어가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하고’ 이따위로 말을 하드만.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고 다 자기 본위야. 꼭 논문 쓰는데 서론, 본론 없이 지 맘대로 결론을 지어놓고 온 거 같았어.”

정부에 충고를 한다. 그는 “돈과 인원이 부족하다는데 그 것은 문제가 아니지. 높은 관리들, 책상 앞에 앉아 있지 말고 운동화 신고, 볼펜이랑 수첩 들고 ‘발품’을 팔아봐라. 그럼 왜 안되겠느냐”고 했다.

인영애씨(58·여)도 사업에 실패하고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재산 다 날리고 가방 하나 짊어지고 2004년 이곳으로 왔다. 어려서 침을 잘못 맞아 발 한 쪽이 돌아간 장애인이다. 1층 반지하 방에 살고 있지만 수도꼭지가 바로 문 앞에 있고, 집 주인의 세탁기도 함께 사용할 수 있어 남들보다 처지가 낫다.

인씨는 공공근로 등 일을 하고 싶지만 이마저 못한다.

“몸도 불편하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벌면 기초생활수급권자 자격을 잃어요. 노점상을 해도 ‘하루 1만원 이상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수급권을 박탈하고. 그래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못합니다. 정부 보조도 받으면서도 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이곳 사람들은 ‘사람의 체온’이 그립기만 하다. 인씨 벽 한 쪽에는 누렇게 바랜 자국이 있다. 한 대기업 직원이 부인, 애 둘과 봉사활동을 와서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놓은 자리였다. 그 뒤로는 오지 않고 사진 볼 때마다 애들이 보고 싶어서 아예 뗐다고 한다. 출가한 딸이 하나 있지만 이따금 찾아가볼 뿐, 자기를 부양할 처지는 아니란다.

“꿈이 있다면, 조금 있으면 환갑인데 그 전에 임대주택이라도 하나 얻어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 여기 월세금 20만원인데 그 정도는 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보증금 문제가 있어서….”

이 동네 사람들을 돌보는 ‘종로 쪽방 상담소(02-747-9074~5)’에는 조재휘 소장과 김종한 실장 등 사회복지사 4명이 있다. 김실장은 “이 인근 1000평 정도에 건물은 100여개 조금 안 된다. 건평이 12~13평 정도다. 방은 1.5평에서 0.7평 정도다. 500여명이 장기투숙하는데 30대부터 70대까지 있다”고 전했다.

쪽방 상담소는 사회복지시설로 인정을 못 받아 이곳 소속 복지사의 처우도 열악하다. 소장 월급이 160만원, 다른 이는 150만원 정도다. 김실장은 “사회복지사들이 결혼 할 때쯤 되면 나가서 택시를 하거나 분식집을 차린다. 복지사를 하면 돈도 못 벌고, 호봉도 인정 못 받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65세 이상 노인이나 거동이 어려운 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문화행사를 진행해준다. 매일 쪽방촌 노인들 방을 돌아보며 불편한 게 없는지 묻는 것도 이들 몫이다. 조소장은 “정치 1번지, 서울의 한 복판이라는 종로에서 한 골목 뒤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다들 놀란다”고 말했다. 그게 쪽방촌이다.

〈글 최우규·김동은|사진 김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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