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한국인의 자화상] “0.7평에 갇힌 희망…탁상에서 어찌 알아”
입력: 2007년 06월 04일 18:15:29
 
“여기는 바깥 세상과 달라. 한번 들어오면 못나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서울 종로 쪽방촌에 살고 있는 이택희씨가 지난달 16일 자신의 0.7평 짜리 방에서 TV를 보면서 소일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이런 곳이 있을까 싶다. 하루종일 빛을 볼 수 없는 쪽방. 얼기설기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뼈대를 엮고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만든 비닐하우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는 한국, 한 평에 2000만원에서 3000만원 한다는 아파트가 빼곡한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 주거 극빈층이 잃어버린 꿈 사이에서 부유하듯 사는 늪 같은 곳.

비가 내리던 지난 5월1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돈의동. 깔끔하게 정비된 서울 피카디리 극장 광장에 맞닿은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갑자기 어두워진다. 골목길이 두 명이 함께 지나기에도 좁아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건물 사이에 난 길은 매우 복잡하다. 처음 온 사람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굽이굽이 길을 꺾고, 두 손을 잡고 기듯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간이 계단을 밟고 3층에 있는 이택희 할아버지(68) ‘집’에 닿았다.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복도 양쪽으로 문이 3개씩 나 있다. 방문을 열고 0.7평짜리 방에 앉는 이 할아버지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기 몇 번 당했죠. 있는 돈 다 털어먹고 (서울) 을지로 지하철 입구에서 6개월 노숙하다 2000년 12월 여기로 옮겼어요. 친구에게 100만원 빌려 보증금 내고 한 달에 20만원 내면서 살고 있어요.”

젊었을 때 그는 중공업 단지에서 기계 조립하는 일을 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술 한잔 먹고 도장 찍으라기에 찍었는데 그게 노조 가입서였다. 영문도 모르고 회사에서 쫓겨났고, ‘노조 가입자’라는 낙인은 이후 평생을 쫓아다녔다. 취직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일해 돈을 벌었는데 돈 몇 번 떼이고 나서 종로 쪽방 촌으로 흘러 들어왔다.

여기는 바깥 세상과 달라요. 젊은 놈이나 늙은 놈이나 힘센 놈이 최고지. 위·아래도 없고. 복지관에서 쌀을 독에 넣어놓고 갖다 쓰라고 하는데, 그걸 퍼다가 술 사먹는 놈들도 있고.”

장기 체류하는 이들은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뜨내기는 다르다. 이따금 노숙자들이 하루 7000~8000원을 내고 들어와 밤새 술을 마시며 떠들기도 한다. 싸움도 곧잘 일어난다. 벽이 원체 얇아 그 소리가 다 들린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이용하고, 세수는 1층 수도쪽지에서 대충 한다. 그런데도 이 할아버지는 “여기 사는게 중독성이 있는 거 같다”고 한다.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가요. 돈도 없고, 나가 봤자 여기보다 나은 데 찾기도 어렵죠. 양로원 같은데 갔다가도 다시 돌아옵디다. 기도해라, 몇 시에 일어나고 자라, 담배와 술은 안된다 이러니 답답하고. 그러니 다시 오는 거 같아요.”

부인과는 이미 7, 8년 전부터 연락이 안된다. 빚쟁이들이 쫓아다니니까 남들 모르는 곳으로 가버렸단다. 자식과도 연락이 안된다. 그나마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등록돼 한 달에 37만원을 받는다. 거기서 월세 20만원 떼고, 당뇨 약값 내고, 담배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정부’ ‘정치인’ 단어가 나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선거철만 되면 누군지 몰라도 비디오 찍어가고 뭐든지 해결해주겠다고 하지만, 말짱 헛것”이란다. 그는 “이제 이 동네 사람들은 그런 말 안 믿는다. 하도 속으니까 비디오나 사진 찍자고 해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 살고 있는 이택희씨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달 16일 좁고 어두운 쪽방촌 입구를 들어서 자기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정근 기자
박창석씨(69) 방도 다르지 않다. 1평이 안되는 쪽방에는 TV, 전기밥솥, 그릇 3개 겨우 놓을 밥상, 간이 책장이 세간의 전부다. 신의주 출신인 그는 1·4 후퇴 때 내려왔다. 선친은 주택 건축 일을 했고, 자신은 명문 사립대학교를 나왔다고 한다. 유통업을 하면서 전국에 지점 15곳을 거느린 적도 있단다.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왔는지 묻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대신 그는 “의정부 집을 전세로 돌렸다가, 여관으로 갔다가 하숙집, 여인숙을 거쳐 이리로 왔다. 처음에는 며칠만 있으려다 주저앉아 5년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밥을 지어 전기 밥솥에 보관하면서 1주일 저녁 식사를 해결한다.

박씨는 수 일 전에 찾아왔던 공무원들을 떠올리며 “꼭 왜놈 순사들 같두만”이라고 못마땅해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사람이라는 게 어조를 통해 느낄 수 있어. 한 서른살이나 됐을까 하는 공무원이 ‘왜 그 학력을 갖고 여기 사느냐, 임대아파트에도 능력이 없어 못 들어가겠네, 양로원에 들어가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하고’ 이따위로 말을 하드만.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고 다 자기 본위야. 꼭 논문 쓰는데 서론, 본론 없이 지 맘대로 결론을 지어놓고 온 거 같았어.”

정부에 충고를 한다. 그는 “돈과 인원이 부족하다는데 그 것은 문제가 아니지. 높은 관리들, 책상 앞에 앉아 있지 말고 운동화 신고, 볼펜이랑 수첩 들고 ‘발품’을 팔아봐라. 그럼 왜 안되겠느냐”고 했다.

인영애씨(58·여)도 사업에 실패하고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재산 다 날리고 가방 하나 짊어지고 2004년 이곳으로 왔다. 어려서 침을 잘못 맞아 발 한 쪽이 돌아간 장애인이다. 1층 반지하 방에 살고 있지만 수도꼭지가 바로 문 앞에 있고, 집 주인의 세탁기도 함께 사용할 수 있어 남들보다 처지가 낫다.

인씨는 공공근로 등 일을 하고 싶지만 이마저 못한다.

“몸도 불편하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벌면 기초생활수급권자 자격을 잃어요. 노점상을 해도 ‘하루 1만원 이상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수급권을 박탈하고. 그래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못합니다. 정부 보조도 받으면서도 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이곳 사람들은 ‘사람의 체온’이 그립기만 하다. 인씨 벽 한 쪽에는 누렇게 바랜 자국이 있다. 한 대기업 직원이 부인, 애 둘과 봉사활동을 와서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놓은 자리였다. 그 뒤로는 오지 않고 사진 볼 때마다 애들이 보고 싶어서 아예 뗐다고 한다. 출가한 딸이 하나 있지만 이따금 찾아가볼 뿐, 자기를 부양할 처지는 아니란다.

“꿈이 있다면, 조금 있으면 환갑인데 그 전에 임대주택이라도 하나 얻어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 여기 월세금 20만원인데 그 정도는 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보증금 문제가 있어서….”

이 동네 사람들을 돌보는 ‘종로 쪽방 상담소(02-747-9074~5)’에는 조재휘 소장과 김종한 실장 등 사회복지사 4명이 있다. 김실장은 “이 인근 1000평 정도에 건물은 100여개 조금 안 된다. 건평이 12~13평 정도다. 방은 1.5평에서 0.7평 정도다. 500여명이 장기투숙하는데 30대부터 70대까지 있다”고 전했다.

쪽방 상담소는 사회복지시설로 인정을 못 받아 이곳 소속 복지사의 처우도 열악하다. 소장 월급이 160만원, 다른 이는 150만원 정도다. 김실장은 “사회복지사들이 결혼 할 때쯤 되면 나가서 택시를 하거나 분식집을 차린다. 복지사를 하면 돈도 못 벌고, 호봉도 인정 못 받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65세 이상 노인이나 거동이 어려운 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문화행사를 진행해준다. 매일 쪽방촌 노인들 방을 돌아보며 불편한 게 없는지 묻는 것도 이들 몫이다. 조소장은 “정치 1번지, 서울의 한 복판이라는 종로에서 한 골목 뒤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다들 놀란다”고 말했다. 그게 쪽방촌이다.

〈글 최우규·김동은|사진 김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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