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99회째 만남을 마치고 대망의 1백회 모임을 앞두고 있는 부산대 인문학담론 모임이 인문학의 논쟁적 담론의 수혈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지난번 석굴암 재해석 논문 이후 이번 99회째에는 이광수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 문화론적 민족주의 해석의 한 모델을 선보였다. 아래의 글은 신동준 코넬대 교수가 지난 5월 17일 모임에서 발표한 글이다. 신 교수는 한국에 연구년으로 나와 이광수에 관한 단행본 준비를 하면서 그 책의 기본 골격과 메시지를 요약해 발표했다. 아래에 그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주 |
지난 25년간 미국 역사학계에서 일어난 핵심 논쟁 중 하나는 잘 아시다시피 문화학(cultural studies; 혹은 포스트모던이즘)과 역사, 양자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었다. 80년대 문화학이 등장하면서 기존 역사학계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 둘의 논쟁은 주로 보수 대 진보 였다. 진보쪽은 역사학계의 핵심개념들을 공격했고 보수쪽은 포스트모던니즘의 피상성과 비합리성을 비난했다. 이제는 첫 위기가 끝난 것 같아 보인다. 최근에 한 학자는 이런 논쟁이 이제 지루하다고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사 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10년전부터 문화사는 미국 한국사학계에도 도입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문화연구가 한국학내에서 지배적 동향이 되어가고 있을 정도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이론을 많이 활용한 역사책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문화연구 (문학이론)는 역사학한테는 타자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역사학은 역사학방법론으로서 이같은 이론을 수용하기 싫거나 아니면 수용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시대적 과제는 아직도 타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발제는 첫째, 내가 이해하는 문화연구, 그리고 (그것의) 무엇이 유용한지에 대한 것이다. 둘째는 문화연구의 한계를 살펴보기 위한 일환으로, 문화이론에 대한 비판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문화이론은 보수 역사학한테 비판을 받았는데, 최근에 진보쪽에서 심지어 초기 문화연구를 주창하던 학자들이 문화이론을 비판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세번째 부분은 내 책에 대한 구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난 25년간 학계내 흐름중 가장 두드러진 은것 문화학의 등장이었다. 문학학은 원래 1960~70년대 등장했는데 당시 미국내 사회과학계를 주도하고 있던 것은 근대화이론이었다. 유럽중심주의와 여타 metanarratives에 대한 비판의 한 방법으로서, 비판적 학자들은 근대화이론이 귀기울이지 않고 폄하했던, 특히 이데올로기나 의식같은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근대화이론은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구조적 요인을 중요하게 여기기때문에 이 시기 지성사는 당연히 하향추세였다.
문화학은 1980년대 이데올로기나 의식을 연구하는 작업에 새로운 추동력을 제공하였고, 역사학계내에서는 그 영향이 ‘새로운 문화학’의 등장으로 표출되었다. 문화학이 학계에 기여한 공헌 중의 하나가 이데올로기 연구를 조약한 경제결정론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학자간 편차는 다양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데올로기를 경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생산의 한 형태라고 이해하는 알뛰세의 개념을 수용했다. 탈근대주의, 탈구조주의, 탈식민주의 역시 부분적으로는 이같은 이데올로기 인식의 소산( 그리고 하나의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지성사 기존의 저자-텍스트-청중(독자)의 이해방식을 뛰어넘기 위 한 한 방법으로, 문화학을 통는 담론분석이라는 형식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담론분석은 텍스트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텍스트라는 용어는 단순히 인쇄된 것 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시각자료, 심지어 사회적 혹은 개인적 삶, 기호 체계로 구성된 모든것을 의미했다. 아주 단순화시키면 종래의 지성사는 주요 사상가의 사상을 설명하고, 그들이 그 시대에 끼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담론 분석은 종래 지성사의 ‘초월적 주체(transcendental subject)’의 개념을 비판하면서 텍스트를 저자의 사상의 표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기호학이 발전시킨 방법을 사용해서, 담론분석은 intertextual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일련의 텍스트내에서 의미가 작동하는 방식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둔다. 담론 분석의 또다른 초점은 기구(institution)와 담론간의 상호관계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연구한 푸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문화학은 사상의 내용보다는 텍스트와 지식이 권력과 관계맺는 방식, 가령 어떤 담론이 어떤 권력을 생산하는지를 검토한다.
주지하듯이, 문화학의 등장은 민족주의에 관한 학문적 관심을 일으켰다. 물론 기념비적인 저서는 1983년에 초판된 Benedict Anderson’s Imagined Communities, 같은해 Eric Hobsbawm and Terence Ranger의 The Invention of Tradition이 있다.
문화학은 민족이 먼 과거의 ‘ethnic’ 공동체의 원시적 형태라기 보다 근대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그 경향중 하나는 공식적 의례(ritual)와 기구에 초점을 두어 국가가 엘리트 중심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민족을 이용하고, 소수자와 서발턴 그룹을 배제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문학이론의 영향을 받아 문학과 대중 문화가 ‘민족’을 서술하는 형태를 검토하고 ,어떻게 대중 소비가 기존 권력구성에 동의하는지를 밝히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같은 연구들의 공통 지점은 계급 혹은 경제수탈이라는 분명한 형태의 지배보다 다른 형태의 지배방식을 밝히는 것이다. 푸코나 들뢰즈 이론의 영향하에 문화학 학자들은 ‘미시정치’ 영역내에서 ‘모세혈관처럼 작동’하는 권력에 초점을 두어왔다. 국가 혹은 경제와 관련된 법적인 형태로서의 권력보다는 일상생활 수준에서의 권력의 작동을 검토한 것이다. 최근 연구는 이같은 이론을 민족주의에 적용하여 민족 정체성을 창출하는 재연적(representational), narrative 전략을 밝히는 개념과 분석도구를 만들어냈다.
문화학에 대한 비판
하지만 최근들어 문화학도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 비판적 흐름에는 초기 문화학을 주도했던 역사학자들까지도 참가하고 있다. 우선, 문화학에 대한 비판은 문화학의 극단적인 형태가 ‘사회적인 것에 대한 망각’(obliteration of the social) 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사(new cultural history)는 사회사가 유지했던 계급과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 혹은 관심이 거의 없다. 문화학의 도입이 기존의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 동시대 사회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이 패러다임의 갖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는데 유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사는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하지 못했고, ‘사회적인 것’을 재개념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둘째로, ‘문화가 사회적인 것을 전반적으로 대체’하였기 때문에 핵심 용어가 문화 담론에서 소멸하고 있다. 가령, 자본주의는 점차적으로 근대성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대체되어 왔다. 이 전환이 보여주는 뚜렷한 징후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의 감소이다. 탈구조주의의 과잉속에서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적인 모습을 띤 하나의 생산 양식으로 축소되어 또 하나의 metanarrative가 되었다.
민족주의 연구와 관련해서, 민족이 구성되었다는 문화학의 지적은 옳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충분치 못하다는게 또 하나의 비판이다. 민족은 구성물 이상이다. 민족은 국가와 자본의 형태(예를 들어 정치경제), 양자에 의해 성립됨에도 불구하고, 문화학에서는 이 두가지 요소가 생략되어 왔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증거는 민족에 대한 비판과 세계화가 탈민족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지속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민족의 개념을 살펴보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문화 연구는 후기 자본주의 단계에 이른 미국 이데올로기의 학문적 반영이라는 비판도 있다. 풀어 말하자면, 문화연구때문에 학자들이 70년대 이후 일어난 세계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들을 놓치게 되는 (misrecognize)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미국자본주의의 근본원리였던 포디즘(Fordism)은 70년대부터 하비(David Harvey)가 말했던 소위 유연한 축적(flexible accumulation)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flexible accumulation란 노동, 금융, 상품, 생산의 이동성이 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연구는 정치적으로 진보적 비판이라고 하지만 그 비판은 사라지고 있던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Fordism에 대한 것이지, 그 이후 새로이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형태에 대한 비판이 아니였다. 시대착오라는 것이다. Flexible accumulation 체제하에서 기존 사회관계가 불안정하게 되면서, 학자들이 사회구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다. 금융과 생산의 비중이 역전되어 국가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지니 자본주의는 그 중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소비의 비중이 커지면서 언어, 기호, 표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있다. 즉, 문화연구는 flexible accumulation 시스템 밑에서 일어나고 또 겪는 경험들을 학문 차원에서 표현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문화연구의 인종관도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 문화연구는 서구중심주의를 부정하지만 그 부정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전통안에서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또다른 서구중심주의 (또 다른 전통)를 창출한 것입니다.
이광수와 민족
앞으로 내가 쓸 책의 목표는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통해 3.1운동 이후 핵심 담론으로서 민족의 등장을 밝히는 데 있다. 이광수는 가장 유명한 친일파이기 때문에 그를 통해 한국의 민족주의를 보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이광수 이름에 붙어다니는 ‘반역자’, ‘친일파’라는 꼬리표는 검열의 형태로서 작용해 왔다. 연구할 가치가 없는 인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친일행적에 집중된 관심은 이광수의 텍스트가 생성할 수 있는 지식의 형태까지 억압되어 왔다.
최근 이광수에 관한 연구는 이광수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식민지 시기 역사를 재해석하는데 유용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목표는 이광수와 한국의 민족 정체성간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이용해서 한국 민족주의의 본질을 조명하려고 한다. 이광수는 민족내에서 중심부와 주변부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모순된 위치는 민족 내부나 외부에서의 비판을 용이하게 한다.
이광수는 보기드문 연옥에서 사후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왜 그는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에 협력하였을까? 그는 얻은 것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잃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광수가 갖는 패러독스중의 하나는, 그 수수께끼가 답을 요구하면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패러독스는 이광수에 대한 연구에서도 반영된다. 한편으로 어떤 학자들은 친일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 이광수가 어떤 시기에도 진정한 민족주의가 아니었다는 듯이 이광수의 초기 행적을 검토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다른 일각에서는 친일 문제를 제쳐두고 문학과 지성사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다. 최근까지, 김윤식의 ‘이 광수와 그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정면으로 이 문제를 풀려는 시도는 없었다. 이광수에 대한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광수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요약하면, 이광수는 한국 근대성의 유령과 같은 존재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주요 목표는 3.1운동 이후 담론의 주요 용어로서 ‘민족’의 등장을 검토하려는 것이다. ‘민족’의 계보를 만드는 데에는 몇가지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광수는 1910년대 등장한 몇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하나였고 2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그의 텍스트는 1919년 이전과 이후의 담론 변화를 추적하는데 적절하다고 본다. 또 한편으로, 이광수는 국내 민족주의 운동의 중요 인물이었기때문에 그의 행적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맞물려 있었다. 이광수는 그가 민족주의담론의 형성과 민족주의 엘리트의 형성의 교차점에 있었다는 점에 그의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이광수는 텍스트와 사회적 과정을 연결을 보여주는 접점이다.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같이 보는 것은 다른 종류의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한다. 직선적인 지성사는 이광수 사상이 민족주의 운동에 끼친 영향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 다른 한편 전기적인 접근은 이광수의 일생과 텍스트가 서로를 반영한다는 듯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는 담론과 사회적 발전, 둘 중 하나를 다른 하나에 종속시키지 않은채, 일정 형태의 담론과 사회발전과의 관계를 이광수를 통해 보는 것이다.
각 장은 민족의 특정 측면을 보기 위해서 텍스트이건 기관이건 이광수와 관련된 각기 다른 ‘실마리’를 볼 것이다. 이 광수가 분명히 이 책의 초점이긴 하지만, 이광수는 어떤 장에서는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배경으로 물러나 있다. 목표는 어느 한 요소에 치우지지 않는 ‘결합적인’(conjunctural)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있다. 이 책은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3.1운동을 통해 어떻게 결합하였고, 당시 핵심 담론으로 등장하였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사회사와 문화사의 방법을 조합해서 이 책의 목표에 접근하고자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광수의 텍스트를 통해 민족 담론을 분석하고, 이와 동시에 이광수의 행적을 통해 당시 민족주의 지식인의 사회사를 결합하려고 한다. 사회사의 방법론은 문화사의 민족주의 접근법이 갖고 있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 이 책은 ‘민족’에 있어 사회사적인 접근법을 취한다. 이 책에서는 민족이 단지 구성물이거나, 일종의 신화 혹은 상징이 아니다. 민족은 행동과 사회내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사회적 관례(social practice)의 하나이다.
사실, 이 광수는 민족이 재연(representation)과 사회적 관례(social practice), 양자의 표현임을 예리하게 이해하고 있었기때문에 이광수의 텍스트를 통해 이 둘 사이의 긴장관계를 검토하는게 가능하다. 둘째, 식민지 한국은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의 유용성을 시험하는데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시민사회’라는 개념이 1919년 이전의 한국사회의 발전을 설명하는데에는 유용하지만, 그 이후의 변화를 설명하는데에는 새로운 사회적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민족의 등장으로 미시정치적 수준에서 작용하는 지배의 형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이지만 그래도 가능해 보이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잠식하려는 의도에서 일상으로 목표를 전환한 것이었다.
셋째로, 이 책은 민족담론이 어떻게 인쇄자본주의라는 기구를 통해 생산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지적하였듯이, 민족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자본주의 형태이다.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앤더슨은 인쇄 자본주의의 문화적 측면, 시공간 인식상의 효과에 주목했다.
민족은 자본과 지식 생산의 관계망에 위치하면서 지식 생산에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식민지 맥락에 있어서, 인쇄 자본주의는 피식민지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몇안되는 기구중의 하나였기때문에 더 중요하다. 식민국가는 감시와 생체권력(biopower)의 조직(apparatuses)을 실질적으로 독점하였기 때문에, 식민통치기 동안 인쇄 자본주의는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기능했을 뿐 아니라 피식민 자본가에게는 가장 성공적인 사업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이 맥락에서 식민지 부르주아의 형성과 담론생산에 있어 인쇄 자본주의의 역할을 검토할 것이다.
이같은 접근은 자본주의 발달과정 속에서 ‘민족’의 등장을 재정립하는데 기여하리라 본다. 1990년대 당시 남한 역사학계의 젊은 세대들은 계급적인 맥락에서 식민지기 사회-지식인 운동을 살피는 중요한 연구물을 내놓았다. 민족의 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계급분석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상품의 역할에 초점을 둘 것이다. 다시 말해 민족과 사회적 삶의 상품화의 관계이다. 민족으로의 전환은 ,한편으로는 도시의 거리 생활, 사회주의 운동등으로 보여지는 근대성의 과도함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했다. 다른 한편, 민족 등장의 전제 중의 하나는 상품의 생산과 전국적 시장의 형성이었다. 레이몬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면, 이광수는 여러 면에서 ‘근대성에 반대하는 근대론자’ (modernist against modernity)의 고전적 예였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1919년 이전이고, 후반부는 3.1운동 이후 약 10년정도의 이야기이다. 각 부분의 앞부분은 사회사, 뒷부분은 담론과 ‘민족’의 문학적 나레이션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