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李 지지·정책연대”…노동자의 ‘자기 배반’
입력: 2007년 12월 10일 02:56:27
 
-“계급 정체성 잃은 인기투표 아니냐”
-대상 제한 문국현·권영길은 아예 배제해 논란
-“85만 중 10만표로 결정 대표성 의문”

한국노총은 정책연대 후보 선정을 위해 지난 1~7일 휴대폰 번호를 제출한 조합원 45만6152명을 대상으로 총투표를 실시한 결과, 유효투표 23만6679표(투표율 52%) 중 이명박 후보가 9만8296표(득표율 41.5%)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7만3311표(31%),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6만5072표(27.5%)를 얻었다. 한국노총은 10일 이명박 후보측과 정책연대 협약체결식을 갖고 공개지지를 선언한다.


한국노총의 총파업 진군대회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노동계 내부에선 “항상 여당을 지지하던 20여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노총으로서의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10월초 이후보와의 정책간담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해고 자유 확대’를 언급하는 등 대통령 후보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보는 지난 7월 당 경선 울산 합동연설회에서 “정치노조, 강성노조, 불법 파업을 없애겠다”고 했고, 지난 9월 대구 중소기업인 타운미팅 때엔 “우리나라처럼 비효율적이고 불법적이고 극렬한 노동운동을 하는 곳은 없다”며 노조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됐을까. 후보들의 정책을 자신의 정체성에 비춰 판단하기보다 당선 가능성 등 일반 유권자의 눈으로 이미지만 좇음으로써 ‘인기투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혁재 경기대 교수는 “우리는 노동자들이 계급적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노동자 의식의 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제고하고 그 결과가 반영될 수 있는 충분한 장치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각 후보들로부터 ‘10대 과제, 12대 요구’에 대한 답변을 받았지만 차이점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제 ‘동일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계속 사용 규제’에 대해 이명박 후보가 ‘인사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실상 반대인 ‘논의 필요’로 응답했지만 그 의미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한국노총의 핵심 관계자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만든 답변 분석표가 중립적이어서, 어느 후보가 우리 요구를 더 잘 반영했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노총 내부에서 별도의 평가위원회를 구성, ‘노동자적 평가’를 위한 잣대를 제공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지도부가 특정후보 지지를 유도한다는 비판을 살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특히 MBC와 공동 추진한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이명박 후보측 거부로 무산되면서 조합원들은 공개적 비교·검증 기회도 잃었다.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선택을 제약한 측면도 지적된다. 정책연대 대상을 지지율 10%로 제한하면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아예 제외됐다. 한 조합원은 지난 2일 한국노총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한국노총이 상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전화투표하는 세 후보 말고 다른 분을 찍겠다”면서 투표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영삼 한국노총 대변인은 “현재의 보수화된 여론이나 정치구도를 넘기엔 힘들었던 것 같다”면서 “이명박 후보 집권후 반노동(자)적인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정책연대는 언제든 파기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불안한’ 정책연대라면 조합원 총투표까지 실시하며 연대를 시도하는 명분이 약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조 진영은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득표가 원칙인데, 한국노총 조합원 85만여명 중 10만표가 안되는 지지를 가지고 노총의 공식 방향을 잡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광호·김창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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