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한국인의 자회상](4)‘보금자리’ 아닌 ‘복권’이 된 아파트
입력: 2007년 06월 19일 17:49:34
 
동창회, 술자리, 회식자리에서 이처럼 검질기게 따라 다니는 주제가 또 있을까.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가족이 복닥거리며 사는 ‘집’이 아니라 이익이 남으면 털어버리고 다른 것을 찾아야 하는 ‘자산’이 됐다. 사서 한몫 챙길 수 있는, 그러면서도 상당히 승률 높은 ‘복권’이 됐다. 왜 그럴까. 비강남지역 아파트에 거주하는 최상렬씨 등 4명이 4월19일 경향신문사 인근의 한 식당에서 최우규 기자의 사회로 3시간30분 동안 아파트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비강남지역과 경기지역 소형아파트에 거주하는 최상렬, 김두규, 김문식, 이상섭씨(왼쪽부터)가 지난 4월 경향신문 인근 한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김영민기자>
사회=요즘 사는 게 어때요.

이상섭=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힘들어요. 친척 부부랑 우리 부부가 결혼생활 시작할 때 종잣돈은 비슷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맞벌이라서 집을 ‘질렀고(상황을 따지지 않고 구매했고)’, 그 집 부부는 남편이 혼자 버는 처지라 못 질렀죠. 우리 집 값이 올랐고, 두 집안 순자산을 비교해보니 1억원 차이가 납니다. 이게 정상이 아닙니다.

김두규=저도 맞벌입니다. 집값이란 게 오를 때는 많이 오르고 떨어질 때는 조금 떨어질 것이라는, 누구나 그런 인식을 하는 것 아닐까요. 집사람은 ‘여기 말고 다른(더 오른) 데 샀어야 하는데’ 하는 말을 합니다.

최상렬=집 한채 가진 사람에게는 집값이 오르는 게 의미가 없어요. 당장 팔아 차익을 실현할 게 아니니까. 저는 원래부터 집에 관심이 없었어요. 뉴스를 보면 샐러리맨이 집을 마련하는 데 평균 7년 걸린다기에 ‘앞으로 4년 정도 있으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아내가 2005년 아파트를 사기로 한 거죠.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죠.

이상섭=첫째 애는 본가에서 봐줬는데 둘째 애가 태어났어요. 아내가 둘째는 직접 키우고 싶어하는 눈치였죠. 그런데 아파트 사느라고 대출받은 1억8000만원에 대한 이자가 한달 120만원 정도예요. 한 사람이 버는 돈은 통장에 하루 머물러 있다가 빠져나가는, 정거장인 셈이죠. 돈 모으려면 맞벌이를 해도, 아는 사람이 결혼도 해서는 안돼요. 축의금 나가야 하니까(웃음). 그렇게 고생해봐야 3년에 3000만~4000만원밖에 모을 수가 없죠. 그런데 애들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고 돈 쓸 데가 많아요. 지금 사는 아파트를 전세주고 줄여서 작은 집에 전세로 들어가고, 둘째는 시골에 내려보내더라도 큰애만이라도 키울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육아와 주택이 다른 문제 같지만 실제는 같은 문제죠.

김두규=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애가 영어학원도 다니고 학교에서 시험도 보고 하는데, 할머니가 봐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한번은 애가 ‘딥송(diphthong·이중모음)’이라는 걸 묻는데 저도 몰랐어요. 학원에 안 보내고 놀이터에서 놀게 할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에요. 애 봐가면서, 맞벌이하면서 집 늘리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해요.

사회=꼭 아파트여야 했나요.

이상섭=대출을 받았는데, 이자 보전 정도는 되겠지 싶었어요. 어차피 전세에 살면 전세금을 묵혀두는 데 대한 이자비용이 있지 않나요. 그것을 생각하면 비슷비슷하죠. 다른 것보다 아파트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잖아요.

김두규=전세를 살면 계약 기간이 끝나고 이사가야 하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살려면 집을 사야 했죠. 맞벌이 하기 때문에 애를 봐주실 부모님 댁 가까운 곳을 찾다보니 지금 아파트로 가게 됐습니다. 저는 여유가 생기고 은퇴하면 마당이 있는 곳에 사는 게 꿈이에요. 아파트가 안전이나 방범, 집값 등 좋은 요소가 있지만 마당에서 하늘보고 저녁에 삼겹살 구워먹는 게 좋아요.

최상렬=결혼하면서 처음 아파트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살아보니 편하더라고요. 집사람은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 살아와서 편하게 생각합니다. 관리비만 내면 알아서 다 해주니까. 전세 4년 살다가 집을 사게 된 계기는 애가 둘이 돼서죠. 애들을 처가가 봐주기로 해서 따라간 거죠. 경기 광주 아파트 전세를 알아봤는데 값이 싸기에 대출받아서 샀어요.

김문식=1998년 결혼해 서울의 서강대 근처 다세대 13평짜리 방을 얻었는데 도둑을 맞았어요. 아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아파트가 일단은 안전문제가 해결이 되죠. 지금 사는 빌라에서도 도둑이 들 뻔했어요. 현관 벨이 울려 아내가 잠결에 ‘당신이야’라고 물으니까, ‘어’라고 대답하더래요. 문을 열어 보니 아무도 없고. 도둑이 사람이 있나 확인해보고 그냥 내뺀 거예요. 환금성도 다른 무엇보다 강합니다. 바로 팔아 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사회=직장생활하면서 아파트 마련하기가 쉽지 않죠.

최상렬=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 6000만원을 얻었어요. 20년 상환으로 1년 거치이고, 올해부터 원금을 갚게 됩니다. 그거 때문에 맞벌이가 길어지고 있죠. 아파트는 2배쯤 오르더군요.

김두규=3억원을 주고 샀는데, 1억원을 대출받았습니다. 이자가 100만원쯤 됐는데, 회사를 옮기면서 이전 직장 퇴직금을 받아 갚았습니다. 둘이 맞벌이하면서 9년 만에 빚없는 내집을 갖게 된 셈이죠.

김문식=2000년 아파트 조합 설립 때 참가해 대출 3000만원 포함, 1억3500만원을 주고 샀어요. 집사람 직장이 신촌이고, 그래서 아파트로 안가고 계속 그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지금 사는 빌라에는 2004년 1월 보증금 80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상섭=지난해 5월 재개발 아파트에 분양권을 사고 입주했어요. 2001년 결혼하던 해 전셋값이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그래서 경기 평촌 15평짜리 아파트를 대출 끼고 8300만원에 샀죠. 집사람 직장이 사당동이어서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 뒤 우리 부부는 우스갯소리로 ‘직장이 강남에 있었으면, 가까운 분당에 집을 얻었고 그럼 가격이 더 올랐을 텐데’라는 말을 하곤 해요.

김문식=예전에 전세가 8000만원이라면 매매가가 1억1000만원 하던 때 자기 예산 안에서 안전하게 그냥 전세 산 사람이 있어요. 반면 빌려서라도 ‘에이, 사자’고 한 사람은 돈을 벌었고요.

김두규=운인 것 같아요. 저는 아파트 갈아탈 때마다 재미를 못봤어요. 결혼하기 전에 대출받고,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샀어요. 돈이 안될 거 같아 팔았는데 나중에 올랐습니다. 배가 아프더군요(웃음). 2004년에 31평형 아파트를 샀는데 애가 초등학교까지 들어갈 참이어서 팔아서 본가 아파트 근처로 갔어요. 그랬더니 판 집이 오르더라고요.

이상섭=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상가 임대료는 강남 수준입니다. 그런데 상가 사람들 ‘집집마다 최소 1억원씩 대출한 상태라서 일반 주택가보다도 구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해요. 집에 몽땅 털어 부었기 때문에 통닭도 한마리도 못시켜 먹는 거죠.

최상렬=지금 살던 아파트를 팔고 서울에 가면 강남으로는 도저히 못가고, 다른 데도 전세밖에 안돼요. 결혼할 무렵 집 장만하기 좋은 때를 놓친 게 아쉬워요. 부동산을 몰랐어요. 1억원짜리 30평대 연립주택인데 수중에 2000만원이 전부였어요. 지금 같으면 무리해서라도 대출받아 샀을 텐데…. 2년 정도 있다 그 연립주택은 재개발로 수용됐고, 죽전 쪽에 조합원 가격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주더군요. 그때 연립주택을 샀으면 지금쯤 재산이 6억~7억원은 됐을 거예요.

이상섭=은행에서 집단 대출이라는 걸 해주는데 아파트 거래 가격의 60%까지 돼요. 아직 투기지역이 아니고, 등기가 안돼서 그렇다더군요. 은행에서 하는 말이 ‘등기되면 40%로 떨어지니까 지금 받을 수 있을 때 왕창 받으라’고 하더군요. 제가 창업을 하면서 온갖 서류를 다해갔어도 달랑 500만원 받았는데, 아파트 담보만 하면 그냥 3억원씩 해주는 거예요. 빌라나 단독주택은 그렇게 안돼요.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빌라같은 게 아니라 돈을 잘 받을 수 있는 아파트로 갈 수밖에 없죠.

최상렬=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올랐어요. 지금 집을 팔면 바로 다음날도 그 돈 갖고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조카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본가에 올 때마다 ‘삼촌집은 몇평이야. 우리집은 현대아파트인데 얼마전에 현대아이파크가 됐다. 우리 동네에는 푸르지오가 제일 좋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얘가 뭘 알겠어요. 어른들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자기들도 그러는 거지.

이상섭=우리 아파트 인근에 경전철이 놓인다고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그런데 얼마전에 경전철이 기차처럼 요금 먼저 내고 타는 식이 아니라 먼저 타고 요금을 계산하는 버스처럼 다니는 것으로 바뀐다고 사람들이 데모를 했어요. 요금을 먼저 내는 방식이 편하다는 거예요. 그래야 집값도 더 오르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집값을 올릴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 같아요.

김문식=이제 ‘아파트는 돈’이라는 공식이 진리가 됐어요. 농경시대에는 땅 많은 사람이 최고였는데…. 지금은 아파트 몇채를 어디에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직장이 좋아도 불안하고.

최상렬=아파트는 능력보다 큰 것을 사고, 차는 능력보다 작은 거를 타라, 그게 부자되는 길이라고 하더라고요.

김문식=우리 부부는 일산 아파트를 팔아 지금 사는 곳에서 눌러 살기로 했어요. 성산동에 공동육아제가 있는데요, ‘도토리 방과후’라고 공동육아협동조합입니다. 부모가 출자해서 교사를 불러 학교 숙제도 점검해주고 간식도 주고, 부모 퇴근때까지 프로그램 진행도 합니다. 애들에게는 언니, 오빠가 있어 좋습니다. 아파트를 처분하고 지금 전세 보증금을 받으면, 지금 사는 근처에 아파트를 하나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민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파트를 장만하기란 쉽지 않고 어렵사리 장만한 아파트도 비강남권의 경우 강남지역보다 집값이 잘 오르지 않는다. 사진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단지.
(공동육아제를 체험한 이를 처음 보는 듯 다른 참석자들은 김문식씨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맞벌이 부부들이 특히 더욱 관심을 갖는 게 자녀 교육이다. ‘부모가 어린이집 운영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데 힘들지 않느냐’는 등 질문이 쏟아졌고, 자신들의 경험담도 이어졌다.)

최상렬=시골에서 중1 때 서울로 전학 왔습니다. 지금 중학교 동창 중에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애들을 생각한다면 정착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중간에 친구와 떨어뜨리는 거는 안좋은 거 같아요.

이상섭=재테크를 할 여건이 되는 사람은 따로 있어요. 평범한 샐러리맨도 ‘집을 사고난 뒤 나중에 재건축되면 뜬다’고 알지만 돈이 있나요. 2년전쯤 아파트 입구에 ‘하교부터 귀가까지 자녀를 책임진다’는 내용의 학원광고가 붙더군요. 한마디로 집을 마련하기 위해 나머지는 다 ‘아웃소싱’하는 거예요. 부부는 맞벌이 하고, 얘들은 학원으로 내몰고.

최상렬=직장이 서울 강남에 있는데 다닌 지 10년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에 강남에 집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어요. 종부세가 엄청난데 대출받으면 이자비용에다 종부세까지 부담할 수 있나요.

김문식=유럽에서는 교육문제를 사회적으로 책임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되죠. 그러니 아파트를 갖고 있다가 팔아서 그런 거 해결하는 거죠. 단독주택이면 시세도 보고, 환경도 봐야하고 복잡하지만 아파트는 인터넷으로도 시장 가격이 바로 나오잖아요. 잘 팔리고.

이상섭=정부가 여러차례 부동산 정책을 내놨는데 지난 2월에 나온 것이 가장 강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조치를 왜 지금에서야 내놓았는지. 예전에 총선 직후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때 그런 정책을 내놓았으면 지금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것 같아요.

사회=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어떤거죠. 어떤게 행복인지요.

김문식=애가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돈이 제일 문제예요. 학원비다, 뭐다 들어갈 데는 많고. 이제 앞으로 돈 벌 시간이 10년 정도밖에 안남은 거 같고. 그래서 걱정입니다. 행복이라…. 저는 ‘만족’이라고 봐요. 남이랑 비교해보면 끝이 없고, 그저 어느 정도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고. 행복이라는 것도 스스로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싶군요.

김두규=나이 40이 되고,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되고, 회사에서 부장이 되니까 ‘아,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부쩍 듭니다. 삶의 무게라고 할까. 가족이랑 오순도순 살고 있으니 그마나 괜찮네요.

사회=정치에 대한 견해는.

김문식=저는 정치인 수준은 그 유권자 수준이라고 봅니다. 정치인 욕해봤자 스스로에게 욕하는 거죠. 참여는 하지 않고, 정치인에 대한 기대 수준은 높고, 뽑아놓고 소홀히 여기고. 그런 모순적인 상황인 듯해요.

김두규=감정적으로는 정치 혐오감, 그런 게 있어요. 당리당략, 싸움, 그런 거죠. 하지만 내 목소리를 내서 고쳐보자거나, 시민운동을 해볼까 하면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사회=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시죠.

김문식=토지공개념이 위헌이 아니라니까 좀 더 밀어붙였으면 해요. 집으로 재산을 불릴 생각을 하지 말도록요. 그리고 뉴타운이니 뭐니 하는 각종 개발은 3~5년에 걸쳐 할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측이 되고 주민도 선택권을 갖고, 투기도 줄어들 거 같아요. 저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지지하는 정당은 없습니다. 대선 후보 중 아직 확실히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문국현씨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최상렬=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사는 이상 소득에 따라 누리고 사는 게 필요합니다. 문제는 모두가 부동산으로 몰리니 불로소득 개념이 생긴다는 것이죠.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을 수 있다면 엄청날 것 같아요. 그런 인식전환의 기반은 마련해줘야 합니다. 요즘 후보 중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나은 거 같아요.

이상섭=1가구 1주택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할 후보가 있으면 지지하고 싶어요. 주택은 공공재 성격이 있다고 봐요. 이를테면 아빠와 아들은 타워팰리스 한채에 살고, 엄마와 딸은 아이파크 한채에 살고 이러지는 않죠. 대부분 한 집에 살죠. 또 무주택자들에게도 돈이 없어도 형편에 맞춰 집을 살 수 있게 공영 아파트를 싸게 공급해줬으면 합니다. 고급자재를 쓰지 않더라도요. 민주노동당을 죽 지지해왔고, 심상정 의원을 지지합니다.

김두규=지지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어요.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이 부동산값과 관련해 공급이니 수요니 하면서 얘기하는데 정답을 누가 알겠어요. 정책에 일관성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모든 국민을 투기 전문가로 내몰지 않지요.

〈최우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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