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 - 필립스 저가 전집

데카, 필립스에서 나온 저가 전집 세트들. 이런 음반을 모으면 쏠쏠하다. 고음악에서 대편성 교향곡, 원전 연주에서 합창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그 면면이 상당히 다양하다.
우선 하이든, 슈베르트, 말러 교향곡이 담긴 필립스의 박스 세 종이 눈길을 끈다. 이 중 프란츠 브뤼헨의 하이든 교향곡집(13CD)은 지난 1988년부터 2000년까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18세기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것으로, ‘질풍노도’ ‘파리 교향곡’ ‘런던 교향곡’이라는 표제 아래 각각 열아홉 곡, 여섯 곡, 열두 곡의 교향곡과 한 곡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수록하고 있다. 표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각 교향곡은 하이든의 가장 중요한 세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연주의 완성도는 수준급이다. 원전악기 특유의 명쾌함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현대적 감각의 신선함도 잘 살아 있다. 열아홉 곡의 ‘질풍노도 시기’ 교향곡도 뛰어나지만, 여섯 곡의 ‘파리 교향곡’이 특히 듣기 좋다. 순도 높은 완성도는 물론이고 악기 간의 조화와 아기자기한 미감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명연이다. 또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놀람’ ‘군대’ ‘시계’ ‘큰북연타’ 등 ‘런던 교향곡’의 현대적인 감각의 유려한 음색과 발랄하고 상큼한 템포는 듣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네빌 매리너와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의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6CD)도 브뤼헨의 음반처럼 알찬 연주가 담겨 있다. 이 전집물의 단적인 특징은 교향곡 작곡가로서 슈베르트의 업적을 세심하게 점검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알려져 있는 아홉 개의 교향곡은 물론 슈베르트가 교향곡 6번을 끝낸 뒤 몰두한 두 교향곡의 창작 노트(D.615, D708a)를 새롭게 복원해 선보였고, 교향곡 10번의 피아노 스케치도 오케스트레이션을 거쳐 어엿한 교향곡의 모습으로 내놓았다. 또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7번과 8번을 손질해 완전한 모습의 작품으로 선보인 것도 주목할 점이다.
매리너는 모두 브라이언 뉴바울드의 판본을 따르고 있다. 특히 낭만적인 어법과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고, 연주하기가 곤란하다고 알려진 교향곡 10번의 완성본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교향곡 8번, 9번의 연주도 훌륭하다. 격조 높은 앙상블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그려놓은 전체 형상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실내악에서 교향곡, 원전 연주에서 오페라까지

오자와 세이지의 ‘말러 교향곡 전집’(14CD)은 연주 수준이 들쭉날쭉해 초보자에게 추천하기는 껄끄럽다. 수많은 말러 교향곡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완성된 오자와의 연주는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말러다운 정열과 탐미적인 낭만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게 가장 큰 흠이다. 그렇지만 악보를 충실히 재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음폭이 균일하고 안정된 음색이 장점이며 오자와는 이를 통해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밝은 울림을 알맞게 이끌어내고 있다.
이 전집에는 ‘대지의 노래’를 제외한 열 곡의 교향곡과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담겨 있으며 이 중 1번, 2번, 3번, 7번 교향곡이 들을 만하다. 또 제시 노먼의 엄숙한 목소리가 빛을 발하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도 좋은 연주에 속한다. 모두 보스턴 심포니와 연주한 녹음.
아슈케나지의 슈만 피아노 독주곡집(7CD)은 저가 전집 박스 세트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슈만의 대표적인 독주곡이 대부분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연주도 아슈케나지의 보편적인 이상이 잘 구현되어 있어 합당한 가격에 좋은 연주라는 아이템과 잘 들어맞는다. 소품 연주보다는 ‘어린이 정경’ ‘카니발’ ‘교향적 연습곡’ 등 대곡의 연주가 더 뛰어나다.
또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연주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외스트만의 모차르트 오페라곡집(10CD)도 인상적이다. 이 박스에는 외스트만이 드로트닝홀름 궁정극장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가 담겨 있다. 마니아들에게는 수집 대상으로 알려진 음반이지만, 다소 밋밋한 원전 연주의 실내악적 분위기를 싫어하는 이도 많다. ‘코지 판 투테’를 제외한 작품에 바리톤 하칸 하게고드와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가 공통으로 출연하고 있으며, 두 사람의 미성이 외스트만의 관현악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술피리’에서는 조수미의 ‘밤의 여왕’ 아리아도 들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고음악 팬들이 좋아할 만한 전집물 두 세트도 선보였다. 아카데미 체임버 앙상블의 헨델 실내악 전집(9CD)과 피케트, 룰리, 노링턴의 몬테베르디 작품집(8CD)이 그것이다. 헨델 음반에는 세 곡의 오보에 소나타, 여섯 곡의 리코더 소나타, 아홉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다섯 곡의 플루트 소나타가 담겨 있으며, 몬테베르디 음반에는 ‘성모 마리아의 저녁 기도’, 오페라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 ‘오르페오’, 발레 음악 ‘새침데기 아가씨들의 춤‘, ‘마드리갈 곡집 4, 5권’ 등이 수록돼 있다. 이 밖에 주빈 메타,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로린 마젤, 안탈 도라티 등의 연주를 모은 R.슈트라우스 교향시(6CD)와 니콜라이 코르니예프가 지휘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체임버 합창단의 러시아 종교 합창곡집(7CD)도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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