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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에게 책 읽어주던 16살 소년
 
 
 
한겨레 최재봉 기자
 







 

»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알베르토 망겔 지음·강수정 옮김. 산책자·1만원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열 여섯살 소년이 단골 손님이었던 예순다섯살 노 작가를 만난다. 그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자 세계적인 문학 거장이었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였다. 이미 시력을 상실해 제 눈으로는 무언가를 읽을 수 없었던 보르헤스는 소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일이 끝난 뒤 자신의 집에 와서 책을 읽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1964년부터 1968년까지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대화를 나누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소년의 이름은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와 〈나의 그림 읽기〉 같은 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편집자이자 작가다.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은 망겔이 이 무렵을 돌이켜 쓴 책이다. 대작가이자 국립도서관장이라는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게 보르헤스의 서재는 평범하고 소박했다고 망겔은 회고한다. 그 이유의 하나는 보르헤스의 엄청난 기억력에 있었다. 한번 읽은 책은 스캐닝을 한 것처럼 머릿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던 것이다. 보르헤스의 방에는 자신이 쓴 책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쓴 모든 글을 암송했다. 영국 여행길에는 “신을 조금 놀래주려고” 고대 영어로 주기도문을 암송할 정도로 어학적 재능도 뛰어났다. “보르헤스에게 현실의 정수는 책 속에 있었다.”(36쪽)

1948년생인 망겔은 어느덧 그 자신 소년 시절 만났던 보르헤스와 비슷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의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소년은 과거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고, 이야기를 좋아했던 현명한 노인네도 사라졌다.”(98쪽) 그러나 생전의 보르헤스가 그에게 했던 말마따나 “아무것도 결코 사라지지 않”(96쪽)는다.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에는 노년의 보르헤스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최재봉 기자




"나는 눈 먼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줬다"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강수정 옮김|산책자|163쪽|1만원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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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와 칼은 손의 확장이다. 소우주(小宇宙)는 눈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그 이상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인 것이다.'

20세기 환상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꼽히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걸어 다니는 도서관으로 불렸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책들을 머리 속에 저장했다. 보르헤스는 시인·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냈고, 말년에 시력을 상실한 뒤에도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찾아온 손님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던 그는 책 읽어주는 아르바이트생도 고용했다. 이 책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은 서점 직원으로 일하던 열여섯 살 때부터 4년 동안 매일 저녁 보르헤스의 서재에서 책을 읽어주고,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보르헤스로부터 영혼의 세례를 받은 망구엘 역시 방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국내에도 번역된 '독서의 역사' 등의 책을 펴내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망구엘은 이 책을 통해 보르헤스의 서재는 예상과는 달리 책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백과사전과 각종 사전,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이 서재 귀퉁이에 얌전하게 꽂혀 있었다고 한다. 기억의 천재였던 보르헤스는 굳이 집을 도서관으로 꾸밀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보르헤스에게 책읽기는 '수천 년 전에 시작해서 한 번도 끝난 적이 없는 인류의 대화'를 뜻했다고 망구엘은 적었다. 한 권의 책은 그 책을 읽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확장될 수 있다는 '텍스트의 무한성' 개념을 바탕으로 보르헤스는 우주를 도서관에 비유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책을 반드시 끝까지 읽을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조이스의 소설 '피네간의 경야'를 완독하지 않았으면서도 그 책을 주제로 언어학 강연을 하기도 했다. 줄거리를 알고, 백과사전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었다.

보르헤스는 추리소설을 사랑했다. '추리소설의 공식이 소설가로 하여금 그 나름의 경계를 설정하고 말과 그 말로 만들어낸 이미지의 효율성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이상적인 서술구조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는 실명하기 전에 서부영화나 갱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대중영화를 좋아했다.

"보르헤스는 예민한 몽상가였고, 꿈 얘기를 즐겨했다… 특히 잠들기 전의 짧은 시간,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의식할 수 있는 잠과 깸 사이의 시간을 좋아했다"고 망구엘은 회상했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꿈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그런데 성공한 적이 없는 것 같아"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입력 : 2008.01.04 22:38

 

 

 

 

보르헤스에게 책 읽어주던 소년 老 작가의 '도서관 낙원' 엿보다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ㆍ강수정 옮김 / 산책자 발행ㆍ163쪽ㆍ1만원







 


1964년 어느날 초저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구미문학 전문서점 ‘피그말리온’에 단골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찾아왔다.
당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소설가이자, 국립도서관장이었던 보르헤스는 16세의 서점 직원인 알베르토 망구엘(1948~)에게 “저녁에 집에 와서 책을 읽어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유전적으로 약한 시력을 타고난 보르헤스는 30세 무렵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다가 50년대 후반엔 실명한 상태였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소설가로 활약 중인 망구엘은 문호의 청을 받아들여 일주일에 서너 번씩 4년간 보르헤스가 노모와 함께 사는 작은 아파트를 드나들었다.
이 책은 망구엘이 책을 읽어주러, 구술 작품을 받아쓰러 다니며 보고 들은 보르헤스에 관한 기록이다. 100쪽 가량의 본문 분량(남은 60여 쪽엔 보스헤스의 생애ㆍ작품 해설, 연대기, 어록이 실렸다)이 말해주듯 세세하고 정치한 기록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스페인어 원서를 출간한 것이 2004년, 그 시절을 40년쯤 흘려보내고 난 뒤다. 망구엘도 “이건 기억이 아니다. 이건 기억의 기억의 기억”이며 “기억들을 일으킨 사건들은 몇 개의 잔상, 몇 개의 낱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고백한다.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책 1권을 독자 100명이 읽으면 100권의 책이 탄생한다는 것이 당시로선 선구적인 보르헤스의 지론이었다. 망구엘은 작가를 두 부류, “세계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려는 작가”와 “그보다 드물기는 하지만 세계가 한 권의 책이어서 본인과 다른 이들을 위해 그 책을 읽으려는 작가”로 나누고 보르헤스는 단연 후자라고 썼다.
보르헤스는 존재와 세계를 해석의 여지가 무한히 열린 텍스트로 본 것이고, 그 점에서 이 책은 매우 보르헤스적인 보르헤스에 관한 글쓰기다.
저자는 보르헤스의 독서를 공들여 서술한다. 그는 처음 보르헤스의 서재를 봤을 때 “낙원을 도서관의 형태로 상상한다는 사람의 서재치고는” 규모가 작아 실망했다고 말한다.
낡은 책꽂이는 키플링, 스티븐슨, 체스터턴,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마크 트웨인 등 영미 작가 작품과 쇼펜하우어, 슈펭글러, 기번, 리하르트 마이어 등의 철학ㆍ역사서로 소박했다. 하지만 곧 노작가에게 장서의 양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곧 깨닫는다. 스스로 ‘쓰레기 하치장’이라 부른 놀라운 기억력 덕분에 보르헤스는 언제든 필요한 구절을 읊어 인용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는 현실의 정수가 책에 있다고 믿는 텍스트주의자였다. 그는 책을 읽고 쓰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천 년 전에 시작돼서 한 번도 끝난 적이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
그에게 역사는 바로 책이었던 셈이다. 망구엘은 책등을 쓰다듬으며 그 제목과 저자를 정확히 알아내는 보르헤스를 묘사하며 “그와 책 사이에는 생리학의 법칙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고 찬탄한다.
망구엘은 공정한 저자다. 문자를 편애한 탓에 보르헤스가 음악, 그림 등 다른 장르엔 별다른 조예가 없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균형 잡힌 서술 덕에 이 책은 거장의 인간적 약점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르헤스는 자신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낭독하는 작가를 면전에서 모욕하는 심술을 부리거나, 이따금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반면 그는 좋아하는 사랑 노래를 듣고 싶어 여러 번이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러가자고 어린 조력꾼을 조르거나, 서부극이나 갱 영화를 보며 몰락한 영웅을 눈물로 애도하는 천진한 노인이기도 했다.
“꿈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시도는 해봤지. 그런데 성공한 적이 없는 것 같아”란 몽상가적 발언을 전하며 저자는 지난 세기를 풍미한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의 연원을 보여준다.
라틴문학의 또다른 거장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비오이 카사레스-실비나 오캄포 부부와의 유쾌한 잡담은 보르헤스가 어떤 일상에서 창작의 동력을 얻었는지를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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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12/h2006122517053985140.htm

[가상 인터뷰] <42·끝> 수전 손택
"사상의 자유를 위해 행동하라"
경영진이 입맛대로 기업 기사 빼고 기자 징계 '시사저널' 사태에 쉬쉬
편집권 독립 지켜야 할 언론사들도 소극적 보도, 침묵의 카르텔이라니…


미국의 에세이스트, 소설가, 액티비스트, 문화비평가. 에세이집으로는 <해석에 반대한다>(1966) <사진에 관하여>(1977) 등이 있고, 소설로는 <미국에서>(1999) 등이 있다. 친아버지는 중국에서 모피상을 했었는데 손택이 다섯 살 때 죽었다. 손택의 원래 성은 로젠블라트(Rosenblatt)였고, 손택이란 이름은 법적으로 자신을 입양하지는 않은 의붓아버지의 성을 딴 것이다. 대학 생활의 출발은 버클리대학이었고, 시카고대학으로 옮겨 가서 문학비평가 케네스 버크와 보수주의 정치학자 레오 쉬트라우스 등에게서 배우며 석사를 마친 뒤, 하바드대학, 옥스퍼드대학, 소르본느대학 등에서 문학과 철학 등을 공부했다.

17살 때, 열 살 연상의 대학 선생과 만난 지 열 며칠 만에 결혼을 해서 아들을 하나 두었으며, 8년 뒤에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편과 이혼하고 그 때부터 아들을 홀로 키웠다. 1963년부터 서평 등을 쓰기 시작한 손택이 최초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게이 감수성에 관한 에세이인 <캠프(camp)에 관하여>(1964)였다. 나중에 이 글은 정치적 관점을 강조하는 동성애 진영, 즉 ‘퀴어(queer) 정치학’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지만, 당시에는 대중문화와 관련해서 대안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선구적이고 충격적인 글이었다.

손택은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 등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들과 이오네스크, 아르토, 브레송, 고다르 등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1960년대의 뉴욕 지식인 사회 및 문화예술계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미국에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1967년 <파르티잔 리뷰>에 쓴 글에서 “백인종은 인류 역사의 암이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고 나중에 가서 자신의 발언이 암 환자들의 고통을 무시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 사과를 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베트남전 반대 행동을 위해 하노이를 방문하기도 했고 1993년에는 내전 중에 포위된 사라예보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바 있다. 2001년 9ㆍ11 사태가 터진 직후 발표한 글에서 손택은 당시 미국 주류의 정치적 견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그렇지만, 미국은 강하다” “모든 게 잘 되어 가고 있다”고 허풍을 떨던 부시를 ‘로봇과 같은 대통령’이라고 지칭하며 대놓고 반박함으로써 또 다시 충격을 준 바 있다.

손택의 사인은 백혈병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는데 이 백혈병은 30대 중반에 생긴 유방암과 60대에 생긴 자궁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2003)는 바로 자신의 병 체험에 바탕을 두고 저술된 것들이다. 죽기 몇 년 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손택은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혔는데, 평생 “실제로 아홉 번, 다섯 명의 여자와 네 명의 남자”와 사랑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손택의 좌우명은 “늙은이처럼 행동하지 마라, 바로 그 순간부터 늙기 시작한다” “우정이란 다른 사람들 안에서 기뻐하기 위한 욕망이다” “작가라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신을 당신 안에 가두지 마라” “변화는 나의 장기이다” 등이다.

이재현(이하 현) 선생님, 무덤 안은 어떠세요? 죽으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나요?

수전 손택(이하 수전) 그냥, 수전이라고 불러, 동업자끼린데 뭘. 죽어서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이 내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야.

현 선생님은 평소에 “난 시골에서 살지 못한다, 도시가 좋다”고 말씀하신 전형적인 뉴요커인데다 워낙 명망가이셨으니까 다른 뉴요커들이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선생님의 사생활을 가십 거리로 삼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가장 궁금한 건데요, 성을 왜 스스로 바꾸셨지요?

수전 ‘장미꽃잎(Rosenblatt)’이란 말이 간지러워서 그랬어. 손택이란 이름이 더 단순한 게 맘에 들었지. 내 의붓아버지는 장교 출신의 참전 영웅이었지만 사춘기의 내가 보기에 지적으로는 정말 바보 같았거든.

현 독일어의 일요일(Sonntag)은 n이 두 개인데요. 손택이란 이름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수전 난 그런 데 관심 없어. 이번 기회에 분명히 말하건대, 한국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둘 다 붙여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건 머저리같은 짓이야. 정확히 따지자면, 어머니 성이 아니라 외할아버지 성이잖아. 페미니스트가 그렇게 의식이 없어서 뭐가 되겠니? 차라리 성,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름’을 없애자고 해야지.

현 역시, 선생님은 거침이 없으시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답니다. 한국의 지적, 문화적 분위기는 미국으로 치자면, 소설가 잭 케루액이라든가 시인 윌리엄 버로우즈 등과 같은 비트 제너레이션이 활약하던 때인 1950년대 수준도 될까말까지요. 아직, 정치적, 문화적 검열에 관한 문제라든가 드럭(drugㆍ마약) 문제에 관한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인식이 아직 형편없어요. 다들 앵무새처럼 말할 뿐이지요.

수전 미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건 아니야. 다만 나에 대해서는 미국의 주류 사회가 속으로 ‘저 년은 원래 저런 년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약간 봐준 정도일 뿐이지. 또 내가 뉴욕 토박이가 아니었더라면, 9ㆍ11 이후 미국의 파쇼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대외 군사정책에 대한 나의 비판적인 목소리는 실제 내가 당했던 것보다도 아주 더 심한 박해와 핍박을 받았을 거야.

현 선생님에 대한 평가 중에 일찍부터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전 나는 그게 일종의 욕이라고 생각해. ‘아마도’란 말도 그렇고 ‘여성’이란 말도 그렇고 말이야. 그 말에는 여성이란 본디 지적이지 못하다는 전제가 들어 있는 것이고, ‘아마도’란 여성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 들어 있잖아?

현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군요.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사회적, 정치적 이슈와 관련해서 쭈욱 계속해서 나름대로 직접 행동을 취해 오셨습니다. 1980년대의 한국에는 일본어 한자말에서 빌어온 ‘활동가’란 말이 쓰이곤 했습니다. 지금 그 활동가들 중 일부는 죽고, 일부는 먹고살면서 애 키우느라 바쁘고, 일부는 국회의원이 되고, 또 일부는 아직도 사회운동 및 시민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액티비스트’로서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엑스(ex)-활동가들의 현재 모습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수전 야, 그런 걸 왜 내게 묻냐? 너희 일은 너희가 가장 잘 아는 거지. 세상이 바뀌면 바뀌는 만큼 변화를 해나가되, 최초의 그 곧고 아름다운 마음가짐과 ‘합리적 핵심’에 해당하는 관점을 지켜나가면 되는 거잖아.

현 물론이지요. 하지만, 자기 일에 파묻혀 살다보면 자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또 한 해가 저무는데 세상이 더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요. 그래서 그런 거지요.

수전 그렇다면 한 수 가르쳐 주지. 가령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시사저널> 사태 해결에 나서는거야.

현 앗. 선생님, 어떻게 그 문제를 알고 계신가요?

수전 바로 위에서 네가 날 소개하면서 “작가라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사장이 사전에 편집국 구성원들과 아무런 얘기나 논의 없이 기자가 쓴 글을 윤전기에서 인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멋대로 빼버린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잡지를 만들어 온 기자들이 참 대견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참 안쓰럽다.

현 네. 문제는 다른 일간지들이 이 중대한 사태에 관해 제대로 보도를 하고 있지 않아서 국민 대다수가 사정을 모른다는 겁니다. 일종의 굳건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게지요. 사태는 정말 심각합니다. 소위 ‘편집권 독립’이라는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 경영주가 제멋대로 기자의 글을 삭제하는 것은 일제 시대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수전 말로 안 되는 경우에 쓰라고 화염병이 있는 거야.

현 켁. 선생님,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수전 그러니까, 내 말은 연말에 망년회 대신‘몰로토프 칵테일’파티를 하라는 얘기야. 너희 한국에 활동가가 그렇게 많았다면서.

현 네에~(푸훗). 아무튼 선생님, 한국과 한국의 언론 상황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찌 보면 매우 창피한 일입니다만, 사람들 만날 때마다 이런 사실을 널리 알려주세요. 그리고, 대충 50년쯤 뒤에 선생님 계시는 나라로 저도 살러 가겠습니다. 그럼, 다시 뵐 그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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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자연 선택을 통해 새로운 종이 형성되면, 다른 종들은 점점 드물어지다가 마침내 소멸하게 되는데, 나는 이것을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변화와 개량 과정을 겪고 있는 형태와 가장 가까운 경쟁 관계에 있는 형태는 자연히 가장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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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오후에 쉬다가 지평선을 등지고 서 있는 산이라든가 자신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나뭇가지의 윤곽을 좇는 것은 곧 그 산과 그 나뭇가지의 ‘분위기(AURA)’를 숨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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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목숨을 걸고 읽어야 하는 것-소설가 김연수

대담: 신종호 편집장 사진: 김점기 기자  | 2005-12-01

 

약력
김연수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등을 펴냈다. 제34회 동인문학상,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 제14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북새통: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제1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유령작가’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김연수: 소설은 개인들의 사소한 역사를 다룹니다. 그 사람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 죽은 보통의 사람들이죠. 작가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전달자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 유령작가라고 붙였습니다. 이 소설집에서 저의 개인적인 경험들은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진짜 작가가 된다는 것은 ‘나’라는 인간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내가 쓰는 이야기만 존재하게 될 때 가능합니다. 모든 작가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유령작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품만 남고 작가는 사라지는 그런 형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북새통: 독자들은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접하면서 감동을 받는데, 작가가 사라진다면…….

김연수: 경험이 고갈된 지점에서 비로소 소설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그때부터는 개인적으로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써야 합니다. 소설 쓸 때의 저와 그냥 생활할 때의 저는 서로 다른 인간형입니다. 이렇게 비유를 하면 될 것 같은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 이상 같은 경우 그는 장남이면서 전통에 얽매인 생활인으로서의 김해경과 자신의 예술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로서의 이상으로 살았습니다. 독자들이나 평론가, 문학가들은 생활인 김해경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작가로서의 이상이죠. 이상은 생활인으로서는 굉장히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문학사적으로 아주 행복한 결과물을 얻었죠. 작가가 없어진다고 말한 것은 일상의 경험에 국한된 제가 소설에서 사라진다는 것이지 작가 그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 것은 아닙니다.

북새통: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이라는 작품을 보면 변학도를 부정적인 인물이 아닌 굉장히 합리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렇게 재해석해내는 이유가 있다면?

김연수: 저는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쓸 때 역사책에 기록된 거대한 이야기보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수많은 실수들, 후회들, 혹은 개인들의 사소한 욕망이나 우리가 놓친 면들에 관심을 둡니다. 저는 『춘향전』을 상식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했죠.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 초하루와 15일은 반드시 기생 점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생 점고에 빠진 춘향을 옥에 가두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춘향은 관비이기 때문에 수청을 드는 게 의무입니다. 변학도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는데 왜 그것이 문제가 될까, 라는 생각 하에 그 이야기를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하여 그 시절로 돌아가서 재현하자면 이러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 결과가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입니다.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에 그리 중요성을 두지 않았습니다.

북새통: 「뿌넝숴」라는 작품에 역사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각인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좀더 설명을 해 주시지요.

김연수: 개인들의 수기를 보면 한국 근대사가 말하는 것과 어긋나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정치가들의 수기를 보면 개인의 삶과 역사가 일치합니다. 그런 수기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개인의 삶이 같이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 개인의 삶을 뭔가 잘못된 삶이라 여기는데 저는 절대 잘못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진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관련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소설가니까 감정의 차원에서 제가 납득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저질렀든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전쟁이라는 역사적 진실이나 의의보다는 그 전쟁 속에서 인간들이 몸으로 느끼고 발산하는 감정들이 더 진실하다는 것이죠. 책에 씌어 있는 이야기가 아닌 몸으로 겪은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뿌넝숴」에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북새통: 그렇다면 진실이 가지고 있는 엄격성은 사라지고, 더 깊게 가다 보면 모든 것에 진실은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게 되지 않을까요?

김연수: 그게 제가 많이 듣게 되는 비판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제 소설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몰라요. 제가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부분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최대한 짐작해 들어가는 것이거든요.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아주 나쁜 인간일 수 있고, 아주 좋은 인간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심리랄까 그 사람이 심중에 진짜 품고 있었던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거든요. 지금은 그게 저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비판을 많이 듣습니다. 진실에 대한 물음과 답은 소설가인 제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책들이 대신 해 주고 있습니다.

북새통: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주인공이 ‘인간이라는 게 과연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라는 물음을 던졌는데, 그 물음에 대해 본인은 답은?

김연수: 저는 궁극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봅니다. 이해가 되는 삶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알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면 98퍼센트까지는 알 수 있어요. 마지막 2퍼센트는 알려고 들면 들수록 결국에는 더욱 알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걸 알게 되면 삶은 재미가 없죠. 신비함이 사라지니까. 알 수는 없지만 추측은 할 수 있죠. 소설의 매력은 그 2퍼센트에 있죠.

북새통: 나머지 2퍼센트에 대한 독자들의 상상이 소설의 재미를 준다는 것인가요?

김연수: 추측을 할 때 자기가 누군지 알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추측하는 것은 자기가 살아오면서 어디선가에서 그와 같은 추측을 선택했다는 것이거든요. 추측이 다 달랐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독자들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거든요. 다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원해요. 소설은 그렇게 쉽게 읽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걸고 읽어야 하는 것이 소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제 인생을 돌이켜보는, 소설을 다 읽게 되면 결국에는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게 해 주는 그런 것이 진짜 소설을 읽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북새통: 소설가라는 개념하고 이야기꾼이라는 개념이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꾼과 소설가가 차이가 난다면?

김연수: 저는 분명히 다르다고 봅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듣다 보면 재미가 있어 귀를 기울이게 하는데, 소설가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를 괴롭힙니다. 저는 지루한 체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화보다도 재미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정말 잘 읽었다’고 하는 것은 전혀 문학적, 소설적 독서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당신들의 삶이 그렇게 매일 즐겁고 재미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지요. 물론 독자들 대부분은 삶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는 것을 읽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세계를 그대로 여과해 보고 싶은 것이고, 여러분들도 그 세계를 경험하고 싶으면 어느 정도 그 지루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가와 이야기꾼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곤혹스럽고 괴롭고, 당장은 읽고 싶지 않은데, 그 괴로움이 어느 정도 지나면 어떤 쾌감 같은 것을 줍니다. 묘한 쾌감인데, 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독서가로서 어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새통: 『빠이, 이상』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힘들게 읽었지만 재미있게 봤다는 사람도 있고, 중도에서 포기했다는 경우도 있더군요. 이상이라는 인물을 통해 무엇을 던져 주고 싶었는지?

김연수: ‘빠이’라는 게 이상의 『날개』를 보면 아홉 번인가 나와요. 제목을 지을 때, 그 ‘빠이’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빠이, 이상』이라고 단순하게 제목을 짓기는 했는데, 그때는 소설을 계속 쓰느냐 마느냐의 고민을 할 때였어요. 일단은 무엇인가 완성을 하는 게 중요했지요. 이상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도전을 해서 지면 안 쓰면 그만이고, 제대로 된다면 앞으로 계속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쓴 소설입니다.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게 94년부터인데 그 전에 읽었던 소설들은 전부 리얼리즘 소설들이었거든요. 역사와 진실에 대한 획일적 물음을 던지는 소설들이었죠. 시대도 늘 혼란했고. 그래서 ‘진실은 과연 있는가?’라는 주제로 이상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구성해 본 것이 『빠이, 이상』입니다.

북새통: 문학적인 영향관계는?

김연수: 제가 제일 좋아했던 작가들은 줄리언 반스, A. S. 바이어트 등과 같은 영국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소설 장르를 최대한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쉽게 쓰겠다는 것이 아니고 소설 테크닉을 다 넣되 그 테크닉이 좀더 복잡하게 읽히는 방법을 취했죠. 한참 때는 미국 작가들을 좋아했는데, 그 사람들은 최종적인 소설의 마지막 단계를 써야겠다는 욕망이 너무 강해서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 사람들과 달리 영국 작가들은 계속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저에게 굉장히 고무적이었죠. 공부를 해야겠다는 욕망을 심어 주었고요.

북새통: 세계관에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은?

김연수: 세계관에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은 없고, 사건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91년도 5월 분신정국 때, 그때 일들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친 거 같아요. 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진실과 거짓이 구분이 안 되는 거예요. 종이 한 장 차이의 일이더라고요. 진실 여부를 떠나 그 사건 이후 엄청난 공허감과 우울함이 왔습니다. 그 우울증과 조증을 감당하기 위해서 생각을 바꿨죠. 그래서 처음 소설을 쓸 때부터 진실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을 해 보니 그게 저의 세계관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직도 안 바뀌었나요?) 네,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그런 세계인 것 같은데요. (허무주의적인 건가요?) 허무주의하고는 좀 다릅니다. 그래도 뭔가를 찾아야 되잖아요? 뭔가가 없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 찾고 구하게 되는 게 개인적인 진실이었던 거죠. 공적인 진실이 아니라 사적인 진실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새통: 희망 같은 것은 어디서 찾으시는지요?

김연수: 소통하는 것에서 찾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질 때 희망을 가지겠지요. 소통이 안 될 때는 절망적이고요. 저는 어떤 시스템이든 믿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강제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 강제는 우리를 충분히 패배하게 만듭니다. 결국 개인은 패배하고 시스템만 승리하게 되죠. 그래서 시스템과는 소통을 안합니다. 패배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들과 어쨌든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패배하는 인간들끼리는 제대로 소통이 되니까요.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머리로 해서는 안 됩니다. 아주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몸으로 이해하는 거죠.

북새통: 이번 소설집에는 우연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삶을 우연의 연속으로 본다는 것은 삶이 비논리적이라는 의미인가요?

김연수: 말하자면 그렇죠. 인간의 개인적인 삶은 역사와는 달리 계속 바뀌고, 변절하고, 어제의 마음이 내일 달라지고 이런 식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인과관계가 삶을 지배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논리적으로 얼토당토않게 여기까지 와서 소설을 쓰고 있거든요. 인생 과정에 인과적 진실은 없다는 것이죠. 우연의 삶이 겹치고 겹쳐 필연이 되는 거죠.

북새통: 우리 삶이 우연이라고 하는 것에 크게 지배된다면 ‘인간의 의지란 소용이 없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데…….

김연수: 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지금 이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한 번밖에 올 수 없는 것이기에 중요한 것이죠. 의지는 분명 있지요. 순간에 모든 걸 투여할 때, 그게 인간의 의지라고 봅니다. 그 의지가 인과관계에 접어들면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패배는 인과관계에서 나온 말이죠. 하지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사람에게 패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북새통: 운명을 믿나요?

김연수: 전혀 안 믿습니다. 운명도 인과관계의 서사거든요. 중요한 것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역적으로 몰려 죽든, 패륜아로 몰리든 그 사람의 내면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라는 것이죠. 그 내면이 운명이라고 봅니다.

북새통: 삶의 궁극적인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연수: 왔다가 한 번 가고 나면 다시 안 온다는 것이 저는 삶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돌이킬 수 없음. 이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매력적이죠. ‘지금’이라는 게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과거로 돌아가서 인생을 고칠 수 있다면 삶은 아주 재미없고 지루하겠죠.

북새통: 그동안 쓰신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김연수: 지금 발표는 안했고, 내년 봄에 책으로 낼 텐데, 『밤은 노래한다』는 장편소설입니다. 1930년대 만주의 공산유격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청년들이 살아서 천국을 원했는데 결국 지옥을 보고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애착이 가느냐 하면 소설이니 재미있기 때문이죠.(웃음)

북새통: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기억에 남는 소설은?

김연수: 『설국』입니다. 몇 년에 한 번씩 되풀이해서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모든 게 달라집니다. 지금에서야 『설국』이 무슨 내용인지 좀 알 것 같아요. 또 모르죠. 4∼50이 되면 또 다른 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소설은 ‘노인들의 장르’인 것 같아요. 매번 알 수가 없으니까요. 오랫동안 살아 보지 않고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것들이 숨어 있죠. 그래서 좋은 소설, 고전소설을 읽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10대, 20대에는 문장밖에는 안 보이거든요. 문장을 보다가 나중에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게 소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가 마지막에 불이 났을 때 은하수를 보면서 ‘두렵도록 요염’하기 때문에 빠져든다고 했는데, 이제 그 의미를 알 것 같아요. 두렵도록 요염한 게 무엇인지, 겁을 내면서도 왜 빠져드는지를.

북새통: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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